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는 옅은 표정과는 별개로, 목소리를 크게 높이며 사람들의 주문에 대응했다. 누군가는 사과술, 누군가는 제국 럼주, 누군가는 벌꿀술도 아닌 무려 벌통술, 다양한 것들을 다양한 테이블에 놔야 하는 격무에 시달렸다. 그나마 이것도, 원래는 경비를 불러야 할 일인데 이리나 얼굴을 보고 "일주일 일하면 없던 셈 쳐주겠다"는 합의를 봐서 일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을 가로막듯 어디선가 조용한 한 마디 흘러나왔다 그것은 한창 때인 주점의 소란에 비하면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에스토크가 갑옷의 틈새를 찌르고 기사를 무력화시키듯 조용해진 아주 잠깐의 틈을 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분위기를 얼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구석진 곳에 있는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단지 혼자서 잔을 두 손으로 홀짝이고 있었다
"잠깐도 못 기다리고 여자애한테 소리치는 사람이 더 촌뜨기같아."
여자의 그것은 비방도 아니었으며 하물며 시비조차도 아니었다 따지자면 감상평이다 책장을 펼쳐 대충 좌르륵 훑어보고서 내놓는 한 줄 평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증거로 여자의 시선은 전혀 두 사람에게 향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주문 받으랴, 술 나온거 받아서 돌리랴, 그리고 사람들이 먹고 나간 자리 치우랴, 이리나는 몸이 세 개라도 힘들 일정을 혼자서 소화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늦게, 흑맥주 한 잔을 주문한 자리에 갖다 둔다. 촌뜨기라는 말에 기분이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이리나는 지금 그런 호칭 하나하나에 일일이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흑맥주를 갖다둔 순간, 이리나는 술집이 미친 듯이 조용해졌음을 깨닫는다.
"아... 음?"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을 바라보면...
"코우 님?"
소름이 다시 쭉 돋았다.
"여기는 무슨 일로..."
그리고, 이리나에게 촌뜨기네 뭐네 하면서 시비를 걸던 이는 속으로 툴툴대면서 그냥 고개를 돌린 차였다. 이리나는 그 남자와 코우를 돌아보다가, 그 사이에 밀린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갑니다! 가요!" //죄송한데 내일은 진짜 일찍 일어나봐야 해서;; 혹시 답레주시면 내일 이을수 있을까요 ㅜㅜ
주점의 분위기가 평소대로 돌아오면서 이리나도 분주히 움직인다 코우는 멍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여긴 바쁘네."
전에 들른 주점은 한산했는데 한산하다 못해 너무나 고요했던 것 같아 하지만 그건 전부 당신 때문이었잖아요 그랬나? 여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주위는 점점 다시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점원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하나, 그런 남자를 밀어내면서 점원의 손을 잡는 남자가 하나 주문이 오지 않아 소리치는 촌뜨기가 하나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하나
'흐음.'
코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앉아있기만을 그만하고 소란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도 너무 서두르지 않았길 바란다 그래서야 여자가 다리로 옆구리를 걷어차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몸뚱아리에 붙은 발을 그대로 세게 밀어 같이 서있던 용병마저도 덩달아 바닥으로 떨어트려버린다 정리되지 않은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자 그들을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붉고 조용하게 타오른다 순간의 폭력에 동조하듯 칼집 안의 칼은 미세하지만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입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한 마디 만을 내뱉었다
이리나의 무감한 표정에 짜증이 들었지만, 그들은 이리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리나는 그 때 어떻게 했나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운이 미친듯이 좋았을 뿐이었다. 내가 잡힌 그 때, 아버지가 날 보고 바로 활을 쏴서 도적의 눈구멍을 꿰뚫었다. 그리고 도적들이 혼비백산하는 사이, 이리나는 주머니칼을 빼서 주변을 경계하던 도적의 뒤를 잡고 목을 그어버렸다. 여기서는... 팔이 하나 잡힌 상황에서, 이리나의 한 손에는 가득 찬 맥주잔이 들려있다. 그러면...
"꺄아...!"
...맥주잔으로 머리를 내려친다는 발상은, 순간 실 끊긴 꼭두각시처럼 무너지는 그들과 함께 무너졌다. 이리나는 당황해서 앞을 바라보았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