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과 이곳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이 발각되었다는 건 이 주변에 있는 마을도 발각되었다는 뜻이고 에델바이스를 먼지로 만들기 위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규모의 공격이 시작 될 것이다. 어쩌면 간부들이 모두 출동할 수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아직까지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은 빈말로도 하기 어려웠다. 그저 이길 수 있냐 없냐가 아니라 이겨야한다는 각오다지기 용 말 밖에 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미안하잖아. 나름 이것도 수고스러운 일인데 뭐라도 줘야 좋지 않겠어?"
물론 장난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 한 소리를 할 것이라는 아스텔의 말에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부스터를 오버클럭하여 원래 설계 이상의 출력을 내어 고장을 유도한 셈이 되는 데 그것도 어찌보면 장난친 셈이 되는 건가?
"그래? 크리스마스 때, 도넛 한상자 넣길 잘했네"
크리스마스 파티 전날 우연히 들른 빵집에서 맛있게 생긴 글레이즈드 도넛을 발견하여 선물을 하기 위해 한상자를 사서 넣었다. 에스티아가 자신의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과연 이런 것을 좋아할까 고민되었지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니 다행이었다.
"내 선물을 준 사람은 누굴까?"
아직도 숙소에서 잘 사용하고 있다. 처음 맡아본 향이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향이 될 정도로 좋은 향이었다. 이런 것은 어떻게 안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추워...그리고 배고파서.. 구워먹게"
아공간에서 낚시대와 루어찌를 꺼낸다. 지난번 아스텔의 말을 듣고 이 근처의 낚시하기 좋다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월급이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싼 가격의 낚시대를 구매했다. 어설픈 솜씨로 떡밥을 끼워넣고 호수가에 던져 넣었다.
아스텔의 말처럼 이전의 추락으로 물고기들이 놀라 도망쳤을테니 한동안은 그저 의자에 앉아 몸을 뉘어야했다. 화로의 온기가 몸을 데워주고 자리에 앉으니 노곤노곤해지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받은 것은 건 케이스. 자신은 딱히 총을 쓰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예비용으로 하나 정도는 들고 다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아스텔은 어느 정도 사격 연습도 하고 있었다. 물론 제 손에는 역시 총보다는 검이 더 잘 익었지만. 애초에 자신의 능력 역시 검과 좀 더 상성이 좋은 것이기도 했고. 뭘 받았을까? 그런 궁금증을 품다가 그는 선우에게 조용히 물었다.
"...뭘 받았는데? 참고로 난 건 케이스. ...그리고 구워먹는다고? 물고기를? ...음. 구워먹을 정도로 커다란 녀석들은 여기엔 잘 없는데.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개개인의 자유이기에 아스텔은 그 정도로만 대답했다. 이내 그가 낚시대를 던져 넣는 것을 바라보던 아스텔은 가만히 선우를 바라봤다. 뭔가 많이 노곤노곤해보이는 그 모습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선우에게 이야기했다.
"...피곤하다면 쉬는 것도 나을 것 같은데. ...낚시대를 던지고 잠들어버리면 정작 물고기가 낚였을 때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 ...낚시는 시간 싸움과 인내심과의 싸움이야. ...그러니까 피곤할 때 해도 효율성이 없어."
나름대로 정보를 알려주면서 아스텔은 자신의 낚시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당연하지만 아직 반응은 없었고 이내 아스텔은 낚시대의 바늘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좀 잠잠해지고 물고기가 다시 활동할 쯤에 다시 낚시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잡긴 했으니 더 많이 잡기보다는 한두마리만 더 잡고 그만둘 생각이긴 했지만. 한번에 많이 잡아서 씨를 말리면 그건 그것대로 손해였으니까.
"...그리고 캠핑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더럽히진 마. ...물이 더러워지거나 환경이 더러워지면 물고기들이 오질 않으니까."
송사리 같은 놈들이어도 밀가루 묻혀서 기름에 튀겨먹으면 별미다. 물론 이 곳 물고기들은 적어도 송사리보단 클테니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장을 제거하고 비늘을 벗기는 게 귀찮을 뿐이지. 송사리라면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비늘 째로 먹어도 괜찮겠지만 애매하게 큰 놈을 그냥 튀기면 맛이 없을 테니 그것 하나는 아쉬웠다.
"나는 향초랑 방향제 세트, 뭐라 특정할 수는 없는 향인데 맡으면 기분 좋은 은은하고 상쾌한 향이야."
시리얼바 두개를 꺼내어 하나를 베어물고는 남은 하나를 아스텔에게 건네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허탕치는 거지. 못 잡으면 그냥 고기 구워먹는 거고 운 좋게 내가 깨어있을 때 잡으면 튀겨먹는 것이고."
아무래도 최근 캠핑 용품과 식재료를 과소비해서 월급날 직전에 돈이 떨어진 것 같았다.
"내가 머문 공간 바닥에 아공간을 펼치면 자동으로 떨어져서 깔끔하게 청소가 돼. 더러워질 걱정은 안해도 괜찮아"
아스텔이 알려준 낚시 정보를 새겨 듣고는 아스텔처럼 자신의 낚시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낚시대 역시 아직 반응이 없었다. 아스텔은 바늘을 밖으로 끄집어냈지만 선우는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바늘을 다시 빼서 떡밥을 다시 끼우는 건 어려우니 최대한 한번에 끝내고 싶었다.
자신도 향초를 보내긴 했지만 방향제와 같이 보내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보낸 선물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보낸 선물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며 나중에 한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물어나볼까. 라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그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잡아먹기 위해서 낚시를 한다면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릴건데. 그냥 이 잡는 행위가 재밌는거야. 낚시는."
나름의 철칙이라도 있는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아스텔은 가만히 손을 털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안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들려오는 물음. 즉 물고기를 풀어놓은 것이 자신이냐는 말에 아스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내가 알기로는 호수 아래 쪽에 다른 쪽 물과 연결되는 구멍 같은 게 있어. ...아마 그쪽으로 물고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이미 내가 여기에 왔을 때는 호수 안에 생태계가 형성된 후기도 하고. ...혹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가 물고기를 넣어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아니야."
그 정도의 시간도 여유도 없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아스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내 아스텔은 조금 목이 말랐는지 가만히 호수로 다가간 후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물을 떠서 한 모금 시원하게 마셨다.
사람마다 재능이 있는 분야와 없는 분야가 있다지만, 어쩜 네 재능은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에 딱 맞춰 주어졌을까. 네가 슬럼에서 조그맣게 푸념하던 얘기를 누가 주워 담아 고스란히 돌려준 것일까, 아니면 네게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소망하고 사랑하던 것일까. 고작 밀가루, 버터, 계란과 설탕을 비롯한 지극히 일상적인 재료로 만들어지는 평범한 간식일 뿐인데도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잘 만들어진 것도 있겠지만 네가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구원의 맛은 어떠냐면, 글쎄. 쉽게 답할 수 없어 괜히 한입 더 베어 물게 된다. 그래, 너는 이렇게나 바라던 것과 함께 살아남았구나. 목이 메는 느낌인데도 잇새로 씹어 삼키던 것은 쉬이 넘어가고야 만다. 꾹 다물던 입을 뒤로 만면 가득히 미소를 그려냈다.
"그립고도 환상적이야, 도너티."
나지막한 웃음소리에 목메어 울음 나올 일은 쏙 들어가 버렸다. 이스마엘은 못 이기겠다는 듯 결국 웃음을 부스스 흘렸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만큼 노력이란 말은 변명이 되기 십상이었으니... 너도 결국 노력헀다고 말할 뿐인 사람일지도. 이어지는 두 사람의 말에는 의미 있는 대답보다는. 그렇군요. 라는 등의 간단한 대답과 고개 끄덕임으로 넘긴다. 주고받을 만한 주제도 아니고.
"한 번쯤 사로잡힐 법도..."
과거에 사로잡힌다.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하는 것도 사로잡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만으로는 사로잡히는 게 아닌 걸까. 그러면 사로잡히는 이유가 뭐지? 이유가 달라진다면 그만큼 생각할 게 많아져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저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만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자꾸 생각하다 보면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돼서요."
그런것 치곤 제가 먼저 생각을 물어봤었네요. 아무래도 좀 정신이 없나 봅니다. 라고 덧붙이며 우유를 한 모금 마신다.
쥬데카가 간단히 말을 하며 주제를 넘길 적. 레레시아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쯧! 혀를 찼다. 그런 반응이 몹시 불쾌한 듯이 미간을 팍 찡그리면서. 그에 비해 라라시아는 평온했으나 되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러나 자매 모두 더이상 말꼬리를 늘이진 않았다. 그가 그럴 거라면 그러라는 듯이.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고 한 번쯤은 사로잡히 법 하다. 라라시아가 흘린 말은 의미가 있는 듯 하면서도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어쩌면 현 상황에 빗댄 말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그건 쥬데카도 해당하는 말이었으니까.
"지 생각도 정리 못 한 주제에 묻긴 뭘 묻"
명확치 않은 대답에 날 선 대꾸가 튀어나가다가 또 막힌다. 이번에도 라라시아가 레레시아의 입을 막아서였다. 재차 눈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레레시아를 두고서 라라시아가 대신 말을 이었다.
"나도 그 영상 보고 시체 수습도 했었는데. 글쎄. 그것만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레레시아는 손이 치워지고 입이 열렸음에도 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 혀를 차긴 했지만 아예 고개를 돌리고 초콜릿을 집어먹으며 할 말 없다는 듯이 보였다. 라라시아만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너나 우리나 그 영상의 뒷편에 뭐가 있는지 몰라. 너는 물론 뭔가 더 알 지도 모르지만. 그게 어디로 어떻게 인과를 뻗었을 지는 아무도 모르지. 아마 당사자도 몰랐기에 지금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어."
담담히 얘기하던 중. 레레시아에게서 초콜릿 상자를 뺏고 대신 과자 상자를 들려준다. 그리고 차를 마시고 간식을 집어먹는다. 어떤 심각함이나 진지함도 없이. 지금 대화도 그 정도인 것처럼.
"같잖은 조언 하나 해주자면. 너는 일단 네 기분과 생각부터 정리하는게 먼저일 거야. 너는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 스스로 기준도 잡아놓지 않고 상황을 판단하는 건 오만의 극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