시구레의 무감정한 음성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쪽 눈썹이 움찔거렸다. 목 부근을 베어내며 짧은 시간 동안 눈처럼 쌓인 정을 베었다 되뇌었다. 그러다 겨누어진 총구에 멈칫, 시구레의 시선을 따라갔다. 저 안에 들어갈 셈인가, 잠깐, 몇 명이나 들어갔지? 벙커 측은 들어갔나?
살로메는 돔으로 가는 시구레를 침묵을 지키며 물끄러미 바라보다 막아섰다.
"이미 아발란치 측이 들어가버린 것 같은데 당신은 안 들어가도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슬그머니 눈치를 보곤, 돔 근처에서 대기하다 습격하려는 계획으로 자리를 옮기려했다.
어그로를 끄는덴 성공했지만 누가 봐도 '빡친' 모습에 그녀의 입에선 자연스럽게 험한 말이 나왔을까?
그나마 자신이 시선을 끈게 효과가 있던건지,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린 바닥의 홈에 바퀴가 끼어 성공적으로 무력화된듯한 모습에 그녀는 엄지를 치켜올려보였다. 역시 폭발은 예술이다.
"나이스~!"
최소한 저 토마스를 상대로 허들넘기를 하진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일까, 이제 남은건 여길 빠져나가고보는 것이었다. 상대가 적이든 누구든 알게 뭔가, 일단 여길 나가야 나중에 싸워도 싸우든가 하겠지. 이 정체불명의 장소를 벗어나든, 본 목표를 달성하든, 좋든 싫든 협력을 해야지 싶었다.
허나 그녀의 성격은 어디 안가는지 문을 열고 가려던 중 뒤를 돌더니 아직도 헛바퀴질을 하고 있는 거대 청소기에게 키득거렸다.
자리 이탈을 시도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방금까지 싸우던 여자에게도 금세 따라잡혀버리지 않았는가 앞을 가로막는 살로메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니-"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살로메를 밀친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총탄이 날아와 머리칼을 빗겨간다. 아마도 방금의 리볼버겠지 이쪽을 노리는건 그렇다쳐도 이 여자는 아군일텐데, 아군이 사선이 겹쳐 있는데도 쏘다니 벙커도 미친건가? 아니면 사격에 꽤 자신있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시야 안으로 비춰지는 돔의 입구가 안타깝게 보였지만,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곱게 들어가기에는 글렀다 시구레는 방금 밀쳐냈던 살로메를 노려보며 한 소리했다
"잘 들어요, 머리가 꽃밭인 아가씨. 저를 방해하면 당신도 죽어요."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는게 좋다고 몸을 옆으로 돌려서 이쪽의 피격면적은 줄이고 권총으로 응사한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머리를 맞으면 죽는다
낮은 시선의 주인은 종종걸음으로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바닥이 열리는 충격음이 들리면 시선은 위로 붕 뜨며 뒤를 향해 돌아간다. 그때 시선에 떨어지는 머스티아가 보이던 것도 찰나, 시선의 높이는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간다. 뒤는 신경도 안 쓰는지, 유유히 걸음을 옮기던 고양이는 내부의 연구실 같은 시설 안을 둘러본다. 그는 고양이의 동공이 확장되며 보다 넓은 시야가 공유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신기해하는 것 같다고 짐작하더니, 공유된 시선에서 버튼 (고양이는 이것을 보자마자 누르려 달려나가려 했지만, 세이메이가 겨우 막았다)과 USB로 추정되는 물체가 하나 보인다. 추정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고양이의 시선이 어느 한 책에만 집중되어 있어 USB에 초점이 안 맞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그에게서 공명하듯 느껴진 지시에 귀찮다는 듯 한껏 축소된 동공과 함께, USB 쪽으로 터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고양이는 탁자 위로 올라가 USB를 집어 삼키려 했다. 성공했다면 기척을 죽이고선 곧 세이메이의 곁으로 돌아오려 할 것이다.
그 와중에, 세이메이는 곧 무전을 시도하더니 입을 열었다.
"떨어지신 분, 엉덩이는 괜찮아요? 백업 필요해요?"
머스티아에게 하는 물음이였다. 자신이 하는 일이 없게 되어 가만 서 있다가, 근처의 돌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난전 중인 시구레가 보이면 돌덩이를 낮게 들어, 휴스턴의 머리 쪽으로 투척했다. 그의 시야에 시구레가 살로메를 보호하려 든 것이 스쳤을때,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이 스며나온다. 시구레가 무전을 듣고 있다면 그가 "이야~ 로미오와 줄리엣~~" 라며 의미불명인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 들릴 테다.
빗나갔다면 그는 머쓱하게 손을 흔들고선, 벙커 측 인물의 통행을 방해하러 돔 앞쪽으로 향하려 할 것이다.
시구레는 어린 나이임에도 아발란치 내에서 꽤 고참에 속했고, 그래서일까. 이해가 빨랐다. 전장에는 아직 유토가 있다. 아무리 전투중이라고 한들 꾀 부리는 조직원을 놓칠 그녀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어줍잖게 행동하거나, 아무런 수확도 없이 자리를 이탈했다가는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 아닌가.
지금도, 시선이 느껴지는걸. 아, 공격을 하는걸 봤는지 조금 가라앉는게 느껴졌다.
살로메는 돔의 근처까진 갔으나 대기하고 싶었던 장소만큼은 다가갈 수 없을거 같다. 세이메이와 동선이 겹쳤기 때문이다. - "음?! 어라,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여성은 정말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듯, 머스티어를 뒤늦게 눈치채고 나서도 태연하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그뿐인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머스티어 쪽으로 다가와주었다.
"무슨 용건이신가요?" - 샐비아와 이츠와는 사이좋게 문을 나서기로 했다. 이츠와의 허접 소리에 청소기가 화를 내는듯 보인것은 아마 착각이었을것이다. 그리고 문을 나서자 보이는것은 머스티아와 타겟인 여성이었다. 거리는 머스티아보다는 좀 더 뒤이긴하나. 이 방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몇걸음 내딛으면 닿을만한 거리기도 했다. - 세이메이의 고양이는 아무런 방해없이 USB를 챙길 수 있었다.
시구레의 발을 붙잡기 위해 무어라 말을 추가로 덧붙이려던 시도는 몸이 홱 밀쳐지면서 끊겼다. 전신이 사이보그였던 그 사람-휴스턴-인가. 그가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발포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의외인 것은 방금 보인 시구레의 행동. 허, 참. 살로메는 헛웃음을 삼켰다. 살인까진 못하는 인물인 건지, 정말 그 찰나의 정을 저 소녀도 느꼈던 것인지. 그러나 이런 고민은 헛되었다. 벙커와 아발란치이지 않나…. 그들이 쌓는다면 아무리 공들여 쌓는다 한들 그저 툭 치면 무너질 모래성일 터인데.
살로메는 침음을 삼키며 조용히 돔 근처로 다가갔으나 생각만큼 접근할 수는 없었다.
"이제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네, 얼른 비켜주겠어? 안 그럼 찌를 거야."
번뜩이는 날을 치켜들었다. 나머지 칼은 시구레의 총을 향해 쏘느라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