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 사람을 잠깐 바라보면서 일상을 잠깐 구경하지 않을까 싶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하는 눈으로 개인실로 가겠지만..
>>774 거의 뜯어고친 수준이지 않을까 싶네.. 와식 생활과 좌식 생활을 선호해서, 높은 책상과 의자 보다는 소반에 가까운 낮은 책상과 방석이 주가 될 것 같고, 낮 밤을 직접 설정해 인공 햇살과 달빛이 내리쬐는 가짜 창문을 붙여두고, 침대에는 누워서 홀로그램 영상을 편하게 볼 수 있게 신소재 커튼을 쳐서 가둘 수 있는 구조가 될 것 같아. 위에는 푹신한 이불과 베개가 있고.. 참고로 베개가 여섯 개나 되는데 전부 푹신하라고 깔아둔 거야. 0.< 또.. LED 호롱불 같은 것도 있겠네. 자신을 위한 횃대도 하나 뒀을 것 같아. 가끔 침대가 지루하면 아무렇게나 휘감겨 잘 수 있도록.
머리 없는 시체는 질질 끌려나갔다. 붉은 이정표가 생겼으나 조만간 청소 안드로이드가 대리석을 말끔하게 닦아 시체가 있었다는 흔적을 말끔히 지울 것이다. 용이 베일 너머로 들어가자 가란은 얌전히 그 위에 새 담요를 덮어주고, 베일을 내렸다. "평안한 밤 되소서." 짤막하게 예를 갖춘 인사를 뒤로 가란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뒤로 돌았다. 앞으로 뻗는 손짓에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정렬하며 밖으로 나섰다. 가란이 마지막으로 뒤를 돌았을 적, 용은 피곤했는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서자 복도는 화려했다. 가란은 따뜻한 난색 조명과 더불어 웅장한 박물관 내지 미술관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로코코-바로크 양식의 건물에 붉게 깔린 레드 카펫을 구둣발로 밟아가며, 수없이 놓인 여러 장식품을 지나쳤다. 가란이 지나친 아름다운 풍경화는 며칠 전 죽은 세븐스의 피와 물감을 섞어 그린 것이고, 방금 지나친 머리카락으로 만든 듯한 둥지는 가디언즈 배신자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다. 둥지 위에 놓인 알은 레지스탕스의 두개골이다. 이렇게 아름답게 세공하며 제각기의 새로운 삶을 부여할 수 있음에도 그 시체를 아무렇게나 버린다니! 막대한 지원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이따금씩 가디언즈의 야만적인 행동에 넌더리가 날 때가 있었다.
"보스." "무슨 일이지."
가란이 무기질적으로 대답했다. 여성 하나가 요란한 굽소리와 함께 가란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방금 전 용이 심문을 하던 도중, 아니 된다며 분위기를 깨뜨린 여성이다. 누구더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이번에 새로 온 사람인 것 같다. 분명 눈치 없는 녀석은 뽑지 말라 했는데, 심산에 거슬리던 찰나였다. 그런 가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펜으로 대충 틀어올린 머리를 한 여성은 품에서 작은 신소재 태블릿 하나를 꺼냈다.
"좌표를 확인했습니다. LB-45215.31이면 이곳에서 조금 나간 숲 근처입니다." "아, 그래. 신속히 확인했어야지. 잘 했네."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우리 관할이 아니지." "아뇨, 그 15개월 세븐스요." "찾았나?" "예. 이제 막 이쪽으로 이송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럼 적당히 아버지 쪽이랑 같이 붙여둬서 박제하라고 지시해. 작품명은 아빠와 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무언가 얘기하기를 망설이자 가란의 진한 자수정색 눈이 구른다. 얘기하라는 듯 적당히 턱짓하자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비호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무슨 의미지?" "아무리 신비롭다 해도 그것도 결국 세븐스지 않습니까. 누군가 본다면.. 그것을 섬기는 것 자체를 반역이라 할 겁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가란은 말도 없이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더니, 여성을 쳐다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성은 정확하게 가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에, 얼굴에 정확하게 탄환을 맞아 옆으로 휘청이듯 쓰러졌다. 전시된 세븐스의 두개골이 사라진 머리 대신 자리를 잡듯 떨어졌다. 가란은 시체를 확인하지도,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총신이 식지 않았기에 한 손가락에 걸치듯 대충 걸어두고 터덜터덜 걷던 가란이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새끼. 주어진 대로 살았더라면 네 명은 보다 안전하고 길었을 텐데."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총성을 듣고 밖으로 나온 용이 어느덧 천장 위를 기듯이 조용히 날아왔기 때문이다. 용이 공중에서 물끄러미 가란을 내려다보자, 가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 나의 황제시여." "밖이 소란스럽더구나." "쭉정이 하나가 설쳤기에 어쩔 수 없었나이다." "들었다." "저딴 고깃덩이의 말은 신뢰치 마시옵소서, 폐하를 섬기는 것은 이 가란의 사명이요 응당해야만 할 일이오니, 누가 감히 막겠습니까?" "아무렴 네 그렇다면 그렇겠지."
천장을 기어 오던 용이 내려와 그의 목에 휘감긴다. 가란이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미물들이 혈투를 벌인다 하더이다." "흥미롭구나." "친히 발걸음 하시기엔 피곤하실 터이나, 부디 신과 함께 미물의 어리숙한 발악을 관전할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도중에 피곤하면 돌아갈 터이다." "만일 피곤하시다면 신의 침소로 가시지요. 옥좌는 지겹지 않습니까. 신이 폐하를 위해 준비한 것이 많습니다."
용은 눈을 감았다. 허락이 떨어지자 가란이 목에 휘감긴 용의 갈기를 한 번 쓸어보곤 경쾌한 발걸음으로 어느 한곳을 향했다.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가란이 쏟아지는 빛 너머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