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ry to break my fall, down this rabbit hole I go Who are you? I hardly know, I should think that I would Wake up What a disaster to be late for my own ball Wake up
숨기지 않으려면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각오한 얘기지만 역시 조금 따끔거리긴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세상이 동화 같지 않다는 걸 잘 아는데. 미카엘은 당신을 푹 끌어안은 고개를 절대 떼놓지 않겠다는 듯 머리를 조금 더 숙였다. "응, 알고 있어."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한 뒤로 한참을 침묵했다. 도망칠 곳이 없고 이런 일은 반복 된다. 눈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더라면 이미 한 번 크게 들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미카엘은 시선을 크게 돌렸다. 왼쪽 아래. 무언가 생각할 때만 굴러가는 위치였다.
"페로사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잘 해주는구나."
그렇지. 당신과 미카엘은 제법 잘 맞는 사이였으니까. 어렴풋이 생각만 하던 걸 조리 있게 얘기하는 모습에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 더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라. 나도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하잖아, 그렇지만 나는 무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거야. 쫓아오지 않을 때까지가 아니라, 쫓아올 수 없을 때까지. 미카엘은 조용히 눌러 담는다. 지금 얘기하기는 이른 얘기가 잠깐 목에 걸렸기 때문이다. 쫓아올 수 없을 때까지 물어뜯는다는 얘기 말고, 그 이전의 물어뜯겠다는 결심을 만든 사건을.
"으응, 외면하지 않을게.."
평범한 일상도, 설령 지옥을 걷더라도 함께. 익숙하다는 말에 미카엘이 다시 눈을 굴린다. 수많은 단어 중에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여러 가지를 선택하고, 간추린 끝에 느릿하게 숨결과 함께 뱉을 수 있었다. "무르면 안 돼." 조그마한 맹세를 약조하기로 했다. 지금껏 많은 사람에게 했던 약속이지만 당신이라면 지켜낼 것을 안다. 그래도 확신을 받아내고자 한다. 나는 당신과 평생 같이 있고 싶으니까.
솔직한 대답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미카엘은 한참이고 기댔던 고개를 뗀다. 미카엘, 우리는 결국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란다. 누구의 의지도 아니고, 우리의 의지로.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목소리를 치워두기로 했다. 동글동글한 눈이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쿡쿡 쑤신다는 말과 함께 씻고 싶다는 의사 표명에도 쉽게 당신을 안은 팔을 놓지 않았다. "응, 찝찝하니 얼른 씻고 싶지.. 어서 씻고- 푹 쉬자."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을 때, 미카엘은 아무렇지 않게 품에서 폭 떨어지더니 손에 낀 장갑부터 벗었다.
"그런데- 사실 2층에도 욕실이 있어."
자신의 정장 코트를 벗어 아무렇게나 구석에 밀어두고, 셔츠 단추에 손이 갔을 때 종알거린 말이었다. 이제 보니 미소가 가늘다. "페로사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결국 이것도 말해버리네." 라고 덧붙이는 어조도 제법 얄미웠지만, 미카엘은 아랑곳 않고 욕실 안으로 쏙 도망치려 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찌는 듯한 여름인데 습기도 없고, 그림자 밑으로 들어서면 시원하다. 이름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은 새는 눈치 없이 재잘거리며 아침을 열었고, 수척한 손길이 커튼을 열자 살랑거리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쏟아졌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 며칠 전에 끙끙 앓았던 흔적과도 같은 붉은 눈가, 치골 끝까지 치렁치렁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 새하얀 눈동자가 속눈썹에 가려지고, 살갗은 호선을 그었다. 완벽한 날씨, 이런 날씨를 바랐다.
볼피는 잘 꾸미고 나온 자신을 보고 오늘따라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칭찬을 해줬다. 푸르스름한 눈가를 보며 피곤하냐 물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따라 가뿐해요. 파티 때문인가 봐요." "다행이지만 네가 아프지 않길 바란단다."
볼피는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해준다. 평소라면 내심 토악질이 치밀 것 같겠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진심으로 받아주기로 했다. "고마워요." 라고 답해주자 볼피는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게 조심히 쓰다듬어 준다. 오늘따라 이 역겨운 손길을 손목째로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도, 혀를 짓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미카엘은 말갛게 웃었다.
볼피의 에스코트를 받아 화이트 나이트 호텔에서 제공한 리무진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자, 미카엘은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따금 숨이 막힐 정도로 지긋지긋했고, 때로는 징그럽기 짝이 없어 구더기 같다는 생각이 들던 도시 전경이 스칠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파티가 그렇게 좋아? 미카엘은 그렇다고 답하기로 했다. 다시금 도시를 바라봤다.
나는 죽을 것이다. 오늘, 어쩌면 내일.
거창한 것 같지만 오늘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진 않았다. 죽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냥 어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마음먹은 김에 죽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오늘 죽지 않으면 내일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겁이 난다면 차라리 스스로 이해라도 됐을 텐데. 모르겠다. 지금은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누군가는 죽기 전 고마웠던 사람을 향해 편지나 문자를 남긴다고 하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서 정리를 한다는데, 그런 건 싫었다. 누군가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해서 그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내 잘못이라며 죄책감을 운운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살다가 죽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평소처럼 지냈다. 제트블랙을 통해 에즈라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고 있냐는 말에 잘 지낸다고, 쫓겨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답했다. 에즈라에게 답장이 왔지만 확인은 하지 않았다. 나단에게도 인스타그램 메신저가 왔다.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괜찮다고 답했다. 오늘 파티에 올 거냐 물어보니 일이 생겨서 안된다고 했다. 안 봐도 뻔하다. 볼피가 못 가게 막았을 것이다. 영양가 없는 대화도 평소같이 내버려 두고, 집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뒀다. 어차피 집이랄 것도 치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입구에 새겨진 새하얀 말이 보인다. 호텔에 도착하자 직원이 정중하게 문을 열어준다. 볼피가 먼저 내려 손을 뻗었을 때, 평소 같으면 머뭇거렸겠지만 오늘은 그냥 손을 잡았다. 이것도 마지막이구나, 감상은 짧았다. 많은 시선과 셔터가 미카엘을 오늘의 유흥거리, 앞으로 언론이 씹어삼켜 큰 사건을 덮을 수 있을 상품가치가 있는지 뱀처럼 훑어보며 가늠하지만, 그냥 웃었다.
파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용까지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곱씹을 생각도 없다. 혼자 머무를 수 있는 객실을 잡아줘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미카엘은 블라인드를 쳐냈다. 문득 창밖이 보고 싶어서 손이 느려졌다. 햇살이 찬란했는데, 우습게도 비가 온다. 예쁘다. 감성적인 생각을 하고 싶어서 뇌를 굴려봤다. 내가 죽는 날이라고 신경 써준 걸까. 음, 오글거려서 그만두기로 했다. 커튼을 치자 세상이 어두워진다. 햇살이 리넨 커튼을 뒤로 넘실대며 들어온다고 해도 마냥 어두운 것 같았다. 시야가 어두운 걸까 싶기도 하다. 바깥은 소란스러운데 뭐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여기로 사람이 오진 않을 것이다. 미카엘은 파우치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한눈에 봐도 액체가 좀 많았다. 그간 볼피가 준 것을 야금야금 모은 것이다. 이 정도면 죽고도 남겠지, 그럴 것이다.
주사기를 한참 바라보자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계신 곳으로 따라갈게요, 같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영혼 같은 것도, 사후세계도 안 믿기 때문이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난날을 후회하고, 울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냥 평소처럼 찌르면 되겠지 싶은 일상적인 생각이 오갔다. 이따금 보고 싶던 첫사랑, 아까 전에 못 먹고 온 초콜릿, 오늘 확인하지 않은 에즈라의 메시지. 모두 내일 마주치고, 먹고, 볼 수 있을 것 같이 한치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
단지, 오늘은 기쁜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사기를 꽂았다. 넘실대는 어두운 햇살과 쏟아지는 비를 벗 삼아 잠들었다. 잠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그랬더라면. 미카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마다 생각했고, 당신을 만나기 직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강박적으로 잘라 짧아진 머리, 수척하지만 관리가 잘 된 손,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이 아닌 정장 한 벌, 찾아서 먹어버린 초콜릿. 차라리 잠들 수 있었더라면 현실을 견뎌낼 수 있었지 않을까. 빗소리를 벗삼아 미동도 않던 새하얀 눈동자가 주사기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갱신해둘게. 어제 하루도 정말 고생 많았고, 푹 쉬었기를 바라. 만약 못 쉬었어도, 오늘은 조금이나마 쉴 수 있는 하루 되길 바라구. 요즘 못 쉬는 것 같아서 걱정이네..😔 바쁜 일이 소강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다지만.. 이 말로 하여금 지나치게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늘 말하듯 내 의견일 뿐이니까. 어서 바쁜 일도 줄어들고, 여유도 생기고 그랬음 좋겠다..🥲 잠들었다면 푹 자구, 좋은 꿈 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