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아닌 것 같다. 아닌가? 그가 무감정하게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조금 되는 듯한 모양새였기에 너는 진심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아마 농담이겠지.
"그러게요, 대체 누가 사람의 정의를 내렸을까요."
막연하게 이런 존재라면 사람이다, 인간이다 하는 생각은 있었을지언정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그래도 모처럼 생긴 기회에 너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런 부분은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굳이 범주를 정하고 싶지도 않고요."
인간이 다른 동식물들을 분류할 때 쓰는 방법을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까? 좀 더 멀리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과도 닮지 않은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바라보는 우리는 어떨 것인가? 그들은 인간이라 불리는 종 각 개체를 동일한 개체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당장 네 앞에 선 그와 너조차도 많은 게 다른데. 대체 뭘로 묶어 인간이라고 부르겠느냐 그 말이다.
"하하... 이상적이라기보단 조금, 답답한 게 아닐까요? 상상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 싶습니다."
냄비에 물을 받으며 비아냥 섞인 말을 건네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너는, 혹시 뭔가 할 게 없을까 싱크대 주변을 살폈다.
"미쳤을 때 본 게 진짜 본연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외려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미쳐 살아가는 거겠죠."
어느 쪽이든 반대편에 놓인 것을 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그러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셨음 해요."
너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었고, 그가 좀 더 긍정하는 사람도 이기적인 존재였으니. 이타적으로 비춰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너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그가 꺼내는 유머를 들었다.
"조금 아쉽네요, 나중에 기억나면 말씀해주세요."
아마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먼저 꺼낸 이야기었기에 꽤 기대했건만 답을 들을 수는 없었으므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는 이어진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 할 때였다. 술을 잘 마시냐는 물음.
"잘 마시는 편은 아닙니다, 쓴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해서요."
에봇은 어떠십니까? 그는 술을 잘 마실까? 잘 마실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되물었던 너는 틀을 집어넣은 뒤에 그가 앞으로 나서자 뒤로 물러선다. 곧 오븐이 닫히고 타이머가 설정된다. 이제는 오븐에서 파이가 구워질 동안 뒷정리를 하면 되는 걸까, 싱크대를 돌아보고 설거지를 대신 해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를 따라 너도 싱크대를 쳐다본다. 싱크대의 넓이가 적당히 넓다면 아마 너도 설거지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스물 넷입니다, 에봇은요?"
뜬금없을 수 있는 질문이긴 했지만 사실 이름을 서로 주고받았을 때에 나왔을 만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너도 지금이 때라고 생각한 건지 그의 나이를 묻는다.
제는 눈을 떴다. 상반신만 일으키며 코를 세우자 피 비린내가 자욱하다. 명색이 황제인데 이런 곳에서 잘도 잤다. 아무렴 어때, 폭군이라 하든지 말든지. 고깃덩어리 사이에서 자는 게 한두 번이게. 졸음이 가시지 않아도 팔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누군가 제를 잡아 안아올렸다.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기다렸더냐." "신은 늘 곁에서 폐하를 기다리고 있지요."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