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저런. 내가 언제 데이트 하자고 그랬나? 목숨 걸고 춤 추자고 했지. 너 같은 거랑 데이트를 왜 하니. 버젓이 연인이 있는데."
풉. 짧은 비웃음을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한다. 그래도 저 혓바닥 한 번 잘도 나불거린다고. 뜯어서 박제를 만들어버릴까 하고 생각은 한다. 음. 그래. 죽이지는 못 할 지언정 저 혀는 뜯어내야겠다. 엘리나 때의 패착도 있었으니.
당장 달려들지 않고 나불대는 글라키에스를 보고 그녀도 할 말은 당당하게 했다.
"뭐. 까놓고 말해서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로벨리아든 아니든 상관 없긴 해. 너는 네가 세븐스라서 그런 지옥을 겪었을 거 같아? 아니지. 어쩌다 재수 없게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에게 걸려서 그렇게 된 거야. 어찌 보면 로벨리아 역시 그런 인간들의 더러운 욕심에 휘말린 피해자인 거고. 그리고 로벨리아는 말야. 위선일지언정 자신이 한 실수를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하잖아? 잘못임을 알면서도 버젓이 쓰레기짓을 하는 인간들에 비하면 훨씬- 훨~~씬 믿을 만 하지."
결국 모든 건 세븐스이고 아니고를 떠나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미안한데 내 꿈은 내 것이야. 나는 내 자유를 원해. 나와 내 연인과 내 가족의 자유를 위해 싸워. 로벨리아의 꿈을 위해서가 아냐. 처음부터 나는 내 것을 위해 이 전장에 나왔고. 내 세븐스를 무기로 들었어. 그러니 알려주지 않아. 그리고 여기서 널 쓰러뜨릴 거야. 글라키."
그녀는 확실하게 말하며 말 끝에 앙증맞게 줄인 애칭 같은 글라키에스의 이름을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을 보면 자신만만하면서도 당당한 의지가 내비쳤다.
섬멸부대의 병력들은 모습을 감췄다. 혼자서도 모두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단순히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성향에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물러선 걸까. 어느 쪽이든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너는 작게 심호흡했다. 벌써부터 땅이 꽁꽁 얼어붙어서 빙판이 된 탓에 서 있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장본인이 몸을 돌렸다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존재라고 해도... 물론 쉽사리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넘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그렇게 증오를 가볍게 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침착해야 했다.
"이미 말했을 텐데... 그런 말로는 안 됩니다. 애초에 우릴 구워삶을 만한 말주변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럴 만한 필요가 없으니 그렇다고 생각하겠죠, 뭐 어떻습니까. 너와 동료들을 향해 겨눠진 칼날을 보며 덧붙인다.
"변화는 부르짖는 게 아닙니다, 나타날 뿐이죠. 당신들이 말하는 질서에 잡음이 들려오는 것처럼요."
얌전히 명령을 기다리던 도중, 들려오는 이해라는 언급에 이스마엘은 고개를 돌렸다. 온전히 자신을 향한 이야기였음을 깨닫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스마엘은 노이즈 너머로 순진무구하게 눈을 한번 깜빡였다.
"……이해하신다는 걸 보니 당신도 부모 터진 고아 신세인가 봅니다."
욕설 같았지만 겪은 일을 덤덤하고도 순수하게 직고해버린다. 화룡점정인 것은 그 어조가 글라키에스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희망 비슷한 무언가에 가득 차있다는 점이었다. "다행입니다! 저만 부모 터진 사람이 아니라.. 글라키에스, 당신의 부모까지 터졌을 줄은 몰랐는데!" 그니까 이게 욕설이 아니고요.. 이 모지리 때문에 죄송합니다......
환장할 활기찬 목소리도 잠시, 이스마엘은 천천히 손을 뒤로 모았다. 노이즈 너머로 뭐라 중얼댔으나 타인이 알 방도 없다. 괜찮아, 나중에 뒤집으면 돼. "그렇지만 결국 해냈다는 것이 중요한 법이죠. 머무르며 영광을 누리다 쇠락하는 것보다는. 예, 그 어떤것도 저희에게 허락되지는 않지요. 당신이 승리자가 되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삶을 살아가면서 느낀 바도 같으리라 믿습니다.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손에 쥔 보검이 지팡이의 형태를 갖춘다. 싸움의 잔해가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른다. 이스마엘은 마침내.
"당신 또한, 당신이 칭하는.. '그 위선 떨어대는 여자'처럼 변화를 느끼며 바뀐 세상에 머무를 자격이 있으니까요."
혹시나 하고 한 저격은 역시나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총알의 운동에너지까지 없애버릴 정도의 저 냉기를 몸에 맞았다간 단순한 동상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글라키에스의 등장과 동시에 섬별부대의 병력들이 일제히 뒤로 사라졌다. 그녀의 능력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퇴각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정신이 나간 듯한 그녀라할 지라도 본인 부하는 소중한 모양이었다. 이내 하늘에서 눈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땅바닥이 단번에 꽁꽁 얼며 빙판이 되었다.
"우리 대장은 나중에 쳐죽여도 안늦어."
물론 현재 그의 전력으로 로벨리아를 부딪혀봤자 쳐죽임 당하는 건 선우라는 불편한 진실은 둘째치고, 모든 일이 끝나도 그의 원망과 분노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것이 향할 곳은 자기 자신이나 로벨리아 대장, 또는 비세븐스일 것이 분명했다.
"말은 바로 해야지.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건 네놈들이야"
글라키에스의 말대로 어찌보면 로벨리아의 말이 모든 것의 원흉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직접적으로 모든 세븐스들을 가두어야한다고 선언했어도 어린 아이의 말을 듣고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주범은 따로 있다 생각했다.
"저~기, 북쪽 산 너머에 있어."
선우는 U.P.G의 본거지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저쪽이 북쪽 산인지 서쪽 산인지는 그도 몰랐다. 그냥 나오는 대로 내뱉었고 글라키에스에게 조그마한 도발이라도 되었으면 충분했다.
모두의 말을 들으며 글라키에스는 기어이 크게 소리를 내서 웃기 시작했다. 이어 가만히 고개를 내리자 보이는 것은 냉기를 가득 품은 눈동자였다. 그 살기는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니었고 쥬데카는 온 몸이 찢어질 것만 같은, 이전에 글라키에스와 교전을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살기를 전신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교섭 결렬이네. 오케이. 오케이. 패배자들이 하는 말들이나 생각이 다 똑같지. 미래와 세계가 바뀌어? 자신을 위해서 싸워?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것은 우리다? 바뀐 세상에 머루를 자격? 무슨 착각을 하는건지 모르겠네. 너희같은 테러리스트에게 내일이 존재할리가 없잖아? 그래. 뭐, 중간에 도망칠수도 있겠네. 그러니까 딱 하나만 없애볼까? 일단은?"
모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만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피식 웃었고 글라키에스는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높게 들었다. 다시 한 번 하얀색 빛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이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눈보라로 바뀌었고 주변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절로 하얀 입김이 흘러나오고, 가만히 있어도 몸이 벌벌 떨릴 것 같은 추위. 가디언즈 간부 클래스 서열 3위의 실력은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냉기가 모든 것을 천천히 타고 오기 시작했다.
"플래나, 녹스, 칼리버, 그리고 나. ...이 4명은 격이 다른 이로 분류가 되지." "레이버와 엘리나를 쓰러뜨렸다고 자신감이 가득 찬 모양이지만 오늘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거야." "자. 시작해보자. 패배자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봐. 그것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는 행동이거든."
정확하게 4명. 그 와중에 녹스와 칼리버라는 새로운 이름을 거론하며 글라키에스는 씨익 웃어보였다. 차가운 냉기를 품으며, 그 냉기를 지배하듯 더더욱 강하게 눈보라를 몰아치며.
/오늘은 여기까지! 본격적인 전투는 내일 시작될 거예요! 다들 스토리 수고했어요!! 내일 전투는 난이도가 조금 있으니.. 그 부분은 미리 고려를 하고 임해주시면 감사해요! 다들 수고했어요! 새해 인사한다고 바쁠테니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합시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