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 앞으로 남아있으리라 기대할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란 것이 항상 절대적이지만은 않은 법이라 입을 맞췄던 것은 찰나의 시간이기도 했고, 동시에 영겁이기도 했다. 확실한 건 끝이 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영원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의미겠지. 어쨌건 너와 당신이 서로 마주보는 시간에 네가 먼저 건넨 짧은 말을 당신은 어떤 말이라도 듣겠다며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정말 무슨 말이라도 들을 것 같은 상황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믿음의 대상이 되어도 좋을까, 혹은 광신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살짝 살피듯 당신의 얼굴을 보던 너는 입을 열었다.
"내 의사를 물어본 거, 좋았어요. 그래서 미리 말해주려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건 알고 있겠죠?"
대화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잃는 것보다 많다. 그 점만은 인정하고 있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겠지만 때로는 대화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기도 하고, 대화하기엔 너무나 바쁜 때가 찾아오기도 한다. 아니면 깊어지는 관계 때문에 자연스레 대화 없이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때가 올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마저도 아무런 대화 없이는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둬야 했다.
"나는 내가 받고 싶은 것들을 당신에게 줄 거에요, 키스를 받고 싶다면 당신에게 키스하고, 꼭 안기고 싶다면 꼭 안아주고, 자장가가 듣고 싶다면 자장가를 들려주고..."
선물...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면 아마 첫 선물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건... 당신의 얼굴을 보던 눈을 천천히 내리깐다.
"그리고 당신 역시 당신이 원하는 걸, 당신이 받아도 좋은 것들을 내게 보여줬으면 해요."
아앗..아아아앗...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아스텔의 입장에선 전혀 모르는 이야기. (옆눈) 아니. 아무튼 중요한 것은 얼굴을 보이면 아스텔은 바로 알아챈다는 것이 포인트인 것이에요!! 연인의 얼굴도 못 알아보면 쓰나! 아무리 이 녀석이 마트 심부름도 이상하게 하는 녀석이라지만!
당신이 웃음을 내뱉을 적, 이스마엘은 눈부터 시작해서 입가까지 미소가 얼굴에 내려앉았다. 나른하게 그인 연둣빛 호선과 선홍빛 호선이 평소의 쾌활함과는 달리 차분하다. 당신의 말이라면 지금이면 무엇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말 잘 듣는 조그마한 개부터 시작해서 신도까지, 그 무엇이라도. 그만큼 당신을 신뢰하고, 그만큼의 선 안에 들였기 때문에.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노라면, 눈 맞춘다 한들 방금까지만 해도 일렁였던 욕심이 말끔히 가라앉아 있다.
"……알고 있지요."
삶은 길되 짧다. 주어진 시간 동안 말하지 못할 수도, 전부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후자였으면 좋겠다 바랄 테다. 다만 어느 날은 대화가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은 상황이 생겨 대화의 단절이 생길 수도 있다.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아무리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산 이스마엘이라 할지언정 모를 리가 없었다. 얌전히 당신의 말을 듣다 보면, 당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림짐작이 가나 쉬이 입을 떼지 않고 경청했다.
"……."
당신이 눈을 내리깔았을 적, 발언권이 들어온다. 덜컥 들어온 당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방금 전까지 입을 맞춰놓고 이젠 그 현실이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과분함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어오기 마련이었기에. 이스마엘은 차마 지나치게 과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걸까? 조건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애정과, 미래를? 언젠가 꿈꾸던 과거는 바라고 또 바라며 하루를 지새웠겠지만, 이미 체념하고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된 일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다가오는 당신의 말이 순간 잘 와닿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뱉어본다.이후 꺼낼 말을 한참 속으로 곱씹었는지 위아래 붙어있던 입술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리다.
"당신에 대한 욕심이 제법 많아서.. 그러니.. 내가 원하고, 받아도 되는 범위가 너무 많고도 넓은데……."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당신이 받아 가는 것보다 내가 얻는 것이 더 많을 텐데. 그래도 괜찮은 걸까. 차마 어떤 말을 붙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괜히 입을 다물게 된다. 그리고 눈을 내리깐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생각을 고쳐보기로 했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당신이 이렇게 얘기했다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당신 또한 고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스마엘은 결국 살포시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