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가디언즈의 일원인 상황에서, 적진에 떨어져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공작에 최적화된 상황이 펼쳐졌는데...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본래 무너지기 쉬운 사람에게 새로운 지지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법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대응, 그리고 현실. 눈을 깜빡이며 놀랐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너는 웃고 말았다.
"놀랄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츠쿠시 씨가 여기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뭐 어쨌든... 나중에 알았지만 어차피 전 그 작전에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었더군요."
몇 번의 격돌 후 널 사로잡았던 레지스탕스는 붕괴했다. 패배로 인한 전멸이 아니라 더 이상 전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기도 했고, 그 편이 거점 주변의 사람들에게 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붕괴라기보다는... 자진해서 해체됐다고 볼 수 있겠다.
"해체되면서 전부 흩어져 버릴 때, 선물이라면서 전달받은 정보가 있었습니다. 위조였을지도 모르지만 제 감은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믿을 수밖에 없었죠."
이젠 다 낡은 한 장의 종이, 수십 번이 넘는 침투 작전을 수행한 인물은 가디언즈에게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옛날 이야기입니다만... 분명 비싸기 그지없는 기계보다, 기계를 조종하는 인물을 더 소중히 여겼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종사 없이 무용지물인 기계를 버리고 조종사만큼은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 조종사를 길러내는 데 드는 자원이 기계를 다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 거겠죠."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을 길러내는 데 드는 비용은 매몰된 비용으로 넘길 만한 수준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사담이지만, 레이버 인자의 사용처가 꽤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 주시는구나 싶어서... 생각난 김에 질문 하나만! 레이버나 엘리나를 동료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경우 둘은 매번 전투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도움을 주는 건가요? 뭔가 세븐스 인자는 100%달성이 아니라 어느정도 조건은 달성했으니 제공하는 특전 같아서요.
>>521 만약 동료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한다면 전투 전에 아스텔과 에스티아와는 별개로 한 명 선택해서 데리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답니다. 전투에서도 함께 해주는 느낌으로 말이에요. 물론 제가 직접 조종하진 않고 여러분들이 오너입이건 캐입이건 요청을 해야 판정이 들어가는 방식이겠지만요!
그 날. 둥지를 부수는 불길을 등졌던 그 날. 우리는 어쩌면 안도했었을 지도 몰라. 그 손이 우리를 밀어내었던 것을.
더는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임무를 달성하고 기지로 복귀하면 득달같이 달려오는 네가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나를 살피고 행여 아주 미미한 찰과상이라도 있으면 잔소리와 함께 그 작은 상처마저 낫게 해버리는 네가 있었다. 더는 어떤 흉도 내 몸에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온전하게 만들고 그것을 확인해야만 성에 차는 네가 있었다. 내가 적당히 좀 하라며 달리 걸음을 옮길 때까지 나를 붙잡고 얄궂게 웃는 네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의 너는 웃지 않았다. 나를 치료하지도, 잔소리도 하지 않고, 오자마자 내 손목을 잡아 네 개인실로 데려갔다. 개인실을 잠그고 천으로 문을 막고서야 나를 보았다. 본디 흰 얼굴이 표정을 잃고 낯빛은 훨씬 창백해진 채 너는 떨고 있었다. 마치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할 부분을 건드려진 것처럼. 마치... 마치...
"레레. 레시. 있잖아. 있지..."
나를 한참 보던 너는 머뭇거리는 말을 몇 번인가 반복했다. 네가 이토록 꺼내기 힘든 말이 세상에 있을 거라 생각도 안 했는데. 겨우, 겨우 목소리를 끌어모아 나온 말에 납득하고 말았다. 아. 그래. 아무리 너라도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내게 말하기 쉬울 리가 없지. 이제 같이 떨리기 시작한 몸을 움직여 너를 끌어안았다.
우리에게 고민할 시간은 더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어. 너무... 너무나 쉽게 벗어나버렸으니까. 하지만 항상 어딘가 불안했고, 불안한 예감은 꼭 빗나가는 법이 없다지. 한 번 쯤은 맞지 않아주면, 빗나가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한 번. 딱 한 번만...
네게 그 정보를 전한 직후. 우리는 곧장 로벨리아를 찾아갔다.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진상을 확인해야만 했다.
어째서 그렇게 서둘렀는지는 모르겠다. 너도 나도 어쩌면 그 시점부터 의도대로 움직였던 것 같다. 그 옛날, 우리 어렸을 적처럼.
로벨리아에게 숨길 수는 없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으니 가능한 간략히 설명했다. 줄이고 줄이면 한 마디로 요약되겠으나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그보다는 많았다. 오히려 횡설수설했지만.
다행히 내용의 전달은 충분했는지 우리에게 사흘의 시간이 주어지고 워프의 사용 허가가 떨어졌다. 허가에 감사하며 나가려는데 네가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굳은 듯 서서 바닥을 응시하다가, 고개 들어 로벨리아를 보고 무언가 말할 듯 입을 열었다.
"...부대 사기를 위해 저희 외출과 사유는 일단 함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외의 허가, 감사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답지 않은 존댓말과 뒤돈 순간 무너지는 표정을 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이젠 나를 두고 가는 너를 잰걸음으로 따라가야 했다. 빠르게 개인실로 향하는 네 걸음에서 누군가와 마주칠까 만날까 하는 불안이 내게는 느껴졌다.
네 개인실 앞에서 우리는 한시간 뒤를 약속했다. 임무에서 막 돌아온 너에게는 힘들겠지만 지금은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 테니. 그저 빨리 다녀오기나 하자며, 서로의 마음에도 머릿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한시간 조금 지난 후. 워프실에서 좌표를 입력하고 넘어가기 직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괜찮을 거란 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그 어떤 희망도 갖지 않았다. 워프게이트를 넘는 그 순간을 마지막이라 여겼다.
에델바이스의 특수부대가 엘리나의 보검을 부수고 가디언즈의 공장을 폭파하고 복귀한 당일. 늦은 밤에 이루어진 나나리 자매의 외출은 로벨리아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어떤 전언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이루어졌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자매의 빈 자리를 눈치채었을 지도 모르나, 그 때에는 이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빈 개인실, 통하지 않는 연락, 각기 다른 곳의 빈 자리...
조용한 부재에게 허락된 시간은 사흘이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도 나나리 자매의 복귀는 없었다. 자매 각자의 단말기는 어느새 신호조차 끊기고. 소리소문 없던 외출처럼 아무런 징조도 없이 자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