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모습을 보면 무릇 인간들은 얼빠진 반응을 하기 마련이라, 신선한 반응에 그녀의 무료함도 조금 달아난건지 매화처럼 붉은 그녀의 입술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 허면 그런 소식을 전해줄 이 하나 조차 없었단 말이더냐. 실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
" 허나 걱정하지 마라. 나 역시 마을의 소식에 정통하지는 않은 몸이나, 이 해후에도 분명 뜻이 있을 터. 너와 나는 이렇게 만났고 겨우내 찬거리가 없는 네게 유용할 터인 정보를 내가 귀띔해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벗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인연이겠지. "
그녀는 고혹적으로 미소지었다. 자신의 미소에 무릇 사내라면 연심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그녀는 저고리의 품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자신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긴 장죽을 꺼내었다.
" 그렇다면 벗이여, 나를 위해 불 정도는 붙여줄수 있지 않겠는가? 무료함 탓에 산보를 나오기 전, 이 녀석에 불을 붙이는것도 잊어버렸으니 내겐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네. 자네도 짐짓 눈치챘겠지만, 내겐 연동도, 곁에 가까이 두는 시종조차 없으니 이런 곳에서 불을 붙이는건 어려운 일이지. "
그녀는 잿빛 눈동자로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사용하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녀는 그리메, 악몽을 배회하는 공포. 저명한 요괴. 호의를 베풀고 가벼운 대가를 요구한다. 그것을 몇번 반복하면 상대는 어느샌가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더 많은 이로운 이'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거기서 점점 더 적은것을 받고 많은것을 주게 되면 상대는 자신의 부름과 부탁에 기꺼이 달려오게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돌이킬수 없는 것을 자신이 요구한다. 방법은 많다. 황연에 빠지며 한 꺼풀씩 여인의 옷을 벗기듯, 교묘하게 속삭이며 자신의 말을 듣게끔 한다. 그렇게 이번엔 자신이 주었던 것 보다 더 많은것을 받는다. 공포도, 육신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녀는 오만하게도, 이런 생각으로 사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허나 이전에 떠올렸듯, 지금 눈 앞의 사내를 해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연동 정도로 삼는 것. 자신의 장죽에 불을 붙여주는것. 그녀는 눈 앞의 사내가 당연히 그렇게 움직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노라고 쉬이 생각하니. 이 어찌 오만하지 않은 일일쏘냐.
" 보이는게 다 네 것이라. 참으로 욕심 많은 사내로다. 본녀의 입에는, 이곳의 풀과 열매 따위는 잘 맞지 않으나, 네가 그렇게 열심히 캐는것을 보아하니 관심이 생기는구나. 그걸로 무엇을 만들어 먹을 생각이더냐? "
일상 돌리면서 혹시 불편하게 있으면 말해주면 고맙겠음 그리메가 원하는건 식을 담뱃불셔틀 정도로 삼는 아주아주 나쁜 요괴스러운(?) 행동이라 내가봐도 아주 싸가지가 없어보이기는 함... 기분이 나빴으면 미리 사과하겠음 하지만 그리메주가 원하는건 식을 마음대로 다루는게 아니니까 편하게 이어주면 고맙겠음
>>431 그렇군 아리스주의 표현이 상당히 서정적이고 매력적이라서 멋지다고 생각함 나도 정신을 차려보니 빠져있는 것들이 있으니깐 공감이 되는듯 나는 개인적으로 만화를 보는걸 좋아함 장르도 딱히 안가리고 말이지 동방 만화같은것부터 시작하면서 나도 아리스주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동방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기쁘겠음 질문이 많아도 날 견뎌주면 진짜 고맙겠음...
식주 엄청 대단하군 캡틴 반응이나 디아블로3 난이도같은걸로 보면 엄청 어려워보이는데 난 그런걸 잘 못해서 대단해보임 (정말 메데타시 메데타시인게 맞는걸까 싶기도 하지만 깼으면 된것같기도 하고)
어쩌면 은신처가 불타고 저장해둔 음식도 썩거나 다 약탈당했다면 그럴수야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의 자립생활은 나름 괜찮았다. 게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마을을 나간 사람이 와서 음식을 달라고해도 이상하다고 여길테니 곡식은 커녕 소금을 뿌려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금은 귀하니 모래를 뿌릴지도 모를 일.
"불을, 붙여달라고?"
불을 붙여달라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찡그린 그는 그 기다란 장죽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장죽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은지 마치 부러뜨릴 것 같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산보가 끝난 후 즐기도록 해."
킁. 콧소리를 내고는 그는 거절의사를 표현했다. 그에게 그녀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수풀이 많은 장소에서 불을 피우다니 딱 번져나가는 불길에 같이 갇혀 그 매연에 기절하고 구워지기 딱 좋은 행동이라 생각하며 다시 킁, 하는 콧소리를 내었다. 그는 설령 강 근처라고 하더라도 수풀이 근처에있는 장소에는 불을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들기 힘들어보이는곳에 불을?
"절대 안하지. 절대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이어지는 말에는 평범하게 대답해주었다.
"이것들을 잘 갈아서 잘 말려놓으면 적당히 오랜 시간이 되어서 먹을 수 있고 물에 타마시면 적당히 고소하고 꿀같은걸 구해다가 같이 마시면 맛도 그럴듯해져. 게다가 마시면 적당히 정신이 어지러워지는게 술이랑 다를게 없잖아?"
그녀는 사내의 말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 큰 눈이 감길때마다 긴 속눈썹이 가라앉고 뜨는것이, 마치 유려한 나비의 날갯짓을 보는것만 같았다.
" 마을에서 살고 있지 않은겐가? 이곳 환상향에서도 드문 인간이로다. "
자신이 알고 있는 한, 보통의 인간은 마을에서 거주할 터였다. 그 곳이 훨씬 안전할 터이니. 그 연약하고도 달콤한 육신으로 쉬이 이곳 환상향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닌다면, 혹은 무리를 짓지 않고 자신과 같은 요괴처럼 고고히 살아가노라면 그 누가 차려진 밥상을 마다하겠는가. 먹어도 해가 되지 않는 인간이라고 그녀는 이 순간 눈 앞의 사내를 멋대로 단정지었고, 말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시작했다.
" 허면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성에 찰까? 겨울을 날 찬거리가 부족해보이니 음식이라도 배부를만큼 가져다 주면 되겠느냐? 내게 말해보거라. 그대의 욕망이 무엇인지 말이다. "
그러다, 눈 앞의 사내가 얼굴을 찡그리고, 긴 장죽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그녀는 그만 풋, 하고 웃어버렸다. 당장에라도 부러트리고 싶다는 생각을 숨기기는 커녕, 만개한 꽃처럼 활짝 드러내는 그 시선도,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그 행동도 모두 그녀로써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 그렇다면 벗이여, 그대의 말대로 산보가 끝난 후의 즐거움으로 미뤄두도록 할까. 나는 조바심을 내어 성급하게 설익은 밥을 먹을 정도로 교양이 없는 이가 아니니 말일세. "
말 그대로였다. 굳이 이 곳에서 담배를 피워 이 즐거운 해후를, 예상하지 못한 무료함을 깨는 대화를 끝내는것은 즐겁지 않은 일이었으니. 그녀는 표독하리만큼 기다릴 줄 알았고, 자신을 숨길 줄 알았다. 숨는다는 것은 자신이 바라던 일은 아니었으나.
" 꿀이라... "
그녀는 맛 좋은 양갱을 떠올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단 맛은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지. 술 한잔을 달빛에 기울이며 양갱을 한 입 베어물어도 좋겠지만, 사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술도 양갱도 전부 단것 투성이가 될테니 썩 흥미가 생기는 일이었다. 수박과 홍시, 곶감과 함께 머루를 좀 즐겨도 좋겠지. 배가 고파진 그녀는 사내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 배가 고파졌군. 벗이여, 본녀는 맛 좋은 술을 가지고 있고, 꿀과 물 역시 가지고 있다. 나의 저택에 와 그 흥미로워보이는 음식을 만들어주지 않겠느냐? "
그녀로써는, 이 뿌리와 식물들을 캐어 집에 가져가 갈아둔 뒤, 말려 물과 꿀에 함께 섞어 마시면 되는 가벼운 일이었으나. 그녀의 요괴로써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손을 흙으로 더럽히는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 그렇게 배를 채울 바에는 차라리 죽는것이 더 낫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당당하게도 그것을 내놓으라고 손을 뻗는. 그녀의 드센 자존심이 보이는, 실로 오만한 말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