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외모 칭찬에 우쭐해진 그가 이젠 '나이스 가이 휴스턴' 이라는 호칭까지 언급하자 그녀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아주 잠깐 눈으로 욕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내 측은한(?)눈길로 변했을까,
"어디 가서 그런 멘트 날리지 말아요... 진짜 올드해보여... 핸섬 휴스턴이 아니라 너드 휘틀리 같다구,"
이내 고개를 떨궈 이마를 짚은 채로 한숨만 내쉬는 그녀였다. 그나마 태닝은 하지 않아서 납득범위 내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가 서양에서 흔히 말하는 Jock의 표본같은 인물이었다면 살짝 질린듯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틀린 말은 아니었을테니 나름 납득이 되긴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그녀가 그의 과거를 알 턱이 없으니.
"뉘예뉘예~ 감성 낭만 중요하지요~ '미스터 원 샷 센티멘탈 엉클 버블검 나이스 가이 잭 휴스턴'~"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던 그의 별칭을 한데 모아서 말하곤 다시 혀를 빼무는 그녀였다. 그의 말도 얼추 맞긴 했다. 분위기는 그저 읽을줄만 알뿐, 곧장 훼방을 놓아버리는게 그녀의 성미였으니까. 어찌보면 본능적으로 낮간지러운 상황을 피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튼튼한 엉클 잭 휴스턴도 잠은 자야 한다구요~?"
습관처럼 뒷목을 매만지던 그녀는 잠깐의 하품 뒤에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아직 밤은 깊지 않지만,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과연 그럴까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위험한 사람인 리더도 '레이디'였고, 피를 손에 묻히고 디저트를 둘러싼 나도 당신도 당신이 말하는 '레이디'였다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뒷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가 보다 말하자면 머릿속이 꽃밭이다. 시구레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 만 봐도
"네? 아니... 괜찮아요. 일부러 그래주시지 않아도."
호위라는 말에 짐짓 놀란듯 손사래를 치며 사양의 기색을 내비쳤다 곤란하다. 정말로. 적당히 길을 돌려서 속여넘길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귀찮고 아발란치의 본거지를 노출시켜서 일이 생기는 것도 사양이다 그래서 결국엔 이 여자를 제거해야만 하는 결과가 되는 건 정말이지 최악이다 그럼 이런 연기도 전부 헛수고가 된 셈 아닌가, 쓸데없는 시간과 힘만 들인 거다 오늘은 빨리 들어가서 내일 과목을 예습해 둘 생각이었는데... 괜스레 발이 묶여서는 귀찮은 일이 됐다 그러고보니, 이 여자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물가물하지만 생각에 빠져있던 시구레는 묻는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얼떨결에 메뉴를 훑고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흐음, 정말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으로 빤히 응시하다 실례라는 것을 깨닫곤 시선을 옮겼다. 포크로 밀푀유에 장난질을 하다 한 입 먹으며 고뇌를 함께 삼켜냈다. 손사래까지 치는데 여러 번의 사양을 하게 만드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밀어붙여봤자 더 짐을 지게 할 뿐이다.
"음… 그래요, 그럼."
그래서 살로메는 깔끔하게 한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방금 큰일이 날 뻔하기도 했으니 다신 그 길로 가진 않겠지. 그런 더러운 곳에 있는 건 피 묻히기로 결심한 자신 혼자로도 족했다. 데려다주지 못하는 건 못내 아쉬웠지만, 양지 생활 흉내내는 것은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살로메는 주문 후 얼마 안 되어 나온 얼그레이 티를 한 모금 마시곤 냅킨으로 입가를 톡톡 두들겨 닦았다. 양지 흉내는 오늘로 충분했다. 살로메는 옆 의자를 부스럭대더니 많은 양의 디저트 포장 박스를 꺼냈다. 싱긋 웃으며.
"이건 선물. 즐거웠지만 다신 보지 말아요. 다시 보는 건 위험한 상황일 것 같거든요."
상대가 뒷세계 인물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은 아니고 다시 마주하게 될 때라면 소녀가 다시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으나 어쨌든 정체를 알고보면 의미심장한 문장이었다.
// 이벤트 때 플래그 세우기... (^//^)> 막레 주시거나 막레로 해주시면 될 거 같아용,!!
누구한테 멘트를 날릴만한 사람은 아니라며 급히 해명하는듯 보이는 그라도 역시 너드란 말엔 기분이 상했는지 분위기가 살짝 변하자 그녀도 질세라 머리 위에 양 손을 대어 토끼 흉내를 내었다.
혹시 누가 아는가? 휴스턴이 사실 학창시절엔 머슬카를 몰면서 뭇 여심을 자극했었을런지도, 물론 시기도 10년이나 차이나고 무엇보다 사는 곳도 달랐기에 그당시의 그를 보진 못했겠지만 만약 마주쳤다 해도 그녀는 심드렁한 태도를 고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만약 동시간대에 존재했다면 그녀는 아마 Geek에 가까웠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꼬맹이가 다 큰 어른 놀려먹는게 싫다면 그 감성, 낭만이란게 뭔지 알려주시던지~"
그녀로서는 당연한 행동기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큰 이유는 낮간지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에선... 적당한 거리감을 두기 위해서,
"아아니, 이눔의 아저씨가 이젠 진짜루 사람을 놀려먹네?"
솔직히 꼬맹이라던지 땅꼬마라던지는 이제 누가 그리 말하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지만 저기 날름 먼저 아지트로 들어가버리는 그의 뒷태가 어지간히도 열받았는지 그녀 역시 튕겨져나가듯 따라갔다. 물론 쫒아가려고 하던 손에는 이미 총구가 그를 향해있었지만 이후 어떤 상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나중에 알려진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