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우리는 영웅의 존재를 믿는다. 위대한 영웅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당장 우리들의 곁에 있는 영웅들 역시 우리를 바꿀 수 있는 영웅이니까 말이다. 불타는 집에서 아이를 구해온 사람이나 스스로의 몸이 타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을 두드린 이들. 단지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어 영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 이런 소소한 구원자들이 우리의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 옥소경, 사회의 미니 히어로 발췌
불만을 가지지 않고 살았던 건 아닌 것 같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과는 크게 거리가 멀어보이는 뿔과 꼬리, 이따금 크게 흥분할 때면 지릿거리는 정전기들에서 내가 평범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적어도 어릴 적의 나는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시대는 커다란 불덩이를 만들고, 검에 의념을 걸어 좍좍 베어대는 시대니까 뿔과 꼬리 정도는 나만의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사람들의 기억과 그 흔적에서 오는, 나에게 보내는 불쾌한 시선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지금이 되어선 내가 잘못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었던, 게이트에 자신의 부모님이 실종되었던.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었고, 적어도 나는 몬스터가 아니었으니까. 내 각성은 타인보다 이른 때에 시작됐다. 어릴적 나를 키워주셨던 보육원장님의 말대로라면 내가 의념을 각성한 것은 네 살 때였다. 친구가 먹는 음료에 약한 따끔함을 추가해 울음을 터트리게 했던 것이 내가 의념을 각성하고 했던, 첫 행동이었다. 물론 보육원장님은 놀라긴 하셨지만 엄청 무서워하거나 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결국 자신이 돌보는 아이에게,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하나 더 있을 뿐이었으니까.
" 유하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
어린이날에 들은 질문에 대해 나는 잠깐 고민하고 말을 꺼냈다.
" 엄청, 엄청나게! 아무튼!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 " 국왕님처럼? " " 네!!! 그보다 더,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
어린 때의 내 첫 꿈은 위대한 존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즈음부터 내 머리에 있던 뿔이 점점 자라기 시작했고 꼬리가 조금씩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에 따라 자연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졌단 것도, 그런 시선에 대해 보육원장님도 내색하지 않으시면서도 나를 동정하시던 그 눈빛도 모두. 나를 우러러보는 시선처럼 바꾸고 싶었다. 그렇게 아직 어린 자존심 덩어리는 차츰 성장해갔다. 아마 그때, 그 우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고민을 해본다.
*
그는 눈앞에 있는 소녀를 살펴보았다. 나잇대에 어울리는 감정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성장도. 그것은 그녀만의 장점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의념 각성자를 구분하는 요소. 레벨, 스테이터스, 기술. 아직 나이가 있으니만큼 레벨과 기술은 형편없거나 없을 법 했지만 적어도 출발선에 해당하는 재능만큼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었다.
" 네 이름은 뭐니? "
순전한 호기심에 질문을 던진 마도사를 유하는 위아래로 훝어보았다. 보육원장님이 아무한테나 이름 알려주지 말랬는데, 이 사람은 누구길래 내 이름을 물어보는거지?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 내 이름은 아서 도브만이란다. 헌터 마도사지. "
그런 유하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마도사, 아서는 정전기들을 모아 작은 새를 만들어냈다. 샛노란 빛의 참새를 닮은 새가 유하의 주위를 가볍게 떠돌았다. 유하가 손을 뻗어 새의 부리와 가볍게 부딪혔을 때. 손가락에서부터 이어지는 살짝의 찌릿한 느낌이 전신을 가볍게 훝고 지나갔다. 그 느낌에 깜짝 놀라면서도 묘한 흥분에. 유하는 조금의 긴장을 풀고 얘기했다.
" ... 하유하에요. "
소녀의 경계를 보면서 아서는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보통 그 나잇대의 아이들은 마도라는 기술 자체를 신기해하거나, 의념 각성자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러나 유하는 그렇지 않았다. 마도에 관심은 보이지만 여전하게 아서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아서는 몸을 살짝 숙여 유하와 눈을 맞췄다. 연한 토파즈를 닮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아서는 자신의 눈을 통해 유하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 뿔이 예쁘구나. "
그리고, 아서가 그 행동을 후회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긴장을 풀려 던진 말에 유하가 몇 걸음 뒷걸음치며 뿔을 숨기려 했으니 말이다.
" 벼, 변태에요? " " 아니. 저기. 아가씨? 나는 그런 사람 아냐? "
아서는 허둥거리면서도 품에 있던 작은 명함을 꺼냈다. UHN 허가 길드, 쥬러스. 마도사 아서 도브만이라는 이름이 적힌 그것을 한참 살피던 끝에야 유하는 조금 긴장을 풀고 도브만을 바라봤다.
" ... 그래서. 왜 물어보셨는데요? " " 아가씨는 의념 각성자로 보이는데 맞니? "
유하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 모든 마도사들은 괴짜적이지. 마도라는 학문이 그렇단다. 단순히 아무 도움도 없이 마도라는 기술을 배우기도 힘들고 말야. 그런데 아가씨... 헌터에 관심 있어? " " 헌터? "
급히 기억을 뒤져보는 유하를 기다렸다. 아서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나름 시간이 많은 것도 이유였다.
" 그래. 스카우터를 만나지 못한다면.. 헌터가 되더라도 아가씨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야. 가디언만은 못하지만 이쪽도 꽤 돈을 버는 편이란다. " " 얼마나 버는데요? "
돈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유하가 고개를 들었다. 자극이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이라, 욕심이 많은 아이인가? 하고 아서는 생각했다.
" 사람마다 다르지. 대형 길드의 길드장은 연에 수천만 GP를 벌기도 하고, 아니라도 자기 능력이 어느정도 보장된다면 평범한 직장인보단 많이 벌 수 있을 거란다. "
그 말에 우물쭈물하던 유하는, 마음 속에 있던 무언가를 꺼냈다.
" 그럼. 헌터는.. 위대해질 수 있어요? "
유하의 고민. 그 다른 이들의 시선에 신경쓰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론 그 눈빛을 바꾸고 싶단 생각이 있었다. 아서는 잠시 유하를 바라봤다. 그 눈이, 어린 아이의 그것치곤 썩 성숙해보였다.
'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라도 있는 건가. '
그럴 법도 했다. 헌터인 그에게는 이종족과의 차별이랄 것이 덜했지만, 사회에는 은연중에 그런 차별이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게이트에 의해 가족을 잃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다.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게이트가 열려 사람이 죽는 것에 무뎌지는 세계이기도 했다. 그들은 증오를 같은 사람에게 돌리기보다 게이트. 너머 몬스터라는 존재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이종족과 인간의 혼혈. 눈 앞에 있는 유하와 같은 아이는 예비 몬스터. 딱 그 정도의 감상일테니까. 아서는 웃음을 그려냈다. 그가 지어낼 수 있는 최고의 미소로 말이다.
" 물론이지. 13영웅 중 하나인 투왕만 보더라도, 최강의 헌터로써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으니 말이란다. "
그 말을 들은 유하는 고민하듯, 고개를 숙였다.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이 일이 단순히 나를 속이려는 것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지만 그 무언가들을 밀어내는 것은 지금까지 쌓이고 응어리진, 원망의 무언가였다.
" 더 들려주세요. 헌터에 대해서. "
눈빛을 바꾼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보면서, 아서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유하와 그녀의 첫 스승이었던, 마도사 아서 도브만의 첫 만남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오토나시 또한 어른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영혼의 오토나시와 특별반 반장의 자리를 맡고 있는 태식의 시야는 전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 차비 정도는 남길 것. ”
영수증이 필요없다니 특별반의 회계 이대로 괜찮은가? 아직 길드화는 진행 도중이니 괜찮은것 같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오토나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폴짝 하고 일어납니다. 바른 자세가 건강에는 좋다고 하지만... 오토나시에게 이 자세는 너무 좀이 쑤시는 걸요! 크고 굵직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이게 끝인 것 같으니 더 이상 진지해질 필요도 없고 말이죠.
“ 음. 약간의 시간 정도는 있겠지? 그래도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인 거야. ”
지금 당장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면 분명 태식이 GP를 주면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을테죠. 오토나시는 감사 인사를 하듯 태식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