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엄청 아프다. 되게 아프다. 미친듯이 아프다. 이 망할 부스터는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대체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런걸 자유자재로 써대는 건지..평소 같았으면 피하고 도망쳤을 공격을 부스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맞아가며 싸우고 있다.
이 훈련으로 인해 하나 배운 것은 공격이 날아올 때 눈을 감지 않는 법, 그것 단 하나 뿐이다. 눈을 감아도 아프고 떠도 아프니 뭐라도 하나 배우기 위해 계속해서 눈을 뜨는 연습을 한다. 분명히 부스터를 잘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훈련을 했는 데 이상한 것만 배우고 있다.
츠쿠시의 공격은 피할 수 없다. 정확히는 '지금은'피할 수 없다. 부스터가 피하는 걸 못하게 한다. 그녀의 공격에 다시한번 배에 구멍이 났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어 어금니가 3번이나 부러졌다. 뽑힌 이까지 다시 나는 걸 보면 이 훈련장 보통이 아니다.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츠쿠시 공격 되게 아프거든요? 그런데 이거 컨트롤하기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어요.."
몸이 둔해질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부스터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만든다면 큰 전력이 될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벌써부터 있을 필요가 싶었지만, 그가 낚시하러 왔을 때라던가 생각해보니 있으면 확실히 나쁠 거 같진 않다. 세컨드 하우스. 남들 몰래 한 곳쯤 있으면 여차할 때 숨을 곳도 되겠지. 라라 몰래 라던가. 그럼 자기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살 집에 별장 얘기까지라. 앞으로 기대할 일 투성이라 밤마다 어떻게 자야 할지 싶었다.
춤을 추는 사이 그가 어떠냐고 묻길래 그녀 나름 머리를 굴려 대답을 해주었더니. 대뜸 웃음부터 들린다. 재밌을 말은 아니지만 그녀였어도 아마 저렇게 웃었겠지. 그래서 태연히, 뻔뻔하게 스텝을 밟고 있자 허리에 팔이 꾹 눌려 그녀와 그를 밀착시켰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질문.
"내가 자기랑 있을 때 하는 생각은 좋아랑 싫어 뿐인데. 언제 뭘 하든 싫다고 한 적이 있었나-?"
그의 춤이 서투를 적에도 싫다 별로다 한 적이 없는데. 오늘처럼 즐겁게 해주는데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말할 리가 있을까. 물을 필요도 없는 걸 묻는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바라본다. 턴을 한 바퀴 돈 뒤에는 장난스레 웃음 머금은 눈빛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조금 더 춤을 이어가다가 멈췄고. 그녀가 그를 안은 것처럼 그도 그녀에게 팔을 둘러 받쳐주었다. 찰싹 붙어 안겼지만 그가 나무에 기댄 덕에 행여 넘어질 지도 모른단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가 대답했을 때, 표정이 희미하게 복잡해지긴 했지만.
"앞으로... 앞으로의 내가 '영원'할 거라면, 지금 시간이 멈추나 계속 흐르나 상관 없을 거 같은 걸."
변하지 않을 거라 해야 하나.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다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에게 애교를 부린다. 현재를 살아가는 온기는 뜨거우면서도 따뜻하다. 그가 힘주어 안는 만큼 그녀도 바짝 안겼고 그가 고개를 숙였으니 그녀는 고개를 뒤로 기울여 그와 입술을 맞추었다. 호흡조차 잠시 잊을 만큼 진하게. 주변 어떤 소리도 멀어질 만큼 길게. 떨어질 것 같으면 그녀가 잡아 조금 더 보채고 겨우 떨어진 후에는 조금 더 진하게 붉어진 얼굴로 멍한 눈을 깜빡이다가 베시시 웃었다.
"그러네... 별장 얼른 있어야겠다. 여기서 집까지는 너무 머니까."
나른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어깨에 기대 열 오른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춤 추고 산책하자고 했는데. 이대로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의 옷 쥔 손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인다. 어쩌면 간지럽히는 것 같을 지도 모르지만. 잠시 그러다가 고개 들어 그의 목에 입술을 촉 눌렀다 뗀다. 그리고 이번엔 정확히 귀엣말로 속삭인다.
"산책 나중에 하구, 돌아가서 같이 늘어지자. 응? 나 자기 무릎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가자아. 부탁보다는 명령, 내지는 아이의 보챔 같은 소리를 하면서 그의 귀를 아프지 않게 물었다 놓았을 것이다. 날숨에 섞인 아주 작은 웃음 소리도 함께.
소식을 몰랐기에 다행이라는 말에 츠쿠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명한 일에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무정하게도 외면해 온 까닭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혹시나의 부문訃聞이 돌아올까봐, 비참한 끝을 확인하게 될까, 혹은 서로 대척에 서게 되어 제 손으로 한때 알아 온 사람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만약을 가정하고 싶지 않았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 세븐스가 맞이할 수 있는 말로는 수없으며 어떤 사실은 영원히 모를 미지로만 남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끔찍한 사실을 덧씌우기보다는 한때의 회고 속에 살아가도록 두길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안이 무색하게도 쥬데카는 짤막한 회상이 현실로 아닌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 기억 속에서만 생동하는 사람을 더는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금 전에는 이 안도감을 말로는 표하지 못하여 웃었더란다.
"면목 없습니다. 사실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던 주제에."
끝끝내 비정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상념을 밀어내고, 감정을 돌려보내어,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아무렇지 않게 외면할 수 있게 되겠다 다짐했었다. 나는 결코 달아나서는 안 되니 차라리 전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되뇌었던 날들이 길었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은 걸어온 길의 대척이니. 츠쿠시는 잠시 시선을 내려 제 발끝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들어올렸다. 눈치가 좋다면 그것이 머뭇거리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으리라.
너무도 쉽게 피가 튀고 몸이 꿰뚫린다. 손 끝에 남은 감촉이 익숙하면서도 여전하게 지독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빼내어 질척한 핏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짧은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겼다. 죽이고자 싸우는 전투가 아니니 부상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츠쿠시는 곧 한 발짝 물러나 피로 흥건하게 젖은 제 옷소매를 걷어올렸다.
"…그렇다면 되도록 과한 공격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전과 같이 피하기 힘든 상황에 구태여 세븐스를 실은 공격을 가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선우가 동의할지 않을지는 모르겠고, 츠쿠시가 생각하는 과함의 기준이 상당히 남다르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치명적일 공격을 서슴없이 날린 이유는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부스터가 그렇게나 사용하기 어려운 건가? 자신은 써 본 적이 없으니 짐작하기 어렵다. 그저 서로 가늠해 가며 겨루는 수밖에.
"계속하겠습니다."
거리를 벌린 행동은 단순히 소강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보다 넉넉하게 벌려진 거리를 비집고 길다란 칼날이 횡으로 직접 휘둘러져 들어온다. 검로는 선우의 어깨 높이로 맞추어져 있다. 길게 늘어나 멀리로 쏘아지는 기운은 없으나, 한결같게도 서늘하게 곤두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