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는 이 저택의 분위기 따위는 무시하듯, 그 자체만으로 강한 압박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수 개의 문들이 열리고, 오직 한 곳으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많은 경험을 통해 익숙할 법도 함에도, 준혁을 당황스럽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긴 거리의 끝에 앉은 한 명의 노인. 잠시 살피는 것만으로도 과거 준혁은 저런 인물들을 보아왔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 세력을 다스리는 자들, 한 길드의 장이라 할 법한 이들의 눈빛이 무겁게 준혁을 살펴보는 듯 싶었습니다.
" 북해 길드의 망나니라 하여 어디 그 기세를 볼까 하였다만, 그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였나보군. 세상의 일들을 겪으며 배움을 얻기라도 하였단 말이던가? "
준혁은 대답 대신, 그가 열어준 길을 타고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오래된 듯한 나무로 된 작은 판과, 그 위에 올려진 두 잔의 차가 보였습니다. 그 너머에는 준혁을 이곳으로 부른 게 자신이라는 듯, 정좌를 하고 앉았음에도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표현하자면, 나이 많은 노인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제 세상의 끝을 보고 있다는 듯. 피부 곳곳에 보이는 검버섯은 그의 삶을 잡아먹고 피어나는 듯 보였습니다. 얼굴을 가득 덮은 주름은 누가 보더라도 그의 나이가 늙었음을 보여주었고, 그에 더해 주름에 의해 짓눌린 눈은 그런 분위기를 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렇게 만들어진 날카로운 눈은 크지 않고 마치 뱀처럼 찢어졌는데 거기에 더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눈동자. 특히 동공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크기의 눈동자에 의해, 흰 도화지에 그린 작은 원처럼 생긴 그 눈은 사람을 살피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비치지 않아 이 사람이 어떻게 나를 바라보는지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더해 외견으로 보자면 초로한 노인이었기에 그것들을 빼고 본다면 긴장이 될 법한 상대도, 딱히 무섭지도 않을 인물이었지만.
눈. 저 눈 하나가 준혁의 불안감을 깊게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 앉으시지요. "
노인은 건조한 입술을 혀로 젹시며 준혁에게 말합니다.
" 내 이름은 아카가미 이오시카. 아카가미 家의 현 당주이자 아카가미 社의 최고봉에 있는 노인네외다. 어쩌면 곧 죽어서 내 재산을 꿀꺽하기 좋을지도 모르겠구료. "
>>425 가게에서 나옵니다!
지오는 어깨에 창을 걸터메곤, 슬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27 조금의 흐름이 끝나가기 시작하고, 더 많은 피가 터져나옵니다. 수술을 이어가곤 있지만. 만약 지금같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실수가 한 번 더 반복된다면 환자는 사망할 것입니다.
>>474 말씀을 낮춰달라. 그 말을 들은 이오시카는 가는 눈을 크게 뜨고 준혁을 살핍니다.
" ... 그렇구만. "
그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로 이루어진 물기를 마른 입술에 불어넣으려는 듯 가볍게 두드립니다.
" 나는 누구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는다오. 그것이 내 피와 연결이 되었더라도 말이지. "
허리를 쭉 펴며, 우드득 하고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 사람은 본능적으로 말을 낮추면서, 그와 친하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실상은 친해지거나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경계의 벽을 허물어 그와 가깝다거나, 거리를 좁힌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려 하곤 하외다. 그러니 나는 마음을 내어주지도, 거리를 좁히지도 않기 위해 누구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는다오. 그 대신, 누구도 낮춰보지 않지. "
툭, 툭, 그는 자신의 가는 다리를 두드립니다.
" 그러니 그대야말로 내게 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을 대한다는 생각으로 얘기하시외다. 어차피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은 우리가 내민 조건이 어느정도 합당하여서. "
아니면, 더 바라는 것이 있어서.
" 그러니 거래를 받아들이는 게 맞지요. 현이라는 피와, 아카가미라는 피를 뒤섞어.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니 말입니다. "
노인은 묵묵히 준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 그런데 그것은 가문의 일이고... 현준혁. 개인의 일은 아니지요. 무엇을 바랍니까? "
'어떤 이야기인데요?' 라고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한 친구가 남긴 이야기란 것은. 이제는 듣지 못할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그런 추억을 호기심이란 이름으로 진흙발로 버젓이 들어가는건 달갑지 않은 행위다. 상대가 친절해도, 아니 친절하니까 지켜야 하는 예의는 있는 법이지.
처음으로 린이 신성이라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린은 그 순간을 백지 예언서라는 물품을 사용한 순간으로 인식합니다. 죽음과 심판, 그 자체를 다스리는 신. 자신의 아버지. 어린 왕 쥬도를 만났을 때. 그 때의 신성은 마치 온 몸을 죄여오는 밧줄처럼 린은 구속하고, 무릎 꿇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왕이라는 그의 신명과, 죽음이라는 요소가 만나 린이 그리 인식하도록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두번째. 린은 신성이라는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받았던 모든 것들이 실은 바람 앞 촛불처럼. 폭풍우 속 작은 통나무처럼. 아주 미미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불경하면서도, 지독한 사실이었으니까요.
하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거대한 빛은 태양의 빛과는 다른 성질을 지녔습니다. 눈으로 보기를 바란다면 볼 수 있으나, 그 빛의 근원을 바라보려 한다면 눈이 녹아버릴 것이 분명했습니다. 온 몸의 피로와 고통은, 단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에 휘말려 사라졌습니다. 짧은 언어로, 신을 찬미하기 시작한 저 목소리에 의해 거대한 신성이 이곳 전체를 휘감았고 그 장엄한 기적에 단지 린은 그 예배를 마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
그리고 그것은, 린의 신. 어린 왕 쥬도에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성, 그것을 바라고, 그것을 퍼트리길 원하며, 그로써 존재하길 증명하고자 했던 신에게 있어 자신의 신성과 이 신의 신성을 비교한다는 것은 불꽃 앞에서 촛불의 빛을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쥬도는, 자신의 감정과 소감을 가감없이 내뱉었습니다.
- 위대한 신격이로구나.
그저 감탄스럽기에. 신으로써, 같은 신에게 보내는 찬사는.
- 이런 존재라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도 되겠지.
영원토록 남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의 염원. 그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480 " 내가 그 흉선이다만. "
꼽추는 검을 휘휘 젓다가 그대로 자리를 떠납니다.
" 손님 대접 안 받겠단 사람에게 주인 대접 할 필요 없지. "
>>482 베로니카는 단지 짧은 언어로 대답합니다.
[ 괜찮아요. ]
활력도 적고, 꽤 지친 듯 하였지만 말입니다. Tip. 지금처럼 무언가를 해내거나, 하지 못한다면 베로니카를 만날 시간은 더욱 뒤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한 시나리오가 끝난 뒤가 될 수도 있겠죠.
[그동안... 내가 뭐가 문제였는지 생각해봤어.] [또라이 기질도 좀 억제하려 해보고, 이것저것 수련도 해보려고 하고, 그러다 다 잘 안 되고.] [너한테 널 위해 뭔가 했다고 말하려 했는데, 뭔가 한 게 없으니까 연락하기가 힘들더라고. 아무리 염치 없는 나라도, 아무 것도 안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거든.] [하지만 미안해.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아. 앞으로는... 자주 이야기할게.] [어쨌든, 오늘은 나에게 가르침을 줄 지도 모를 사람을 찾았어.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한거 같아.]
" 만약.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기사단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을 찾는다면.. 내게 알려줬음 해. "
천천히. 그는 대답을 이어갑니다.
" 많은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아. 짧은 이야기라도, 아니면 긴 이야기라도 좋으니. 만약 그런 이야기들을 찾는다면... 그래. 이 곳에 맡겨주면. 내가 답을 주도록 할게. "
그는 아까 두 사람이 있었던, 늘어진 소 카페를 보며 이야기합니다.
" 부탁해도 괜찮을까? "
>>487 아카가미 이오시카의 시선. 그 시선을 바란다는 말에 그는 허리를 쭉 펴고, 준혁의 눈을 바라보다가. 불가능할 것을 바란다는 듯이 천천히 고갤 젓습니다.
" 무리이외다. "
말합니다.
" 내 눈은 무엇도 보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따로 볼 수 있어야만 하지요. 남들의 눈엔 이 찻잔과 차를 합쳐 차茶라고 보지만 내 눈으로 본다면 이것은 물과 잎, 찻잔과 재질. 이러한 것으로 나뉘어 보아야만 가능한 법이오. "
이오시카는 조용하게 준혁을 바라봅니다. 여전하게도, 준혁의 시야는 어지럽게 그의 본모습을 비춰주지 않습니다. 분명 처음 본 순간에는 그의 얼굴과 모습이 보였음에도, 준혁이 그를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단지 뭉그려진 특징에, 얼굴이 되었을 뿐이니까요. 지금의 준혁이 그 모습을 뱀으로 보듯 말입니다.
" 눈으로 보이는 것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이 어찌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살피겠다 하시오. 내 시야? 이런 것쯤은, 바란다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일 뿐이지요. "
처음으로, 이오시카는 웃음을 흘립니다.
" 이런 시야보다 더 큰 시야라면 모를까. 내 눈으로 닿을 수 있는 곳은 커봐야 한 기업의 장일 뿐이외다. 현준혁. 더 높은 곳을 보려는 이가 아래를 살피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으시오? "
툭, 툭, 그는 무릎을 두드리며 말을 잇습니다.
" 노인네를 시험할 목적이라면 이만하면 되지 않겠는지요. 이제, 제대로 원하는 것을 말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