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밤거리의 벤치에 홀로 앉아서 옆에 없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한때 빈센트와 함께했던 한 사람, 빈센트가 어디를 가던 함께 있어주었던 한 사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빈센트를 생각해주고 빈센트를 지지해주었지만, 빈센트가 너무도 늦게 깨달은 그 한 사람. 베로니카를 생각하면서. 혼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난히 어깨가 시려운 느낌이었다.
그 때, 빈센트는 어디선가 들리는 거기 서라! 라는 소리를 듣는다. 목소리가 유난히 익숙해서 의념에 귀를 기울여보니, 강산이었다. 그리고 강산이 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니... 강산이었다. 빈센트는 강산이 강산을 쫓는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 것까지는 들어봤어도 산 강산이 산 강산을 쫓는 광경은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빈센트는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뒤에서 쫓아가는 강산을 도와서 도망치는 강산을 조질까, 아니면 도망치는 강산을 도와 쫓아가는 강산을 방해할까? 빈센트는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절충하기로 했다.
"시작해보죠."
도망치는 강산 앞에, 갑자기 수십 개의 소화전들이 솟아올랐다. 도망치는 강산을 '조지'는 것도 아니고, 쫓아가는 강산을 방해하지도 않읜 완벽한 절충이라고 자평하며 일어났다.
뒤에서 상대를 쫓아가던 강산이 빈센트를 발견하려고 도움을 요청하려던 그 때 빈센트는 알아서 마도를 시전했고, 앞서서 달려가던 너울 쓴 사내는 갑작스레 뭔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라 잠깐 멈춰선다. 자신을 가로막은 소화전들을 보고 잠시 멈칫하지만, 과감하게도 그것들을 뛰어넘을 생각인지 양 무릎을 굽히고.
"으아악, 멈춰! 아니 멈추시옵소서!! 위험하니까요!"
사내의 동작을 보고 도리어 당황한 강산이 쫓아오며 상대는 잠시 뒤를 돌아보는 듯 했다. 그러고는 쓰고 있던 그늘같은 너울 자락을 훌렁 걷어보인다. 강산과 똑 닮은 얼굴이었지만 흑발에 불투명한 청회색 눈, 눈으로 빚은 듯 창백한 피부...그리고 현대 지구의 복식과는 차이가 있는 동양풍 옷이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다. 그 사내는 잠시 가만히 서서 그대로 강산에게 잡혀주는가 싶더니...
"드디어 잡았다!"
....라고 외친 강산에게, 한 쪽 입꼬리를 재수없이 올려 웃어보이고는, 되려 그를 붙잡고 소화전 쪽으로 밀쳐버리는 것이다.
▶ 왕자와 거지 ▶ NPC 발급 의뢰 ▶ 임무 종류 : 경호 의뢰 (?) ▷ 게이트 '지평선 너머'의 '해왕국' 제3왕자 '심호'를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무사히 경호하십시오.
"으악!!" 우당탕탕!!
그렇게 강산을 방패삼아서 틈을 만들어 다시 탈주를 시도하는 '심호' 왕자. 그러나 바로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린다. 강산도 지지 않고 "아니되옵니다 저하!!"를 외치며 '심호'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잡았다! 라는 말이 무색하게, 강산은 붙잡혀서 소화전 쪽으로 밀려났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빈센트는 뒤늦게 사내의 얼굴을 보고, 강산에게 쫓기는 강산이 아니라 무엇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것을 보고 잠깐 고민했다. 도와야 하나. 저하, 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중요한 누군가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귀족가 아닐까? 당장 가출해서 강산이 뜯어말리고 있는데, 말을 죽어도 안 듣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흠..."
빈센트는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강산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돕는 방법이 좀 기괴했다.
"제압하는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빈센트는 강산에게 배웠던 것을 떠올린다. 이 땅 아래에 묻힌 강철 파이프가 뿌리라면, 그 뿌리에서 또다른 뿌리가 뻗어나오다가 끝내 땅을 뚫고 나와 무언가를 엮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념을 집중하자, 파이프가 솟아나와 그 '저하'의 양 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4
사실 여우신님이 도는 것을 그만두고 털썩 누웠더니 갑자기 동그랗던 지구가 평평해진다면 매우매우 재미있을것 같긴 합니다만...
“ 그건 ‘ 다행이야 ’. 응. 솔직히 말하자면 ‘ 조금 걱정 ’했거든. ”
여전히 주어가 빠진 말을 오토나시는 중얼거리면서 의념으로 여우 인형이 도록 위를 빙글빙글 돌도록 만듭니다. 충격! 여우신님 신 한국 순회공연.
“ ...그러니까. 내가 이 ‘ 작품전 ’이 어째서 ‘ 여우노래 교단 ’의 포교용이 아닐까 생각했는지 말이야. ”
그래도 뒤늦게 덧붙일 정도의 정신머리는 아직 오토나시에게 남아있는 모양이군요! 이 작품전이 포교의 목적을 담은 전시회일지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떠올린 주제가 마침 작가가 몸 담던 종교를 떠올릴 법 한 내용이었는지는 당장 알 수도 없겠고 두 사람이 더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답이 나오진 않겠지만, 확실한 것은 말이죠...
“ 그리고 그 다음에는 ‘ 새로운 순환 ’이 시작 될 지도 모르고. 응. ‘ 긍정적인 사고 ’는 건강에 도움을 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