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가. 고양이는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스텔은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 와중에 응? 하는 목소리는 왜 또 이리 귀여운지. 평생 예뻐해달라고 보챌 자신이 있다면 이쪽은 평생 옆에서 함께 할 수 있을 자신이 있다는 말을 꺼낼까 하다가 그는 굳이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굳이 입에 담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이런 것은 조금 더 상황이 바뀌면 이야기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일단 그에 대한 말은 잠시 아꼈다.
아무튼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자 아스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제자리에서 돌기도 하고 발레 포즈를 취하기도 하는 것이 아름다운 춤동작 같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그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 와중에 살랑이는 꼬리에 잠시 눈길을 돌리다 이내 들려오는 말에 아스텔은 두 눈을 깜빡였다. 생각도 못한 호칭 때문이었다.
"로.. 로로? 나 말이야?"
이내 그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렇게 반문했다. 로로라니. 로웰에서 따온 로로인건가? 생각도 못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두 눈을 깜빡이다 이내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듣는 호칭이였기에 조금 어? 하는 모습이었지.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내 그는 그녀에게 다가간 후 그녀의 손을 잡고 살며시 턴을 주면서 회전시키려고 하면서 이야기했다. 딱히 춤을 추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방금 그녀의 행동에 제 행동을 맞추는 것이었다. 춤은 나중에 둘만의 장소에서 추고 싶다고 생각을 하기에 그의 발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즐거워.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와 동시에 조금 억울하네. ...세븐스는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누릴 수 없다는 것이 말이야. ...아마 에델바이스가 아니었으면 널 만났어도 이런 기분은 느낄 수 없었을테니까."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바쁘고 힘든 나날을 견뎌야하는 평범한 세븐스에게는 사치나 다름없는 이 감정을 입에 담으면서 아스텔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애칭이 레시라는 것은 당연히 그도 알고 있었다. 허나 아무나 부르는 그런 호칭을 쓰는 것은 역시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아스텔은 그녀의 애칭을 입에 담았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아버린 이상 널 놓거나 하진 않을 거야. 시아."
넌 내 꺼야. 앞으로도. 그녀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은 또 특유의 직구 화법이었다. 조금 부끄럽긴 하나 그 말을 굳이 입에 담은 후, 그는 잠시 주변을 바라보면서 근처에 있는 할로윈 분장을 눈에 담았다. 별별 분장이 있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 걷자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를 바라봤다.
별로 큰 의미가 없어보이는 홍보문구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재밌는듯 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녀는 흡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 거렸습니다. 의외로 박식하다고 해야할지, 원래 그런걸까 아니면 조사를 한걸까 궁금해지네요.
"그렇구나~ 똑똑한 쥬시~"
오구오구 잘해쪄욤. 하는 분위기로 그녀는 당신을 모자째로 쓰다듬었습니다. 아무튼간에 사탕을 발견한듯 한 당신에게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완벽한 잠입기술 아니냐며 왜인지 모르게 으쓱해 했습니다. 사탕은 여러가지 맛이 골고루 있긴 했지만, 딱히 맛없는게 섞여있다거나 한건 아닌듯 합니다. 다만 강시모자의 그 특유의 홈이라 해야할지. 거기에 수북히 박혀있다보니 뭔가 재밌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모자가 보이네요.
"이건 보물 쥬시네."
보물 고블린에서 착안해온 단어인듯, 그녀는 소리내서 웃고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난이라고 받아쳤습니다. 말을 그럴듯하게 해도 그냥 자기가 장난을 치고싶었을 뿐이지만요.
"그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지~"
그녀는 이내 사탕은 마체테의 형태를 바꿔서 받더니 다시 마체테의 형태로 바꿔보였습니다. 아마도 저걸 다시 누군가에게 휘두르면 사탕이 나오는 구조가 되는거겠죠. 그리고 알게 모르게, 당신을 생각보다 고지식한 면이 있네. 하고 생각해두며 거리를 가리켰습니다.
평생 보챌 수 있다는, 어쩌면 무모한 발언에 그가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아도 그녀는 달리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아스텔의 신중한 성격은 이미 잘 안다. 그러니 지금 같은 말을 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아도 돼. 그가 말해주는 때엔 정말로 확신을 갖고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아무 불안도 없이 그저 기다릴 수 있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스텔이니까.
로로. 처음 담아본 그의 애칭에 나냐고 반문하길래 그럼 누구겠냐고 꺄르륵 소리 높여 웃었다. 모두를 애칭 혹은 간소한 이름으로 부르는데 아스텔만 아니면 이상하잖은가. 고민 끝에 정한 애칭이었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싫지는 않아보인다. 그렇게 불려본게 처음이라 놀란 것 같달까. 이런 부분이 정말 귀엽다니까.
"응?"
내심 뿌듯해하며 바라보고 있으니 아스텔이 다가와 레레시아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이끄는대로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마주보았다. 잡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지그시 시선을 마주한다. 지금 즐겁냐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즐겁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러네. 아마 밖에서는 너도 나도 서로를 볼 여유 따윈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하던 말이 뚝 끊기고 그녀의 얼굴이 단숨에 확 달아오른다. 아. 오늘만 몇 번 째야. 이러다 과열로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하지만 싫지 않다는게 또 참 그래서. 빙빙 돌리지 않고 애매모호한 표현도 없이 직구로 심장에 꽂아버리는 저 말들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마냥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시아라는 애칭에 심장이 떨리고 넌 내 거라는 말에 정신이 살짝 멍해진 그녀는 대답 대신 스스로 아스텔의 망토 안으로 파고들었다. 망토로 그녀를 가리고 그의 품에 폭 감싸지도록. 마침 숨는 것 같기도 한 모습으로 다가가선 그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한눈 팔거나 놓기만 해 봐. 절대 못 찾을 곳으로 숨어버릴 거야."
그리고 나도 안 놓을 거니까. 입술 톡 내밀고 조잘조잘 떠들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올려 바라본다. 두근대고 떨리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할로윈을 만끽하는게 더 좋겠지. 조금 걷자고 했으니 그러자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재잘재잘.
"저기 상가에서 맛있는 거 많이 판댔어. 가서 그거 먹을래. 장식도 구경하구. 이쁜 거 있으면 사구. 위에서 마을 구경도 할래. 뱀파이어랑 하늘 나는 기분은 어떤지 궁금하니까."
하나도 안 빼놓고 다 할 거라며, 꾸물꾸물 아스텔의 손을 찾아 쥐고 꾸욱 당겼겠지. 얼른 가자고 보채듯이.
숨바꼭질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조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작정하고 숨는다고 해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물론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안 놓겠다는 그 말에 아스텔은 말 없이 제 망토 안에 들어온 그녀를 안아주면서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 딱히 달래기보다는 그냥 이래야만 할 것 같았기에.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마을을 구경하고 쇼핑도 하자고 하고 마을 구경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아스텔은 나름대로 머리로 플랜을 짰다. 하나하나 구경하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다 가겠지. 자유로운 하루를 그녀에게 다 투자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연인이고, 연인을 조금 더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다른 이들과의 시간이나 교류를 아예 없애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지만 날아가는 것은 밤에 하자. ...이런 날은 야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더 좋을거야. 그리고 뱀파이어는 밤에 날아다닌다고 하잖아?"
오늘 하루는 뱀파이어의 품에서 쭈욱 붙잡혀있을 각오나 하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자신의 손을 잡는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활발한 할로윈의 하루 동안 무엇을 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레레시아가 원하는 것은 어지간하면 다 했을 것이다. 오늘은 할로윈. 그리고 이곳은 세븐스와 비능력자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으니까.
'...정말 나쁘지 않네. 이렇게 사는 것도.'
싸우는 것이나 죽이는 것이 아닌 평범한 하루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아스텔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차르르 번졌다.
/슬슬 막레를 해야죠! 이렇게 막레를 할게요! 일상 수고했어요! 그리고 어서 오세요! 레레시아주!
-세븐스로 살아가는 것이 괴롭지 않습니까?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나날이 너무나 힘들지 않습니까? -당신도 될 수 있습니다. 비능력자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능력자로. -세븐스 인자를 없애는 수술을 받으세요.
최근 세븐스가 살아가는 거리마다 뿌려진 전단지에는 세븐스의 인자를 제거할 수 있는 수술을 홍보하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관심도 안 가지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에 관심을 가지고 침을 꿀꺽 삼키는 세븐스들도 있었다. 누가 그 전단지를 뿌렸는진 아무도 알 수 없었으나 전단지 내용에 따르면 그야말로 무료에 가까운 금액으로 세븐스들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곳곳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는 에델바이스 탐색 부대원들에게도 그 정보는 전해졌다. 이 전단지가 사실이라면 세븐스는 이 수술을 받아 비능력자가 될 수 있었으나 신뢰성은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비능력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세븐스들을 흔들기에는 아주 좋은 정보임은 분명했다.
-그런 정보가 요즘 도시 곳곳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세븐스를 비능력자로? 바보같은 이야기로군. 그래서? 실제 세븐스들은 그 수술이라는 것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거지?"
-그 수가 적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간 세븐스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하고 '행방불명'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다 죽었을 것 같은데."
보고를 듣는 로벨리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기였다. 분명히 그렇게 세븐스들을 끌어들인 후에 장기를 뺏거나 하는 등의 범죄조직이 꾸민 짓이겠지. 확실하진 않으나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으나 이내 로벨리아에게 들려오는 정보는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일부 세븐스들의 말에 의하면 집으로만 돌아오지 않고 있을 뿐이지. 멀쩡히 돌아다니는 일도 있다는 것 같습니다.
"호오? 멀쩡히라. 정말로 멀쩡히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쫓아가서 말을 걸어봤지만,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고 그냥 갈 길을 갔다는 증언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게 보고를 드리는 진짜 이유인데... 얼마 전에 총공격을 했을 때 에델바이스의 모습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까. 카메라에.
"저번에 아이들을 구출할 때의 일 말인가? 그랬었지."
-그것을 보고 온 것인진 모르겠지만, 한 남자아이 세븐스가 저희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자신도 비능력자가 되고 싶어서 수술을 받으러 가려고 했는데 찾아갔던 시설의 입구로 2년 전에 속이 끊어진 자신의 누나가 들어가고 있었다고. 그래서 저희들에게 그 누나를 찾아달라고 접촉이 있었습니다.
"...누나라."
-네. 말로는 정말로 따스하고 친절하고 누구보다도 자상한 누나였고 지금 이 시국을 뒤엎기 위해서 레지스탕스에 들어가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는 모양입니다. 3년 전에. 1년 간은 그대로 나름 연락이 잘 되었는데 2년 전부터 연락이 뚝 끊겼고 들어갔다는 레지스탕스도 소탕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누나도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허나 그 누나가 최근에 그 수술을 해준다는 시설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크게 외쳐도 마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아니면 무시한 것처럼 안으로 들어섰다는 것 같습니다.
정보를 들으면서 로벨리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일단 누나를 찾아줄지의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 많았다. 특히 '행방불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내 뭔가의 가능성에 도달했는지 로벨리아는 다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알았다. 일단 그 누나에 대한 정보는 정리해서 보내주도록. 어찌되었건 그냥 두고볼 수는 없을 것 같으니 김에 그 누나라는 이도 조사를 해보도록 하지."
마리가 코코아와 호두 타르트를 포장한다고 하자 만약 동물 상태인 그녀가 초콜렛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증이 들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처음엔 자신이 마리 것까지 같이 계산하려고 했겠지만 카페를 안내해준 보답이라며 선우의 것까지 같이 사주겠다고 하자 그는 순순히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음료를 기다리면서 비치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당황해하며 입안의 물을 굴리다가 삼켰다.
"음...설명하자면 긴데..."
손가락을 책상에 부딪히며 머리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몇년전에 엄청 큰 지진이 일어났잖아? 기억해? 그때 우리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어. 가뜩이나 세븐스들이 모여사는 가난한 빈민가여서 정부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었지. 살아남은 아이들은 아프다고, 배고프다고 난리지. 어른들은 그동안 쌓아올린 작은 것마저 한번에 사라져 망언자실해 앉아만 있지. 정말 그땐 꿈도 희망도 없었어."
선우는 물을 한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람들은 당장에 잘 곳이 없어서 노숙을 해야하는 데, 문제가 뭐냐? 여름이나 봄이면 차라리 괜찮은 데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야.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얼어죽게 생긴거야. 결국 사람들은 각자의 살길을 찾아 뿔뿔히 흩어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데려가 줄 사람이 없는 고아들과 노인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들을 돌봐야한다며, 또는 갈 곳이 없다며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있었지만 그들또한 뾰족한 수는 없었지. 모든게 절망 가운데였어."
그는 약간의 억지 웃음을 지으며 일부러 웃는 소리를 내었다.
"그때, 나와 내 친구가 생각을 하나 했지. 아, 이거 이렇게 가다간 다 죽겠구나.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하자"
선우는 아공간에 자신이 사용하던 카페의 컵을 집어넣고 아공간을 닫았다.
"이러면 완전범죄잖아?"
그리고 다시 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엔 은행을 털까 했지만 그곳에는 다른 세븐스들의 돈도 있었어. 그래서 우린 우리를 이렇게 방치한 정부와 가디언즈들에게 한방 먹이기로 하고 그들의 기지를 털기로 했지. 처음엔 순조로웠어. 그러나 결국 가디언즈에게 들키고 말았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지. 도끼를 머리에 내려찍었는 데도 도끼가 부러지고 야구방망이로 때려도 총알을 난사해도 효과가 없었어. 네가 아까 말했던 돌덩이를 적에게 쏟아부워도 봤는 데 잠시 발을 묶었을 뿐, 제대로된 상처를 입히진 못했지. 놈의 주먹에 한대 맞았을 뿐인데 전신의 뼈가 부러진 듯 아팠고 몸에 힘이 빠졌어. 아,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는데..."
"우연히 이곳 사람들이 가디언즈 기지를 털러온거야! 그래서 다행히도 그들에게 구조 되었지."
>>56 라라시아가 아주 잘 챙겨주는군요. 저렇게 되면 아예 상처가 생길래야 생길 수 없겠는걸요. 오자마자 바로 라라시아가 다 체크할 것 같은걸요! 레시가 우는 기묘한 상황...ㅋㅋㅋㅋㅋ 새야! 좀 울어줘!! 아무튼 확실히 이번 일상에서도 충분히 느꼈답니다. 레레시아가 상당히 감수성이 높다는 것을 말이에요.
>>75 ㅋㅋㅋㅋ주인의 과도한 집착과 애정에 지친 새의 반항이었다~ 이거 약간 TMI인데 레시 뭐 키우면 엄청 이뻐해서 오히려 미움사고 그럴 거 같아ㅋㅋㅋ 당연히 해치우는(입막음) 이 아니라 좋은 대화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지 호호^^ 에이 동료끼리 피보는 건 대련만으로 충분하니까~(?)
자캐가_느끼기에_별거아닌데_묘하게_서운한_것 글쎄.. 별거 아닌데 묘하게 서운한 거라면 역시 얼굴 안 보인다고 막 대하기..? 얼굴이 안 보여도 안의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 조금 인형탈 알바의 고충 같은 느낌이려나..
무서운_영화를_볼_때_자캐는 최근 침대 주변에 암막커튼을 두르듯 인테리어를 바꾼지라, 그 안에서 담요 돌돌 둘러매고.. 팝콘이나 감자칩 아작아작 먹으면서 영화 보다가 손 우뚝 멈추고 커튼 확 열어젖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꿈자리를 설치는거지... 초자연적인 것은 무서워하지 않지만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는 무서워하는 편이거든..
1. 「가까운 사람의 부정적인 소문을 듣게 된다면?」 "그렇다고 해서 제가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부정적인 소문이 돌든, 그보다 더 끔찍한 소문이 나돌든. 제게 있어 모든 것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음, 다만 '그 이상한 뿔 달린 녀석'은 부정적인 소문이 들려도 자기 업보죠!"
2. 「외로울 때에 누구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은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늘 그랬습니다만.. 음.. 루미큐브라도 할까요. ai와의 대전도 의외로 즐겁습니다."
3. 「소중한 사람이 자신을 해하고자 하는 걸 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아니오.. 인간이란 본디 이유 없이 미울 때도 있는 법이지요. 선인이라 한들 위선이라 손가락질 하고, 악인이라면 뻔뻔하게 잘도 다닌다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렇기에 그저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도 제게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4 떼잉...누우가 우리 이셔한테 막 대해? 으이? 다 델구와 다 응딩이에 불나게 해버릴겨~~ >>침대 주변에 암막커튼<< 아이쿠 찔려라... ㅋㅋㅋㅋㅋㅋ하지만 무서워서 잠 설치는 이셔가 귀여우니 좋다~~ 이셔는 귀신보다 사람을 무서워한다...(메모)(?) 에 근데 캐해질문 왤케 짠내나는 것만 나왓서...? 절대 소문 관리해~~ 헛소리 떠드는 놈들은 도끼로 확 그냥(???) 근데 제는 자기업보라고 하는거 ㅋㅋㅋㅋㅋ귀여워ㅋㅋㅋ 이셔가 외롭지 않게 연락 자주 보내기...(메모22) 아니 3번은 너무 짜요... 아이고... 레시는 절대 이셔한테 해꼬지 안 할거야... 하려는 놈들도 다 절벽으로 밀어버릴거야아아...
맞췄다는 말에 마리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눈을 깜빡이며 무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이내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는 선우가 아이스아메리카노 샷추가를 하는 것을 주문하고 계산을 했다. 이후 마리의 질문에 선우가 꽤 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꽤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귀를 기울이며 들은 내용은 선우가 빈민가에서 자랐다는 것과 지진으로 인해 터전을 잃고 친구와 가디언즈 기지를 털다가 죽을 뻔했다가 에델바이스에게 구조되었다는 이야기었다. 마리는 고개를 간간히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감정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는 것은 전달되었으리라.
“나? 나는….”
이번에는 자신에게 묻는 질문에 마리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말을 골랐다가 이내 대답했다.
“나는 어릴 적 비세븐스 부모님 밑에서 자랐었어. 부모님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이 세상을 바꾸고 싶으셨었나봐. 그래서 세븐스 인권운동을 하시다가 내가 열한살 때 가디언즈에 살해당했어. 나는 가디언즈에 잡혀갔고. 하지만 다행히 다른 레지스탕스에서 구조되어서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에델바이스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거야. 에델바이스의 목표가 내 목표와 같았거든.”
말로 뱉고 나니 꽤 짧았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여러가지 있었지만 말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시콜콜 이야기할 만큼 좋은 이야기도 아니었고. 마리는 말을 곱씹다가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물었다.
(흠티콘) 그러고보니 십년 전이면 츠쿠시 열일곱살이구나 흑흑 츠쿠시.... 마리네 부모님 뒤로 레지스탕스에 돈도 보내고 있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가디언즈에게 쓱삭 당한 느낌이라. 게다가 칼에 베여 사망하셔서 마리 한때 칼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일 때도 있었다는 후문.... 지금은 괜찮지만서도..... 마리.... 복수는 그만두기로 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맘이 이리저리 흔들릴 것 같아서 넘 맛있어서 그만......
자신이 한 이야기에 비하면 꽤나 짧은 이야기였지만 그녀가 겼었던 사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소중한 사람이 희생 당한 것은 동일했으니까. 강한 힘이 없는 그녀의 부모님이었지만 부모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큰 책임을 지려고 하셨다. 그리고 결국 가디언즈에게 죽임을 당했다. 분노와 복수심에 마음 한구석이 망가져버린 그와 그의 친구들과는 달리 그녀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합을 위해 힘 쓰는 것 같았다.
"놀랍네."
그녀의 긴 이야기를 듣고 이 한 마디 밖에 내 뱉을 수 없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어떻게 되었냐는 마리의 말에 그는 뜸을 들였다. 그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저 다른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그에 대해 알 뿐이다.
"여기 저기에서 활약하고 있지."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에델바이스에선 아니지만 나름 레지스탕스로서 이곳 저곳에서 활약하고 있어. 아마 가디언즈 중 일부는 우리보다 그 녀석을 더욱 안 좋게 보고 있을 지도 몰라" 에델바이스도 놈을 보면 죽이려하겠지. 선우는 물을 하시며 휴지로 입을 닦았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아픈 곳을 찌르는 마리의 질문에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자신에 대해 이렇게 까지 깊이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놀랍다는 그 말에는 그저 잠시 투명한 문 밖의 풍경을 잠시 쳐다보다 말았을 것이었다. 모르겠다. 그저, 자신에게 남은 것은 부모님의 유지밖에 없으니까. 부모님이 원하셨던 비능력자와 능력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런 에델바이스같은 곳을 자신도 원할 뿐이다.
스승님이 말했으니까.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남길 뿐이고 자기 자신을 파괴시킬 뿐이라고. 마리는 단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죽였을 뿐이 아닐까.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이내 뜸을 들이다가 말하는 선우의 대답에 마리의 표정은 조금 더 밝아졌을 것이었다. 살아남아서 레지스탕스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
“응. 그럴 수 있을거야.”
마리는 자신의 친구를 떠올렸다. 어릴 적 가디언즈에 잡혀가면서 헤어지게 된 친구가 있었다. 레지스탕스에 구출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었지만…. 언젠가, 언젠가 이 과업이 끝나게 되면 수소문할 수 있지 않을까. 세븐스에게 가혹한 세상이니 이미…. 마리는 생각을 끊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어릴 적에 헤어진 친구가 있는데….”
말을 하던 중 갑자기 주문한 음료와 타르트가 나왔기에 마리는 말을 멈추고 카운터로 향했다. 이내 그 말을 더 잇지는 않고 선우에게 말했다.
누구보다 굳건히 전장에 서던 그녀는 언제나 새하얀 머리칼을 흩날리고 있었다. 부상을 입어도 꿋꿋이 서서 금빛 눈으로 저 먼 앞을 바라보았다. 부러뜨려도 꺾이지 않을 것 같던 두 다리였는데. 그렇게 허망히 무너질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필연적으로, 혁명의 마지막 희생은 그녀였다. 초를 다투는 순간을 넘어 살아남은 이들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숨도 심장도 멎어 다만 희미하게 남은 미소 만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혁명은 성공했고, 세상은 바뀌었다. 모두가 바라던 세상으로.
...시간이 흘러 몇 번의 계절이 지났다. 무더위가 엊그제 같은데 눈 깜빡하니 부쩍 추위가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해가 저물었는데도 왠일로 바깥이 소란스러워 굳게 잠가두었던 창문을 열고 내다보자, 색색의 호박등이 거리에 달려있고 여러 모습으로 변장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Trick or Treat! 익히 아는 말들이 들려오자 그래 이 즈음이었지, 싶다. 느닷없는 찬바람이 불며 곧 겨울이 올까 싶던 이맘때. 이 계절.
진짜 딱 한 번 만이니까! ......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에 창을 열어둔 채 돌아서 숨을 골랐다. 손으로 얼굴을 덮고 마른 세수를 하며 속을 진정시키는데 뒤에서 창틀이 달그락 울렸다. 그리고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에 다급히 뒤를 돌자-
"표정이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생전과 같은 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장난스레 반짝이는 금빛 눈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희미해질 것처럼 창백한 모습을 한 그녀가, 창틀에 걸터앉아 싱긋 미소지었다. 그 모습이 점점 시야에서 흐려지고 뭉개져서 어쩔 줄 몰라하니 익히 아는 웃음소리와 너무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여전히 울보구나. 하긴. 너니까."
나 없으면 울지도 못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보다 깊은 이해자였던 이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에 긴 시간 눌러놓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숨 가쁘게 울며 그녀를 부르고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다가와 토닥여주는 손이 너무나 선명하게 차가워서. 울음을 쉬이 그칠 수 없는데 이렇게라도 만난 것이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미안해. 약속 못 지켜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울면서도 더듬더듬 그 손으로부터 차가운 몸을 끌어안았다. 오늘 밤이 지나면 헤어질 테니 시간이 얼마 없더라도, 지금은 그저 더 작게 느껴지는 그녀를 안아주는 것만이 최선이라 느껴졌기에.
멜피와 함께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헤어진 이후, 여전히 밝은 가로등과 대비되는 묘하게 우중충한 바닥 색깔로 버무려진 할로윈의 거리를 둘러보면서 걷는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사탕을 주기도 하고, 사탕을 받기도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더 늘지도 줄어들지도 않은 사탕바구니를 흔들던 너는 어딘가 잠시 앉아서 쉴까 하고 시선을 돌렸다. 마침 눈에 들어온 건 할로윈 풍으로 장식된 벤치, 그리고 그 벤치에 앉아 있는 아스텔의 뒷모습이었다. 아마 뱀파이어로 분장한 거겠지? 음, 확실히 고전적이면서도 모범적인 답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쪽으로 다가가본다. 가만 보니 뭔가 읽고 있는 것 같은데... 잡지?
"......"
훔쳐본다거나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네 눈이 밝은 편인 걸 어쩌겠는가. 얼핏얼핏 보이는 잡지 내용을 보니 자잘한 정보가 담겨있는 듯했다. 으음, 굳이 따지자면 남자아이들이 잡지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여자아이들이 주로 읽을 만한 잡지 같은데. 모처럼이니 좀 놀래켜 볼까 하고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아스텔이 놀라거나 하는 표정은 못 본거 같기도 하고. 오늘은 조금 가벼운 기분인 채로 있고도 싶으니까.
"Trick or treat!"
와악, 하는 느낌으로 아스텔의 어깨를 덥썩 잡으려고 하면서 그렇게 소리친다. 사탕, 준비했으려나?
연애. 그것은 지금껏 아스텔이 살아온 세계와는 딴판인 세계였다. 자신은 싸우고 죽이는 것 외에는 잘하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 허나 이런 자신도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었다. 아예 모르던 것이라면 모를까. 한번 맛 본 그 분위기는 너무나 달콤했고 놓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임무를 게을리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으나 이렇게 비번인 상황일 때 시간을 내서 그 분야를 조금 더 연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한번 제 품에 들어온 그녀를 놓거나 할 생각은 그에겐 없었다.
아무튼 제대로 연구를 하기 위해 서점에 가서 연애 정보가 담겨있는 잡지를 구입한 아스텔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그 잡지를 읽었다. 그러니까 보통 데이트는 어디로 가면 되는가. 분위기와 무드는 어떤 것이 중요한가. 연애의 진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벤트는 무엇이 좋은가. 그런 것들을 학습하기 위함이었다. 정말로 깊게 집중하면서 읽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여럿 있었다. 이를테면 방금 읽은 페이지에 있는 '관람차'를 타면 입맞춤을 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라는 부분이었다. 아니. 왜? 단순히 높게 올라가는 것 때문이라면 자신은 그녀를 안고 몇 번이나 하늘을 날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없지 않았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아스텔은 흐음. 소리를 내면서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그때였다. Trick or treat! 라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덥썩 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아스텔은 깜짝 놀라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아들려고 했으나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순간 멈칫했다. 헛기침 소리를 내면서 아스텔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미안. ...그리고 Treat."
이어 그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몇 개 사뒀던 사탕 중에서 커러멜 사탕 세 개를 꺼낸 후에 쥬데카에게 내밀었다.
"...그러니까... 음. 조금 습관이 되어있어서. 정말로 미안. ...아무튼 강시야? 그 복장은? 아. 맞아. 그것보다... 해피 할로윈."
마리는 선우가 아메리카노를 한 번에 들이키고 자신을 따라 나오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아마 조금 놀란 듯한 느낌일까.
"어... 테이크아웃으로 바꿔달라고 했어도 괜찮았을텐데."
그 말은 탓하는 것보다는 어어, 하는 느낌으로 조금 평소와 다르게 어벙한 느낌이었을 것이었다. 어쨌든 함께 걸어서 간다면 좋은 것이었다. 마리도 헤어지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으니까.
테이크아웃한 코코아와 타르트를 한 손에 들고 마리는 선우와 발을 맞춰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고 자신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에 조금 놀라기도하고 들뜨기도 했다. 그것도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마실 정도로 라는 것에 놀라기도했고.
스승님이 말한 또래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했던 게 그런 느낌일까?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나 표정이 조금 더 밝고 들떠있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는 내용은 우울한 것이었기에 금방 들뜸은 수그러들었지만....
"친구.... 음.... 어릴 적 소꿉친구처럼 지내던 애가 있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했었는데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기억이 나. 그 날의 일은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나 또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로 가디언즈에 잡혀갔었던 터라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의 기억은 늘 머리속에 되풀이 되고 떠오른다. 하지만 그 얼굴만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왜일까. 떠오르고 싶은 것보다 떠오르기 싫은 장면들만 떠오른다.
"당시 피가 바닥에 낭자했었어.... 부모님의 시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이후에 우리 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그 친구는 알게 되었을 거야. 나는... 그 애가 그 때 충격받지 않았을까 걱정 돼."
생각해보면 같은 나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정도 였었는데. 부모님의 시신이나 엉망이 된 집 등을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마리는 그 날 이후 구조된 레지스탕스에서도 꽤나 망가진 채로 지냈었다. 스승님 덕분에 지금은 나름 어찌저찌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고 있지만. 물론 속으로는 생사도 알수 없는 친구가 잘 살아가고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방금 말한 선우의 친구처럼.
"친구를 다시금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레지스탕스에 구조된 이후 쫓기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때도 지금도 그럴 여력이 없어서..."
마리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다 숨을 후 내쉬며 감정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축 늘어진 눈썹은 그녀가 퍽 우울해한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마을 내에서까지 이러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어서 말이야."
면목이 없다는 듯이 그는 아주 살며시 풀 죽은 모습을 보였다.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고 죽여야만 했던 그 시설에서의 일은 아직 아스텔의 몸에 상당히 깊게 박혀있었다. 평화로운 마을 내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는 것만으로 자신도 모르게 바로 검을 뽑으려고 한 행동으로 봤을 때. 고치긴 해야겠으나 고쳐지지 않는 것에 그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적어도 쥬데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한편 그에게서 뭘 읽고 있었냐는 물음이 들어오자 아스텔은 말 없이 쥬데카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손에 쥐고 있는 잡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연애 기초 마스터, 데이트에서 지켜야하는 점, 연애에서 가장 하면 안되는 행동.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럴 때 깨진다 등등 아주 표지부터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한가득인 그 잡지를 보여준 아스텔은 다시 두 손을 내렸다.
"...방해가 된 것은 아니야. 애초에 방해 운운할 것 같으면 방에서 조용히 읽어야했으니까 네 탓도 아니고. ...아무튼 보다시피 이 잡지를 좀 읽고 있었어. 조금 이런 쪽으로 공부를 할까 싶어서."
이유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딱 그 정도에서 말을 끊었다. 허나 눈치가 빠르다고 한다면 짐작할 정도의 여지는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정작 당사자인 아스텔이 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지만.
"...그건 그렇고 의외로 태연하네. ...아. 나쁜 의미는 아니야. 단지, 배신자라는 것이 알려졌잖아. ...그래서 의기소침해있지 않을까 싶었거든. ...아무튼 저번 임무는 수고했어."
"제가 멀쩡히 서 있으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망설일 시간 정도는 있는 것 같네요."
만약 그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면 검이 휘둘러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네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는 것부터 반사적인 행동에서는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거겠지. 적인지 아군인지 파악하고 나서야 휘두르는 검은 기습에 반응하는 거라기엔 너무 느렸다. 그냥 일종의 트라우마 반응 같은 거겠지.
"흐응... 그렇구나. 그래서, 좀 진전은 있으십니까?"
혼자서 공부하는 걸로 가능한가 생각하면서, 그가 보여준 잡지를 한번 스윽 훑어보았다. 연애라. 너도 그다지 연애다운 걸 해보지는 못했고 그가 지금 연애에 대한 지식이 간절한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니 주제넘게 나서지는 않기로 했다. 일단은 최소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나... 아니면 그래, 연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살펴보는 것 같았으니...
"...아, 그렇죠. 다들 아셨으니까... 뭐 아직까지는 아무도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진 않으시더군요. 아니지, 요전에 레시와 이야기를 좀 했는데, 비슷한 물음을 들었습니다. 그때도 똑같은 대답을 했던 것 같긴 합니다만."
의기소침해있지 않을까 싶었다는 그의 말에 너는 옅게 웃었다.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불분명한 사실에 기인한 의심보다 확실한 증거로 구축된 관계가 더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적어도 가디언즈가 완전무결한 집단은 아니구나, 하는 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적인 관측도 해볼 수 있으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아서. ...이를테면 데이트 장소로는 시끌벅적한 장소보다는 좀 더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둘만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더 좋다는 말도 있는데 시끌벅적하고 활발한 장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 이들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장소 아니야? 이거?"
물론 일반론적이라거나 통계적인 것으로 분석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너무 확신적으로 쓰는 것은 조금 애매하지 않나 생각을 하면서 아스텔은 영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이 그냥 트집을 잡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굳이 거기서 더 아스텔은 뭔가를 말하거나 하진 않았다.
"...딱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테니까. ...내가 묻는 것도 그냥 혹시나 괜찮을까 싶어서 물어본 것이기도 하고. 아무튼 홀가분하다라."
희망적인 관측이라고 이야기를 하나 그것은 따지고 보면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을 하며 아스텔은 옆에 앉으라는 듯이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손으로 두들겼다. 그러다가 손을 다시 원래 위치로 넣으면서 조용히 숨소리를 내다가 그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확실한 증거로 구축된 관계라던가 희망적인 관측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너 개인적으로는 괜찮은지 궁금했어. ...현 상황도, 다른 이들에 대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너 개인으로서 말이야. ...어떻게 보면 숨기고 싶었던 것일수도 있잖아."
두 눈을 깜빡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후, 아스텔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이어 주머니에서 오렌지 사탕을 꺼낸 후 입에 쏙 집어넣으면서 오도독, 오도독 천천히 씹었다.
"...제 7위. 레이버였나. ...그 애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는 것도 포함해서 걱정이 되었거든."
슬럼은 서로의 삶을 살아가기도 버거운 곳이었다. 인심이라곤 U.P.G가 세븐스에게 베푸는 호의만큼이나 없었으며 그나마 호의를 베풀어도 누군가 자신이 죽기 전에 조금이나마 선행을 베풀어 지옥에서 감형 받기를 바라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런 각박한 곳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쳐다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부터 크게는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까지. 이스마엘도 슬럼에서 각종 싸움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무진 노력하고는 했다. 하지만 재수에 옴 붙는 날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 운수가 좋지 않은 날이었다. 슬럼의 늙은이들이 입을 모아 끔찍하다고 말하던 미친 곰 윌리를 필두로 활동하는 매매업자 중 하나를 마주친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의 비능력자로 착각했는지 영역 다툼을 피해 뒷골목에 숨어있던 이스마엘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으나, 매매업자는 이스마엘이 세븐스인 걸 알아챈 뒤로는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혹은 처음부터 세븐스인 걸 알아채고 환심을 사 방심을 시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이스마엘을 적당한 값에 넘기기 위했던 것인지 공격을 감행했고, 이스마엘은 순식간에 내지른 칼에 목부터 시작해 가슴을 가로지르는 큰 부상을 입었다. 목부터 시작해 타오르는 듯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을 때, 이스마엘은 싸움을 넘어 사투를 벌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이스마엘이 죽어서라도 그 가죽을 벗겨 팔아치울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총을 막아내고, 매매업자를 밀쳐내던 이스마엘은 수세에 몰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했다.
이대로라면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이스마엘의 시야에 벽돌이 잡혔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가 한 번 나더니, 상황은 역전됐다.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다 멈췄다. 바닥에는 피가 스몄고 매매업자는 대자로 뻗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매매업자의 배를 깔고 앉아 피로 범벅 진 벽돌을 양손으로 기도하듯 모아 쥔 그 모습 그대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파악하기가 무섭게 눈물이 흘렀다. 목과 가슴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눈만큼은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미안해요, 나는, 나는 살고 싶어서, 미안해요……."
이스마엘은 부들부들 떨더니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을 때렸다. 때리기만 한 게 아니다. 살고 싶어서 그 사람을 해쳐버렸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성이 조심스럽게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얘."
이스마엘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은색 머리를 가볍게 그러쥐어 모아 묶은 남성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스마엘을 쳐다보더니 입을 벌렸다.
"상처가 깊어 보이는데, 괜찮니?" "누, 누구……." "지나가던 슬럼의 늙은이."
이스마엘이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자 남성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잔뜩 긴장해 딱딱해진 손에 쥔 벽돌을 부드럽게 떼어주고, 이스마엘을 시체 위에서 내려올 수 있게 도왔다. 벽 근처에 기대 앉게끔 도운 남성은 이스마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의사를 부르기 전에 한 가지 묻자꾸나. 보아하니 사람을 죽인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맞니?"
이스마엘은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남성은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휘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구나. 짧게 되묻자 이스마엘은 겨우내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은 사투로 너덜너덜해진 이스마엘의 옷과 드러난 상처를 흘끔 바라보더니 자신이 입은 외투를 벗어 상처 부근에 꽉 동여맸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단다.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을 테니까. 너, 세븐스지?"
이스마엘이 흠칫 놀라며 신경을 곤두세우자 남성은 놀라지 말라는 듯, 한 손을 들며 설레설레 흔들었다. "괜찮아. 나는 세븐스에게 제법 호의적이거든. 그러니 이 슬럼에 짱박혀있지." 이스마엘은 노이즈 너머에서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일단은 친절의 값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얌전히 남성이 자신의 손을 옮겨준 곳을 꾹 눌러 지혈에 집중했다.
"제게, 제게 왜 이렇게 잘 해주세요……? 세븐스에게 호의적이라 해도 사람을 죽였는데……." "글쎄,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좋은 말부터 하자꾸나. 너는 살아남고자 선택한 거잖니?"
이스마엘은 지혈하던 손에 괜히 힘을 더 주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아마 네가 당해줬더라면 죽었을 거야. 너는 살아남고자 선택했고, 어쩔 수 없었잖니." "……그렇지만.." "그거 아니? 이곳을 관리하던 가디언즈도 한때 이곳을 주름 잡던 인신매매 카르텔 나부랭이가 세븐스를 데려가도 묵인해 줬단다.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지. 자칫하면 슬럼의 모든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르고, 아무리 가치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그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가디언즈의 임무니까. 듣자 하니 반역죄로 죽었다던데……. 그것도 결국 그의 선택이겠지. 반역자의 임무에서 가장 나은 선택을 했을 테지. 원래 그런 법이란다."
그렇기에 인생의 갈림길에서 보다 나은 선택지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지. 남성은 어깨를 토닥이며 노이즈 너머의 이스마엘을 꿰뚫어보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란다, 꼬마야." "……그럼 나쁜 말은 뭔가요?" "글쎄.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니? 서로 신뢰를 해야 할 수 있는 말이거든."
이스마엘은 머뭇거리다 지혈하던 손을 겨우 들어 손목을 더듬었다. 눈이 마주친 남성은 잠깐 눈동자를 둥글게 뜨더니, 이내 깔깔 웃었다.
"똑 닮았네." "무슨, 뜻이에요?" "글쎄, 너는 누군가를 증오하면 그 사람의 끝을 보며 그 과정을 즐길 사람일 것 같다는 뜻이란다. 너는 그런 네 성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 같고 말이지."
이스마엘은 입을 다물었다. 남성은 이스마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네 본성이 추악하다 생각이 들 때면,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 해보려무나. 그러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지." "……." "저런, 정신을 잃었네. 이만큼 피를 흘렸으니 당연한 건가?"
저 멀리서 백의를 입은 여성이 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오자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뒤로 돌며 손을 흔들었다.
"잘 치료해 주고 옷도 주도록 하렴. 아니면 너도 폐하 앞으로 끌고 가는 수가 있어. 션! 거기 구석에 짱박힌 거 다 알아. 안식에 연락해서 '개' 데려오라고 해. 냄새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애로." 남성은 발코니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 개발의 마무리 단계에서 모종의 이유로 중단이 되어버린 외곽 구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이렇다 할 것은 없었다. 한편에 쌓인 폐자재, 뼈대만 선 건물, 불 들어오지 않는 대형 스크린, 신소재 보도블록이 깔린 길, 그런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구형 안드로이드. 아무것도 없고 황량한 장소에서 잘도 살았다며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사용감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며 실용적이지 못한 소파, 갑작스러운 가디언즈의 난입에 스크린이 깨져버린 신소재 플라스틱 스크린……. 아마 헬무트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부근에서 죽었을 것이다.
"당신 그래도 건물 갖고 싶다는 뜻은 이뤘네? 거기다 어떻게 보면 이 유령 도시도 당신 거잖아. 당신 보기보다 잘 살았구나? 질투 나기도 하네!"
남성, 가란은 허공에 대고 일장연설을 이어갔다.
"뭐, 아무튼. 나 왔어, 헬리. 시체라도 있으면 가져가서 적당히 박제나 해두고 당신 딸한테 선물할까 했는데 시체도 남겨두질 않았네, 잔인한 녀석들. 이런 새끼들이랑 일하는 나도 잔인하긴 마찬가진데, 뭐 어때. 안 보는 곳에선 나라 욕도 한다는데."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남성은 부산스럽게 눈을 굴렸다가, 소파 구석에 놓인 낡은 인형을 보고 시선을 고정했다.
"맞다, 당신 딸도 보고 오는 길이야. 모르는 사람 경계도 할 줄 알고 야무지게 잘 키워뒀더라? 그렇지만 내가 손 좀 댔어, 양해 부탁해. 대가리 나자빠진 깡패 새끼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어, 나쁜 짓밖에 못하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당신이 생각하는 건 아니야."
가란은 핏자국조차 남지 않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헬리, 아마.. 네 딸은 당신과 같이 위험에 많이 노출된다면, 그리고 이 세계의 실상을 본다면 누구보다 빨리 무뎌지고 말 거야. 내 착각이 아니었으면 했는데 눈 보니까 바로 알겠더라. 당신을 똑 닮았어. 그렇지만 그 아이에겐 당신처럼 철 같은 면모는 거의 없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비뚤어지기 전에 손 좀 썼어. 언제까지 이게 유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사람을 사랑하라 해뒀으니 그만큼 사랑하고 다니겠지! 원래부터 사랑하는 것 같긴 하던데. 난 모르는 일이고, 무책임한 발언이 이어지더니 가란이 손을 까딱였다.
"션." "ㄴ, 네?" "줘."
션이라 불린 남성은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술병을 건넸다. 가란은 술을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다. 값비싼 술은 헬무트가 생전에 유일하게 가란에게서 받은 뇌물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거 가져왔어."
"헬리, 나는 세븐스도, 비능력자도, U.P.G도 다 싫어하지만 이 일을 하는 이유가 하나 있어. 당신도 알다시피 내 삶이 즐거워서지. 그리고 네 딸에게서 가능성을 봤어. 네 딸은 환경이 준비됐더라면 폐하보다 더 훌륭한 집행인이 됐을 테고, 가디언즈에 들어갔더라면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을 테지. 워낙에 쉽게 물들 수 있는 아이니까."
이내 가란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술병 밑에 끼워두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성을 믿어보려 해. 그 아이가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서 나의 뒤를 이을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새 삶을 살아갈지. 나는 감이 좋은 편이라서.. 네 딸이 이곳에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거든. 어리석은 반동분자가 살아 돌아오는 건 드물겠지만 어째 그런 느낌이 있거든. 만약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양녀로 거둬서 키울 테니까. 아, 내 자식은 어쩌고? 글쎄."
가란이 일어서며 보지도 않고 입을 벌렸다. "션, 여기 죽은 사람 시체를 대신할 게 아니면 앞으로 내 앞에서 잘난 머리 굴리는 소리 안 내는 게 좋을 거야. 눈치는 챙겨야지." 션은 뻣뻣한 모습 그대로 가란을 쳐다봤지만 가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션은 겨우 눈을 굴려 자신의 주머니에 남몰래 숨겨놓은 황제의 비늘이 있을 곳을 흘끔 쳐다봤다. 가란은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도시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음 섞인 한숨을 뱉었다.
"헬리, 나도 알아, 영원불멸한 건 없다는 거……. 그래서 늙는 게 즐겁지 않은 거야. 실감할 수 있으니까."
발코니 너머, 배터리가 다 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녹슬어버린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겠네요. 굳이 따지자면 이미 말씀하셨지만 둘이 온전히 같이 있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는 장소가 대부분 그런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끌벅적한 장소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테니... 가장 좋은 건 직접 물어보는 거겠죠."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아스텔이 어떤 상황일까를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거야 짐작이고 추리일 뿐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진 아는 게 아니잖은가. 사실이 네 추리와 들어맞았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생각한 게 맞았구나 하는 것이니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어쨌건 취향이니 뭐니, 확실하게 알아채기 위해서는 직접 물어보는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한 넌, 가디언즈임을 밝힌 뒤의 심정을 들은 그가 옆의 빈 자리를 톡톡 두드리자 옆에 앉으라는 건가 생각하며 걸터앉는다.
"아, 그쪽 이야기였군요. 언제나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계속해서 숨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숨기고 싶다.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라는 생각이었죠. 배신자라는 걸 밝히기 전까지는 계속 고민해 왔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전 제 과거를 밝히기로 결정했고, 이젠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상황이죠. 생중계됐다는 가정 하에 제 얼굴을 아예 모르던 사람들까지도 제가 배신자라는 걸 알게 됐을 겁니다."
이젠 제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비관하여 목숨을 끊는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심각할 수 있는 말을 덧붙이곤 전혀 그럴 리 없다는 듯 웃으며 사탕이 담긴 바구니를 내려다보던 너는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이젠 물러설 수 없게 됐으니까요. 배신자인 제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혁명이 성공해야만 합니다, 제가 있을 곳은 여기 외엔 더 이상 없기도 하고."
레이버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니. 사탕을 보던 네 시선이 아스텔에게 잠시 향했다가 머리 위로 떠오른 달을 보려는 듯 올랐다.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빨리 마음을 정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은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의 저는 그녀를 데려올 수 있을 만한 수준도, 마음가짐도 아니었던 거겠죠."
뭐어... 데려오게 됐다고 해도 뭐가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지금 눈 앞에 벌어진 일을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너는 작게 웃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있어. ...정확한 위치는 나도 잘 모르지만 가디언즈의 배신자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도 있다는 것 같으니까. ...대장에게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면 아마 데려다줄지도 몰라. ...물론 넌 안 가려고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갈 수 있다고 쳐도 안 가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사탕을 마저 오도독 씹은 후, 산산조각난 파편들을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켰다. 상큼한 사탕의 끈적함이 달콤하다고 느끼면서 아스텔은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수준도 마음가짐도 충분했을거야.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진 않는 법이야. ...혹여나 마음에 담고 있다면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싶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내가 살고자 피를 흘리게 한 이들이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이내 아스텔은 두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의 옛 이야기 역시 에델바이스 제 0 특수부대에게는 다 퍼진 상황이었다. 물론 정말로 자세하게 말한 이는 레레시아 정도였지만 대략적인 개요는 틀림없이 쥬데카도 알고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는 괜히 두 손을 탈탈 털어내는 시늉을 하면서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기회는 또 올 거야. ...나도 들은거지만 레이버를 죽이진 않고 데려갔다고 했잖아. ...언젠간 또 만날거야. 데려갔다는 것은 또 어떻게든 사용하겠다는 것이니까. ...물론 그때 만난 레이버가 네가 아는 레이버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회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닐 거 아니야."
물론 그때 가서 죽여버린다고 해도 자신은 별 말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주머니에 넣은 손을 뺀 후에 살며시 바람을 일으켜 자신의 이마를 식혔다.
"...하지만 왜 그 녀석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거지? ...특별히 알고 지낸 사이였어? 그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겐 그것이 삶이니까. 그저 지금의 네가 생각하는 삶과는 다를 뿐이다. 어느새 다 녹아버린 캐러멜에 또 하나 먹을까 생각하며 캐러멜 사탕을 만지작거리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살짝 웃음소리를 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먼저 잊을 생각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잊혀지겠지만... 잊고자 노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아. 아니, 오히려 너는 언젠가 잊혀지게 될 기억을 억지로 붙잡고 있기도 했다. 네 서랍에 있는 사진과 수첩에 적힌 것들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쉰 너는 아스텔의 이야기에 말을 더 붙이는 대신 조용히 있었다. 어쩌면 그가 아까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단순히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의식에서 살아남은 것에서 오는...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라는 감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 다시 마주칠 거라는 감각은 있습니다. 말씀처럼 그때 마주친 레이버가 지난번과 같은 사람일지는... 재교육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버렸으니까요."
기회가 남아있다는 말엔, 그렇겠죠. 라고 덧붙이며 고갤 끄덕인다.
"그 정도로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그녀가 진심으로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겨우 그 끝자락에 머무르며 일해왔을 뿐인 배신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겁니다. 저들도 나와 같지 않을까? 그들도... 사실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그녀는 고민을 하는 사람인 모양이었고요. 라며 덧붙인 너는 사탕을 한 움큼 들어 달빛에 비춰 본다.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는 색색의 사탕들을 보며 조금 슬픈 듯 미소짓다가는.
"..보검을 가지고 있을 정도면 상당히 고위 간부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는 얼마나 될런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해둘게. 글라키에스를 상대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 ...그 녀석은..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유일하게 자신이 제대로 아는 존재. 글라키에스를 입에 대면서 아스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쥬데카의 자유였다. 글라키에스를 만났을 때 그녀에게 호소할 수도 있을테고, 혹은 무시하고 싸움에 집중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스텔은 글라키에스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도, 그리고 호소도 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레이버에 대해서는 자신이 더 이상 뭔가를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은 레이버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보검을 지닌 세븐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글라키에스가 전부였다. 이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스텔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이어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네가 무슨 길을 걸었고 뭘 했는지는 이제와서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넌 에델바이스의 제 0 특수부대인 쥬데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네가 믿고자 하는 길을 걸으면 되는 거야. ...대장이 그러는 것처럼."
로벨리아에 대해서 살며시 언급을 하긴 했으나 아스텔은 굳이 거기서 더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아마 더 자세한 것을 물어도 아스텔은 입을 꾹 다물었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아마 제 연인인 레레시아에게도 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함부로 이야기를 할 사안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로벨리아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테니까.
"아무튼... 무거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데."
이어 아스텔은 손에 쥐고 있던 잡지의 페이지를 살며시 넘기다가 어느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이야기했다.
"...이 깻잎에 대한 물음 말인데. 그러니까... 내 연인이 내 친구의 깻잎을 떼어주는 것을 허용해야 하나. 허용하지 않아야 하나. 부분. ...왜 이런 것으로 논쟁까지 벌어야하는거지? ...이런 것도 연애에 있어서 중요한 사안이야? ...정말로 이런 것으로 싸움을 할 수도 있는거야?"
어젯밤 꿈에 네가 나왔어. 딱히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뭘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 꿈이 다 그렇지 뭐. 음. 그래도 조금 뒤집어보면, 처음 보는 도시에서 너랑 뭔가 얘기하면서 걷고 있었던 거 같은데. 맞아. 서로 손 꼭 잡고. 언젠가 정말로 그렇게 같이 걸으면 좋겠다. 모든게 평화로워진 후에- 그 쯤에는 나도 장갑 없이 네 손을 잡을 수 있었으면.
아침에_씻기_전_자캐의_부스스한_모습은
일단 앞머리는 다 뒤집어 까졌고 ㅋㅋㅋ 뒷머리는 묶었으니까 좀 덜하겠지만 그래도 부스스하고~ 아침에 쪼오금 붓는 타입이라 볼이 오동통 해졌겠네. 날이 추워져서 소매가 긴 오버핏 셔츠를 입었을테니 셔츠도 반쯤 기어올라가고 난리도 아니겠는걸~~
자캐에_대한_내_생각을_말해보자
약간 사람의 모습을 한 고양이를 키우는 듯한? ㅋㅋㅋㅋㅋㅋ 초반엔 내가 페이스 무너질 거 같아서 아슬아슬했는데 요즘은 친구들이랑 잘 놀아줘서 흐뭇한 집사였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저희도 보검을 쥐고 있고, 아스텔 씨도 보검을 지니고 있잖습니까. 그래도... 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겠죠. 모든 게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시작부터 말이 통하는 상대였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도 없을 터였으니, 직접 마주한 건 두 번 뿐이지만 그때 주고받은 대화로 파악하기론 완고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한 자부심도 커 보였고. 고독 의식의 중심에 서 있지도. 그 곳에서 살아남은 존재도 아닌 너는 스스로를 선택받은 존재라고 여기는 그 모습이 석연찮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 전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마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보다 아스텔이 좀 더 잘 알고 있겠지.
"....확실히 지금의 저는 에델바이스니까요."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의 너를 만든 게 가디언즈였던 너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네가 과거를 놓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였다. 지금의 네가 여기 있는 건 네가 지나온 길 때문이다. 네가 부순 것들 때문이고, 너를 부수려 했던 것들 때문에 네가 여기 있다. 지금의 너는 그때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단절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로벨리아, 글라키에스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비꼬는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아가씨라고 불렀지. 그 콧대 높은 여자가. 그런 자그마한 단서로 생각을 하면 끝도 없이 퍼지는 게 상상이었기에 너는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스텔 쪽에서 화제를 바꾸기도 했고.
"아, 네.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잡지를 넘기다가 한 부분을 짚는다. 깻잎을 떼어주는 걸 허용해야 하는가, 그러지 않아야 하는가... 꽤 오랜 논쟁이라고 생각하면서 확실히, 이런 부분에 대해 평소에 생각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너는 잠시 입을 다문 채로 아스텔을 쳐다보았다.
"일단은... 아스텔 씨는 깻잎을 스스로 뗄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없다고 봅니다만."
가끔 먹을 때마다 붙어서 잘 안 떨어진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때 몇 번 도와준 적이 있기에 특히나 더. 하지만 역시 일반적으로는 잘 떼는 편인 것일까. 이 사실은 에스티아에겐 비밀로 하고 그냥 쭉 침묵을 지켜야겠다고 아스텔은 굳게 생각했다.
"...아무튼 얼마나 되냐의 여부는 둘째치고 결론은 깻잎을 떼어주는 것이 남의 연인을 유혹하거나 꼬시기 위한 행동이라는 의미겠지?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느냐. 허용하지 않느냐라는 문제일테고."
당연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나 적어도 아스텔에게는 그렇게 해석이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을 해도 영 석연치 않은지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일단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이 잡지에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자신은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지만, 만약 유혹이나 꼬시기 위한 행동이라면 별개였다. 자신의 세븐스로 깻잎을 잘게잘게 찢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 과격한 생각을 하기도 하며 아스텔은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김에 묻는 거지만 너는 어느 쪽이야?"
자신의 결론은 이미 내려졌으나 과연 그는 어떤 대답을 할지 조금 호기심이 들었는지 아스텔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방금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싫은 것일까. 아니면 그래도 남을 돕고 싶어할까. 나름대로 기대가 되는지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츠쿠시의 오늘 풀 해시는 이_행동을_하는_자캐는_위험하다 음... 경고 사인을 안 하는 타입인데🤔 참는 데 능숙하고 티를 안 내는 편이라서. 못 참을 지경이 된다면 주먹을 꽉 쥐고 눈빛이 살벌해지는 것 정도...? 이건 그냥 빡친 거 아니냐고요? 이 친구 어지간하면 안 빡치는데 얘를 빡치게 한 시점에서부터 위험한 거 아닌지(?)
자캐식의_욕은 비속어 자체는 약한 딱딱한 모욕이야. 평소에는 잘 못하는 편이고... 일상생활 중에는 떠올리려고 해도 그다지. 그렇지만 막상 필요한 상황이 닥친다면 꽤 한다... 그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감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필요'에만 한정하지만. 예를 들어서 운전하다가 시비 걸렸을 때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서라든지. '너 떤 것치곤 상당히 잘 털었어' 짤 같은 상황 있잖아(츠쿠시: 이 도른 개자식아 목적지가 어디지? 어디까지든 뒤따라 가서 네 녀석을 토막 치고 회를 떠 주겠다.)(?)
자캐로_내가_싫다고_말해 "부디 편히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를 향한 당신의 감정은 마땅하니 참으실 필요 없습니다."
어렵다는 거지 뗄 수는 있다. 어쨌든. 막상 에스티아에게도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떼주는 거 별로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보다도 더 그런 쪽으로는 무지한, 정확히는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아스텔을 쳐다보던 너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잠시만요, 아스텔 씨... 그렇게 말씀하시면 습관적으로 행동했을 때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일단 습관인 것부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유혹을 위한 행동이라면 굳이 깻잎을 떼는 게 아니더라도 연인인 사람이 보기에 좋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 행동은..."
너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듯 말을 멈췄다. 어떻게 말하면 그가 이해를 할까. 그가 지금 이해한 걸로 충분하려나? 어쨌든 그는 앞으로 연인의 앞에서 다른 사람의 깻잎을 떼어줄 것 같지는 않으니... 그렇지만 역시 좀.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두고 있었다는 게 되겠죠,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는 상냥하거나 친절하지 못하더라도 연인인 자신에게는 친절하기를 바라잖습니까.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만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고 도와줄 거리를 찾아내는 건 그다지 좋은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아... 설명해놓고도 미흡하다는 생각이 잔뜩 들어 너는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어야 하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같다.
"...저 말씀이십니까? 연인이 있는 한 제 생각과 행동은 온전히 제 것이 아니니, 직접 물어보긴 하겠지만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안 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은 깻잎을 떼주길 원하는 상대쪽에서 이해하길 바라야겠죠.
"깻잎을 떼주지 않은 걸로 틀어질 사이라면 뭐... 제가 뭘 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정정해주는 쥬데카의 말에 집중하며 아스텔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요컨대 경우에 따라서는 연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좀 더 집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같이 밥을 먹을 정도면 자연히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아스텔은 일단 특별히 더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허나 이 논쟁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그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레레시아라면 과연 어떨까. 그렇게 생각을 해보기도 하면서 그는 입을 다시 열었다.
"...너는 그렇구나. ...그렇긴 해. ...고작 안 떼어주는 것으로 틀어질 정도라면 그 사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강한 것이 아니겠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깻잎을 떼어주는 것 자체는 정말로 사소하고 아무래도 좋은 행동이었다. 떨어지지 않는다면 두 장 다 가져가서 먹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깻잎을 반드시 한장만 떼어서 먹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자신이 살아온 삶의 영향이라고는 하나 역시 이런 쪽으로는 꽤 무지한 것이 크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가만히 침묵을 지ㅕㅆ다.
"...역시 공부가 더 필요하겠어. ...뭐랄까.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나는 싸우거나 죽이는 것 이외에는 크게 잘하는 것이 그다지 없다보니. ...물론 그렇다고 내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거든. ...여러모로. ...가르쳐줘서 고마워."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나 이내 그는 쥬데카를 바라보면서 살짝 목소리를 줄이면서 그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은밀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가깝게 있는 그라면 아마 충분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잡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가급적 다른 이들에겐 비밀로 해줘. ...그다지 알리고 싶진 않아서."
당연하지만 그 대상은 제 연인이었다. 연애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하고 싶어서 이런 잡지를 사서 보고 있었다는 말이 알려지는 것을 생각하니 그건 조금 부끄러웠는지 이내 아스텔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허나 재빨리 자신의 세븐스를 이용해서 자신의 얼굴을 식힌 후, 그는 쥬데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너는 이런 것에 관심 있어? ...그러니까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라던가."
어느새 호수가는 마리가 가장 많이 찾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에델바이스 근처에 있는 호수는 꽤 넓었으니 누군가와 마주치거나 할 일이 적기는 했지만 물론 그런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있고 싶으면 그저 방안에 있으면 될 것을 일부러 호수가에서 혼자 청승을 떠는 것은 아마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리라.
특히 마리는 레이버 전 이후로 호수가를 찾는 일이 더 많아졌다. 가디언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 사실 처음에는 설득 같은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전투 중에 말을 섞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투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더 물을 걸, 더 들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드는 이유는 레이버의 과거를 알게되면서 자신과 그녀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내 엄마와 아빠는... 너희같은 테러리스트. 세계의 질서와 규율을 없애려는 이들에 의해서 죽었어.'
라고 말한 레이버의 말이 가슴 한 구석에 가시처럼 박혀있다.
"우리 부모님은 가디언즈, 세계의 질서와 규율을 지킨다는 이들에게 죽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상황이 지나고 나서야, 마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말. 누군에게도 닿지 않는 말이었다.
자신이라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부모님의 원수를 모두 죽이고 나 또한 따라 죽는 그런 결말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난 것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스승님과 또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부모님의 유지 덕분이었다.
그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죽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손에 피를 묻히리라. 내가 죽인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 자신은 복수의 대상, 즉 원수이리라.
제 손에 피를 묻히면서 누군가의 복수의 대상이 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한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는, 나는 누군가에게 복수할 자격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피곤하다."
피곤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눅진한 무력감과 무거운 죄악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그 말을 꺼낸 것이다.
호수의 물이 찰랑거리는 그 바로 앞 축축한 풀잎들 사이에 앉아있던 마리는 이내 풀잎 사이에 몸을 뉘었다. 마치 고양이가 그러하듯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가을이 깊어지고 바람은 차가웠다. 눈을 감으며 침잠한다.
세계가 자신에게 너무 잔인하다.
에델바이스에 온 이후 계속해서 자신의 아픈 과거와 부딪힌다. 마을을 잃어버리고 살아남은 아이들, 가디언즈에 잡혀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아이들을 보았을 때 사실 마리는 옛날 망가졌던 자신을 떠올렸다. 레이버를 보며 자신을 떠올렸고 이내 그녀의 마음에 깊이 이입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입단한 단발머리의 그녀를 생각한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의 죽음 옆에 서 있었던 이들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까. 너는, 왜 이곳에 왔어?
생각은 자연스레 가디언즈에서 배신했다는 쥬데카로 이어진다. 생사를 함께 넘은 동료. 그가 과거와 달리 에델바이스에 목숨을 걸고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쥬데카를 미워하지 않는 것은 단지 그와 내가 아무런 접점이 없었기 때문일까. 이제 그녀도 동료인데,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갈 이인데. 마음 속이 수런거린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잖아. 그녀를 미워하기 싫어.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어? 네가 죽인 이들을 생각해 봐. 너는 그녀를 미워할 자격이 있어? 세계가 잘못된 거야. 그런 거야.
마리는 선우가 변장을 하고 함께 찾아보자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그저 웃음으로 흘려버린다.
"사실 십 년 전이니까.... 그 친구를 바로 알아볼 자신이 없기도 해. 기억나는 부분도 적고.... 만약 변장하고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좀 더 자신이 똑똑했다면, 혹은 충격에 망가지지 않았었다면 온전히 그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지금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고향에라도 갔다가 그곳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조직에 폐를 끼칠 수도 있는 거구. 역시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행동할 수는 없어."
마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났는지 선우를 바라봤다.
"음, 혹시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세상은 좁다고 하니까 네가 아는 사람 중에 내 친구가 있지는 않을까? 그,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름은 쥬드이고, 나이는 아마 나보다 두 세살 많았었던 것 같아. 남자고 세븐스이고. 음... 세븐스 능력은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어. 아마 정신계통이 아닐까 싶구. 외형은... 지금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머리카락은 녹색이고 눈동자 색은 어두운 계열이었던 것 같아."
머리카락 색이 녹색이었다는 건 최근에 생각난 거라고 덧붙였다. 선우에게 설명하기 위해 기억을 되살리려 하면서 하나하나 나열하다보니 전체적인 인상을 잡혀가는 것 같았다. 혼자 생각했을 때보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뭔가 추상적이었던 것이 구체화되는 것 같고. 또... 쥬데카가 떠올랐다가, 이내 흩어버렸다.
"혹시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이가 있었어?"
마리는 조금 기대하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봤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겠지만 한 번도 누구에게 쥬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이 서린 모양이었다.
"정말 호감이 있어서 그걸 드러내기 위해 떼어달라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되겠죠, 어느 쪽이든 굳이 떼어줄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네 이야기에 고갤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는 아스텔에게 그런 말을 덧붙여주곤, 잠시 침묵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 깊게 들어간 건 아닐까... 지금 사귀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너무 아는 체 한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살피다가는, 역시 공부가 더 필요하겠다고, 여러모로 알려줘서 고맙다는 그의 말에 너는 살짝 웃었다.
"공부하는 것 자체로도 연인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비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든 좋게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니까요."
으음, 그렇지만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을 격려할만한 말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솔직하다면 자그마한 문제는 생기더라도 그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연인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내가 이렇게 행동을 하면 어떨지... 라고 말이죠."
이러한 연애 잡지도 결국은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빈도가 높은 특징들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결국 자신의 관계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특수성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특별한 것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관계의 유지에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자그맣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물론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리에서 연애 잡지를 읽었고 있던 걸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타입이었나 싶지만, 아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본인이 숨기고 싶어하는데 나서서 퍼트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적어도 너는 아니었다.
"흐음, 이런 표정같은 걸 보여주면 아마 좋아할 것 같은데."
농담입니다. 라고 살짝 웃으며 아스텔을 쳐다본 너는 갑자기? 들려오는 네 연애 관련 질문에 살짝 고갤 갸웃했다.
"으응...? 글쎄요, 다들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좀 여유가 있으면 하게 되지만 잘은 모르겠습니다. 있다고 해도 마음에 담아두게 되겠죠, 전 겁이 많아서요."
없지는 않을 터다. 그러나 그걸 전부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뭣하면 아스텔에게 이걸 빌미로 딜을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궁금해하는 건 아닐 테니 그럼 듣지 않을래, 라는 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고. 그럼 서먹해지지 않으려나. 여러 생각을 하면서 뭐, 이거면 됐지. 라는 듯 미소짓는다. 아마 붉게 물든 얼굴이며,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좀 돌려보려는 건 아니었을까 싶은 그 질문을 곱씹으면서, 너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무렴 어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아스텔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따지고 들어가자면 정말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천천히 읽으면 될 일이었다. 허나 이곳에 나와서 읽는 것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숨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사실상 제 연인의 귀에만 너무 자세하게 들어가지 않으면 될일이기도 했고. 다른 이들에게 이 잡지를 읽는 것이 알려진다고 해도 스스로 딱히 찔리는 것이 없었기에 아스텔은 당당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며 그는 제 물음에 대한 그의 답에 귀를 살며시 기울였다.
"...그러니까 무서워서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야?"
결론은 겁이 나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겠다는 것이 아닌가. 아스텔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방식이긴 했다. 허나 자신의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에게는 그런 것이 편하겠거니 생각을 하면서 아스텔은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허나 굳이 그는 여기서 또 한 마디를 더 내밀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네 자유이긴 하지만, 겁이 난다고 해서 무작정 미루면, 언젠가는 후회할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것도 개인의 자유지만."
적당히 넘겨버려도 상관없는 그런 발언을 하면서 아스텔은 자신의 망토를 손으로 정리했다. 그러다가 쥬데카를 가만히 바라보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후에 그에게 오른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 차례겠네. Trick or treat."
이어 그는 할로윈인만큼 그에게 그 맨트를 차분한 어투로 보냈다. 딱히 사탕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사탕을 줬으면 고맙게 받고 맛있게 먹엇겠지만.
"...참고로 Trick을 고르면 그대로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오른 후에 비행할거야."
자신이 할 Trick을 그렇게 공개하면서 아스텔은 어쩔꺼냐는 듯이 쥬데카를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로 할지, 아니면 그냥 분위기만 맞추려는 것인지. 그것은 오직 아스텔만이 알 일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꽤나 침착한 포커페이스였다.
미안하다는 말에 그렇게 말하며 마리는 작은 미소를 띄웠을 것이다. 누군가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해결해주려고 애써주는 게 좋았다. 이게 바로 동료라는 걸까?
이어지는 자신의 설명에 선우가 쥬데카 아니냐며 말을 하자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며 선우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럴리 없어. 네가 생각해도 내 세븐스 좀 독특한 편이잖아. 분명 쥬드라면 날 기억하고 있을 거야. 내가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날 알아볼 거라고...."
내 바램일지도 모르지만.... 하고 기운없이 덧붙인다. 상대방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것이다. 쥬드는 이미 나를 잊었을 수도 있고, 기억하더라도 나를 보고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좀 비참하잖아.
"리오와는 몇 번 얘기 했었지만, 나를 아는 것 같지 않던 걸. 리오가 쥬드가 아니거나 아니면... 나를 모른 체 하는 것이라거나..."
마리는 담담히 이야기하려고 애썼지만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선우의 말처럼 녹발에 정신계 능력자가 그리 흔하겠는가.
"그치. 네 말이 맞아. 한 번 직접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같기가 흔하진 않지?"
마리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을 고민하다가 이내 선우에게 물었다.
"있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모르는 체 한다는 건 어떤 의미야? 사실 나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부끄럽지만요. 라고 덧붙이며 곤란한 듯 웃던 너를 걱정한 건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다...라. 이미 많이 후회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걱정은 기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아하하..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이런 상냥한 모습에 반한 건 아닐까요, 그렇담 이대로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아마 아스텔이라면 어떤 이야기인지 정도는 알아챘을 터였다.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 부자연스럽긴 해도 지금까지 나눴던 이야기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쨌건 그런 말을 끝으로 네게 내밀어지는 손과 그의 표정을 번갈아 보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너 역시 옅게 미소를 지었다.
"어떤 장난을 칠지 미리 말해줘도 괜찮은 겁니까? 장난에 따라서 사탕을 안 주려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요?"
물론 넌 줄 거지만. 바구니에 담겨 있는 사탕을 한 움큼 집어 그의 손에 담아준 너는 널 향한 그의 시선을 피하는 대신 빤히 마주보았다. 뭔가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하늘을 날아본 적은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으음, treat이긴 하지만... 혹시 비행은 어려울까요? 높이 떠올라서 마을을 한 번쯤 보고 싶거든요."
"...내가? 아니. 내가 상냥한지는... 오히려 무신경하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지만."
자신의 직구성 화법에 대해서는 아스텔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관련으로 몇 번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딱히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탓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쥬데카의 말에 아스텔은 음. 소리를 내면서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허나 이내 작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쑥스럽긴 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괜히 긁적이면서.
"...그러면 그것대로 괜찮잖아. 선택은 자신의 자유니까. ...우리 에델바이스가 추구하는 것은 세븐스의 자유와 권리이기도 하고."
무슨 문제가 되냐는 듯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아스텔은 그가 담아준 사탕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 사탕 중 하나의 포장을 깐 후 알맹이를 쏙 입에 집어넣고 다시 오도독, 오도독 씹어서 깨뜨려먹으면서 남은 사탕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비행을 이야기하는 쥬데카의 목소리에 아스텔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손을 잡고 하는 것 정도라면야. 임무에서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고. ...하지만 안아주거나 하는 것은 안돼."
그 부분은 확실하게 안된다는 듯이 선을 그어버리면서 아스텔은 쥬데카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가 순순히 손을 내줬다면 준비를 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세븐스를 한 점에 모은 후에 상승기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몸이 둥실둥실 바람에 의해 떠올랐고 순식간에 위로 솟구치듯 날아올랐을 것이다. 발에 아무것도 밟히지 않았으나 떨어지지 않고, 공기가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그 감각은 익숙해지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적어도 그가 위험 경보를 느끼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선우주 수고했어!! 재미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멀리 갈 일이 있을 때 그런 적 있었어. 멀고 먼 초원이 펼쳐진 곳이었어.""......좋은 생각이긴 한데, 뭔가 뭔가.....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면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취미....? 동물 사전 보는 것두 취미로 볼 수 있나?""쉬는 날엔 산책하거나, 훈련하거나, 아이들을 보러 가." 마리도 능력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을 것 같다~ 선우 취미나 쉬는 날에 대해 물어봤을 것 같은데 대답 궁금한걸? 그리고 마리와 쥬드는.... 어떻게 될 것인가.....(오너도 궁금함)
할로윈. 에델바이스에 들어오고 나서도 처음 맞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특성상 이러한 것을 즐기는 건 참 묘한 기분이다. 어쩌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행하는 것일수도 있고.
즐거운 축제이기에 재미있게 꾸미는 사람도 많지만, 구색만 대충 맞추고 사는 놈이 있기는 하다. 지난번에는 귀찮아서 그냥 점퍼만 입고 파일럿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번엔 똑바로 좀 하라는 지청구를 들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제대로 한번 해보자 하는 괜한 오기에 이번에는 좀 다르다.
그래서... 정확히 뭘 하려고 하냐면.
"후후후..."
할로윈 하면 일단 공포 테마. 공포 하면 점프 스케어. 아주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내 반사신경으로 재빨리 튀어나오면 놀라지 않고 배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복장도 완벽...하다고 본다. 아마도. 이번엔 온몸에 붕대를 감고, 화상 자국이 있는 손 부분에 오히려 약간 붕대를 느슨하게 감아 호러스러운 비주얼을 살린다.
어찌되었든 좀 철지난데다 여전히 대충대충인 센스의 복장이지만, 명실상부한 공포의 아이콘 중 하나인 미이라다!
그런 미이라가 되어, 이번 희생양을 기다리기 위해 조명이 잘 비춰지지 않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숨어 있는다. 오늘만 해도 열 여섯 명은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지. 후후후...
자, 그럼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걸 보니, 다음 희생양이 다가오는 듯 하다. 신중하게 기다리다가... 괴성을 지르며 장애물 밖으로 뛰쳐 나온다!
아마데우스는 오랜만에 드레스를 입었다. 물론 온통 시커먼데다 1자로 떨어지는 라인이라 여성스럽다기엔 그냥 아, 올블랙인 여자네. 정도의 인상이었지만... 아마데우스는 사탕을 잔뜩 챙겨 거리로 나섰다. 기대된다! 장난을 좋아하는 아마데우스에게는 최적의 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장난을 당하는 쪽인 것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마데우스는 미이라가 불쑥 나타나자 그것을 향해 사탕 바구니를 휘두르며 비명을 질렀다. 당연히 사탕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으아악!!!!! 아악!!!!!! 살려주십시오!! 전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으아악!!!"
고작 이 정도로 놀라다니 놀리는 사람 입장에선 가성비가 좋았다. 아마데우스는 말을 못 이을 정도로 놀라 정신이 혼미했으나 진정하고 보니 오늘은 분장한 사람이 거리에 넘치는 날이다. 즉 저것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약간 쓰라린듯 광대뼈를 어루만지고, 턱을 이리저리 움직여 맞춰본다. 살짝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군. 몸이 튼튼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턱관절이 박살이 나서 의무실에서 얼굴에 깁스를 한 채 널부러져 있을 꼴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비웃고 있는 누군가들이 있고.
그래도 의견을 존중받아서 벤치에 앉혀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선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냥... 말하기 좀 그런 이유가 있어. 어차피 이 정도는 하루이틀이면 나으니까."
무자각인 사람도 잔뜩인걸. 자신의 단점일 수 있는 부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건 어쨌든 조심스럽게 대할 가능성이란 걸 포함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덧붙이며, 자그맣게 들리는 고맙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별말씀을요. 라고 마찬가지로 작게 이야기해 준다.
"그렇지만 장난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두근대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기도 하고요."
뭐 전부 이야기해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긴 합니다만. 사탕의 포장을 벗거 그대로 깨물어 먹는 그의 입을 한꺼풀 거쳐 들리는 오도독 소리 너머로, 손을 잡고 나는 것 정도라면 괜찮다는 말에 아하하... 하고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는 듯 웃었다.
"손을 잡는 걸로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다면 상관없습니다. 당연히 안아주는 건 연인이랑 해야죠, 저는 그냥 한 번 공중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싶을 뿐이니까요."
너는 말이 끝마쳐짐과 동시에 마주잡히는 손을 보다가, 준비하라는 목소리와 함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것으로도 느낄 수 있는... 그러나 내려간다는 감각이 배제된 그 떠오름을 낯설게 느끼면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점점 멀어지는 벤치, 사람들... 아스텔이 떨어트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을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만큼 안전한 놀이기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했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슬슬 마무리할까요! 여기서 한 바퀴 슈웅 돌았다, 정도로 끝내도 괜찮고... 뭔가 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도 괜찮습니다만!
뭐야, 내가 그렇게 세게 때렸어? 아마데우스는 광대뼈와 턱뼈를 만지는 레이먼드를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하기야 덩치도 크고 커다란 무기를 다루니 힘이 센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데우스는 레이먼드가 감은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이거라도 둘러드릴까요?' 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여장이요?"
그 와중에 여장이란 말을 들으니 아마데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3초는 침묵하다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습니다! 할로윈은 모두를 놀라게 하는 날이니까요!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요?"
아아. 아스팔트 껌딱지의 비애란... 그녀의 굴곡 없는 흉부 탓인지, 여성의 평균 키를 훨씬 넘는 큰 키 탓인지, 낮은 목소리 탓인지, 아니면 말투 탓인지. 아니면 이걸 다 합한 탓인지! 그녀는 오늘도 여장남자로 오해 받았으나 장난치길 좋아하는 성격답게 이걸 또 하나의 기회로 삼았다.
"남자의 가장 남자다운 행동은 여장이란 말 아시는지요? 여장은 오직 남자밖에 할 수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가장 남자다운 거지요!"
아아앗... 이셔 해시 첫질문이 너무 아픕니다... 8ㅁ8 그래도 들을 일 없...겠지...? (두려움!) 이셔는 킷캣을 꼭 뽀개서 먹는다... 욕구를 잘 참는다...(메모)(?) 이셔 진단이나 일상은 보다보면 드는 생각이 음~~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달까. 아 어제 독백에 가란이 했던 말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것 같은? 그런게 틈틈히 보여서 예쁜데 안쓰럽구 복잡하당...
"...발버둥만 안 치면 괜찮아. ...절대로 안 떨어지니까. 내 세븐스의 영역 안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듯, 아스텔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냈다. 점점 땅에서 멀어짐에 따라 그는 쥬데카의 손을 더 꽈악 잡았다. 놓아도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발버둥이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세븐스라고 해도 높은 곳에서 낙하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사고가 일어나서 제 동료를 죽일 순 없지 않겠는가.
"...오늘은 할로윈이라서 그런지 하늘에서 보면 불빛이 아름다울거야. ...그럼 둘러보자."
김에 하늘에서 순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스텔은 바람의 방향을 컨트롤했다. 그의 능력은 비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기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 하늘을 날아갈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바람을 강하게 해서 자신과 그의 몸을 날려버리는 느낌으로 그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껏 즐겨줘. 오늘은 할로윈이고... 또 내가 언제 임무로 나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물론 그가 마음껏 마을을 구경할 수 있도록 아스텔은 나름대로 속도를 조정했다. 너무 빠르지 않게, 허나 그런 와중에도 또 너무 느리지 않게. 적절한 속도로 어둠을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중에 떠 있는 뱀파이어와 강시의 모습이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속도가 부족하면 이야기하고. 조금 정도라면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가 어떻게 말하건 아스텔은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아마 마을을 전체적으로 한바퀴 돌면서 보여줬을 것이다. 할로윈의 불빛은 하늘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찬란하게 반짝였고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드릴게요! 이 이후에 마을을 한바퀴 다 돌고 서로 헤어졌다고 해도 좋을 것 같으니까요! 일상 수고했어요!
>>528 하찮은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TMI는 매우 귀여운 법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그 와중에 자제력이 보살 수준이라.. (동공지진) 엄청난 자제력이군요?! 그거?! 그리고 눈 돌아버린 이스마엘의 모습도 보고 싶어요. (속닥속닥) 아니 그 와중에 제가..(동공지진22)
>>600 >>602 마리주의 적폐는 오늘도 맛있다... 심경의 변화는 아쉽게도 아니었구~ 긴머리 오래 하다 보면 가끔 확 잘라버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래서 1년하고도 좀 더 전에 숏컷 쳤다가 서서히 길어져서 지금 스타일이 된 거! 하지만 심경의 변화랑 관련된 요소가 없지는 않다! 담배 끊은 게 그거랑 관련 있지롱~ :3
오늘도 어김없이 가벼운 임무나 근무가 이어지는 가운데 로벨리아가 제 0 특수부대 멤버 전원을 소집했다. 언제나처럼 브리핑이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으면 아스텔과 에스티아가 각각의 위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로벨리아 역시 스크린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들어오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로벨리아는 모두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모니터를 레이저 포인트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어느 전단지의 내용이 실려있었다. 뭔가 이것저것 쓰여있었지만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세븐스로 살아가는 것이 괴롭지 않습니까?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나날이 너무나 힘들지 않습니까? -당신도 될 수 있습니다. 비능력자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능력자로. -세븐스 인자를 없애는 수술을 받으세요.
"정말 어이가 없는 내용이라고밖엔 볼 수가 없지만 최근 전 세계 도시 여기저기서 퍼지고 있는 전단지의 내용이야. 보다시피 그냥 대놓고 수상하기 짝이 없고 세븐스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수단이야. 일단 간단하게 말하면 몸 속의 세븐스 인자를 제거해서 비능력자가 될 수 있는 수술을 받으라는 뭐 그런 내용이고 실제로 세븐스 중에서 비능력자가 되는 것을 희망해서 이 수술을 받으러 간 이들이 많다고 해."
이어 로벨리아는 에스티아를 바라봤고 에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노트북을 조작했다. 그러자 화면이 넘어갔고 이내 화면에는 어느 한 커다란 병원 느낌의 하얀색 건물이 떠 있었다. 총 4층 크기이며 도시 안에 있다기보다는 외곽지역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건물에는 병원 특유의 십자가 문양은 있었으나 정작 건물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전단지에 있는 주소에 있는 건물이야. 일단 4층 크기인 것은 분명해보이고 세븐스들이 몇몇 여기로 들어가는 것도 에스티아의 드론으로 확인했어. 일단 이곳에 들어간 세븐스들은 '행방불명'이라는 것 같아. 허나 일부 증언에 따르면 멀쩡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도 있다고 해. 다만 집에 돌아가는 일도 없고 말을 걸어도 아무런 응답도 관심도 주지 않고 그대로 갈 길을 갔다고 해. 붙잡아도 강하게 뿌리치면서 말이야.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하더군."
이어 로벨리아는 스크린에서 시선을 돌리고 제 0 특수부대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들어가봐야만 알 수 있겠지. 그렇기에 제 0 특수부대를 여기에 파견해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이번 미션이야. 질문 있나?"
마리는 소집 명령에 회의실로 향했고 인사를 하는 로벨리아에 마주 인사를 했다. 하지만 마리는 이전과는 달리 조금 피곤해 보이는 모습일 터였다. 잠을 잘 못잤나? 싶은 느낌일까.
하지만 임무에 집중하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꼼꼼하게 전단지의 내용을 보고 로벨리아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세븐스 인자를 없애는 수술이라니. 너무 허황되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간절한 이들이라면 혹할 만한 내용이라고 마리는 생각했다. 굉장히 수상했지만.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묻는 말에 마리는 조금 생각하다가 질문했다.
“…이 시설이 가디언즈와 관련이 있다는 정황이 있나요? 일반적인 사기극에 저희가 동원될 것 같진 않은데…. 아니면 이 일에 대해 가디언즈의 반응은 어떤가요? 진짜이든 사기극이든 가디언즈에서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내용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멀쩡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는… 정말로 세븐스 인자가 없어졌나요?”
회의실에서 안개로 만든 메이드 옷을 입은 자신의 분신(...)을 이용해 모두에게 콜라 한 잔씩 돌리고 있던 잭은 생각해 보았다.
일단 한 가지 명심해 둬야 할 건, 잭 밸런타인은 바보라는 거고, 그 여파로 인해 꽤 잘 속는다는 거다.
그리고 잭은 지금 "의심"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아니, 만약 저런 게 가능했다면 정부 쪽에서 먼저 엄청 홍보를 하고 있을 테지. 가디언즈들 다 어디 실업자 만들 일 있나? 하지만 이 정도로 절박한 세븐즈들이 많다는 거다.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일반인처럼. 잭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가디언즈. 그래. 가디언즈의 함정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하나, 물장사 이거나, 둘, 가디언즈 쪽의 함정 중 하나라는 거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 인질 잡고 유인하는 꼴을 보면 말이다. 물론 진짜 그런 게 있거나, 이 시술이 먹힌다고 믿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이의 소행일 수도 있다.
물론, 잭에게는 일단 전부 두들겨 패고 부셔서 끌고 가는 게 머리 안 아프고 좋은 일이겠지만.
"질문이라~ 내 잘 머리를 굴리지 몰라서 그러는데, 그럼 간단하게 그 시설 내에 있는 사람들 다 구조한 다음에 싹 다 부수면 된다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저 전단지나 뿌리고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녀석들, 그렇게 좋은 녀석들은 아닌 거 같거든"
<선우> "일단 현 기술상 세븐스의 인자를 추출할 순 있어. 하지만 상당히 위험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자를 추출하게 될 경우는 십중팔구 그 세븐스는 죽는다고 봐도 좋아."
자신이 아는 지식을 알려주면서 로벨리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래도 가능은 하나 안전성은 보장할 수 없다는 모양인듯 했다.
<마리> "피곤해보이는군. 잠은 잘 자도록. 아무튼 좋은 질문이야. 가디언즈와 관련이 되어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확실하진 않아. 하지만 가디언즈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 아니. 정확히는 그 전단지를 가디언즈에 소속된 병사가 뿌렸다는 목격 정보가 있어. 그러니까 아예 무관계하다고 볼 순 없겠지. 이것이 이번에 너희가 파견되는 이유다. ...만약 가디언즈가 연결이 되어있다면 절대로 좋은 것은 아닐테니 말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마리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히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를 한 로벨리아는 2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건 모르겠군. 직접 잡아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목격정보니까 말이야. 확실한 것은 행방불명이 되었던 그 세븐스는 집에 돌아오는 일 없이, 그 어떤 목소리에도 응답하지 않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 같더군.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역시 그 세븐스를 조사하기 전까진 알 수 없어."
<잭> "수상하다는 것은 사실이나 일단 시설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먼저야. ...우리들은 무차별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야. 명확하게 제거해야한다고 판단하는 시설을 파괴해야지. 수상해보인다고 무조건적으로 파괴해봐야 대의는 오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해서 로벨리아는 일단 시설에 대해서 명확하게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허나 만일 존재해서는 안되는 시설이라면 파괴하는 것 또한 분명하게 지시했다.
"자세한 것은 현장에 가서 직접 조사를 한 후에 판단하도록. 경우에 따라서는 그 수술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세븐스 또한 제거해야할지도 모르니 그 점 또한 알아둬."
모두의 물음에 답을 한 로벨리아는 이내 에스티아를 바라봤고 에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음 화면으로 스크린을 넘겼다. 그러자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갈색머리에 노란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상당히 밝고 쾌활할 것으로 추측되는 그 여성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여성에 대한 것도 수색해주길 바란다. 저번 미션에서 우리의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 때문에 우리들의 얼굴이 좀 알려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 수술을 받으려고 했던 남자아이가 우리 쪽에게 접촉을 해서 따로 부탁을 했다. 3년 전, 이 세계를 뒤엎기 위해서 레지스탕스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누나라는 모양이다. 이름은 에일린. 3년 전 사진인데 저 당시 나이는 20살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1년간은 연락이 잘 되었으나 2년 전, 저 여성이 들어간 레지스탕스는 가디언즈에게 소탕당했고 그때부터 쭉 연락이 끊겨서 그 남자아이는 자신의 누나가 죽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만 문제의 시설 근처에서 자신의 누나가 그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크게 불러봤지만 그 누나는 자신을 무시한 것처럼 아무런 말도 안하고 눈길도 안 주고 들어갔다고 하더군.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찾도록 하고 힘들 것 같거나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난 상태라면 책임은 내가 지도록 할테니 제거하도록. 어디까지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시설을 파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파괴하는 것이고 이건 여유가 되면 하도록 해. 이상 브리핑은 끝내겠다. 따로 질문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만약 없다면 출동하도록. 참고로 이번 미션에는 아스텔 혹은 에스티아 중 한 명을 동행시키도록 하겠다."
저번처럼 아스텔이나 에스티아 중 한 명을 서포트로 데려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를 데려가는 것이 좋을까? 그 와중에 에스티아가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조금 별개 사안이긴 한데 저번에 레이버의 보검을 부서뜨렸잖아? 그 파편을 회수해서 출력을 높일 수 있는 보조용 보석을 만들었어.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 일단 끼워둬."
이어 에스티아는 작은 남색 보석을 꺼내서 모두에게 보여줬다. 해방 전의 보검에 장착해서 끼우면 일단 보검의 출력을 전보다는 조금 더 올릴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질문할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고 누구를 데려갈지에 대해서 의견을 묻고, 워프게이트를 통해서 출동을 할 시간이었다.
/저번 스토리에서 레이버를 쓰러뜨렸고 그로 인해 파워업 아이템이 모두에게 제공되었습니다. 이 보석을 끼움으로서 이제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적의 공격을 맞아도 반격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적의 공격을 맞으면 이쪽에서 공격을 할 수는 없었으나 이제는 공격이 가능해요. 다만 상대의 공격형 버스트의 경우는 맞게 될 시 반격을 할 수 없으니 이 점 주의해주세요! 그리고 판정에서 공격력 보정이 조금 더 들어갑니다.
<잭> "어디까지나 구출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야. ...최악의 경우에는 구할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과감하게 포기하도록."
물론 세븐스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나 그렇다고 해서 대원들의 목숨을 희생하거나 무리한 일에 동원할 생각은 로벨리아에겐 없는 듯 보였다.
<마리> "남동생의 이름은 리버. 응.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마리의 물음에 로벨리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떠올렸는지 그렇게 대답했다.
<레레시아> "더 알아야 할 사항이라. 일단 내 쪽에서 더 할 이야기는 없지만 만약 가디언즈가 관계되어있다면 교전할 가능성도 있어. 무엇보다 너희들 전원, 이전에 보검을 든 간부 클래스를 하나 쓰러뜨렸으니 상당히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어있을 거야. 그 점을 명심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레레시아의 물음에 로벨리아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남은 것은 현장에서 상황에 맞춰서 움직이라는 말 또한 살며시 전달했다.
<공통> "...나 말이야? 알았어. 동행하지."
자신을 지목하는 것에 아스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어 준비가 된 이들은 모두 나오라고 이야기를 했고 앞장서서 워프게이트를 이용해 해당지로 워프했다. 따라서 워프한 이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야말로 한적한 언덕 위였다. 상당히 조용하고 고요한 외곽 지역인 그곳에 스크린에서 봤던 그 하얀색 건물이 있었다. 허나 딱히 지키는 이도 없었고, 누군가가 왔다갔다하는 느낌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저 안에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스텔은 가만히 그 건물을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묘하게 조용한데. ...일단 진입해보자."
이내 아스텔은 천천히 앞장서서 건물 쪽으로 진입했다. 건물 근처까지 지나가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여기에 사람이 있긴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일단 건물 앞에는 여러 꽃들이 자라고 있는 화단이 있었다. 벤치가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작은 휴식용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확실한 건 꽃들은 시들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창문마다 철창이 달려있는 건물은 역시나 4층 크기였다. 허나 누군가가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창문 역시 모두 닫혀있었으며, 창문에 비치는 그림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출입구는 오직 정면에 하나. 하지만 그 출입구 너머로 보이는 로비 같은 공간에도 역시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교전할 가능성이라. 이미 시설부터가 미심쩍은데 가능성이 아니라 각오를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레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서는 아스텔의 뒤를 따라 워프게이트를 통과했다. 평소 임무 때와 달리 사복 차림으로 나왔기 때문에 바깥에서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도착한 곳이 휑한 언덕 위인 것을 보고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지들 수상하다고 광고 하는 꼴 아닌가. 이 정도면."
한적하다 못해 정적인 주변 분위기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런데도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얼마나 멍청한 거야. 그녀는 아스텔을 따라 건물로 다가가면서 허리 장식인 모조 보검에 남색 보석을 끼웠다. 검게 반짝이던 장식에 남색빛이 한줄기 보태어졌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본 건물의 외관은 그저 평범했다. 일부러 한적한 곳에 세운 요양 시설 같았을까. 앉아서 쉬기 좋은 벤치까지 있는 걸 보고 코웃음을 치며 건물에 가까이 간다. 출입구 앞에서 걸음을 느릿하게 늘이다가 곧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조용하면 꼭 더러운게 밑에 있던데."
작게 말하며 로비 바닥을 쳐다보았다. 잠깐 그러다 천천히 로비 안을 둘러보며 다른 층으로 가는 이동수단-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찾아본다.
고요를 넘어선 적막이다. 괴괴한 침묵이 낮게 깔려 공간에 감돈다. 실제로 서 있자니 이미지로 보았던 것보다도 외따로 떨어진 공간을 그는 한 차례 훑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시설처럼 보이도록 구색만은 모두 갖춘 듯 보이지만, 그런 것치곤 통일성이 없어 보인다. 창문마다 설치된 철창이 좋은 의미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테니.
츠쿠시는 걸음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우선은 주변을 둘러보며 건물 내부의 구조도나 지표 같은 표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두가 다 안으로 들어왔지만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겉보기에는 그야말로 조용한 건물. 혹은 버려진 건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건물의 하얀색 벽은 빛이 바랜 것도 없었으며 곰팡이나 얼룩이 진 것도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스텔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위, 아래, 그리고 벽 부분을 가만히 바라봤다.
일단 레레시아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확인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으나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없었다. 또한 계단 옆에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작동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1~4라는 숫자와 함께 열림과 닫힘 버튼만이 존재했다. 엘리베이터 자체는 일단 제대로 움직이는 듯 했다.
한편 츠쿠시는 근처에 붙어있는 구조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1층과 4층에는 각각 마치 병원에서 환자가 사용하는 듯한 병실처럼 101, 102, 103 이런 숫자만이 있었다. 딱히 그 어디에도 진료실이나 원장실 등 의사가 있을법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쭉 일자형 복도에 왼쪽 끝부터 시작해서 101 그리고 그 앞에 102. 101호 옆에는 103. 그리고 103호 앞에는 104. 이런 식으로 140호까지 있었으며 2층과 3층, 그리고 4층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나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있었다. 허나 그 아래에는 4-1-3-2-3-1-4 라는 작은 글씨가 쓰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지는 별개였다. 그리고 츠쿠시가 바라보는 그 숫자를 아스텔도 가만히 바라봤다.
한편 까치로 변신한 마리는 공중을 날아 침입할 공간을 확인해봤으나 그 어디에도 따로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환풍기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창문 역시 아예 문을 열 수 없게 고정된 형태였다. 그야말로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옥상 위는 그야말로 너무나 깔끔했다. 마치 누군가가 청소를 한 것처럼. 아니. 더 나아가 건물 자체가 너무나 깨끗했다. 유리창 역시 얼룩이 진 부분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어 쥐로 변신하고 냄새를 맡자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피향'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1층이 아니었다. 2층쪽도 아니었다. 허나 잔잔하게 1층에서 피향을 약하게 느낄 수 있었다. 1층이 아닌 어딘가. 그러나 2층부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피향. 대체 그것은 어디에서 나고 있는 것일까.
"...번호라. ...이게 힌트가 되겠군. 최근에 쓴 거야. ...애초에 이게 왜 여기에 쓰여있는걸까."
쥐로 변신한 마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있는 것 같은 냄새를 맡았다.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으나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걸까. 혹은 그 이들이 지금은 건물 내 다른 곳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잔잔하게 느껴지는 피향, 1층이 아닌 어딘가에서 나는 피 향은 2층은 아닌 것 같았다. 마리는 아직 인간으로 변하지 않은 채로 선우의 어깨 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서서 냄새에 더욱 집중했다. 천장? 계단? 아니면 호실의 내부일까? 혹은 피가 낭자했으나 누가 청소를 해서 없애버렸기에 이런 약한 냄새가 나는 걸까.
아공간에서 긴 막대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마리가 다칠 것을 우려하여 그녀와 조금 거리를 둔 후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과거 유명한 영국 탐정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빨간 머리 연맹에 대해 조사하던 중 바닥에 지팡이를 두들기는 것으로 그 아래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으며 빨간 머리 연맹은 그저 은행을 털기 위한 페이퍼 조직에 불과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이처럼 이 건물도 숨겨진 지하 1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지하에 무엇인가 있다면 아래에 텅 빈 소리가 날 것이고 아니라면 꽉 찬 소리가 날 것이다. 아니라면 1.5층처럼 위에 공간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녀는 어렵지 않게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지하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기반 시설을 위해서라도 있는데. 이러면 더더욱 수상쩍을 뿐이다.
모두 살펴본 결과 이 건물의 구조상 수상함- 병실만 너무 많은 것과 구조도에 의문의 숫자의 나열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숫자가 1에서 4까지 밖에 없다는 사실과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떠올리곤 그냥 단순하그녀는 어렵지 않게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지하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기반 시설을 위해서라도 있는데. 이러면 더더욱 수상쩍을 뿐이다.
모두 살펴본 결과 이 건물의 구조상 수상함- 병실만 너무 많은 것과 구조도에 의문의 숫자의 나열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숫자가 1에서 4까지 밖에 없다는 사실과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떠올리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말하려고 했으나. 이미 누가 말했기에 할 거면 하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이고 계단으로 다가갔다.
병원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허울만 좋은 가짜인 듯싶다. 무언가를 수용하는 공간만 잔뜩 붙어 있는 구조는 수용소나 실험실이 연상된다. 대강의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두고는 아래의 숫자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써두었다는 사실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아스텔의 말대로 중요한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도해 볼 가치가 없지는 않겠지.
그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구조도에 쓰인 순서대로 번호를 입력했다. 과연 이렇게 가는 게 맞을지는, 글쎄. 결과는 곧 알게 되지 않을까.
잭의 말에 아스텔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물론 너무 의심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아스텔에게 있어서는 일단 그렇게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장 보이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기에 일단 아스텔은 뭔가 더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한편 마리는 피향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도달한 곳은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의 틈새 사이로 피향이 살살 올라오고 있었다. 로비에서보다 더 진하게. 진하게. 마치 붉은색이 절로 느껴질 정도의 진득하고 잔혹한 향이었다. 어째서 이런 향이 거기서 나고 있는 것일까?
한편 선우는 막대기를 이용해서 바닥을 툭툭 쳤다. 그리고 텅 빈 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레레시아는 2층으로 향했다. 2층은 1층과 별 다를바가 없었다. 비슷한 구도의 복도에 역시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처럼 방을 확인했다면 둘 다 방 내부에는 딱딱한 침대가 4개 놓여있고 TV나 그 외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위의 담요나 이불이 어지럽혀진 흔적이 있었다. 즉, 누군가가 여기에 누워있었다는 것이었다. 허나 방에 그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창문을 열 수도 없었고, 휴지통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눕는 침대 이외에는 그 어떤 기능도 없는 방인 것처럼.
한편 츠쿠시는 엘리베이터에 내려가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덜컹하는 소리가 엘리베이터에서 울렸다. 이어 1 바로 아래의 판넬 부분이 살짝 움직이는듯 했고 이내 뱅글뱅글 돌더니 B1이라는 스위치가 새로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인듯 했다.
"....?"
한편 엘리베이터로 온 아스텔은 그 모습을 바라봤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야기했다.
"...아마도 핵심은 이 지하 1층에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올 수 있게 했다는 것은... 일단 엘리베이터로 집합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보자."
아스텔의 말을 들을지, 아니면 다른 곳을 조사할지는 별개였다. 어쨌건 아스텔은 아래로 내려갈 생각인듯 했다.
마리(쥐)는 끼쳐오는 혈향에 눈쌀을 찌푸렸다. 이내 아스텔을 중심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것 같은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이번에는 개미로 변해 엘리베이터 틈 사이로 내려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볼 것이었다. 개미는 좁은 틈으로 들어가거나 벽을 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이런 저런 공간에 잠입할 때에도 종종 썼던 방법이었다. 만약 틈이 있어서 내려갈 수 있다면 혈향을 따라 은신하며 잠입했을 것이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마리는 다시금 쥐의 모습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 구석에 탑승하였을 것이다.
레레시아의 무전에 아스텔은 그렇게 대답했다. 아마 이후에 에스티아가 3~4층을 둘러보면 마찬가지로 같은 구조의 복도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4층 맨 끝. 420호를 열어보면 거기엔 침대가 하나만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쓰레기통이 있었고 음식물 포장지나 그런 것들이 놓여있었으며 생활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 책상에는 작은 탁상 액자가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사진에 담긴 이는 다름 아닌 이전 임무에서 잠시 대치한 적이 있던 '전기 능력'을 쓰고 있던 세븐스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영어로 Elina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게 그녀의 이름인 것일까. 짧은 갈색 단발머리에 하이라이트가 전혀 잡히지 않은 이른바 '죽은 눈' 상태의 노란 눈은 섬뜩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편 마리는 개미가 되어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 안은 어두컴컴해서 아무래도 혼자 들어가기엔 힘들어보였다. 확실한 것은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로 역한 피향이 진하게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저 밑바닥이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썩은 향이 느껴지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 이상 들어가는 것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향은 엘리베이터 바닥 저 너머에서 나고 있었다.
아무튼 모두가 탑승한 것을 확인하고, 정확히는 레레시아를 제외하고 탑승한 것을 확인한 후, 아스텔은 B1 버튼을 눌렀다. 이내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머지 않아 딩동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열리자마자 눈에 초점이 잡혀있지 않은, 그리고 뭔가 흐느적거리는 느낌의 사람 세 명이 칼을 들고 돌진하듯 달려왔다.
그리고 이전 '블러디 레드' 미션에 참여한 이들 중에서 기억력이 좋은 이라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때 그 미션에서 블러디 레드에게 붙잡힌 가디언즈의 병사들이었고, 더 나아가 죽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바로 그들 앞에 나타나 검을 들고 멤버들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심장을 향해서.
마리는 레레시아가 알아낸 정보를 듣고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독히 올라오는 혈향은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이내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듯 들어오는… 이전에 만났었던 죽었던 이들에 마리는 이내 늑대로 변해 튀어오르며 그들의 칼날을 피해 가디언즈 한 사람을 밟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마리는 주변을 조심하며 인간으로 변해 통신으로 이들에게 자신이 안 사실을 전했다.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에일린이라는 사람, 엘리나와 동일인일지도 모르겠어.”
레지스탕스에 입단하려고 했던 이가 가디언즈 간부가 되어 있다니. 불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마리는 경계태세를 갖추며 이내 보검 무장을 갖추고는 주변에 공격하는 이가 있다면 바로 공격했을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검을 뽑아들었다. 공간이 좁기에 짧은 것을 택했지만, 부족하지는 않을 테다. 내려가던 기계가 멈추고 알림음이 울린다. 그 뒤로 잠시간의 정적이 불길하게 엄습해온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치는 적의 모습에, 그는 곧바로 검을 쥐고 넓게 휘둘렀다. 시퍼렇게 빛나는 서슬이 횡으로 번뜩인다. 몸통을 갈라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한때나마 같은 소속에 속했을 자들을 상대함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저들이 모두 모르는 얼굴들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나? 아니, 사실 아는 얼굴이 이 중에 섞여 있었더라도 결과는 같았으리라.
"……그 가설이 맞다면 전기신호로 움직이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몸을 조각내야 완전히 제압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리의 추론을 듣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력이 된다면 제압된 적의 사지를 끊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레레시아는 그 방을 조금 더 조사하고 책상의 서랍을 열었고 그 안에서 '전단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전단지는 브리핑때 봤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부류였다. 허나 그 뒷면에는 누군가가 메모를 한 글씨가 있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냄새를 맡은 이를 끌어들인다. -일부러 지하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인한다. -죽어도 상관없고 살아도 상관없다. -'루시아'를 작동시키기 위한 재료로서 필요한 인자만 뽑는 것이 목적.
그 이외에 더 발견되는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 이상 여기에는 단서가 없는 모양이었다.
한편 가디언즈 병사가 공격해오자 잭은 달려오는 병사의 손을 비틀고 제압을 시도했다. 별 저항없이 가디언즈 병사 중 하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철퍽였다. 하지만 비명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상태에서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선우가 다른 병사의 머리를 노리고 석궁을 발사했고 화살이 머리에 꽂혔고 이내 작은 스파크가 튀는 듯 하다 머리 쪽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병사는 그대로 땅바닥에 철퍼덕 쓰러졌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내 마리는 늑대로 변해 튀어올랐고 가디언즈 병사를 밟았으나 가디언즈 병사는 밟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마리의 발목을 잡아서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츠쿠시의 검이 그 병사의 사지를 끊어냈기 때문에 다행히 잡히지는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그 꿈틀거리는 병사는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했다. 사지가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그 모습은 상당히 괴기했을 것이다.
"...칫."
이내 아스텔은 검을 뽑아든 후에 자신의 세븐스를 이용해서 아직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단번에 벽으로 몰아세웠다. 어디 그뿐일까. 다른 쪽 복통로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움직이는 가디언즈 병사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스텔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이어 저 앞쪽에 보이는 문을 가리키면서 아스텔은 이야기했다.
"여긴 내가 맡도록 할게. 시간은 확실하게 끌어줄테니까 어서 저쪽으로 들어가.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이 오는 것은 있지만,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서 확실하게 조사해. ...아직 무사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이가 있으면 구해내야만 해."
이어 아스텔은 바람을 단번에 일으킨 후, 이쪽으로 달려오는 병사들과 아까 벽에 처박아버린 병사들까지 몰아내면서 저편의 통로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
/아스텔의 서포트는 여기까지! 아스텔 쪽으로 와도 특별히 할 것은 없으니 참고해주세요! 이제 본격적으로 스테이지 시작! (어?)
조사 결과, 책상 서랍에서 메모가 적힌 전단지 하나가 전부였다. 유인, 포획, 인자만 필요 등등.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내용에 에휴. 한숨을 쉬고 그 전단지도 주머니에 넣는다. 이제 여기서 더 할 건 없을까. 방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다가 휙 돌아서 책상으로 곧장 다가간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책상을 발로 밀어 아니 걷어차 뒤집어버리고 이를 갈았다.
"산 채로 발끝부터 저며버릴... 빌어먹을.."
대충 그런 울분 섞인 말을 몇 마디 토해내고 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 4층의 엘리베이터로 간다.
아까의 번호는 기억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부르고 올라오는지 확인한다. 제대로 왔다면 앞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번호를 입력하고 지하로 가는 길을 찾으려 했겠지.
머리를 노리는 게 정답인가? 시체를 더 자세히 살펴보거나 사지가 잘리고도 꿈틀거리는 병사의 머리에 검을 찔러넣어 확인해볼까 하는 생각이 짧게 스쳤지만 그럴 여력은 없어 보인다. 제 발로 걸어들어가게끔 하는 함정의 의미가 이런 거였나. 죽어도 움직이는 시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여기에 쓰인 시체는 언제적 것까지 끌어온 거지?
"무사하십시오."
몰려드는 적들의 공세를 도맡은 아스텔을 향해 짧은 당부를 건넨 후,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문으로 달려갔다. 문 앞에 다다라서는 팀원들에게 신호를 준 후 단번에 열고 들이닥쳤을 것이다.
레레시아로부터 오는 정보에 마리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거기에 시체인 채로 움직이는 이들. 블러디 레드를 만들었던 이의 소행인가.
마리는 선우가 쏜 석궁이 머리에 꽂히자 스파크가 튀면서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 다른 이들도 다봤겠지. 이내 튀어오르는 자신의 발목을 잡으려는 가디언즈 병사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이내 그를 도륙내는 츠쿠시의 모습에 다시금 인간으로 돌아온 마리는 입을 악문 채로 그녀를 바라봤을 것이었다.
“……”
다른 이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 했겠지만 침묵을 고수하던 마리는 이내 몸을 틀어 이내 잭이 제압하고 있는 가디언즈 병사의 머리 쪽으로 손을 향하며 전기를 뿜어냈을 것이었다. 만약 기기 같은 것을 심어서 조종하는 것이라면 전기 반응에도 그 작동이 멈추지 않을까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아스텔이 이곳을 막는다고 말하며 앞쪽에 보이는 문으로 가라고 하자 마리는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최대한 귀를 쫑긋거리며 생존자가 있을지 소리를 듣고 지독한 냄새 사이에서 익숙하거나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이 있을지 살필 것이었다.
블러디 레드에서 일하던 가디언즈 시체도 쓰는 거 보면... 가디언즈로 일하다 죽어도 시체 소유권이고 뭐고 전부 유용한 자원으로 빼돌려서 쓰는 거야? 이런 고인모독이 공공연한 건지 그래도 비밀스러운 척은 하면서 빼돌리는 건지 궁금하다🤔 크아아악 어느 쪽이든 진짜 매운 세계관......
이셔주 굿바이~`!~!!!!! 빨리 쉴수록 빨리 회복되는 거니까 이셔주는 얼른 쉬고!!!!!
이내 레레시아는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지하 1층으로 내려왔고 무사히 다른 이들과 합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 아스텔은 다른 복도 저 편으로 적들을 몰아붙이면서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방 안으로 들어설때까지 제 0 특수부대원들은 방해받는 일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덧붙여서 마리가 전기 반응을 사용해봤지만 특별히 반응하는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안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 전에 안에 기기 같은 것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거대한 지하연구실이라는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왼쪽에 있는 유리창을 넘어서서 그 안을 바라보면 컨베이너 벨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컨베이너 벨트 위에는 투명한 알갱이가 가득 들어있는 병들이 무수히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기계팔들이 그 병들을 박스에 하나하나 넣고 있었고 내용물이 가득찬 박스는 기계 팔에 의해서 또 다른 컨베이너 벨트를 통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외에 보이는 것은 왼쪽 편에 '수술실', 그리고 그 옆쪽에 원장실, 중앙에 수용소라는 플레이트가 걸려있는 방 정도였다. 또한 바로 오른쪽 벽을 바라보면 가디언즈 특유의 문양이 그려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여긴 가디언즈의 시설인 모양이었다.
-...으으...으아아아악!
이내 수술실 쪽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자유롭게 조사를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루시아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로 들려오고 있었다.
-가운데. 수용소 속에서 강력한 세븐스 반응이 있어. 그것도 두 체. ...그리고 뭔가 낯익은 기운도 느껴지고 있어. 만약 수용소로 가려고 한다면...다들 조심해줘.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지하연구실을 볼 수 있었다. 고요한 연구실 안에서는 여기저기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옆 유리창 안 컨베이너 벨트를 보니 투명한 알갱이가 가득 들어있는 병들이 무수히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기계팔들이 그 병들을 박스에 하나하나 넣고 있었고 내용물이 가득찬 박스는 기계 팔에 의해서 또 다른 컨베이너 벨트를 통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선우는 컨베이너 벨트 위에 아공간을 열어 약이든 상자 하나를 빼돌리려고 했다
그리고 수술실과 원장실, 마지막으로 수용소가 있었다. 바로 오른쪽 벽의 가디언즈 특유의 문양이 이곳이 가디언즈의 시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수술실 쪽에선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수용소에는 루시아가 강력한 세븐스 개체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수술실에 가도 할 수 있는 건 없어. 수용소로 갈게."
아무리 안 좋은 수술을 하고 있더라도 그 수술실에 쳐들어가 교전을 시작한다면 수술을 받는 사람은 죽고만다. 적어도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병 안에 든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다. 인자를 뽑아내는 것과 관련된 물건인가? 혹은 시체를 움직이는 무언가에 관계된 것? 의문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수술실이라 쓰인 문패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뛰쳐나간다.
"뒤를 맡아주십시오."
일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는 명확했다. 때가 이미 늦은 것이라면 팀원들에게 늦게라도 합류할 수 있겠지만, 늦지 않은 때라면 생목숨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츠쿠시는 수술실의 문을 걷어차고는 몸을 낮추어 낮은 각도로 검을 휘둘렀다. 육안으로는 형체 없을 예기의 검격이 아래를 향해 넓게 쏘아진다. 우선은 바닥을 파괴하며 혼란을 줄 의도였다.
엘리베이터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지하까지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방해꾼이든 뭐든 오기만 해라 뭐 이건가. 아니면 의외로 지하의 상황이 그렇게 크게 번지지 않았던가. 어느 쪽이 그녀와 에델바이스에게 호재일까. 아니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는 벽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서 있었다. 두 팔을 교차해 팔짱을 끼고. 아니면 스스로를 감싸고.
지하에 도착해 합류할 때는 위에서 나뉘었을 때와 변화가 없었다. 아스텔은 성가신 쪽을 맡고 있는 거 같으니 부디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입성한 지하는 역시나, 더러운 짓거리의 온상이었다. 알 수 없는 컨테이너 벨트 위 물질들과 비명소리. 위에는 없던 방문들의 존재. 그 사이 루시아의 경고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익숙한 거 하나는 레이버겠네. 뭐, 일단 각자 알아서 보자고."
아무리 끔찍해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그녀는 먼저 알 수 없는 병들을 나르는 컨테이너 벨트에 독액을 뿌렸다. 강력한 부식의 독이니 벨트든 병이든 녹여서 더이상 내보내지 못 하게 할 셈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후, 원장실로 다가가서 발로 문을 걷어찼다. 이곳엔 손끝도 대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술실> 수술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몸을 파들파들 떤 상태에서 침대에 팔다리가 쇠붙이로 구속되어있는 남성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세븐스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로봇이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그 오른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었고 그 상태에서 몸에서 뭔가를 뽑아내고 있었다. 고통스러운지 사내는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으나 따로 발버둥을 치고 있지 않았따. 간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주사기를 잘 보면 뭔가 투명한 알갱이들이 쏙쏙 빠져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츠쿠시의 공격으로 인해 로봇의 다리가 절단났고 그 때문에 주사기는 사내의 피부에서 빠져나와 쏙 뽑혔다. 그리고 로봇은 비틀거리면서 발버둥을 치려고 했으나 이내 정지했다.
"뭐, 뭐야?! 당신 뭐야! 왜 방해하는거야?! 수술받고 싶으면 순서를 지켜! 순서를!"
이내 사내는 뭔가 고통이 덜하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을 떴고 츠쿠시를 발견했고 그녀에게 성질을 내면서 무슨 짓이냐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원장실> 원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나 정말 여러가지 서류가 책상에 올려져있었다. 만약 그녀가 그것을 확인했다면 그게 계약서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수술의 안정성은 없으나 성공하게 될 시 비능력자가 될 수 있다. 안정성이 적지만 그래도 동의하겠는가?' 라는 문구가 확실하게 실려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에는 모두 다 글씨체가 다른 싸인이 되어있었다. 서류마다 '환자 이름'이 다 다른것으로 보아 확실하게 동의를 구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물론 그것이 페어한 것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 외의 다른 서류에는 정말로 많은 리스트가 있었다. 제대로 확인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있었고 대부분이 X 표시가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O라고 표기된 이름은 그래봐야 50여명 정도였을까? 헬무트, 카이렌스, 시엘, 루나, 레디아 등등. 그런 이름들이 대표적으로 O가 표시되어있는 이름들이었다. 허나 서류를 다 체크해도 '에일린'이라는 이름은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엘리나'라는 이름을 확인하려고 해도 그 이름도 없었을 것이다.
3년 전의 날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최소 3년간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수많은 X, 그리고 50명 정도의 O는 뭘 의미하는 것일까?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철창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이 맞을까? 여기저기서 괴성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안을 들어보면 방금 자신들이 상대했던 그 흐느적거리는 이들과 비슷한 이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철창 안에 갇혀있었기에 빠져나오진 못하고 있었다. 목 뒤에 7 마크가 박힌 이들도 있었으나 세븐스를 쓰기는 커녕 몸만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또 한 곳에서는 멀쩡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 사람들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리와 선우를 보고서도 특별히 도와달라는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사람들 중에서는 "수술 받으러 왔어요? 그럼 카시노프 님과 면담하고 여기 들어와서 대기하세요." 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게나.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제군."
그리고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창이 있는 곳이 아니라 저 앞.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얼핏 봐도 50대는 훌쩍 넘어보이는 중년 남성은 진한 자신의 콧수염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올백 스타일의 회색머리, 그리고 알이 검은 안경을 끼고 있는 사내는 느긋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저번 미션에서도 본 적이 있던 보검을 사용하는 세븐스. '엘리나'가 서 있었다.
"입구에 발을 들이밀 때부터 자네들의 움직임은 전부 확인하고 있었다만 생각보다 빨리 와서 놀라는 중이야. 하긴... 로벨리아 아가씨의 호위역을 맡았던 아스텔이 시간을 끌어주고 있으니 일단 상대하라고 풀어놓았던 '재활용품'들로는 조금 무리였을지도 모르겠군. 켈켈켈."
"......"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물어는 볼까? 여기엔 뭐하러 들어왔나? 자네들. 자네들이 수술을 받겠다고 들어온 것도 아닐테고. 아. 물론 받겠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샘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든. 아. 미안. 소개가 늦었어. 가디언즈 소속. 카시노프라고 하네. 일단 일개 연구원일 뿐이야. 켈켈켈켈."
"...제거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아니. 그러면 안되지. 잠시 대기하도록 해. 엘리나. 일단은 저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아. 참고로 딱히 저 사람들을 납치하고 그런 것은 아니야. 부작용도 설명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다 설명하고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수술을 받겠다고 한 것은 저들이야. 그러니까 내가 강제로 수술을 하고 있다거나 그런 말은 시간낭비니까 넘어가도록 하게나. 알겠지?"
뭐야. 아무도 없네. 라고 생각한 순간, 좋지 않은 기운이 수용소 방향에서 느껴진다. 가 봐야 하나?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수용소로 가지 않고 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4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책상에 이것저것 있길래 책상에 걸터앉아서 살펴보았다. 같잖은 동의서에 수많은 이름이 나열된 리스트. O와 X는 보나마나 무슨 적합성이나 필요성에 관련된 것이겠지. 이미 움직이는 시체를 보았으니 이 동그란 표시는 성공한 시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 참 한 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아서 정말 재밌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날짜가 3년 전이라. 가디언즈 창립은 그 전일 텐데. 어째서 3년 전? 그것도 하필 에델바이스가 창립된 그 해인데.
"...여긴 뭐 없을까나."
의문은 일단 머릿속에 넣어두고. 서류를 다 보고 휙 책상에서 내려온 그녀는 책상을 뒤지기 시작한다. 서랍을 열고 아래를 살피고. 책상 만이 아니라 원장실 안의 곳곳을 들쑤셔본다.
참, 자신은 이 싸구려 약팔이에 동하지 않은 탓에 한순간 간과하고 말았다. 구하러 간 대상이 구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은 실험 중에 죽더라도 세븐스가 아니게 되고파 목숨을 맡긴 사람들이었다. 명목상 모든 것은 공정한 거래라는 이름 아래 성립되었고, 이 시술이 사실상 장기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더라도 상대의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을 듯싶다. 그렇게 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니, 경우에 따라선 둘도 된다. 츠쿠시는 칼을 집어넣은 후 남자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절박한 심정은 압니다만,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시술을 담당하는 로봇에 오류가 발생해 급히 처분 절차에 들었습니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검집으로 머리를 냅다 쳐버렸다. 설득할 자신이나 여유가 없으니 일단 방심시킨 뒤 기절시켜 버리려는 것이다. 한 번에 기절하지 않았다면 몇 번은 더 쳤을 테고. 남자가 순순히 기절했다면 그를 구속한 쇠붙이를 잘라낸 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숨겨두지 않았을까.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철창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철장 안에서 갇혀 흐느적거리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멀쩡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들은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통신을 통해 다른 쪽에서 발견한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고 있던 이도, 안정성 동의서에 적힌 환자의 이름과 리스트 들이라거나. 하지만 마리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저 앞에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를 보며 마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로벨리아 아가씨라. 아무래도 에델바이스의 대장은 가디언즈에게서 그리 불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일개 연구원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마리는 눈 앞에 보이는 철창들과 이들이 저질러온 일들을 생각하며 눈쌀을 찌푸렸다. 엘리나의 제거하면 되냐는 기계적인 물음에 마리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가 카시노프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여기엔 뭐하러 들어왔냐고? 세븐스 인자를 없애는 수술이 있다기에 궁금해서 왔어. 정말 그런 일이 있는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그러니 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던 부작용이나 위험할 수 있다는 거 나도 듣고 싶은데…. 그리고 이들의 세븐스 인자를 모아서 어떤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도. 루시아를 작동시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루시아의 시신, 이곳에 있는 거야?”
궁금한 게 참 많았다. 대답해 주면 좋으려만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마리는 철장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금 카시노프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곳에 있다는 에일린을 찾으러 왔어. 여기에 있다고 하더라고. ‘리버’가 애타게 찾고 있어.”
마리는 이내 다시금 엘리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듣고 있어? 리버가 애타게 찾고 있어. 에일린.”
닮은 외모, 비슷한 이름…. 그저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나 그 두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그 가능성에 한 번 걸어보고 싶었다. 이 호소가 닿길 바라며 마리는 엘리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나는.. 마저 전화 좀 하고 올게.. 징징글 미안하지만.... 내가 거기 새벽까지 있고 싶었던 게 아니라.. 가게에서 사람 좀 빠질 때까지 나가는 거 자제해달라는 것도 있었는데 어장에 쓴 것도... 정주행하고 내가 이랬다고..? 싶을 정도로 술에 취했던 상황이라.. 결국 12시 15분? 그때 술 덜 취한 애들이 상황 파악하고 안 되겠다 돌아가는게 좋겠다 싶어서 나가고 눈으로 상황 직접 보기 직전까지 무슨 일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모르겠다 그냥... 지금까지 그래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 반이랑 왜 거기에 새벽까지 있었냐 너도 똑같다 욕하는 사람 반이라 선뜻 연락하기가 무섭네...🥺
<수술실> 수술실에서 남성을 기절시킨 츠쿠시는 그를 구석에 숨기는데 성공했다. 허나 그 숨기는 과정 속에서 근처에 컨베이어 밸트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컨베이어 벨트는 망가져있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방금 레레시아의 공격으로 부식되어버렸으니까. 아무튼 위에 놓여있는 병 중 멀쩡한 것을 자세히 보면 주사기에 들어있는 그 투명한 것과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세븐스 입자'가 아니었을까. 즉 말 그대로 이곳에서 세븐스 입자를 빼내고 있던 중이었고 그 빼낸 세븐스 입자는 저렇게 컨베이어 밸트를 이용해 운송되는 모양이었다. 어디로?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 끝을 추적하려고 해도 이미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확실한 건 박스가 안쪽에 가득 쌓여있다는 것 뿐이었다. 상자가 가득 쌓여있는 곳 부근에는 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면 지하도로가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타이어 자국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더 이상 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원장실> 책상에는 대부분 그냥 별 내용이 없는 종이서류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아래쪽 서랍에서 뭔가 중요한 서류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삺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세븐스 입자를 제거하는 기술을 이용해 세븐스 입자를 제거하는데는 성공했으며 그것으로 '루시아'를 작동시키는 연료로 사용. -꽤 많은 양이 저장되어있으니 '세븐스 입자'를 다른 기술에 사용하는 것을 검토 고려. -기술의 미달로 세븐스 입자가 제거된 이들은 사실상 폐인 상태가 되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 때로는 죽을 때도 있음. -머릿속에 '칩'을 삽입하여 전기신호를 발생. 이미 사용할 수 없는 뇌를 대체하여 몸에 명령을 내려 움직이게 하는 것이 가능 -모든 명령 구조는 '카시노프'가 시행한다. -현 시점 살아있는 채로 칩을 삽입해서 움직이는 이도 있으나 실패율이 너무 높음. 따라서 차후에는 폐인 상태가 되거나 시체가 된 이들을 재활용하는 쪽으로 검토. -공포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 여부에 따라 강력한 병력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 -프로젝트 책임자. 카시노프.
그 이외에는 특별히 뭔가가 더 보이는 것은 없었다.
<수용소> 선우는 카시노프를 노리면서 쏘았겠지만 요상하게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억제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고 총알도 발사되지 않았다. 이어 그것을 바라보면서 카시노프는 피식 웃어보였다.
"기왕이면 사탕이 더 좋은데 말이야. 나 같은 천재에게는 당분이 매우 중요하거든. 켈켈켈."
아주 가볍게 넘겨버리면서 이내 카시노프는 마리를 바라봤다. 이내 들려오는 그 모든 물음을 들으면서 카시노프는 가만히 팔짱을 꼈고 마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어 그는 숫자 3을 표시하듯이 왼쪽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면서 손가락을 접었다. 처음에는 약지, 그 다음은 중지, 그리고 그 다음은 검지였다.
"일단 첫째. 수술은 정말로 있었네. 자네들은 지금 수술을 통해서 세븐스 입자를 빼버린 이들을 보고 있지 않나. 물론 아직 수술을 받지 못한 이도 있지만 말이야. 둘째. 부작용에 대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조금 부족하기 때문에 입자를 다 빼버렸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폐인'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분명하게 설명을 해뒀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겠다고 대답한 것은 바로 저 세븐스들이야. 그렇게나 수술을 받고 싶다는데 어쩌겠나. 해줘야지.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은 그 세븐스들이지. 내가 아니야. 나는 어디까지나 희망을 들어준 것 뿐인데 그렇게 적대적인 눈빛에 비쳐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나? 못 믿겠으면 물어봐도 좋아. 그리고 마지막. 왜 그런 일을 하냐면... 나는 연구원이라서 말이야. 어디까지나 연구의 일환이지. 나는 많은 실험재료들을 얻을 수 있고, 또 저들은 결과적으로 비능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켈켈켈. 이렇게 공평하고 착한 연구원이 어디 있나. 페어하잖아. 안 그래? 다시 말하지만 모두 다 자신들이 선택한거야. 어쩌겠나. 폐인이 되거나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세븐스 입자를 빼서 비능력자가 되고 싶다는데."
"...리버."
한편 리버라는 말에 엘리나는 가만히 마리를 바라봤다. 허나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마치 못 들은 것처럼. 아니 듣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인식에도 박히지 않은 것처럼.
"혹시 의료법이나 실험 윤리, 히포크라테스 선서, 양심, 도덕... 이것들 중 하나라도 그 머리 속에 들어 있나? 내가 보기엔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모종의 이유로 저렇게 되어버린 에일린을 우리는 구출해야 한다, 이건가... 평소엔 내키는 대로 다 부수고 난리를 냈지만, 가능한 상처 없이 생포하는건 더더욱 어렵군. 격통을 느끼면 세뇌가 풀리나? 음... 아닐 거 같다만 다른 이들이 방법을 찾을 때 까진 버텨봐야지.
보검을 던졌다 받고, 보검 무장을 장착한다. 아무래도 평소보단 좀 더... 잘 피해다녀야겠다.
들어올 때부터 보였던 병 안의 물질들은 막 남자의 몸에서 추출되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 정체모를 무언가의 정체는 세븐스 입자였던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눈에 잘 보이는 것이었을 줄은 몰랐는데. 확인을 마쳤으니 더 볼일은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기에도 불길한 물건이다. 이 병 하나를 채우기 위해 몇 명 분의 목숨이 희생되었을까. 그는 병이 부서지도록 내던진 후 그나마 모양새가 남은 병들도 모조리 부숴 망쳐버렸다.
상자 근처의 문은 어딘가로 통하는 도로와 이어져 있었다. 바퀴자국이 남아 있으니 추적하기에는 좋을 듯하지만, 당장 그 길을 따라가기엔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는 미지수다. 눈으로 쫓을 수 있는 부분까지만을 유심히 살펴본 후 수용소로 향했다.
추측이지만 레시가 발견한 정보로 추측컨데 엘리나가 살아있지만 칩을 통해 명령이 가능해진 존재로 볼 수 있을 것도 같고. 엘리나가 지내던 방에서 무언가 먹은 흔적이 있으니 말이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레이버도 다음에는 칩이 꽂힌 상태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츠쿠시가 바라보는 그 끝에는 정말로 끝없는 지하도로가 연결되어있었다. 당장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차량이 움직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내 병을 다 깨부셔버리자 세븐스 입자들은 모두 사르륵 녹아 없어지면서 그 형태를 잃었다. 이어 그녀는 수용소로 향했다. 비슷하게 레레시아도 도착했고 그녀는 철창 안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모두들 눈에 하이라이트가 없었기에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 딱 그런 느낌에 가깝지 않았을까. 남자, 여자, 노인, 소년, 소녀. 정말로 다양한 나이별대로 다양하게 있었으나 그렇게 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 합쳐도 40명 정도가 전부 아니었을까.
한편 들려오는 말들을 들으면서 카시노프는 피식 웃었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의료법이나 실험 윤리, 히포크라테스 선서, 양심, 도덕. 전부 무의미한 것이야. 자네는 이 세상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알릴 수 없는 어두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래. 얌전하게 연구를 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그런 이들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 뭔가를 남긴 이들은 하나같이 그런 선을 넘나들며 연구하는 이들이야. 그럼 왜 알려지지 않았는가. 그거야 간단해. 그만큼 업적이 대단하니까 그 외의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 거야. 사람들이 맞는 백신조차도 얼마나 많은 생명의 목숨이 희생된 뒤에 만들어지는지 알긴 아나? 자네. 그런 것들을 따지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이야. 평범한 이들이 할법한 발상을 여기서 가지고 오지 말아주겠나. 무엇보다 자네 같은 테러리스트가 입에 담을 것은 아니지 않나. 양심도 도덕도 윤리도 말이야."
피식 웃으면서 이내 카시노프의 시선은 선우에게로 향했다. 이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듯 쥐면서 몸을 부들거렸다. 이어 아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켈켈켈켈.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모두 동의하에 하는 거라고 말이야. ...자네의 비난이 성립하려면 내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야 성립하는 법이야. 허나 나는 모든 것을 설명했어. 그럼에도 좋다고 남은 이들이 아닌가. 그리고 중2병이라고 했나? 자네들 테러리스트들처럼 잡히지도 않을 것을 잡으려고 발버둥치면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리의 의지가 계승되니 뭐니 하는 이들이 할말은 아니지 않나. 마찬가지야. 모두. 자네도, 우리들도 말이야. 중요한 것은 거기서 얼마나 우수한 실적을 남기느냐지. 자네들이 실적을 남기면 영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여기서 죽으면 이름없는 테러리스트 나부랭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야."
결국 제 0 특수부대도 다를 것은 없다는 듯 비웃으면서 카시노프는 품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이어 버튼을 꾹 누른 후에 그 리모컨에 말을 했다.
"헬무트. 라이너스. 칼리온. 나와라."
이내 저편에 있는 철창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흐느적거리면서 나오는 이들은 모두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가디언즈 병사들의 갑옷을 입고 있었고 모두들 총을 들고 있었다.
"가디언즈의 병사들이었으나 각자 다양한 이유로 죽은 이들이지. 모두 내 '수술'의 결과로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 ...자. 그러면 자네들의 실력을 좀 보여주겠나."
이내 헬무트라고 불린 이는 앞으로 돌격 소총을 들고 돌진하면서 총알을 쏘아댔고 라이너스라는 이는 등 뒤에 장착된 부스터를 이용해서 라이플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리온은 두 종류의 단검을 들고 돌진했다. 모두들 노리는 곳은 다름 아닌 심장이었다. 총알이 날아옴에도 불구하고 칼리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질주했다. 마치 '두려움'이나 '공포'가 없는 것처럼.
"아직 내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는데.... 루시아를 작동시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는 거야?"
마리는 카시노프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은 당장 우리를 상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많이 얻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엘리나를 보다가.... 일단 마리는 이를 악물고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리고, 세븐스들을 억압해서 그들이 살아갈 의지를 잃게 하고, 차라리 폐인이 되거나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끔 만든 것이 가디언즈가 아냐? 마치 등 뒤에 칼을 겨누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살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냐고."
그리고 마리는 스스로 수술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나, 당신들의 마음 이해가 가. 나도 내가 세븐스였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으니까. 나도 당신들처럼 마음이 무너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으려고까지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당신들 죽을 각오로 이곳에 왔다면, 그래서 비세븐스가 되어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온 거라면..... 그 목숨을 걸어 이 세상을 전복시키는 건 어때. 세븐스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야. 당신들도 가디언즈와 세상에 억하심정이 많을 거 아냐! 스스로 가디언즈의 연료가 되어 다른 세븐스들을 사지로 밀어넣는 일을 하고 싶은 거야?"
마리는 말을 하다가 이내 감정이 격해졌다가 이내 가까스로 억눌렀다.
"다들 티비에서 봤을 거야. 우리 에델바이스가 가디언즈를 상대로 싸웠던 거. 함께 가자. 당신들 스스로의 의지로."
마리는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이정도로만 마쳤다. 더 설득하기에는 카시노프가 움직이는 시체를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마리는 다시금 시선을 그 시체 세 구에 맞췄다.
"다들 머리를 노려야 해. 사지를 잘라도 되지만 그래도 계속 움직이니까 조심해야하고.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말 머리가 약점인 것 같아."
마리는 일단 무장한 곰으로 변해 이쪽으로 가까이 달려오는 칼리온의 검을 피하며 그 헬멧을 쓴 머리를 곰발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차라리 세븐스는 사람이 아니기에 문제 없다는 말이 나왔으면 했다. 다수의 빛나는 업적을 위한 소수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발상은 세븐스뿐만 아닌 비능력자에게도, 귀천과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도 위험하다. 저런 부류의 인간들이 불러올 참사는 일반적인 사고관의 사람들과는 궤가 다르다. 양심과 도덕, 윤리 같은 가치들은 무의미하지 않다. 하지만 카시노프가 풀어놓은 장설 중 이 말만은 옳았다. 에델바이스는 그런 가치를 입에 담을 수 없다고. 정확히는, 아미키리 츠쿠시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그 말이 통렬하게만 느껴져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먼드가 견제 사격을 했으나 저쪽의 3인방은 그 누구도 움찔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알을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와중에 선우가 헬무트를 아공간을 열어서 잡으려고 했으나 이내 헬무트는 능숙하게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서 그 아공간을 회피했다. 그리고 마리는 곰으로 변해서 칼리온을 곰발바닥으로 내리치려고 했지만 이내 칼리온은 슬라이딩으로 그 공격을 회피했다. 츠쿠시는 라이너스를 향해서 궤적을 그었으나 라이너스는 오른손을 들어 그 공격을 받아냈다. 팔에 상당히 깊은 손상이 가긴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은 상태로 공격모드를 계속해서 유지했다.말 그대로 그들의 실력은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공포'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몸이 다쳐도 상관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모습이 그야말로 괴기하지 않았을까. 이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시노프는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지 않나. 이 녀석들처럼 쓸모없었던 이들조차도 이 천재의 손에 닿으면 쓸만한 이로 재활용이 된다는거야. 너희들과 맞부딪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이 녀석들이 수백명이 모인다고 한다면 얼마나 강력한 병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먹을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명령 하나만으로 이렇게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이 말이야. 켈켈켈켈."
"...맞아. ...다 동의한거야. 어차피 세븐스로 살아도 다른 것이 없잖아." "너희들은 강하니까 그런 말이 가능한거야. 우리들은 세상을 전복할 힘이 없어." "...내가 총을 들어봐야 금방 죽을 거야."
선우와 마리의 목소리에 들려오는 말은 그저 깊은 한탄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야말로 절망에 가까운 목소리. 이미 마음이 꺾일 정도로 꺾이고 차라리 폐인이나 시체가 되더라도 비능력자가 되는 시도라도 하는 이들의 무거움은 이리도 무거운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시노프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켈켈켈켈. 소용없어. 소용없어. 너희들이 무엇을 지껄여도 이 녀석들의 마음에 닿을 것 같나? 그래 가디언즈가 그런 환경을 조성한 것은 인정하지. 그게 뭐 어떻다는거냐? 그렇다고 해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이 바로 저 실험체들이다! 오히려 희망의 길을 걸을 수도 있는 선택지를 제시하고 동의까지 받아낸 나 정도면 꽤 모범적인 연구원이지 않나? 그리고 루시아 말인가. 켈켈켈켈. ...그걸 너희들에게 왜 알려줘야하지? 뭐, 그래도 이 천재님은 마음이 따뜻하니 말이야. ...지금쯤이면 레이버와 함께 있다고만 해둘까? 켈켈켈!"
"아무튼 좋아. 너희들의 실력 확인은 대충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자네들의 몸을 더욱 가지고 싶어. ...가라. 엘리나.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시체를 최소 세 체는 가지고 와라."
"...네."
이어 헬무트를 비롯해 3인방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처음에 들어있었던 철창으로 들어섰고 자연히 문이 잠겼다. 이내 카시노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으면서 다른 리모컨을 꺼낸 후에 단추를 눌렀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 가득 지진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사이렌 소리가 삐익, 삐익 울리기 시작했다.
-자폭 장치 가동. 앞으로 12분 후. 이 시설은 폭발합니다.
"뭐, 어차피 이 시설이 들킨 이상 여기서 뭘 더 할 순 없으니 다른 시설로 옮겨볼까.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실험체는 많으니 말이야. 또 보자고.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살아있다면 말이야."
지진 속에서 카시노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카시노프가 앉아있는 의자, 그리고 머리에 칩이 들어있는 살아있는 시체들이 담겨있는 철창이 땅으로 꺼졌다. 마치 기계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이내 철창에 들어있던 세븐스들은 모두 당황하면서 카시노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괴로운 목소리. 그것을 들으면서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던 엘리나는 제 0 특수부대원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명령에 따라 당신을 제거하겠습니다."
이어 엘리나는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보라색 빛이 보검의 형태로 모였다. 이내 그녀는 그것을 꾸욱 잡았고 팔을 높게 들었다. 그러자 스파크가 강하게 튀는 보라색 빛이 하늘로 솟구쳤고 그대로 엘리나를 집어삼켰다. 제 0 특수부대원 전원은 모두 찌릿찌릿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 그 보라색 빛이 사라지자 전신에 보라색 장갑을 두르고 있고 어깨에 마치 코일같은 장치가 두 개 달려있으며, 허리 부분에 플러그같은 장치가 길게 꼬리처럼 나 있으며 오른손에 작은 권총. 그리고 왼손에 보라색 검을 들고 있는 엘리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갑 자체는 꽤 얇아보였으나 그만큼 매우 몸이 가벼워보였다. 이어 엘리나의 전신에 강한 스파크가 튀는듯 했고 이내 투명한 막 같은 것이 펼쳐졌다.
"...꿰뚫어라. 암드 퍼플. ...적을 관통해라."
/조금 전개를 압축시켜서..이제 보스전 시작이에요! 모두의 체력은 레벨업이 되어서 2500이에요! 그리고 어제도 말했지만 이번 전투부터는 회피에 실패해서 공격을 맞아도 반격을 가할 수 있어요. 단 회피 후의 공격보다는 공격력이 조금 낮게 적용이 되니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버스트 공격형의 공격을 맞을 시에는 반격을 가할 수 없어요! 그 점만 아시면 될 것 같아요.
패시브 스킬 - 엘리나의 보검 해방: 엘리나의 몸에 전자 결계가 쳐진다. 이 전자 결계가 쳐져있을 시에는 회피보정이 들어가서 공격을 할 때마다 명중다이스를 돌려야만 한다. 1이 명중. 2가 실패. 만약 실패시에는 엘리나의 몸이 전자화가 되어서 공격을 흘려버린다. 단 전자 결계는 특수한 조건을 만족할 시에 바로 없애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혹은 결계가 쳐져있을 때 3번의 공격이 명중하게 될 시에는 다음 2턴동안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