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은 라인으로 유우나와 대화를 마치고선 잠깐이 될 것이었던 산책길을 벗어나서 학교 바깥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통금이 될 시간대도 아니었고 애초에 통금이어도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 능력이 있었기에 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시내로 나간 그가 향한 곳은 이 섬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빵이 남아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몇가지가 남아있었고 그 중에는 카스테라도 있었기에 강민은 빵을 사서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다음날이 되자 그는 카스테라를 가방에 넣어서 학교에 가져갔다. 점심 시간에 유우나가 올 것이라고 말을 해두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일월정으로 빵을 가지러 다녀오기엔 시간이 조금 애매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수업은 평소처럼 졸음과 싸워가며 반쯤 흘려들은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 곧바로 교실 바깥으로 나갔다.
[저번에 내가 알려준 그 장소에서 기다릴께.]
유우나에게 라인 메세지를 보내놓은 그는 자신이 먹을 빵과 음료수를 매점에서 사서 일월정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공터로 향했다. 딱 맞춰서 올지 조금 늦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제든 유우나가 와서 먹을 수 있게 일회용 포크 같은 것도 어제 받아와서 세팅해두었다.
아이돌의 하루는 오늘도 어김없이 상당히 바빴다. 이른 아침부터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같은 노래를 몇 번이나 부르던 유우나는 점심시간 30분 전 정도 쯤에 해방될 수 있었다.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오후는 학교에 가겠다고 말을 하니 그녀의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우나를 차량에 태워 학교로 보냈다.
[거기 말이죠? 알았어요. 아. 저 지금 마쳐서 가는 중이에요. 조금민 기다려주세요.]
라인으로 도착한 메시지를 읽으면서 유우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 있냐는 매니저의 물음에 유우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특별하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 제대로 말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딱히 뭘 하려고 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점심을 먹자고 해서 점심을 먹는 것 뿐이었으나 매니저에게 있어선 안 좋은 상황일지도 모를 일이었고 유우나는 딱히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학교 안에 들어선 유우나는 매니저에게 인사를 한 후에 그녀를 보냈다. 이어 바로 교실로 올라가지 않고 강민이 전에 알려준 그 장소로 향했다. 전에 그와 헤어지고 난 후, 한 번 갔었던 장소이기에 아주 조금 망설이긴 했으나 그녀는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두 손에는 오늘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가지고서. 카스테라를 부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밥을 먹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엄연히 유우나는 성장기였으니까.
"아. 선배."
해당 위치에 도착하자 보이는 강민의 모습에 유우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오늘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어서.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 맞춰서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역시나 그 공터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에 구태여 여기까지 올 학생들은 거의 없을테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강민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는 위치에 있는 벤치에 걸터앉은 강민은 자신의 옆에 가져온 것들을 내려놓고서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 아, 왔구나? "
그가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는 정면을 향하던 시선을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옮겨 바라보았다. 그가 그곳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하자 그는 웃으면서 일어나 그녀가 가져온 것들을 들어주며 말했다.
" 아냐 나도 방금 도착했어. 괜히 빨리 온다고 무리한게 아닌가 싶네. "
자신은 그냥 매점에서 간단하게 빵이나 사왔는데 유우나는 충실한 도시락을 가져왔다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볶음밥이라도 만들었어야했나 싶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그는 원래 앉아있던 자리에 돌아가서는 유우나가 앉을 자리를 손으로 털어주었다. 다행히도 날씨는 맑았고 바람도 적당히 불고 있어서 바깥에서 무언가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날이었다.
" 아이돌 일로 바쁠텐데 부지런하네. 도시락도 싸오고. "
하는 일이라곤 학교 다니는 것뿐인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는게 귀찮아서 도시락도 준비하기 힘든데 아이돌과 학생을 병행하면서도 도시락까지 싸온 것을 보고 그는 1년에 몇번 느끼지 않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돌이란 이렇게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는건가 싶어 약간의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유우나를 바라본 그는 가져온 카스테라를 건네주며 말했다.
" 이거 이 섬에서 가장 빵이 맛있는 집에서 사온거야. 아침엔 영업을 안해서 어젯밤에 사둔거라 조금 맛이 없어졌을지도 모르지만 ... 그래도 되게 맛있다고 하더라. "
자신은 빵을 애초에 잘 사먹는 편이 아니라서 그곳에서 무언가 사먹은 일도 손에 꼽은터라 남에게 들은 정보를 갖고 사온 것이었다.
"그 방금 도착했다는 말이 그냥 저에게 미안해서 방금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무리하지 않았어요. 저 학교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아이돌 일도 좋지만... 아무튼 그것을 떠나서 선배와의 약속도 중요한걸요!"
절대 무리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듯 그녀는 손을 마구 휘저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자상한 사람이었다. 중학교 시절, 상담을 받을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아마 다른 이들에게도 다 이런 느낌이 아닐까. 성품이 그런 이가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이내 그의 입에서 도시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우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도시락을 싸고 있는 천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천 안에는 2층 반합형 도시락이 들어있었고 이내 그녀는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계란말이, 그리고 문어 모양으로 자른 소시지, 감자볶음, 볶은 양념 돼지고기,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가 2층, 그리고 그 아래인 1층에는 하얀 밥, 그리고 토끼 모양으로 자른 사과가 디저트로 들어있었다.
"아이돌 일을 하려면 싫어도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걸요. 그리고 이건... 선배가 같이 먹자고 해서 조금 신경써서 싸봤어요. 같이 먹어요. 선배."
얼마든지 괜찮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짓던 유우나는 이내 그가 내미는 카스테라를 두 손으로 받았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이후 설명에 그녀는 살짝 놀라 오른쪽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저기. 매점에서 파는 것으로도 괜찮은데. 뭔가 고생시킨 것 같아서 죄송해요. 그래도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감동한 듯, 기분이 좋은듯.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챙겨온 젓가락 중 한 쌍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어 어서 먹어보라는 듯, 그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