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란이 있더라도 지금은 임무에 집중할 때였다. 사실 그렇게라도 시선을, 의식을 돌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무인으로 돌아가는 공장 내부가 전면에 펼쳐졌다. 그리고 벽에는 사람들이 매달려 세븐스를 착취당하고 있었고. 세븐스 알갱이가 이동하는 파이프를 따라가니 격납고가 나오고. 이미 조립된 블랙 스캐빈저와 블러디 레드도 있다. 끔찍하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부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대략 120개의 구별된 공간과 제어실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아마도 저 곳이 중추이리라.
"여기 레레시아. 내부도를 입수했어. 전력 제어실의 위치도 나와 있으니까. 단말기로 전송할게."
아스텔과 에스티아 쪽에 무전을 치고 단말기로 내부도를 찍어 전송한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행동이었겠지. 담담히 움직이던 그녀는 바닥으로 대량의 독액을 쏟아내었다. 꿀렁이는 독액에 각종 플라스틱과 금속류를 부식시키는 독을 섞고. 손짓 한 번으로 독액을 거미줄마냥 사방으로 퍼뜨렸다. 바닥과 벽을 타고 가능한 많은 기기와 구조물을 먹통으로 만들기 위해.
잿더미, 온통 잿더미뿐이다. 기실 잿더미조차 없다.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은 현장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속삭이는 것 같았다. 웃음이 그쳐버린 이유다. 스스로에 대한 감정이 일순 흔들린다. 역겹다. 대체 무엇이? 불편하다. 누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었어."
무전이 들려왔을 적 이스마엘은 노이즈 속 굳은 표정에서 눈을 크게 떴다. 손이 가늘게 떨려온다. 그 사람의 선택이었다. 그 사람의…. 손에 남았던 맥동이 꺼지고, 숨 쉬지 못해 내던 단말마가, 뒤집어지던 눈동자가 시야에 아른거린다. 네가 죽였노라 얘기하는 것 같던 그 끔찍한 침묵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침묵의 끝에서 생각했던 것을 다시금 상기할 때,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난 살아.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목을 졸라? 개소리. 졸리기 전에 먼저, 빼앗아버리면 돼. 내가 먼저, 살아남기 위해서. 시야가 다시금 흐려지고 귀가 먹먹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리석기는! 그건 구원이었어. "─!" 내가 만들 지옥에서 꺼내준 거라고. 이스마엘은 순간 붙잡힌 손에 지레 놀란 듯 어깨를 흠칫 떨더니 시선을 돌렸다. 팔이 움찔거렸던 것은 찰나지만 뿌리치려 했던 것 같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노이즈 너머로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침묵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뒤로 당신이 공적으로 돌아왔을 때, 이스마엘이 보인 행동은 의외의 것이다. 다른 손을 들어 당신의 뺨을 쓸어보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이마를 툭 기댄 것이다. 노이즈 속 영역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이스마엘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안해." "나는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이마를 뗐을 적, 상처받았기 보다 상처 입혔다는 것에 더 두려움을 가진, 눈물 대신 피로 범벅 진 눈, 그리고 암울한 듯한 무표정이 노이즈의 영역 너머로 사라진다. 고개를 떼고 시선을 돌린 이스마엘은 다른 대원들이 향하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에 박힌 세븐스의 시체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독액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레레시아를 바라보기도 하며.
전력 제어실은 남들이 알아서 하겠지. 컨베이어 벨트를 가만히 살펴보던 이스마엘은 작동을 중지시켜보려 손을 뻗어보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일련의 공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와 나아갈 수 있는 공간, 주변의 방들은 이 곳에서 근무하거나 머무르는 이들을 위한 휴식 공간잉 모양이었다. 너는 잠시 눈에 보이는 데까지만 훑어본 뒤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넓고 큰 건물을 일일히 뒤진다거나 무차별적으로 박살내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이 건물이 복잡하고 큰 편이라는 건 아마 여기 머무르는 이들에게도 미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당연히 간단한 지도 정도는 있어야 했고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건물 내부도가 네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했다. 일단 확인 가능한 공간만 해도 약 120개, 어떤 공간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해야 했다.
일단 눈에 들어온 공간은 시스템실, 그리고 전력 제어실 정도. 보통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와 함께 시스템실이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굳이 전력 제어실과 시스템실이 구별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일단 시스템실을 다운시키거나 폭파시키면 어느 정도 목적 달성에 가까울 것 같긴 한데... 아마 독립된 전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력 제어실에서 전력을 차단하더라도 시스템실만큼은 멀쩡할지도. 너는 격납고를 촘촘히 경계하고 있는 적외선들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부도로 돌렸다. 그래도 시스템실까지 갈 때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이 쪽에서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너는 목적지를 제어실로 결정하고 입을 열었다.
"여긴 뷔시카리오입니다, 전력 제어실을 목적지로 해서 이동하겠습니다."
널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며 너는 당신에게 살짝 웃어주었다. 큰 의미는 담지 않은 미소와 함께.
레레시아의 독액은 여기저기로 퍼지면서 기기를 산화시키기 시작했고 이스마엘의 염력으로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경보 시스템이 작동이라도 한 것일까. 다시 건물 내부에서 애애앵- 애애앵- 애애앵-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또 다시 어딘가에서 병력이 오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쥬데카는 뭔가 섬뜩한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공중. 정확히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천장에서 뭔가가 툭툭툭 떨어졌다.
하얀색의 그 무언가는 이내 각각 펑펑 터지면서 뿌연 연기를 여기저기로 퍼뜨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프로펠러 소리가 강하게 울려왔다. 드론이 날아다닐때의 소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소리였다. 이내 연기 속 여기저기에서 칼날이 전방에 달라붙어있고 그 칼날을 회전시키면서 드론들이 전원에게 한명 당 하나씩 달려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 아직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머지않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일단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내 건물 내부의 방송을 통해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이 건물에 있을 카시노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목소리였다.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그 정도의 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꽤나 정중하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상당히 신사적으로 전해져왔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현재 저희 가디언즈에게 있어서 가장 핫한 테러리스트 여러분. 저는 플래나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하자면 일단 가디언즈 부대를 총 지휘하는 세븐스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U.P.G 의장의 대리로 지휘하는... 일단은 대장인 이입니다.
-일단 대충 상황은 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꽤 아프시겠군요. 거기에 서 있기도 힘을 정도로. 안 그렇습니까? 유감을 우선 표하겠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이스마엘을 노리고 있는 발언이었다.
한편 쥬데카는 전력 제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제어실 안에는 스파크가 강하게 튀고 있는 철장이 촘촘하게 자물쇠로 잠긴채 잠겨있었고 그 안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기로 보이는 기기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서 벽에 머리를 대고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쥐고 있는 엘레나의 모습이 있었다.
"......"
하지만 엘레나는 쥬데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몇 번 자신의 머릿속으로 스파크를 흘리기라도 하는지 스파크가 튀긴 했지만, 뭔가 특별한 변화는 없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엘레나가 지금 쥬데카를 공격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보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것 정도는 알았다. 이스마엘은 다시금 들려오는 경보음에 염력으로 멈춰내던 손에서 힘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누가 나타날까 내심 두려웠는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뿌연 연기가 퍼지자 바로 염력으로 된 장을 펼쳐내려 들었다. 드론 소리를 명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
신사적인 목소리. 싫다. 이런 목소리는 싫다. 염력의 장을 유지하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정중하고 신사적인 목소리 뒤로, 가디언즈 부대를 총 지휘하는 세븐스라는 소개에 노이즈 속 표정을 구기다, 유감이라는 소리에 눈을 천천히 홉떴다.
"예. 그쪽이 총 지휘관이라면 조국의 영광스러운 병사가 일평생 국가에 충성했다가 팽 당했으니 당연히 유감을 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늘게 호흡했다. 제발 조용히, 이 유감을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음에도 당신이 가장 먼저 위로해버리면. 이스마엘이 손을 뿌리쳤다. 염력을 이용해 최대한 드론을 벽 가까이로 붙여 처박아버리려 시도한 것이다. 칼날이 벽에 박히면 조금 더 큰 방해가 되겠지 싶었던 듯싶다. 아니면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를 행위였던가?
전력 제어실에는 별다른 방해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물리적인 방해뿐이라면 그랬지만... 들려오는 방송 소리는 아니었던지라 너는 구겨지는 미간을 애써 펴려고 노력했다. 이셔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금 되돌아가는 것보다 이 장소에서 뭔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안을 둘러보았다.
"...엘레나?"
그대로 손을 뻗었다간 감전되고 말겠지, 너는 한 발짝 정도의 거리를 두고 철창 앞에 서서 그 너머에 있는 발전기와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전기를 공급하는 건가? 아니면... 머리에 손을 올린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뭔가 다른 게 목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스파크로는 부족했나? 그래서 직접 전류의 출력을 높이기 위해 이러는 건가?
"...어쩌면 기회일지도."
너는 제어실 내부를 둘러보다가 목걸이에 손을 올렸다. 그에 반응하듯 빛을 내는 목걸이는 공기 중의 수분을 뭉치는 듯하더니 철창에 물줄기를 휘감아 자물쇠를 부수거나, 전류를 흘리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