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배웠습니다. 어쨌든 대충 살라는 의미였죠. 그래도 사람 안 죽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좋은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빈센트는 그런 감상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저 아이들에게 무슨 기쁨이 있을지, 무슨 아픔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건 나도, 강산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 기쁨이 있건 아픔이 있건, 아니면 둘 다 있건, 그 아이들은 빈센트가 만들어낸 마도에 기뻐했다. 그거면 됐다. 빈센트가 저 아이들에게 빈센트가 걸었던 길을 절대 걷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는 없었고, 그들 하나하나를 구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거 하나는 확실했다.
당장은 이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었다. 그거면 됐다.
그리고 빈센트는... 강산과 함께 있을 때면, 다른 이들과 있을 때와는 달리, '정상'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빈센트는 살인, 고문, 피, 내장, 대량학살, 테러와는 연이 없는 정상인이 되었고, 그 정상인 행세가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또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군요."
빈센트는 어쩌면 자신이 정상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정상성은 선망할 기회는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슬쩍 일어섰다.
강산은 아이들의 감사인사를 받아주면서 빈센트가 한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빈센트의 감상을 들으며 짤막하게 답한다. 폭력과 유혈로부터 멀어진 일상이 주는 평온함. 그것이 그가 말하는 '정상인' 같음인 걸까.
"또 볼 수 있을 겁니다." - 네, 또 놀러와요!
강산이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아이들이 맞장구를 친다.
"다음 번에는 위험하게 말고 안전하게 놀아줄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겠네요.."
그가 이렇게 덧붙이자 아이들이 (좀 전에 마주친 들개를 떠올리고는) 잠깐 잠잠해지긴 했지만.
"아 그러고보니 시간이 꽤 지났네요...형들 이만 가볼게. 너희들도 조심해서 들어가. 그리고 너희가 마주쳤다는 들개는...가능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다."
빈센트가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자 강산도 같이 자리를 뜰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아마 보호자들에게 이야기하면 보호자들이 알아서 민원을 넣겠지만, 노파심에 한 문장을 더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갑시다."라며 빈센트 옆에 붙어서 (혹은 빈센트를 끌고 나가며) 걸음을 재촉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폭발적인 인기와 수요는 또다른 공급을 만들고, 공급은 공급 그 자체로 또다른 공급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예술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예술은 그렇기도 했다. 누군가 이미 닦아놓은 길을 간다면, 그 길 위에서 정말로 큰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드러내기 어렵다. 그 길을 만들기 위해 구워지고 짜여져서 딱 맞은 벽돌들처럼, 그 길에 쌓인 수많은 무언가일 뿐, 특별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도 맞는 말이죠. 우리가 잘 포장된 벽돌길을 본다면 길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할 뿐, 그 길을 구성하는 벽돌 하나하나를 일일이 세보고 탐구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벽돌이, 좋게 말하면 검증된 주제, 나쁘게 말하면 진부한 주제를 선택한 이들의 고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억 인간들에게 수십억 관점이 있듯이 그들이 그들의 관점을 이야기한다면..."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도록을 본다. 한번 '보통 해석'이라는 걸 해볼까 하면서, 검은 공간 위에 배치된 '오브젝트'를 본다. 빈센트는 여러가지 생각을 펼친다.
"이 작가분이 그림의 구도를 짜는 방법은 신몬드리안주의의 기하학적 추상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군요. 비록 직선과 직선의 조합은 없지만, 수직, 수평, 삼원색, 무채색의 원칙을 지키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저 사물은 어둠 속에서 수직으로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오브젝트를 묘사하는 방식은...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환시미술을 떠올리게 만드는군요. 비록 벡신스키의 작품이 공포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당사자는 자신의 작품을 유쾌하게 묘사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사람 역시도 태어나서 죽는 삶의 순환을 긍정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둠이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도, 어쩌면 수천년간 쌓아올려진 합의일 뿐이고, 이 작품은 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일 수도..."
라고 쏟아내던 빈센트는, 잠깐 턱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보통 해석'이란건 없을지도요. 모두의 '해석'은 그저 해석일 뿐이죠. 어쨌든, 이 사람 그림 마음에 드는군요. 나중에 미리내고 졸업하면 액자 하나 집에 가져가서 걸어두고 싶은데 말이죠."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