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가이아의 광장, 한산한 시간대입니다. 타티아나는 길 구석에 쪼그려앉아 꼬리를 붕붕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무얼 보고 그리 좋아하냐 하면은 귀여운 점박이 강아지입니다. 강아지도 길 저편에서 그녀를 발견하곤 냅다 달려옵니다. 마찬가지로 꼬리를 방방 흔들면서… 녀석은 어쩌다 이런 길거리에서 떠돌고 있는 건지. 어미나 주인은 어디에?
"헤헤, 귀여워라!"
그런 건 모르겠고, 지금은 잔뜩 귀여워해도 되지 않을까요. 강아지가 코를 킁킁대며 타티아나의 주변을 맴돕니다. 그러더니 배를 깔고 누워 재롱을 부립니다. 그녀도 손을 뻗어 강아지를 열심히 쓰다듬어줍니다. 사람을 참 잘 따르는 녀석이네요.
내가 언제부터 담배를 폈더라..15살 쯤이었을까? 이 담배란 걸 펴보면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해 몰래 시작하게 된 담배. 결국 지금은 입에서 연기만 뿜어내고 있구나. 그래도 힘든 수련이나 이런 전투를 마치고나서의 담배 한 까치는 정말로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기분이 좋아서 피는 거요."
레온은 살짝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하고, 목소리의 정체에 시선을 옮겼다.
".....?!"
------------------- (레온의 회상)
"레온! 누나랑 같이 콘치즈 먹을까?!" "레온~ 우리 아버지가 저 땅을 다 가지고 계시는데.." "레오오오온~ 어서 크면 나랑 결혼하자, 응?" "우리 아버지가 기사야! 빽을 써서라도 너를 기사로 만들어줄게! 그러니깐 나랑 연극 한 번 같이 보라가주면 안 될까?!"
"아, 미안해요..제가 바빠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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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8년차 레온.
18년 인생 중 처음으로 '아름답다'라고 느껴지는 여인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사실 꽤나 미남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레온. 하지만 레온 앞의 엘프여성은 레온보다 몇 차원 더 위의 아름다움을 가진 듯 했다.
다행이게도 10년 가량의 연기짬밥 덕에 아이리스의 미모를 보고도 감정의 동요를 전혀 티내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호기심에 옛적에 담배를 핀 적도 있었다. 외모와는 달리, 아이리스의 나이는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자손의 자손을 보아도 어렵지 않은 나이였으니까. 익숙해진 한 개비의 담배는 비틀린 머리의 통증을 고쳐주고, 거세지는 숨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숨을 줄어들게 하고 삶의 순간을 잊어가게 만든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또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아이리스는 그때를 기점으로 담배를 모두 끊었다. 자신의 추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누구보다 냉혹히 담배를 끊어낸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져서 피는 것이라는 레온의 말에 아이리스는 주머니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아직 스무 개 가까이 남은 그녀의 행복은 대부분 이것이었고, 또 달콤한 감정에 빠져들고 나면 금새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는 레온의 말에 공감한 듯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맞지. 나도 사탕을 먹고 있을 때면 그런 감각을 느끼니까. 달콤하고, 머릿속이 쾅쾅 울리는 때의 감각을 느끼고 나면 행복해지니까. 너도 그런 기분 좋음을 느끼는구나?"
그것만으로도 아이리스는 레온과 친해졌다고 느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더라도 좋아하는 포인트가 같다면 좋다. 그 기쁨에 입술을 살짝 끌어올리고, 스스로를 레온이라고 소개한 이를 호감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응! 많은 엘프들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도 그런 아름다운 엘프 중 하나야. 레온도 잘생겼는데, 그럼 레온도 엘프인걸까?"
스스로 알 수 없는 생각에 빠진 아이리스는 고민처럼, 허공에 손을 괜 채로 가볍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레온도 엘프인걸까? 하지만 인간의 느낌이 더 났는데? 하고. 어두운 불빛에 가려 제대로 귀가 보이지 않는단 것이 더더욱 아이리스를 헷갈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974
수도는 시끄러움과, 지독한 고요함을 겸비한 공간이다.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은 도시의 활발함 속에 익숙하지 못한 시끄러움을 느끼고 도시에 적응해버린 이들은 도시가 조금만 조용하더라도 평소보다도 고요하다 느끼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엘프인 아이리스는 그중 두번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지독한 고요함을 알기도 했고 또 지독한 시끄러움을 알기도 했으니까. 그녀는 이곳의 풍경이 많이 조용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감각을 기울이며 길의 아슬아슬한 선을 타고 걸음을 걷던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배를 깔고 누워있는 강아지 한 마리와, 그런 강아지를 예뻐하는 부슬부슬한 귀와 꼬리. 한눈에 수인이라는 종족의 특징을 알아본 아이리스는 조금의 소란을 바라며 타티아나에게 다가갔다.
"귀여운 강아지랑 귀여운 사람이 같이 있어서, 두 배로 귀엽네!"
꽤나 감정적으론 나이 든 듯 표현하는 아이리스에겐 타티아나와 강아지, 둘 모두 귀여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귀여움 + 귀여움 = 짱귀여움의 공식을 세워버린 아이리스는 귀여운 것을 본 사람들이 그러듯 풀어진 표정으로 둘을 살폈다.
"반가워 아가씨. 사탕 좋아해?"
손 위로 사탕을 올려 내미는 것은 호의를 느낀 증거였다. 중독에 걸친 사탕 중독자에게, 달달한 사탕을 내어준단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담배..사실 레온도 기사가 되려는 기사도를 가진 건장한 청년으로 보여도, 담배가 주는 비교적 노력을 덜 들여서 얻어들이는 도파민에 길들여져 있었다. 단순히 연기를 삼키고 뿜는 것만으로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파민은 큰 야망을 가진 레온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작은 값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으니, 담배를 쉽사리 못 끊었다.
"음..그렇다고 하죠..그, 저..사탕 좋아하시면 이 근처 제과점에 가보셔요. 저희 부모님 가게거든요.. 레온의 동료라고 하면.. 서비스는 주시겠지요."
사실 이거는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느낌을 원래 좋아한 것 보다는 담배를 시작하고나서 좋아하게 됐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었다.
"유감이지만 저는 엘프가 아니에요. 인간이죠."
레온은 담배를 끄고, 아이리스에게 다가와 귀를 보이며 인간임을 밝혔다.
"인간인데 엘프라고 착각하다니.. 저 꽤나 잘생겼나보네요?"
능글 맞은 멘트를 치는 레온..사실 이거 다 연기다. 지금 레온은 일생일대로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보아서 머릿 속이 꽤나 복잡해진 상태다.
새로운 제과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아이리스는 머릿속에 가벼운 지도를 표시했다. 그 머릿 속 지도에 작은 별표를 치고 '레온네 부모님 가게.' '사탕 서비스 줄 지도 모름!' 이라는 메모를 남기곤 남은 담배를 피워내는 레온을 바라봤다. 담배를 피는 사람을 바라보면 그 성격을 어느정도 알 수 있다. 담배가 빠르게 줄어듦에 따라, 급한 성격일 수도 있고 그것을 단순히 시간 보내기나 여유를 위해 피는가에 따라 그 집중력을 위해 피는 것처럼 볼 수도 있으니까. 아이리스의 그런 기준에서 레온은 후자에 가까웠다. 담배라는 요소가 주는 안정감과 감각, 그 감각에 익숙해 피는 듯한 레온의 행동을 이해한 듯 했다. 곧 담배를 끈 레온의 움직임에 따라, 흐릿한 빛 속에서 살짝 가까워진 레온의 선이 곧 귀를 드러나게 했다. 살짝 뾰족한 귀가 아니라 둥근 귀. 아이리스가 보기에도 명백히 인간의 그것이었다.
"응.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도 잘 생긴 편이야."
다가온 귀에 숨소리를 섞고, 장난기를 담은 속삭임으로 말했다. 아이리스가 본 인간들 중에선 레온만큼 잘생긴 사람이 몇 없긴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레온이 스스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아이리스에게 연기라는 가면을 쓴 것처럼, 그녀는 지금의 그 말은 친구간의 장난처럼 생각해 연인의 그것처럼 속삭인 것이다.
"그럼 레온은 날 어떻게 생각해? 나도 꽤 예쁘게 생겼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난 아이리스는 히 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내걸었다. 능글맞은 멘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덤덤한 고백같은 말투.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는 듯한 아이리스의 행동에는 천진난만한 그것이 있었다.
사실 레온을 평소에 봐온 사람이라면, 레온의 이런 능글 맞은 연기는 딱 연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기가 어설프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평소의 레온은 이렇게 능글 맞은 멘트도 뱉지 아니하고, 레온이 평소에 그다지 연기를 하며 살지 않음을 아니깐.. 갑작스런 능청스러운 모습은 아무리 완벽해도 연기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이러한 연기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저 엘프에게 들키기 싫기에 사용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당연하죠. 가이아에서도 나보다 잘생긴 남자 꼽아봐요, 찾기 힘들 걸?"
그리고 이 둘의 옆을 지나가는 레온의 지인. 그저 조용히 지나가지만 지인은 '레온이 저 놈이 평소에 저런 말을 하는 친구가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레온을 슥 보고 지나갔다.
"네, 예뻐요. 제가 연극생활을 오래 했는데 말이죠. 아이리스씨 연기를 정말 최악으로 못해도 캐스팅 했을 거 같아요."
"아, 물론 우리 엄마가 더 아름답지만요."
솔직히..솔직히 말해서..이 엘프도 자기가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그래서 오히려 덤덤하게 솔직하게 말하는 '척'을 했다. 그리고 레온은 이성적이었다. 잠시 동안의 감정의 동요가 있었지만, 이는 곧 멈추었다.
아이리스의 행동이 연인 같지만 레온은 생각했다. 이는 그저 장난에 불과할 것이라고..'아무리 외모가 수려한 나라도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 엘프가 나를 좋아할까?' 라는 생각에 휩싸여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생각을 떠올려보면, 나름 아이리스는 레온보다 잘생긴 인간을 많이 만나기도 했고 같은 하이 엘프들 중에는 그런 그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이들도 있었다. 표현하는 것에 따라 감정은 고요한 호수의 무언가가 되기도 하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 밤. 걱정스럽게 출렁이는 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리스는 레온의 표현과 행동보다도 눈빛을 바라봤다. 거짓을 말하는 것보단 눈을 움직이는 것이 더 쉬웠으니까. 상대방의 눈이 향하는 위치, 입술과 얼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런 것을 살펴보던 아이리스는 품에서 사탕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레온의 입술에 가볍게 가져갔다.
"하나 줄게. 보통 사람들한텐 주지 않는 거니까 좀 더 기뻐해도 돼. 사탕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물건이거든."
그것을 먹던지, 아니면 다시 아이리스에게 돌려주는지는 레온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가능하면 레온이 사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를 통해 레온과 아이리스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이를 통해 비밀의 사탕 숲(어디까지나 동화의 이야기다. 실제로 존재하진 않는 공간일 것이다.)의 위치를 알려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는 제과점 아들이기도 하니까. 정말로 그런 숲의 위치를 알려줄지도 모르지.
"연극을 오래 했다고 했지? 그럼. 내 노래 들어볼래?"
그 흐름을 따라 아이리스가 선택한 것은 리라 연주였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리라를 들고, 입으로는 가벼운 허밍을 울리며 연주를 했다. 오늘 연주하는 곡은 '바람에 머문 쪽지'라 불리는 노래의 일부분이었다. 한 남자는 적국의 기사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별의 신의 중립 구역에서 머지않은 나무에 서로의 쪽지를 걸어 마음을 표현했고, 사랑에 빠졌음에도 각자의 위치와 시선에 의해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 노래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이리스가 느낀 레온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막아내듯, 묵묵한 소리들이 뒤섞인 그였다. 사탕을 준 것도, 노래를 들려주는 것도 아이리스에게 있어선 하나의 언어였다. '네 진심은 어때? 나는 이런 존재야'라 말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리라 소리에 기대어 허밍이 아닌 음으로, 목소리를 말했다.
"'피와 육신이 쓰러진 곳에는 그것을 양분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고 하죠.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렇게 피어날까요. 아니면 양분이 되어 사라질까요. 만약 우리가 양분이 되어 쓰러진다면 카라꽃의 화단이 피어나기를'"
음- 흐음흠- 하는 허밍이 이어지고, 마지막의 마지막처럼 쓰러진 나무 아래서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아이리스는 웃음을 지었다.
"있지. 레온은 연기를 잘 해. 하지만 나는 레온과 친구가 되고 싶었지. 연인이 되고 싶다거나 한 게 아냐. 내가 사탕을 좋아하고, 레온이 담배를 좋아하듯. 서로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나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거야. 그러니까..."
이상한 연기는 그만. 하고 리라를 든 손까지 교차해 X를 그려낸 아이리스는 레온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