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는 성공했다. 다들 부상은 입었을지언정 단 한 명도 전투불능에 빠지지 않았고. 시설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를 그 잔해 속에 묻어버렸다. 확실히 숨통을 끊을 수 없었기에 다시 만나겠지만 어쨌든... 압도적인 전력차임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없었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으며, 작지만 승리를 만끽해도 좋았으리라. 그러나 임무 직후 에델바이스, 정확히는 네가 포함된 특수부대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니, 밝지 못했다는 게 맞을까. 분명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왔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균열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제 0특수부대라는 이름, 세븐스의 자유라는 말 아래 모여 있던 이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몰랐고, 그다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내면에 품은 분노를 쏟아내는 방향이 위태로웠던지라 너는 임무가 성공했음에도 걱정이 앞섰다.
"......"
생각보다 더 불안정했으며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믿음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그렇지 못해서인지, 신념이 단단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새삼스럽지만 혼자 돌아다녔을 때를 떠올린다. 그 땐 이런 일로 고민하는 일은 없었는데.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런 점에서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은 많은 걸 소모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한참을 의자에 앉아 낡은 수첩을 만지작거리던 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랍에 수첩을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면 임무가 끝난 뒤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었지. 임무가 끝난 뒤에 바로 근신한다며 방에 틀어박혀 버려서 얼굴을 못 봤지만... 아마 방 안에 있을 터다. 의자에서 일어나 가끔씩 먹기 위해 미리 사뒀던 쿠키를 찾기 위해 휴게실에 먼저 들린 너는 쿠키를 접시에 담아 쟁반 위에 올렸다. 우유도 준비해 든 채 옮긴 발걸음은 어느새 문 앞에 멈췄다.
"이셔, 안에 있습니까?"
흠흠, 하고 헛기침한 뒤 문을 두어 번 두드리며 묻는다. 안에 있다는 답이 들려온다면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정직하게 살아왔다니, 놀리는 의도가 명백한 문장에 괜히 물어봤다는 듯 한쪽 눈을 찡그린다. 못 들을 걸 들었다. 이스마엘은 자리에 선 채로 아무렇게나 몸을 기대듯 등에 무게를 실었다. 뒤로 넘어지는 게 당연해야 할 움직임인데도 넘어지기는커녕 보이지 않는 벽에 기댄 듯 마냥 편안한 자세기만 하다. 한 손으로 캔 따며 총에 시선을 뒀다. 마셔야 할 사람이라.
"운이 좋았네. 아버지의 세븐스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을 텐데."
음료를 한 모금 목뒤로 넘겼다. 세븐스를 조금이라도 연습해 보고자 했을 적 아버지에게 단숨에 짓눌려 살려달라 빽빽 소리를 지르던 게 어제 같은데. 아버지는 적이었으나, 개죽음을 당하기엔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건가. 이스마엘은 총신의 흉터에 가만히 눈을 내리 깐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았지만, 자신에게 세븐스를 쓸 때와는 전혀 달랐구나 싶다. 살벌한 흔적.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인가. 이스마엘은 눈을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당신 말이 옳아. 그렇게 되어선 안 됐어. 비단 적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라도, 옳지 않은 일이지.."
이스마엘은 손을 들었다. 캔을 든 손이 아닌 자유로운 손바닥을 가만히 펼쳐서 바라보다 괜히 앞머리를 대충 쓸어넘겼다.
"그래서.. 당신도 용서 못하는데, 그 개 같은 새끼들도 도저히 용서를 못하겠네. 품 안에서 죽여놓고 이젠 눈앞에서 터뜨려 죽였으니 말이야."
임무는 성공적이었으나 개인적인 면에선 망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늘 생각만 하고 차마 입 벌리지 못했던 것이 기어이 터진 것이다. 이스마엘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고,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제 또한 스치는 이스마엘을 미심쩍다는 듯 바라보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곤 뭔가 냄새를 맡았는지 잠깐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렇게 이스마엘은 의무실도 가지 않고, 개인실에 틀어박혔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문을 걸어 잠그고 등을 기대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전투 중에는 겨우 정신을 가누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돌아오면 얘기가 다르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덜컥 앞선다. 얼굴을 틀어쥐듯 손으로 감싸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극단적인 감정이 교차했고, 갈 곳 없는 증오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앞으로 부대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렵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생겼는데 앞으로 더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단편적으로 구성해 본다. 아버지는 눈앞에서 형체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고, 자신은 팀에 불화를 일으키려 들었다. 이상향은 역시 이상향에 불과했으며 끝내 자신이 인정한 것이 있었다. 뭐였더라. 아, 젠장. 좀 다물면 안 되나?
"좀 닥쳐봐……."
귀를 한 번 틀어막고 중얼거린 것이 임무가 끝난 당일의 일이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 잠들 수 없었고, 잠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상을 살아가긴 했지만 그것도 개인실 내부였다. 지금은 젖은 머리를 뒤로 멍하니 손에서 군번줄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은 그나마 정리가 되는 듯싶지만 결론을 내렸냐면 그건 또 아니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또 그 희멀건 도마뱀 새끼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상과 달리 얌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왜 하필 지금! 다시금 그때 일이 떠오르는 것 같아 피하고 싶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대화를 하자고 본인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잠시 고개를 들어 흘끔 어딘가를 쳐다보던 이스마엘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무언가를 뒤로, 문 앞에 서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얼마만에 입을 벌리는 것이더라.
"……무슨 일입니까."
잠깐의 침묵 뒤로, 염력으로 문의 잠금을 해제하듯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들어올 거면 상관하지 않으니 알아서 들어오라는 듯. 들어온다면 아마 이스마엘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있지 않았을까. 당신을 맞이하지도 않고.
"실력도 따라준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너랑 살아서 대면하지 못했을거다. 지옥 가서 부친이랑 한판 더 뜨거나 한잔 하거나, 둘중 하나였겠지."
자연스레 헬무트를 자신과 같이 지옥으로 끌어내리게 되는군. 하지만 그럴만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를 바랬다. 자신의 아버지일지라도 분명히 가디언즈라는 이름 아래에 해선 안될 짓들을 해왔다. 나라고 떳떳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헬무트가 선인이라고는 인사치레로나마 말해주기 힘들다.
"마찬가지야. 다, 그런 놈들 때문인거지. 카시노프나 그놈보다 위에 있는 망할 자식들. 생각해보면 그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된거라고 본다.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그의 적이었던 나조차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의 딸이라면. 분노라는 말로 그 감정을 끝낼 수 있을끼? 과연 세상의 어떤 말이 그 기분을 형언할 수 있겠는가. 아마 불가능할거다.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 심지어 잃어버린 이를 두번이나, 치욕적으로 잃어야만 했을 때의 슬픔과 상실감. 나라면 감당하지 못했겠지.
캔을 들어올린다. 제대로 된 의례조차도 아니고, 생전 내게 좋은 이미지따윈 없었던 인물이지만.
"내게 이럴 자격은 있나 싶겠지만, 같은 군인으로써... 헬무트를 위하여."
다시는 그와 같이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군인이 없기를. 이러나 저러나, 언젠가 그나, 다른 희생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줄 날이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