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애미는 내 아버지를 죽이고, 나에게 저주를 안겨주고 날아간 녀석이지 배움을 청할 대상이 아닙니다. "
하유하는 사라지는 상대를 좇으며 자신의 뿔에 손을 얹는다. 저주. 눈을 멀게 하는 피.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저주.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여가며 스스로를 좀먹는 저주.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노라 여기게 하고 가지지 못할 것을 당연한 자신의 유산이었어야 했다고 여기게 만드는 피. 저주를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저주.
저주. 피 저주
개같은 년
오랜 혼란에 끝에 내린 결론이다.
빛나는 머리카락도, 날카로운 두 동공도, 뿔도, 꼬리도 모두 저주였음이 확실한데 그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눈 없이 앞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지금 포기할순 없다. 꼬리를 자른다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죽음을 원하고자 한 것은 아니니 지금 자를 수는 없다. 그러니 뿔이다. 뿔을 부수겠다.
" 저는 오만했고,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
" 허나 이제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하고, 상처준 것을 속죄하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자 강해지고 싶습니다. "
" 저는 약하고, 미련해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최선으로 아온데 "
" 부디 궁휼히 여겨 제게 도움을 주세요. "
"제발......."
망념이 쌓여가는 느낌에 휘청 하고 눈 앞이 흔들린다. 그토록 망념을 쌓아가며 하는 일은 자신의 뿔을 부수는 일.
부수다. 존재의 이유.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 지금까지 품어온 것들. 차마 진실이라 말하지 못한 것들. 부정할 수 없어 품어간 것들, 혐오하기에 애증한 것들, 그럼에도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
나. 하유하라는 존재의 근원. 어쩌면 그토록 바라는 것이 되어서야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봐. 그때가 되면 나를 제대로 봐줄지 모른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온 날들.
그것을 부수는 것입니다.
" 너... "
그 호소에 상대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순간. 유하의 손은 이미 뿔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이깟 것, 그 근원마저 부정하진 않더라도 감히 사랑하지만은 않을 수 있기에 말입니다. 조금의 힘이 육체에 가해지는 것만으로도 유하의 뿔은 산산히 박살납니다. 신기하게도 조금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처럼. 단지 사라질 것이었다는 듯 말입니다.
부러진 뿔을 치켜들고, 흥분에 색색거리는 숨으로 유하는 저 쪽을 바라봅니다. 감히 닿기도 어렵고 보이지도 않을 허무와 다른 실체를 가진 존재에게 청합니다.
나를 가르쳐달라. 나는, 나의 존재성을 혐오하고 있으니. 이 존재성을 채울 방법을 달라.
그 호소에, 마도사는 유하를 바라봅니다. 단지 그렇게 둘 사이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유하는 걸음을 내딛습니다. 대응할 생각따위도, 마음도 없다는 듯 유하를 짓누르던 뇌기의 폭풍은 이제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곤 자신의 뿔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절을 올리는 것입니다.
스승에 대한 예禮. 그것을 올리는 유하를 바라보다가.
" ... 허. "
그는 웃음을 터트리곤
" 하하하하하하하하!!!!!!!! "
상황 속에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립니다.
" 꼬마야. 네가 무슨 짓을 한지 아느냐? "
그는 웃음을 이어가면서도 정지된 듯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 네 근원을 끊어낸 것은 아니다. 너는 분명, 여전히 드래곤의 자식이겠지. "
그 말에 고갤 끄덕입니다. 유하의 핏속에는 여전히 드래곤의 잔존이 느껴지니까요. 단지.
" 네 손으로 네 근원을 부수겠다? 내 도움을 받아? "
그 사실에 우습다는 듯이 마도사는 웃습니다.
" 절경이구나. 내 마지막을 장식할 꼬맹이가 이리도 미친 녀석이라니! "
유하는 그 말속에서 유독 거슬리는 말을 찾아냅니다.
" 나는 오늘. SS의 경지에 들기 위한 마지막 깨달음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내가 개척해나간 길 앞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확인하려 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