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어디고.. 도축장 이란 고깃집 있지 않나? 거 가자. 거 이벤트 하던데 가족이라 가믄 1인분 꽁짜니께 2인분 시켜서 3인분 먹음 딱 아이겠나?"
토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나오라는 듯 재스처를 취하며 말한다. 토고의 지갑엔 그나마 돈이 있어서 2인분은 낼 수 있다. 더치페이를 해준다면 말이다. 고기 먹자고 말한 사람이 내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수락한 시점에서 같이 내야 하지 않은가!? 네가 사는거지? 라고 묻지 않았으니까!
"이벤트 끝나기 전에 퍼뜩 가서 묵는게 이득이제. 딴 아들은 안 보이고 니만 생각나서 니 델고 가는기다."
들어본 고깃집은 유하에게 옛날 밥사줄 적에 가봤던 곳이다. 음. 고깃집 고르는 초이스가 괜찮은데. 좋은 집이지.
그러면서 가족 이벤트란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한다. 그래서 같이 갈 사람이 필요했던거군. 실제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라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만, 뭐. 위법도 아니고. 이벤트를 여는 고깃집에서도 다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깐깐하게 구는건 너무 귀찮다.
나는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뒤에 외출할 준비를 갖추고 방에서 나선다. 적당히 걷자니 상대쪽에서 근황을 묻길래, 어느정도 덤덤히 대답해줬다.
"유럽 유학. 기사단 가서 비전 하나 배웠어. 그 뒤엔 의념기 습득."
우쭐거리며 으스댈 생각은 없지만, 여기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라고 쪼그라들지 않는 최근이라 다행이로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몽실몽실한 이유다. 어떠한 확고한 종교적 신념이나, 극적인 계기는 없는 모양이다. 사람은 절박해지면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그게 반드시 신은 아니겠지만, 그 대상으로 신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좋지 않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구구절절한 이유나 계기가 필요한게 아닌 것 처럼. 신을 믿는 다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말이지."
꼭 고통과 절박함이 있어야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아니다. 그러니 그녀가 저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믿음의 무게를 가볍다고 비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런. 너무 진지한 얘기를 해버렸나? 미안해."
적당히 좋아하는 음식 정도나 잡담으로 물어보는게 좋았을까. 나는 이런 진지하고 고지식한 대화로 흘러가버리는 면이 조금 있다.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겠지.
기숙사에서 조금 걷는다. 골목 하나, 골목 둘.. 골목 셋.. 이리저리 지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다보니 23번째 골목길에서 위치한 가게를 찾았다. 가게 이름이 어째 꺼름칙하지만 맛만 좋으니 문제 없다. 그와중에 상대방은 유럽에 유학에 기사단 비전에 의념기 습득에 보통의 헌터가 들으면 워매 하고 놀랄만한 일을 줄줄이 읊어서 조금 질투가 났다. 토고 본인은... 무엇을... 했는가...? ...아무튼 바빴지. 바빴다고.
"내? 내는 뭐 별 거 있나. 항상 그렇듯 뒤치닥거리제. 이번엔 아재가 그그 뭐냐... 대장간인가 뭔가 가고 싶다 해가꼬 거 간다."
도축장 가게 앞은 가족단위로 보이는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조금 기다려야 하는 것이 싫지만 줄이 짧은 게 다행인가. 어쩌면 대화를 더 이어나갈수도 있으니 다행인가?
"고생하는 역할이로군. 대운동회 이후 확실히 길드 운영적으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늘었겠지......반장은 고민이 많더라."
물론 그가 하고 있던 고민은 단순히 길드의 운영, 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이 곳에 속해있는 이들의 유대감, 소속감에 대한 서운함에 가깝다고 나는 느꼈지만. 그 것 또한 엄연히 중요한 요소다. 확실히,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여자친구가 습격 당했으니까. 초조해져서 일단 마구 뛰어본거지. 잘 되어서 다행이야."
어느 정도 부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지는 상대에게 '별 것 아니야.' 라는 흔히들 하는 허식은 안하기로 했다. 스스로가 꽤 대단한 성취를 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고. 무엇보다, 귀한 가르침을 받아놓고 별 것 아닌걸로 치부해버리는건 너무나도 무례한 짓이니까. 지나친 겸손은 때론 역으로 기만이 되는 법이다. 지금이 그렇다.
토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대로 가다간 대곡령과의 거래도 불안정해지고... 하지도 못할 거래를 한 내 입장도 생각을 하면... 난감해진다. 어쨌든 실적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가리. 이래서 누군가의 밑에 들어설 땐 큰거 바라지 않고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먹고 떠나는게 제일인데...
"습격 당했다꼬? 허매 고게 참말이었나.. 쯧... 날뛰는 것도 이성적으로 해서 잘된거지 안되봐라. 지 혼자 미쳐갔꼬 날뛰다가 사방팔방에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게 된다."
토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그가 잘 대처한 것과 이룬 성과에 대한 칭찬에 가깝다. 한마디로 잘했네. 정도? 그리고는 토고는 크크 웃으며 "소감 어떤데?" 라고 물었다. 의념기. 보통의 훈타들은 하늘의 별과 똑같은 그것을 습득한 소감을 묻는 말이다.
"아, 니 행동거지 잘 해라. 니는 내랑 밥 무러 온 동생인기다. 알것제?"
토고는 소감을 들으려 하다가 곧 다가오는 자신들의 순서에 그의 옆구리를 콕콕 지르고는 연기 잘 해라. 라는 듯한 말을 작게 속삭였다.
수렁에 빠지는 기분에 한숨을 더 내쉬었다. 귀찮은 일이란건 알았다. 냉정하게 돕지 않겠다고 했어야 했을까? 그야 당연하지. 알면서도 받은 주제에 속으로 푸념하기는.
"너와 그녀의 몸 상태는? 실력은? 다른 녀석들도 그야 그런 얘길 들었겠지. 서로 죽이는 살육전이 될거다. 다 너처럼 '죽게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 란게 있을테니까 말이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네게 그 것이 접촉해서 흔적을 남겼단건, 의도대로 놀아주는 장난감이 되었단거야."
사람은 살고 싶어한다. 그럼, 다섯명을 살려놓고 '한 명만 살 수 있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야 나머지 녀석들을 죽이겠지. 이것은 배틀로얄이다. 녀석이 그 것과 접촉한건, 배틀로얄의 협력자로 인정받았단 것 뿐이다.
"그러니까 싸움에 대비해야 할거다. 일단, 상태가 만전이 아니라면 이야깃거리 조차 되지 못하겠지. 더더욱 냉정한 말이지만. 나는 네가 약하다곤 생각하지 않아도, 특별히 뛰어나다고도 여기지는 않거든."
실적도 실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이녀석은 자신의 장기를 살릴 줄 모른단 인상이었으니까. 지금이라면 알 것 같다. 자신의 이상속에서 착각하고 있느라, 현재의 판단을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높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