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트를 날린 뒤 그녀는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자 흐릿한 시야에 아스텔이 스페셜 스킬을 날리는 모습이 들어오고 날아가는 플래나가 보인다. 하지만 멀쩡히 걸어나오는 것도 보여, 그저 이가 갈릴 뿐이다. 아. 이 너무 갈면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라라가 잔소리 하는데. 어찌어찌 숨을 고르며 일어서는데 에스티아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폭발하면서 휘말리게 할 수만 있다면.
"...가기 전에, 인사는 해야, 겠지..?"
그녀는 자리에 버티고 서서 동료들이 가능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발밑에 핏빛 독액을 줄줄 흘리면서. 독액은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그녀의 발목이 잠길 정도로 차오르더니 곧 부글거리며 크고 작은 붉은 나비의 형상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발화성과 휘발성이 강한 독액의 나비들을 한가득 띄우고, 그 가운데의 그녀가 손을 치켜들자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산개, 하라. Falling Curse-"
나비들은 가는 길마다 독액을 뿌리며 날아가고 이윽고 폭발 지점마다 군데군데 뭉쳐서 더욱 가열찬 폭발을 일으키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 못 해도 이 공장 안 어디에서든 터진다면 쓸 만 하겠지. 모든 나비떼를 날려보내고 그녀도 자리를 벗어난다. 서둘러 동료들의 뒤를 따라잡은 그녀는 손등으로 입가의 붉은 것을 슥 밀어 닦아내고 있었다.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큰 공격이었던 만큼 빈틈도 있었던지라 동료들의 힘을 다한 공격이 플래나에게 쇄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소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분명히 흔들림과 함께 잔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빠져나가야 한다...!
"임무 완료, 퇴각하겠습니다!"
애초의 목적 중 하나는 달성했다. 시설의 파괴는 기정사실이니 이제 남은 목적은 하나 뿐. 무사히,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너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으나 에스티아의 드론이 플래나를 잡아놓으려 하고 있었다. 너 역시 이번에는 체인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양쪽 끝의 추가 달린 체인을 발사해 그 다리를 휘감으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직접 부딪혀 쓰러트릴 수 없다면 무사히 도망치는 것이 승리다. 분명 압도할 수 있는 적을 놓치는 것은 패배나 다름없으니 너는 그 패배를 그에게 안겨줘야만 했다.
순간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저게' 있을 곳은 거기가 딱 어울린다. 진창 밑으로, 끝내 밑에서 모든 걸 지켜볼.. 이스마엘은 그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많이 상한 듯싶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이러면 안돼. 숨을 고르며 아스텔과 에스티아의 공격을 지켜보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강한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지만, 영원한 건 없을 테다. 끝장을 보자면 보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당신을 논파하기에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도.
"……."
이스마엘은 결국 헛웃음을 흘렸다. 뺏어버린 존재, 강하게 다가오는 폭음, 가까워지는 진동……. 달리 공격을 덧붙이진 않고 퇴각하며 천천히 손을 모았다. 그리고 염력으로 몸을 띄워 흐르듯 움직여 시야에서 사라지려 시도했다. 다른 누군가는 당신에게 도발하겠지만 이스마엘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당신에게 경외감을 가졌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없는 쭉정이라 판단한 듯이.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정말 치열한 사투를 벌인 그들은 폭발음을 뒤로 하면서 시설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발이 붙잡혀있는 플래나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폭발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건물 안에서 멈춰선 후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눈초리는 방금 에델바이스 멤버들이 빠져나간 바로 그곳을 향해있었다.
"과연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허나 덕분에 잘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냥 둬서는 안되는 이들이라고. 지금부터 가디언즈는 여러분들을 제 0순위로 섬멸하도록 하겠습니다." "글라키에스. 지시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기를."
이내 폭발음은 다시 한 번 크게 울리며 그대로 플래나를 집어삼켰다. 물론 그 안에서 쓰러지거나 죽진 않았겠지만, 당장 움직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뒤쫓는 추격자들도 없었다.
이내 본부로 돌아온 그들은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었고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명받았다. 물론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있을테고 알고 싶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걸 손끝으로 느낀다. 그래, 너도 현실인지 몇 번이고 의심했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알고 있다. 도너티, 그래, 널 잊을 리가 없지. 그 당시에 우리는 헤어져도 받아들이자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는걸. 힘주어 안는 팔에 잠시 눈을 감는다. 어깨에 묻는 얼굴에 손을 들어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쓰다듬었다. 느껴지는 온기와 물기에 여기 있으니 울지 말라고 말할까 했으나 이내 그만둔다. 같이 울어버릴까 감정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대신 손을 등으로 내려 두어 번 토닥였다. 맞댄 이마에도, 등에도 느껴지는 선명한 온기에 웃음이 유달리 서글프다. 살아있다. 고개를 들고 너는 따라 웃었고, 두 사람의 웃음이 방을 채운다.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래도 머리는 다시 길 테니까. 그때 네가 다시 땋아주면 되는걸."
머리카락에 닿는 손길에 눈을 휘었다. 널 만났을 땐 무릎까지 닿을까 싶을 정도로 치렁치렁했던 머리였는데. 막상 이곳에 오기 직전 싸움에서 머리채를 붙잡혔던지라 방해가 되어 잘라버리고 후련하던 것이, 내심 이렇게 되니 아쉽기 그지없다. 약물의 도움이 없다면 네 손길을 다시 느끼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눈썹을 축 늘어뜨리듯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차라리 잘 됐어. 그 많은 시간 동안 같이 있으면 되잖아.
"……어떻게 오게 된 거야?"
한결 보드라워진 눈동자로 조곤조곤, 조심스레 물어본다. 거기에 있던 건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기에 묻지 않고, 오게 된 경위만, 너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웹박수로 들어온 개요는 잘 받았어요.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아슬아슬한 선에 걸칠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델바이스에게 있어서 아슬아슬한 선은 걸치지 않게 알아서 잘..그 대처를 해주시길 바라고.. 12월 말~1월 초라. 일단 알겠어요! 날짜가 확실하게 정해지면 저에게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