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말 꺼내고 나니 평온한 와중 난데없이 차오르던 긴장감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간 보지 못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어제 만나기라도 했단 듯 여상하게 묻는 말투가 반가워서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에 비하면 한결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이 낯선 듯하면서도 어느 부분은 여전하게 느껴진다. 가령 짤막한 일언一言에 반구半句로 돌아오는 대답처럼. 불어오는 바람으로 흩날린 머리칼을 쓸어넘겨 정돈하자, 잠시 가렸다 다시금 드러난 눈으로부터 미미한 곡선이 그려졌다. 눈웃음은 어색하지만은 않으나 그에게서는 무척이나 보기 드문 표정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말입니다."
미소는 짧게 머물다 자연히 사그라진다. 어둑한 밤중에도 달은 빛나고, 이곳은 번화한 도시가 아니니 밤이 고요했다. 사색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어쩌면 오늘 같은 때에 쥬데카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퍽 감상적인 행동을 해도 이상스레 보이지는 않을 테다.
그간의 세월동안 모두에게 많은 일이 있었으리라. 어떤 것은 바뀌었고 어느 것은 변모했으며, 무언가는 소실되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잃는 것으로 다른 것을 쥐게 되었다. 저 역시도 돌이켜 보면 어느새 여전한 듯 조금은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물었다.
"이제는, 평안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었나? 그날에 묻지 않았고 끝내는 영영 전하는 일 없게 되었던, '불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일단 아스텔은 아무래도 임무 중에는 그다지 레레시아 생각을 많이 하진 않는 편이에요. 다만 위험한 임무가 있거나 가디언즈 간부 클래스와 교전이 있거나 할 때에는 괜찮을까? 정도의 생각을 이전보다는 좀 더 많이 하는 편이긴 해요. 하지만 진행의 밸런스 상 문제도 있고 아스텔도 임무 중에는 임무에만 집중하는 편인지라 딱히 구하러 오진 않고 정말로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모두를 돕기 위해서 합류하는 편이기 때문에..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것이 없을 때는 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다만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고 어쨌건 살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 버텨왔는데 이런 내가 자격이 있을까? 라는 고민도 많이 하는 편이고.. 최근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더 좋아해줄까. 어디를 같이 가면 좋아할까? 식의 생각도 많이 하는 편이랍니다.
특별히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여기에 오기 전의 레레시아는 어떻게 살았을까 등의 에델바이스에 오기 전의 레레시아는 어떤 이일까라는 것을 제일 알고 싶어하고 궁금해해요. 하지만 현 상황이 상황인만큼 바로 묻진 않을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더 이상 싸워도 되지 않을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가만히 기회를 보다가 넌지시 물어보지 않을까 싶어지네요. 그 외에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나 그런 것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할 것 같고요. 자신도 할 수 있다면 같이 해볼까 라는 느낌 정도로?
438Patima Maria Casillas García 6(탈출)
(AnuE4GMUDs)
2022-11-17 (거의 끝나감) 22:12:08
파티마의 이복동생이자 가문의 후계자 카를로스가 10살이 되었을때, 남매의 아버지 펠리페는 파티마가 오두막에서 지낼 동안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점과 고용인의 증언 등을 통해 그녀가 공격적인 세븐스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 저택 안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12세가 된 파티마는 오두막에 갇힌지 10년이 지나서야 격리가 해제되어 집에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카를로스에게 누나 노릇을 하려 들지 말 것, 프란시스카와 카를로스를 상전으로 모실 것, 자신이 정실 태생의 자녀들과 동급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 것 등등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파티마는 프란시스카를 더 이상 언니가 아닌 아가씨라고 불러야 했고, 카를로스는 파티마를 누나가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오두막에서 나온 것 만으로도 파티마는 크게 기뻐했고, 자신에게 내걸어진 조건에 조금은 씁쓸함을 느낄지언정 불만을 품지 않았다. 파티마가 오두막에서 지내던 시절 울타리 밖에서 그녀를 창살 속의 짐승 구경하듯 보며 조롱하던 사촌들이 '너는 카시야스의 수치', '네가 우리와 같은 머리칼을 가진게 싫다' 라며 진흙탕에 빠뜨리고 머리를 처박아 보랏빛 머리카락를 흙투성이로 만들었어도 파티마는 묵묵히 버텨냈다. 차라리 오두막 시절이 더 나았을 정도로 불평등과 부조리가 이어지는 나날이 이어졌으나 파티마는 모두 감내했다. 그녀는 방 밖에 나오면 사람이 있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기뻤다. 비록 그 사람들 중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물은 없었지만 말이다. 물론 아버지 펠리페가 불평 한 마디라도 했다간 다시 오두막에 처박아버릴 기세로 그녀를 감시한 탓도 있었다. 그는 보란듯이 파티마가 지내던 오두막을 철거하지 않았다. 그녀를 언제든 다시 가두기 위해서였다. 파티마의 방은 저택에 남는 작은 방이었지만 춥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다락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반응을 하질 않으니 사촌들도 질려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된 것과, 가정교사에게서 뒤늦게나마 교육을 받게 된 것이었다. 글을 배우게 된 파티마는 도움을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자 가장 먼저 언니 프란시스카의 이름을 썼다. 가정교사는 엄하고 무뚝뚝한 인물이었지만 적어도 세븐스라 배움이 늦다는 등의 차별은 하지 않았다. 아마데우스가 된 현재에 이를 돌아본 파티마는 가정교사 역시 인생의 은인 중 한명이라고 인정했다. 하여튼 파티마는 글을 배운 이후로 책에 파묻혀 살았다. 당연히 펠리페가 서재 출입을 허락하지도 않았고 따로 책을 사주지 않았기에 모든 책은 프란시스카의 것을 물려받거나 그녀가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왔을때 조달해주었다.
파티마에게 기초적인 상식만 가르쳐주고자 가정교사를 고용했던 펠리페는 세븐스가 똑똑하면 재수 없다며 못마땅해 했으나, 의외의 인물인 가정교사의 설득에 결국 눈 감아주었다. 가정교사는 펠리페에게 '지식이 없는 자는 반드시 큰 문제를 일으킨다' 라며 그를 설득했다. 사실 이 가정교사라는 인물은 지식을 숭상하고 무지를 극도로 혐오해 무식한 사람이라면 비능력자건 세븐스건 공평하게 혐오했다. 반(反) 세븐스 정서가 팽배한 세상에서 못 배운 비능력자 200명과 잘 배운 세븐스 3명 중 한 그룹만 살려야한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못 배운 비능력자 200명을 죽일 인물이었다. 많이 혼나긴 했어도 파티마에겐 최고의 스승인 셈이었다.
시간이 지나 파티마는 14세가 되었다. 그녀는 언니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프란시스카가 24세, 파티마가 16세가 되었을때 그녀는 언니와 함께 이 저택을 떠날 수 있었다. 저택에 돌아온 뒤 눈 깜빡할 사이에 2년이 지났기에 남은 2년도 그렇게 빨리 흐를 것이라고 파티마는 생각했다. 그리고 14세가 된 해의 크리스마스에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파티마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크리스마스를 맞아 본가를 찾아온 프란시스카가 은밀하게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깜짝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것은 작은 물방울 모양으로 세공된 청금석 귀걸이 한 쌍이었다. 프란시스카는 자신이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지만, 파티마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아 선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귀를 뚫지 않았지만 두 자매는 귀걸이를 귀에 대보며 웃고 떠들었다. 귀걸이는 파티마의 보물이 되었고 늘 그것을 소중히 보관했다. 그리고 저택을 나가자마자 귀를 뚫어 항상 착용하고 다니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그 행복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파티마는 저택 밖으로 쫒겨났다. 즐거운 명절을 보낸 뒤 새해를 맞이할 생각에 들떠있던 카시야스 가문 저택으로 강도가 침입했고, 강도는 어린 카를로스를 위협했다. 파티마는 카를로스를 지키기 위해 세븐스를 발현해 작은 칼을 만들어 그와 대항했고, 강도는 경호원들에 의해 곧 제압 되었지만 눈 앞에서 세븐스가 발현되는 것을 본 카를로스는 기절했다. 정확히는 파티마가 칼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내고, 흘려낸 많은 피를 보고 기절한 것이었다. 펠리페는 파티마가 카를로스를 구하려 했음을 알면서도 역시 아이와 세븐스를 한 집에 살게 하는 건 위험하다며 그녀를 카시야스 가문의 소유의 외딴 별장에 보내 평생 감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파티마는 사랑하는 언니에게 작별인사 한번 못한 채로 추방되었다.
별장은 호수가 위치한 숲 속에 위치해있었다. 길을 모르면 끝없이 헤매다 객사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파티마는 당연히 길을 몰랐다. 좋게 말해 한적하고, 곧이 곧대로 말하면 따분하고 무료한 곳이었다. 별장엔 그녀를 감시하는 눈이 많았다. 파티마의 생활을 위해 고용인 신분으로 별장에 입주한 인물들은 말이 좋아 고용인이지 그녀를 상전은 커녕 동등한 인격체로도 보지 않았다. 다시 격리되어 감금 된 파티마는 고용인의 냉대보다 읽을 책이 없다는 것에 더 슬퍼했다. 사실상 프란시스카와의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버지가 완강히 거부하니 프란시스카는 파티마를 빼내올 수 없었다. 창 밖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진 별장 밖의 세상을 구경하던 파티마는 그 날 오두막에서 프란시스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신은 그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새 삶을 상상했다. 한참 공상을 이어가던 파티마는 그 날 홀연히 별장을 탈출해 영영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