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어둑어둑한 밤, 선우는 잠옷에 가까운 얇은 옷을 걸친 채 한적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딱히 할일은 없었다. 그저 냉수 한잔을 마신 후 집 안에만 있기 싫어 나온 것이었다. 초소에 있는 동료들을 놀리러 가볼까 아직까지 열려있는 편의점이나 가볼까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전자는 재수 없게 대장에게 걸리면 골치 아파 질 것이고 후자는 지갑을 두고왔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그런 날이다.
"그런 약골들 따위에 왜 떠는 거야? 몇번이고 이겼던 약한 놈들이잖아. 3위가 그정도 밖에 안된다면 나머지는 뻔하잖아. 쫄지마"
혼잣말을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놈들은 약하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강한 언변과 악행들을 연출하여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줘 적들을 위축시키고 공격을 소극적으로 하는 게 놈들의 전략이다. 내가 진짜 두려워해야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니까.
벤치의 앉아 한숨을 내쉰다.레이버와 글라키에스와 싸울 때를 회상하며 그 당시 자신의 행동에서 아쉬웠던 점, 보완해야할 점을 떠올린다. 이미 전투 후에 수차례 이루어진 피드백이지만 놓친 것은 없을 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가 싶어 다시 한번 복기한다.
선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내 보검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보검에서 약한 빛이 나는 듯 하다, 루시아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몇 번이고 이긴 것은 아니지 않아요?
뒤이어 목소리와 함께 그의 보검에서 루시아가 천천히 튀어나왔다. 물론 형태가 보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홀로그램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에 참으로 유려한 느낌으로 쏙 튀어나온 루시아는 날개짓을 하면서 선우의 얼굴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날개짓을 위아래로 하면서 하늘에 떠있는 것을 유지하면서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무슨 일로 불렀어요?
자신을 불렀으니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루시아는 일단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무엇을 시킨다고 해서 루시아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말은 해보라는 듯, 루시아는 가만히 그의 물음을 기다렸다.
물론 진짜로 쓰러뜨린 건 레이버 뿐이지만 그 두사람의 목적인 [0특수부대를 해치우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우리의 전략적 승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니면 또 뭐 어때? 말이라도 기분 좋게 해야지"
그때, 매우 작은 크기의 요정과도 같은 존재가 천천히 튀어나왔다. 루시아. 한 여아의 세븐스로 이루어진 존재. 분홍색 머리칼과 보라색 두눈, 그리고 젖살이 아직 빠지지 않아 제법 귀여운 느낌까지 들었다. 날갯짓을 하며 자신의 눈 높이에 맞추자 신기해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물론 홀로그램 비슷한 존재라 만질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해보고싶은 게 사람 심리니까.
"네 이야기가 궁금해서"
홀로그램일 뿐인 그녀가 심부름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해봤자 말을 전하는 등의 메신저 역할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호주머니에 있는 '트폰'이가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우리의 힘을 증폭할 수 있으면서도 글라키에스와 레이버와 싸울 때 우리의 목숨을 구해줬잖아. 감사 인사도 할겸해서"
-글라키에스를 두 번 이겨? 보검 속에서 다 지켜보고 있지만 그건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물론 긍정적인 생각도 나쁘진 않지만, 그게 너무 도가 심한 것은 허세밖에 되지 않아.
적어도 루시아의 입장에선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글라키에스와는 단 한번도 승리를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정말로 운 좋게 한 번 빠져나갔고, 다른 한 번은 풀어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것을 이기는 것이라고 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루시아가 봤을 때 아직 이들이 글라키에스와 제대로 싸우기엔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좀 더 강해지지 않는한 어림도 없을 정도로.
아무튼 선우가 손을 뻗어서 루시아를 만지려고 해도 루시아는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홀로그램을 만지듯, 손이 쑤욱 밖으로 빠져나갔을테고 루시아는 이내 날개짓을 해서 좀 더 위로 올라서 손가락과 겹치지 않게 빠져나왔을 것이다.
-내 이야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그 말에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더욱 더 나아가 우리의 힘을 증폭할 수 있으면서도 목숨을 구해줬다라는 말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루시아는 고개를 다시 한 번 반대편으로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힘을 증폭해줘서 도와줬다는 것을 말하는걸까? 그거라면 원래 나는 그런 힘을 가진 세븐스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 뿐이야. 그 동안은 보검의 기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제대로 도울 수 없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아마 이제 '버스트'를 쓰는 것에 이상이 있거나 하진 않을거야. 출력은 내 힘으로 올릴 수 없지만 보검을 안정화시키거나 할 순 있거든!
자신만만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루시아는 이내 날개짓을 하면서 8의 형태로 날았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와서 날개짓을 하며 공중에 떠 있었다.
선우는 자신의 본심을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것에 스스로가 놀랐다. 모두에게 비밀로 했던 것인데 왜 이것을 겨우 두번 만난 그녀에게 말한 걸까? 어쩌면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을 뿐더러 오랜 기간 자신과 동료들을 지켜봐왔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모습이 인간이 아닌 요정이나 천사와 비슷하기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음...어자피 이 시간엔 너와 나 밖에 없고, 넌 남의 이야기를 떠벌린 타입은 아니니 이야기나 해보자."
아직 에델바이스가 글라키에스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 특유의 오만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겠지. 자신의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았고 도발은 그저 하찮은 풀벌레의 울음소리에 불과했다. 그의 도발과 조롱은 그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거짓말이자 만용에 불과했다. 이는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도망쳐 버리거나 싸울 의지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루시아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저 3D 영화의 홀로그램처럼 손을 통과하여 날개짓으로 다시 그의 눈높이로 왔다.
"강한 세븐스네. 그러니까 넌...정말 대단한 친구구나!"
죽어서까지도 자신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가 이내 그만둔다. 구태여 그녀가 세븐스만이 남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언급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루시아는 이내 날개짓을 하며 다양한 공중 묘기를 보여주다가 공중에 떠 있었다.
"맞아, 세븐스 토크. 잠도 안오고 그냥 이야기나 해볼까 해서. 나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 지 취미는 뭔지 부터 해서"
자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가르쳐달라고 해도 루시아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능력의 파편인 세븐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자신에게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취미가 뭐냐고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좋단 말인가. 그냥 평소대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일까.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내가 살아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니겠지? 나는 세븐스 능력이 구현된 것 뿐이야. 물론 모두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구경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고 그외 여러가지를 알고 있지만 프라이버시상 그런 것은 알려줄 수 없어. 아무튼 나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조금 뜻밖이야. 어떤 의미로는 조금 신기한 물음이야.
혹시나 자신을 실제로 살아있는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루시아는 확실하게 그 부분을 정정하려고 했다. 자신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에스티아가 세븐스 인자를 이용해서 보검에 심었고, 그 인자가 반응해서 이렇게 '능력'으로서 나온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이미 죽어버린 '루시아'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해도 그건 내가 아니라 '루시아'라는... 이 능력의 진짜 소유자에 대한 것밖에 알려줄 수 없어. 하지만 그 루시아는 이미 없어.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그냥 이렇게 모두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게 취미야. 이래보여도 보검에 있으면 꽤 이것저것 알 수 있거든. 물론 보검을 놔두고 다니는 이들에 대한 것은 알기 힘들지만 그래도 비행하면서 보는 것도 좋아하고.
이래보여도 꽤 많이 알고 있다는 것마냥 의기양양해하면서 루시아는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그럼 내 쪽에서 물어볼까? 왜 그렇게까지 상대를 도발하려고 하는거야? 그 말은 전혀 닿지 않을거야. 가디언즈에서 보검을 드는 이들에게는 조금도 말이야. 나쁘게 말하면 날파리가 앵앵거린다는 정도로밖엔 생각되지 않을걸? 그렇게 하면 오히려 힘 빠지지 않아?
자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가르쳐달라고 해도 루시아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자신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능력의 파편인 세븐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자신에게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취미가 뭐냐고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좋단 말인가. 그냥 평소대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일까.
"알고 있어. 네 주인은 이미 하늘나라 갔고 너는 그녀의 능력이 구현된 것 뿐이라는 것. 그렇다고 해서 네가 존재하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잖아? 다른 누군가에 대해 궁금한 게 아니야. 오히려 그런건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을껄? 무엇보다 내 눈 앞에 너는 그냥 요정이나 천사처럼 생긴 무언가인데 이런걸 궁금할 법도 하잖아?"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자신의 장비나 특정 물건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인형에게 이름을 붙히고 마치 그것이 살아있는 듯 행동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불행을 슬퍼하며 그들의 행복을 바란다. 게임 캐릭터의 생일이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챙겨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 그게 궁금했어. 이미 죽어버린 루시아에겐 명복을 빌어주는 것 밖에 해줄 순 없지만 그녀의 파편과는 적어도 대화만큼은 할 수 있을테니까."
의기양양한 루시아를 바라보며 귀여운듯 소리내어 웃었다. 남들을 지켜보고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다운 대답인 것 같았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어. 이젠 내가 대답할 차례지?"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대답에 당황했다.
"아까도 말했듯...솔직히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살짝 머뭇거리다가 결국 답한다.
"어쩔 수 없잖아? 두려운 걸 잊으려면 그 수 밖에 없는걸?"
잘 알고 있다. 이전에 레이버와 싸웠을 때, 그는 자신의 도발이 적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당시 자신이 레이버가 하는 말에 아무런 감흥과 감정이 들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의 머리가 깨질듯 아파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이 아니었지만.
적들도 마찮가지겠지. 그저 풀벌레 울음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도발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힘 빠지지 않냐고? 힘은 원래 없었어. 이건 그저 도망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느라 발버둥 치는 거야.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죽어, 얼음동상이 되든, 익사체가 되든, 그런 강한 적과 싸우면서 너무나도 무서우니 억지로 적을 깎아내리는 거지."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레이버를 보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분노에 두려움이 집어삼켜졌었다. 그렇기에 이전과는 다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며 그저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적은 약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싸워라. 이길 수 있다. 스스로를 세뇌하는 거야. 그뿐이야."
말의 힘은 대단하다. 적어도 그렇게 말을 할때만큼은 두려움을 약간이나마 없앨 수 있으니까.
"나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 설령 아니어도 이 일 저 일 같이 겪다보면, 나중에는 친구라고 부를 날이 올 수도 있을 거고."
오히려 지금이 친구 이상 같기도 하고? 레레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솔직히 목숨 걸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게 친구보다 더- 뭐라고 할까, 밀접한 관계가 아닌가 싶은데. 사실 그녀도 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보고 열 받으면 칠 수도 있는 거지. 억울하면 너도 나중에 내 등짝 한 번 치던가. 아니면 발판이라도 되어줄까?"
쥬데카의 전투 스타일이면 등으로 발판 한 번 해주는게 이득이겠다며 말만 하란다. 이로써 그녀가 등짝을 때린 건 친해서가 아니라는게 확실히- 되었을까? 판단은 그의 몫으로 남겨두고 식어가는 카푸치노를 조금식 마셔간다. 잔을 내리며 꽤 줄어든 안을 슬쩍 보고 서서히 어둠이 짙어가는 창 밖도 다시금 보았다. 슬슬, 이란 생각이 드니 얘기를 마무리할까.
"처음부터 혼자였으면 모를까. 처음부터 둘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너무 갑작스럽게 그런 일이 일어나서, 준비도 안 되었는데 세상에 내던져졌으니 매달릴 것이 서로 밖에 없었지. 뭐, 그래. 축하까지는 아니지만 좋은 일인 건 확실해. 그거면 되지 않나 싶고."
그래. 그저 오래된 일을 하나 좋게 마무리 지었을 뿐인 거다. 나머지 좋은 일은, 딱히 물을 것 같지 않으니 오늘은 얘기하지 않는 걸로 하자. 그녀는 창 밖을 보는 쥬데카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물끄러미. 별 의미 없이. 그런 다음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는데 타이밍 좋게 그녀의 단말기가 울린다. 코트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성가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라라가 그만 싸돌아다니고 들어오라네. 환자 그만 괴롭히라고."
이번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잔의 남은 음료를 끊지 않고 다 마셨다. 깨끗이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일어날 채비를 하며 묻는다.
"얼른 마시고 가자. 아님 더 있을 거야? 이거 마시고 몸 따뜻해진 김에 얼른 들어가는게 제일이긴 한데."
말이 묻는 말이었지, 쥬데카를 보며 빙긋이 웃은 얼굴이 어디 더 있겠다고 말해보라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아마 뭘 할 것처럼. 예를 들면 파도에 갇힌 그를 꺼냈을 때라던가.
-그렇게 두렵고 무서우면 왜 여기서 싸우는거야? 아무도 너에게 싸움을 강요하지 않았잖아. 아무도 너에게 협박하지 않았어. 싸워야한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루시아가 가장 크게 느낀 의문은 바로 왜 싸우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허세를 부리면서까지 두렵고 무섭다면 꼭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보급쪽으로 가면 더더욱 활약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바로 루시아의 결론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싸움을 선택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바로 이 위험한 싸움에. 그것도 최전방이나 다를바 없는 '제 0 특수부대' 안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만약 억지로 어떻게든 싸우는 거라면... 각오를 다시 잡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을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는 어중간한 각오로는 하기 힘들거야. 나는 글라키에스 정도밖에는 힘을 모르지만, 글라키에스 정도로만 해도 각오가 없으면 같은 스타트라인에 설수조차 없을테니까.
물론 루시아는 선우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허나 그렇게나 무섭고 두렵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본 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아스텔과 에스티아, 그리고 로벨리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각오가 있었다. 설사 여기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강한 각오가. 그 각오 안에 두려움은 없었다.
허나 허세를 부리면서까지 자신을 속여야하는 두려움은 보통 큰 것이 아닐테니까. 그것이 루시아는 걱정이라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아마 레이버가 무너진 이상 가디언즈의 보검 사용자들은 더더욱 강하게 압박하고 본격적으로 적대하게 될 거야. ...내 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용자들의 보검에는 다른 뭔가가 또 있어.
마치 자신같은 느낌의 무언가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시아는 굳이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더 거론하지 않았다. 명확하지 않은 것을 잘못 말해봐야 오히려 혼란이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애초에 친구가 정확히 뭔지부터 정의해야 한다면 그렇게 성가신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확실해서 나쁠 것 없다지만 가끔은 애매한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음료를 또 한 모금 마신다. 슬슬 식어가며 미지근해지는 핫초코를 보다가 레레시아의 말에는 그런 의미는 아니라는 듯 웃었다.
"억울하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주고받을 만한 것도 아니고요. 발판은 글쎄요, 필요하다면 그땐 부탁드리겠습니다."
너 혼자서는 닿지 못하는 곳이 있으니까. 발판이라고 하니 좀 뭣하지만... 어쨌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겠다고 덧붙인 뒤에 그녀의 말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고갤 천천히 끄덕인다. 처음부터 둘이었기 때문이라. 그러던 와중에 울리는 그녀의 단말기와, 단말기를 확인한 그녀의 한숨에 너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거의 다 마셨습니다."
대충 두어 모금 정도 되는 양을 한번에 들이킨 너는 컵을 내려놓고 레레시아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널 보며 지은 표정은... 뭐 어쩌겠는가. 네가 여기서 혼자 있겠다거나 하면 아마 라라시아에게 한 소리 듣겠지, 의외로 마음을 쓰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는 어깨에 걸친 외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꽉 붙잡았다. 이것조차도 굳이 마음쓰지 않을 일에 쓰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녀가 물리력을 행사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것도 좀 그렇고.
>>491 ??? 무슨 소리지...? 적어도 나는 아니야. 진행 중에 메인이 되는 건 플레이어 캐릭터라고 항상 느끼고 있는 걸. 최근의 레이버 전만 해도 중심지에 MPC는 제외하고 플레이어만 있었고. 도대체 어느 부분이 플레이어 캐릭터들이 쩌리로 보였을까? 열심히 참여한 내가 쩌리 취급 당해서 오히려 불쾌한데? 나는 그동안의 진행에 일절 불만 없고 다음 진행을 손꼽아 기다리는 참여자야. 잘 모르면서 아무말 하지말고 불만 있으면 직접 말하자 좀.
>>491 온 김에 의견을 드리자면! 일단 관전자라고 한 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있었는지 말씀을 해주셨나요? 예를 들어서 NMPC의 활약으로 절대 승리할 수 없는 걸 이겼다든가, 다른 캐릭터들이 뭘 해도 소용이 없었는데 NMPC가 뭔갈 하니까 바로 효과가 있었다! 라든가 말이죠... NMPC가 주인공처럼 되고, 나머지가 엑스트라화되려면 말 그대로 포커스든 뭐든 전부 NMPC에게 맞춰져 있다는 건데, 이런 근거가 없다면 전 동의하기가 좀 어렵네요.
물론, 에델바이스를 창단하고 플레이어 캐릭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건 NPC인 로벨리아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벨리아가 주인공 같은 거 아니냐 하면, 글쎄요... 이건 군상극에 가깝지 주연과 조연이 딱 나뉘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우선 웹박수의 내용에 따르면 'MPC의 비설이나 그런 것이 스토리에 녹아있기도 하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건 그 전에 글라키에스와 싸운 적이 있었던 바로 그 고독의식이 있었던 거기 같은데.. 음. 일단 캡틴으로서는 그냥 원래 있던 배경이고 거기 출신이었던 애들을 MPC 2명으로 넣어서 일단 에델바이스에 있다는 설정으로 넣은 거지만...음. 저도 조금 어? 스러운 느낌이 있기 때문에 일단 여러분들의 의견을 물어본거랍니다.
혹여나 이 관련으로 조금 문제가 있다라고 느낀 분이 계시다면 얼마든지 얘기를 해주세요. 딱히 뭐라고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런 부분은 직접 참여하는 이들의 의견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해야하니까. 소중한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우면서도 싸워야하니까. 너도 알고 있잖아? 왜 우리가 싸워야하는 지."
보급도 물론 꼭 필요한 일이다. 자신이 쓰는 모든 물자, 무기, 탄약, 모두 보급에서 나오니까. 사실 보급이야말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레지스탕스 활동의 가장 큰 활약을 하는 이들 중 하나가 그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싸움을 선택했다. 죽는 것이 두렵다. 그녀말대로 차라리 보급쪽으로 이동한다면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음...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진짜 보급쪽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몇만 t이 되는 무거운 물건도 거대한 빌딩 한두채도 일단 아공간 속에 넣을 수만 있다면 쉽게 운반할 수 있으니까...음...진지하게 대장한테 투잡 뛰게 해달라고 한번 건의해봐야겠어. 개인 여가시간 쪼개서 무료 봉사하겠다는 데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물론 대장이 허락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건의라도 해볼까 한다.
"알고 있어. 내가 아는 녀석들은 내가 당장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도 비난할 놈들이 아니야. 그저 날 걱정해주겠지. 그런데도 난 여기 있을꺼야. 만약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되잖아. 그건 죽는 것보다 더 싫거든?"
물론 알고 있다. 선우의 의지와 각오는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나약하다. 바람불면 꺼질 촛불과도 같다. 지금 그가 한 일은 촛불이 꺼지지 않게 기름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것일 뿐이다.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까. 그러나 그런 목숨이 사라지는 것이 싸움이고 투쟁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각오 속에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전장에 나섰다.
"당연하지. 하찮은 벌레 놈들이 자신들의 동료를 쓰러뜨렸는 데 발광하지 않고 배기겠어?"
아마 생전의 루시아는 매우 사려깊고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소질이 있는 친구인 것 같았다. 겨우 그녀의 파편인 존재가 이렇게까지 그를 당황하게 하고 말문을 막히게 하니까.
"..."
"복수"
그에게서 옅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몇밤을 자도 잊지 못한다. 아직도 그 때의 악몽이 자꾸 떠오른다. 그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내 가족과 친구, 이웃들을 살해하고 억압했던 가디언즈와 망할 정부를 무너뜨리는 거야. 그게 내가 싸우는 이유야."
그렇기에 레이버가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그가 그토록 분노했을 지도 모른다.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이려한 그녀에게서 자신의 마을을 습격한 놈들이 보였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