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는 양 손을 모아 강산에게 합장한다. 뿔을 부순 까닭은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물리적으로 어떠한 인과를 끊어내 보이겠다는, 그런. 그걸 숨겨서야 같은 효과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혹시 모르지. 더 깊이 파고들어 본다면 의념의 힘으로 관념적인 연결 자체를 끊어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내줄 법한 과제물에 채 완성되지 못한 단어가 입안에서 헛돌았다. 아마 그 단어를 적절하게 조합하면 엘터 교관은 대체 어떤 사람인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30을 넘어선 사람한테 대체 왜 이런 숙제를 주는건가. 또 이걸 이 사람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건가 등등이 될 것이고, 아무튼 각설하고 결론을 말하자면 그녀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근디 니는 니 이야기로 빠져버리고 그마저도 다른 쪽으로 화제가 바뀌니까 문제인기다. 니 화법 좀 배워라."
쯧. 토고는 혀를 찼다.
"니는 레벨을 폼으로 올렸나? 그동안에 의뢰 간거 많지 않나? 특별반에 들어와서 제대로 갔냐 하믄 그건 또 다르지마는"
정보. 특별반 인원들이 레벨이 높은 건 설정상으로 특별반 전에 헌터 생활을 해서 그렇다고 들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닐 시 다른 사람이 정정바람. 아무튼 토고는 그만 물어보라고 말하는 것에 첫번째 말한 것을 이유로 들며 대답했다.
"니는 얼라들이 왜요 왜요 카는 거 와 어른들이 짜증내는지 아나? 말이 안 통해서 그른기다. 사과가 무슨 색이냐고 물어보믄 어른은 대답할거 아이가? 그라믄 거서 호응을 해줘야 하는디 호응 없이 와 뻘건디? 하고 또 질문을 하는기다." "그라믄 또 어른은 그걸 답해야하고 그 답에서 또 와그런디? 와그런디? 하고 들어가믄 누구라도 짜증나지 않겄나?"
"근디 니는 나이로 따지면 얼라지만 적어도 와요? 와요? 하고 물을 나이는 아이지 않나?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호응은 해줄 수 있는 나이니까 와 그런디요 하고 물어보믄 그거에 호응을 해주고 이해가 안되믄 쪼금 더 자세하게 설명 가능한지 물어보고 그런 식으로 이어져야제."
즉, 토고의 말은 그녀가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 같다는 뜻을 조금 내포한.
"간단하게 예를 들어볼게. 니는 무기를 뭐 쓰는디? 의료계면 주사기가? 아임 메스가? 요즘은 마 고급진 거 여러개 나오던데데 내는 고론 거에 통 몰라가.. 뭔 차이가 있는지 함 말해줄 수 있나?"
"고통으로 기뻐하는 이들은... 글쎄요. 제가 누구한테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란 것 알지만... 아니. 아닙니다."
누가 누굴 욕해. 누가 누굴 보고 미쳤다 그래.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현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뭔가 이 사람은 대화가 아닌 심리부검을 하고자 여기 온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빈센트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 들어주었다. 그다지 짜증나지 않았고, 생각해보면 이것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무력함. 참담함. 불안함. 뒤쳐졌다는 공포. 절망감. 빈센트가 다 느끼는 것 같았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다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지요. 인간이라면 말입니다."
만약 태식이 자신의 후배거나 나이가 어린 헌터였다면 아마 그녀는 그럴때는 으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답변(봉사활동을 한다, 리더십을 키운다, 헌터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사회에 공헌을 하는 진정한 어쩌구 등등)을 대강 구색만 맞게 쓰라고 하며 지나쳤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처세정도를 눈 앞의 인물이 몰라서 이러고 앉아있는 것도 아닐테니 그녀는 잠자코 듣다가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그러면 태식씨가 특별반에 들어오게 된 계기에 맞추어서 계획하면 되지 않을까 싶사와요."
저런 사적인 과제를 내줄정도면 어지간히 그 교관이란 사람도 태식의 사정에 대해서 알 것이라 생각하고서 적당한 답을 골랐다.
"소녀의 경우라면...좀 더 이름을 알리고 커리어를 쌓는다, 길드원으로서 성실히 활동한다 정도가 되겠네요."
"화법이 문제에요?" 어장 설정상 말을 잘하니까 화법을 말하면 아 내가 문젠가...! 같은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특별반 들어오고 나서의 이야기...이긴 했죠?" 그것도 있지만 여선주가 생각하기로 여선이가 의뢰를 많이 했다! 가 맞는지는 모르겠는? 애가 말하는 것 같다는 말은.. 여선이의 화법이 얼라 수준이라는 거군. 음. 노사님이 좋은 분이셨군! 같은 결론이 내려질 만하다. 속에서 뭔가 바쁘게 생각되는 걸까. 그러니까 대충 기승전결에서 기승기승기승이러니까 문제라는 얘긴 것 같다.
"의료계면 보통..." 그건 여선주가 못 말하는 편이려나? 여선이는 차이점에 대해서 잘 말할 것 같은데. 의료계면 둘 다 쓰는 편이죠? 주사기는 보통 약물을 혈관이나 피하와 근육에 투여하는데 쓰고 메스는 기본적으로는 미세 칼날로써 신체의 부위를 가르고 끊는 데 쓴다는 것 정도를 말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선주가 생각하기엔 그나마 상대방의 말 정도는 귀기울여 들을 수 있다. 는 건 다행이라 생각은 합니다. 예를 들어본다. 같은 거니까 뭔가 나올 말을 들어야지 알지 않겠나요?
//화법은... 미안하다. 여선이가캐붕아니냐고 해도할말없음! 여선주가 발랄한 캐를 처음 해봐서 그래..욧.. (돌릴 때마다 오락가락함)
굳이 말로 활발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도 활발하지 않을까? 좋은 아이디어에 박수를 치면서 "대박,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예요!" 라던가 상대방의 지적에 "그런가요..?" 라면서 약간 침울해하고 "그럼 어떻게 바꾸는게 좋을까요?" 고개를 기울이며 상대방을 바라본다 라던가... 이런식으로도 활발함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개인적인 느낌인데... 여선이가 어디까지가 덧붙이는 말이고 어디까지가 생각인지 구분이 좀.. 약간 힘들다... 덧붙이는 말에 대해서는 따옴표를 써주면 어떨까?
빈센트는 오현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았다. TED나, 어디 사설 강연 같은 곳에서 강사가 사람들을 보고 그랬지. 당신들은 진정으로 절박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그저 죽지 못해 달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건 죽은 상태에 불과하다고. 딱히 빈센트는 동의하지 않는 개념이었지만, 듣는다. 듣는다고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대체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그녀에 대한 감정은 제가 아주 잘 아니까요."
어떻게 대체하랴. 어떠한 행복도, 쾌락도, 베로니카와의 추억을 날려버릴 순 없으니. 그러니 빈센트는 대체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인간이 꼭 최고의 순간에서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건 아닌 거 같아서요." //9
토고는 대충 의료계 지식이 희박하기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특징만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그 다음으로 질문을 하기 위해, 또한 상대방이 짜증나지 않는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메스랑 주사기 둘 다 차이가 있네. 메스는 대충 자기보호용으로도 쓸 수 있꼬, 주사기는 약물 주입으로 아군에게 약물 효과를 받게 한다거나 하는 그런 사용법이 있다 그런 기가? 근디 요즘 보니까 기기 같은 것도 들고 다니던데 맞나? 나노머신이나 초소형 로봇 같은 그른거."
토고는 코멕社의 신제품을 떠올렸다. 비싼 가격임에도 수요가 끊이질 않는 그 제품. 정확한 효과는 모르지만 찾는 사람이 은근 많다는 건 토고의 거래 기술의 지식 덕분에 알고 있다. 그리고 토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의료계도 이것저것 돈 마이드네."
이 말을 끝으로 대충 질문을 하는 토고 타임은 끝났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부터는 잔소리 타임.
"알겠나?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정보를 얻는 행위다. 상대방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정보를 얻고, 얻은 정보를 상대방에게 '청취했다' 혹은 '이해했다' 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상대방에게 표현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상대방은 입만 아픈 꼴이 되는기다." "그리고 또 질문이 있으면 니가 알고 있는 정보와 엮어서 말해라. 내는 의료계 의념각성자의 무기에 대해 물었꼬, 다음으로는 보조 도구를 질문한긴데 그 사이에 초소형 로봇을 언급했제? 이는 내가 코멕社의 제품을 알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라믄 니도 맞다! 그런 제품이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니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대답해줄수있겄제? 아니믄 다른 아한티 들었던거라도 말이다."
"근디 니는 그게 없다! 그게! 상대방에게 질문하믄 상대방이 말하기도전에 딴 질문하고 질문을 한거에 대해 이해는 했는지 그런 표현도 없꼬, 무엇보다 주관이 없다. 주관이. 니가 질문을 왜 했는지 좀 중요하게 생각해봐라." "어우, 입 아프다. 내 마실건 읎나?"
살짝 삐졌다. 물론 누구나 최고의 순간만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동감을 해주지 않은것에 살짝 삐지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너가 그렇다면야. 그래도 살아있는 것을 느끼기 위해 쓸모 없는 행위를 하는 것이 낭비라고는 계속 주장하고 싶다."
"그럴 시간에 단련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목표를 위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 안에 무언가를 쌓아야 한다고."
이 겨울에도 아까 달린 열기로 흘린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후우. 하고 입김을 내쉬자 뜨거운 바람이 차갑게 되며 하얗게 퍼져나갔다.
"난 수련도 단련도 좋아하지 않아. 내가 조금씩 더 나아지는 감각을 선호는 하지만 그 과정의 지겨움과 괴로움은 당연히 싫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목표에 가까웠던 순간에 단련의 부족함으로 성공을 해내지 못한다면; 이라는 상상에 이르게 되니. 단련을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