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한 후 눈을 떠서 헌팅 네트워크를 다시 확인한 강산은,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기를 택한 자신의 판단이 적절했음을 알게 되었다.
며칠 간 잠시 실종되었던 준혁이 돌아온 것이다. 게이트에 휘말린 여파로 몸이 좋지 않아 입원해 있다고 하였다. 비록 평소에 그리 가깝진 않았다고 한들, 그에게는 영월 습격 작전과 대운동회라는 굵직한 사건 두 가지가 포함된 5개월 간을 알고 지낸 급우- 아니 전우였다. 그러니 강산이 준혁에게 병문안을 가는 것은 강산의 입장에서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며칠 사이에 준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입장에선 그러했다(설령 알았더라도 어쨌든 찾아갔겠지만).
보통 병문안을 가는 것은 환자가 며칠을 입원할 만큼 정양할 상황이되...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안정을 취해야 할 상태까진 아닌 상황. 강산이 파악한 상황은 그 정도였다. 그가 아는 김태식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준혁이 입원한 곳을 알려줄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내심 있었으니까.
"어이 현준혁이, 있지? 나다. 괜찮으면 들어간다?"
그렇기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병실 문을 노크하고, 살며시 병실 문 틈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
그, 그러니까 강산이 병실의 문을 노크하고, 병실 문 틈으로 머릴 내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소년이었을 것 이다. 그러니까, 현준혁이라고 불리는 존재였을 것 이다. 설령 그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도 현준혁은 현준혁이니까, 틀림없이 그는 옳게 찾아왔다 물론 판단하는건 그의 몫이지만.
스푼이 그릇을 때리는 듯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혼자 먹기에는 제법 양이 되어보이는 카레를 소년은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소년을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그 기묘한 광경에 몸이 굳을 정도로 소년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제법 길어지고 흐트러진 남색의 머리카락은 정돈 되어있던 그의 이미지와 다르게 삐죽거리며 제멋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당히 야윈 몸에 오만함과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한쪽 눈밑에 서린 짙은 다크써클과, 반대쪽..왼쪽 눈에 자리잡은 붕대
고되고 잔혹한 전장에서 긍지도 자존심도 모조리 박살난체 돌아온 소년의 남아있는 눈에 더이상 오만함이 서린 열의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들어오고 한참이나 카레를 먹는데 집중하던 소년은 옆에 둔 물컵의 물을 벌컥거리며 들이키더니 쟁반을 옆에 대충 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교실이라고 불리는 광경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여선은 책상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수업을 듣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업을 듣는다! 같은 느낌은 있다고 생각을 하네요. 환경미화를 생각하지만 아무도 없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으려나? 잠깐 책상 위에 올려둔 음료수가 온도를 주입당해 미지근해질때까지 멍을 때리다가 누군가 들어오는 듯한 소리에 문 쪽을 바라보네요.
"앞으로 개명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되는 거겠네요"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하긴. 여선이는 본인 본명을 소개한 여선이 아니라 루샨이라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여선이라도 부르면 ...응? 이라고 반박자정도는 늦게 반응할걸요?
"별 일이라고는... 없었죠?" 그 근육클로스 외에는 딱히 특기할만한 일은 없었다고 말하지만 분명 쿠포몇개 긁으면 당첨되고 생활비 좀 벌려고 의뢰 나갔는데 크리티컬 터지고 그런 일이 있었겠지. 당사자가 굳이 다들 그런 잘풀리는 날이 있는 거다. 라고 말하지만 그게 계속되면 자각해야하는게 아닐까?
"아 그 의뢰.." 이미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여선은 어깨를 으쓱합니다. 받으면 받은대로 잘해야하고. 안 받는다면 그냥 그런거잖아요?
"뭐 인생이 정말 꼬여서 신분세탁까지 하게 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아직 그 정도로는 꼬이지 않았군요."
다행히도 아직. '아직'. 빈센트는 씁쓸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그 웃음을 지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해봤자 죽기보다 더 심하겠나. 만약 그리 될 것 같더라도, UHN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적어도 빈센트가 골방에서 자살하는 것까지 막을 정도로 유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빈센트 하나를 위해서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집단이였다면 열망자, 프리 핸드, 시체칼날 교단, 그 외 기타등등 범죄조직을 여태껏 못 잡았을까.
빈센트는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수업 내용들을 본다. 수업... 밀릴대로 밀렸지만, 빈센트는 그걸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헨리 파웰은 누구인지, 전투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듣기만 해도 머리가 터지는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도, 오히려 급하면 급할수록, 더 돌아가고 더 미루게 되는 마성이 이썽ㅆ다.
"근육클로스 얘기는... 뭐, 그만 하고 싶지만, 도기 아저씨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지금쯤이면 사라졌어야 했는데 10일 정도 더 체류하게 생겼다고 하더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젓는다.
"물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안 갈 거고, 여선 씨한테 가자고 말도 안 할 겁니다." //6
"아뇨?! 그냥 시원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멍때리다보니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더라고요" 숙소 가면 냉장고에 넣어야지.. 라고 중얼거립니다. 수업... 여선이.. 첫수업 듣고 지금 상점가에서 자기 주관 열심히 세워야한다는 실전수업을 심장칼날이랑 같이 듣고 있겠지...(먼산) 미안하다 여선아.
"도기의 상점은 좀 탐나던데... 그걸 하려면 가긴 가야한다는 점은 그렇죵.." '특별 수련장이 있다길래 보러 갔죠' '근데 가니 근육클로스가 있는 거에요. 눈물이 났죠' 라는 농담을 맛깔나게 하는 여선이.
"뭐하지....가 있는데 그게 완벽하게 되는건 어려우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인 거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눈물이 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눈물이 났다. 대운동회 때도, 영월 전쟁 때도 딱히 눈물은 안 흘렸는데, 근육클로스를 보고는 산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도 울어본 적 없던 빈센트가 좀 울 뻔했으니까. 빈센트는 옆에 앉아서, 하나부터 한다는 말에 묻는다.
빈센트는 손가락을 튕겨, 여선의 자리에 얼음 마도를 구성한다. 책상 위에 얼음꽃이 피어오르더니, 처음에는 매우 차가운 얼음 바닥을 만들고, 그 얼음 바닥의 끝자락에서 얼음이 피어서 자라났다. 그리고 500ml 용량의 얼음컵이 하나 생겨났다. 빈센트는 손가락을 탁탁 튕겨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막고 설명한다.
"아마 음료수 마실 동안은 걱정 없을 겁니다. 손이 좀 시릴 수도 있지만, 뭐 극기훈련이라고 생각하시면 조금 나을 수도 있겠죠."
"의뢰가 떨어지면 가도 된다고 하지만, 일단 가서 상황 돌아가는 건 좀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빈센트는 해외 출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가 갑자기 플로리다로 떠나는 수준의 출장을 자주 다녔다. 여러번 그랬는데, 미리미리 다녔던 곳에서는 괜찮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완전히 끝장이었다. 지도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서 터지곤 했고, 그래서 빈센트는 실제 착수 이틀 전에는 가서 있곤 했다.
"고고하시고 강력하신 가디언 나으리들께서 우리한테까지 손을 벌린 걸 보면 상황이 좀 개판이 아닌 것 같아서요."
소년은 오선지가 흐트러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소년이라도, 지금 바뀐 음표 모음이 제법 음울한 소리를 낼 것 같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여명길드에 돌아가고 싶지만, 쉽게 허락이 떨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답변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