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인생이 정말 꼬여서 신분세탁까지 하게 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아직 그 정도로는 꼬이지 않았군요."
다행히도 아직. '아직'. 빈센트는 씁쓸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그 웃음을 지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해봤자 죽기보다 더 심하겠나. 만약 그리 될 것 같더라도, UHN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적어도 빈센트가 골방에서 자살하는 것까지 막을 정도로 유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빈센트 하나를 위해서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집단이였다면 열망자, 프리 핸드, 시체칼날 교단, 그 외 기타등등 범죄조직을 여태껏 못 잡았을까.
빈센트는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수업 내용들을 본다. 수업... 밀릴대로 밀렸지만, 빈센트는 그걸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헨리 파웰은 누구인지, 전투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듣기만 해도 머리가 터지는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도, 오히려 급하면 급할수록, 더 돌아가고 더 미루게 되는 마성이 이썽ㅆ다.
"근육클로스 얘기는... 뭐, 그만 하고 싶지만, 도기 아저씨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지금쯤이면 사라졌어야 했는데 10일 정도 더 체류하게 생겼다고 하더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젓는다.
"물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안 갈 거고, 여선 씨한테 가자고 말도 안 할 겁니다." //6
"아뇨?! 그냥 시원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멍때리다보니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더라고요" 숙소 가면 냉장고에 넣어야지.. 라고 중얼거립니다. 수업... 여선이.. 첫수업 듣고 지금 상점가에서 자기 주관 열심히 세워야한다는 실전수업을 심장칼날이랑 같이 듣고 있겠지...(먼산) 미안하다 여선아.
"도기의 상점은 좀 탐나던데... 그걸 하려면 가긴 가야한다는 점은 그렇죵.." '특별 수련장이 있다길래 보러 갔죠' '근데 가니 근육클로스가 있는 거에요. 눈물이 났죠' 라는 농담을 맛깔나게 하는 여선이.
"뭐하지....가 있는데 그게 완벽하게 되는건 어려우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인 거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눈물이 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눈물이 났다. 대운동회 때도, 영월 전쟁 때도 딱히 눈물은 안 흘렸는데, 근육클로스를 보고는 산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도 울어본 적 없던 빈센트가 좀 울 뻔했으니까. 빈센트는 옆에 앉아서, 하나부터 한다는 말에 묻는다.
빈센트는 손가락을 튕겨, 여선의 자리에 얼음 마도를 구성한다. 책상 위에 얼음꽃이 피어오르더니, 처음에는 매우 차가운 얼음 바닥을 만들고, 그 얼음 바닥의 끝자락에서 얼음이 피어서 자라났다. 그리고 500ml 용량의 얼음컵이 하나 생겨났다. 빈센트는 손가락을 탁탁 튕겨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막고 설명한다.
"아마 음료수 마실 동안은 걱정 없을 겁니다. 손이 좀 시릴 수도 있지만, 뭐 극기훈련이라고 생각하시면 조금 나을 수도 있겠죠."
"의뢰가 떨어지면 가도 된다고 하지만, 일단 가서 상황 돌아가는 건 좀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빈센트는 해외 출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가 갑자기 플로리다로 떠나는 수준의 출장을 자주 다녔다. 여러번 그랬는데, 미리미리 다녔던 곳에서는 괜찮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완전히 끝장이었다. 지도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서 터지곤 했고, 그래서 빈센트는 실제 착수 이틀 전에는 가서 있곤 했다.
"고고하시고 강력하신 가디언 나으리들께서 우리한테까지 손을 벌린 걸 보면 상황이 좀 개판이 아닌 것 같아서요."
소년은 오선지가 흐트러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소년이라도, 지금 바뀐 음표 모음이 제법 음울한 소리를 낼 것 같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여명길드에 돌아가고 싶지만, 쉽게 허락이 떨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답변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빈센트는 베로니카와 함께했던 호텔을 생각한다. 그 때는 17만GP였지, 아마? 그렇게 생각하니 호텔비가 생각보다 싼 건지 비싼건지, 그리고 워퍼 가격이 비싼건지 싼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빈센트는 그래도 그 때는 쓸만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사람은 죽을 거고 세상이 격동할 거라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단순히 그것만으로 그 많은 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할 순 없으니까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부모님한테 꽃을 선물하려고 학교 공작 시간에 열심히 꽃을 만드는 아이들, 처음으로 자전거를 잡아보는 아들, 지친 몸으로 누워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났음에 감사하는 어머니, 그들의 모든 행동이, 모든 이야기가, 전부 의미없는 핏자국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1...10만 gp..!" 두렵다 여비! 나중에 돌아올 것도 생각하면 20만 gp라는 이야기잖아! 여선이 전재산은 태식주에게 받은 그거뿐인데! ...일상을 열심히 돌려서 gp박스를 까는 건 어떨까? 조금 설득력 올라가지 않았어?
"음.. 사고방식 차이인 것 같기는 하네요.." 죽음이 가까이 있는..? 죽음을 말하는? 애매한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립니다.
"뭐어. 저는 그런 걸 상상하기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살리는 데에 집중하다보면 그런 사연의 경중은 뒤로 밀릴 것 같아서요~" 수술이나 그런 것은 신체적으로 강인한 의념 각성자라고 해도 체력(아직 실감하진 못했겠지만 정신력도)을 소모하는 만큼. 저런 잡생각 할 시간도 시간이지. 다리를 쭉 뻗고는 기지개를 켭니다.
"몬스터의 본분은 죽음. 게이트의 본분은 폐쇄. 헌터의 본분은 돈벌이. 그리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여선을 본다. 그래, 가끔씩은 뭔 말을 하는지 모를 때도 있지만, 어떻게든 대화는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제 보면 빈센트가 여선이 해야 할 일을 방해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여선과 떠들 시간에 빈센트도 공부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럼... 저는 다른 일을 하러 가봐야겠군요."
빈센트는 슬슬 자리를 물린다. 빈센트는 헌터의 본분을 위해, 그리고 학생의 본분을 위해 수련이나 하려 갈 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