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곤란해하는 듯 하면서도... 강산은 인벤토리에서 받침대와 25현 가야금을 차례차례 꺼내서는 조율한다. 그가 즐겨 쓰던 '백두'는 아니지만.
"그래도 듣고 싶다면야."
...좀 더 어리고 철없던 시절의 그라면 '백두'에 깃든 힘(*)이나, 그가 최근 익힌 정신력 회복의 마도를 준혁에게 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의념의 힘은 마냥 달콤하고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그런 동화 속 요정의 마법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의념의 힘을 쓰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기로 한다. 그런데 또 안 하던 노래를 하려니 가사, 음정, 박자를 완벽히 기억하는 곡이 많지 않아서, 결국 고른 게...
"날 좀 보소, 날 좀 보오소, 날 좀 보소-오오오. 동지 섣다알 꽃 본 드시이, 날 좀 보소오오."
...이런 짧은 교과서픽 민요 메들리다. 강산이 튼 피아노 반주 소리와, 가야금 현이 튕겨내는 음과, 그의 목소리의 조합이 스스로 듣기에도 어색했다...의념을 비활성화해서 더 그런가... 그래도 되긴 되네, 라며 웃어보인다. 어릴 적엔 창과 연주를 같이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나았네에에에. 아리랑 고개로오오, 날 넘겨 주소오오."
*'백두'에는 악기 연주를 통해 정신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강산에게 '악기 연주' 기술과 관련 경험이 있지만 '노래'와 관련된 기술은 없다...
설명만 보면 효과는 확실해 보이고 페널티 같은 것도 딱히 적혀있지 않지만...왠지 찬란한 반짝임을 남용하면 안 될 거 같다는 그런 촉이 있습니다... 이 마도를 강산이 이전에 썼었던 각성자가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가 결국 망념화했다(=몬스터가 되었다)는 썰을 들어서 그런 걸 의식하고 있는 것일지도요.
한 때 '주가의 탕아'로 불렸던 강산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인다. 그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던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으니까.
"원래 시간과 경험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법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나도 특별반에 처음 올 때의 나랑은 달라졌으니까."
햇살 아래에서 걸음을 떼면서 준혁에게 답하던 그의 시선이 살짝 아래를 향한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을 보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미려다가...특별반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천연득스럽게 들었던 손을 치우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알을 굴리더니 답한다.
"다들 뭔가 각자 바쁜 것 같아 보이긴 한데, 자세히는 모른다. 나란 놈은 저어기 평안도 정주에 있는 본가에서 수련하느라 너 실종된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게 있을 뿐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 야단이 벌어졌는지 반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의념기를 각성할 수 있는 기회를 내건 UGN의 특수 협력 의뢰...그것은 분명 좋은 기회지만, 반대로 그것을 내걸만큼의 위험이 잠재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강산은...지금의 준혁이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