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여전히 침묵이다. 빈센트는 한숨을 쉬고 다시 공부를 계속한다. 일반인의 체포는...? 알 수가 없었다. 보고 또 봐도, 사실상 '하지 말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긴급성은 그러했다. 제압하지 않을 경우 최소 5명 이상이 최소 전치 14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부상 및 사망에 이를 수 있거나, 이미 발생했을 경우, 상대가 지속적으로 저항할 경우에 '한해' 상대를 체포할 수 있으며, 이 때도 전치 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부상 없이 제압해야 했다.
"전치 2주."
시비가 많이 걸려봤던 빈센트는 잘 알았다. 병원에 가서 아무튼 맞았는데 아무튼 아프니 진단서 떼 달라 하면 나오는 최소 기간이 '전치 2주'였으니까.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일반인 범죄자는 내버려둬야겠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커피를 찾는 그 눈에, 익숙하던 얼굴이 들어왔다. 빈센트는 잠깐 말을 잊더니, 인사했다.
토고는 다시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하지만 요놈의 자슥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토고는.... 아무래도 좋았다. 음료만 편히 마실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되니까. 후루룩. 음료를 마시고 네트워크로 뭐 재미있는게 있나 없나 살펴보고, 주변 경치를 둘러보고. 헬멧이 있으니 목이 정말 편하다. 이제는 시야도 어느 정도 적응해서 어지럽지도 않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유자차가 미지근해질 무렵에 드디어 눈앞의 상대는 토고를 눈치챘다.
목을 풀고 다음에는 어깨를 풀어 스트레칭을 마저하던 강산의 움직임이, 토고의 말들에 잠시 멈춘다.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니 우리끼리만은 서로의 노고를 알아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논지의, 그런 말들. 그 말들을 들으니 조금 멍하던 그의 눈에도 총기가 다시 돌아오는 듯 했다.
"하긴 그렇네요. 우리가 아니면 우리 고생을 누가 더 잘 알까요?"
표정이 보이지 않는 헬멧이었지만 어쩐지 그 밑에는 멋진 미소가 있을 것 같다는 잠깐의 상상을 하며, 강산은 그를 마주보고 옅게 웃는다.
"가족에게 전화라...그럴까요?"
그리고 진지하게 토고의 제안을 고려해보며 잠깐 눈을 굴린다. 아버지는 바쁘셔서 전화 받기 힘드실테고. 어머니는...음...어쩐지 어리광 부리는 것 같잖아. 그런 이유로 당장은 실행이 힘들지만.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책장을 넘긴다. 일반인 범죄자의 체포를 위한 구성요건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주석이 수십개나 달려 있었고,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판례가 수백건이나 있었다. 어떤 헌터는 총기 난사로 수십명을 살해한 범죄자가, 총알이 다 떨어진 상태로 가만히 서 있자 체포했다. 하지만 '제압하지 않을 경우 최소 5명 이상이 최소 전치 14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부상 또는 사망에 이를 정도의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헌터는, 다윈주의자들이 부리던 '노예' 일반인이 불법 화물을 운반하는 것을 보고 제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치 3주'의 부상이 발생하여 처벌받았다고 했다.
"...대곡령 쪽이랑 특별반을 주선해주셨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빈센트는 뇌가 두개라도 된 것인지, 어려운 판례를 읽으면서도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어쩌면 너무나도 판례가 더러운 나머지, 일관적인 원칙을 찾는 것을 포기한 두뇌가 때려치우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그 모든 것을 읽은 빈센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의념 범죄자면 '목숨이 위험했다'는 것을 입증할 자신만 있다면 상대의 사망까지 전제하고 싸워도 된다. 다만 상대가 항복을 선언하거나, 미처 죽이지 못하고 기절했을 때 죽이면 안 된다. 그리고 이전의 비효율을 감수하고 상대에게 고통을 입히는 데 치중한 전투 방식 대신에, 상대의 목숨이나 신체 기능을 끊어버리는 데 최적화된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부수적 피해 없이 죽이면 되었다. 하지만... 일반인 범죄자는, 그냥 누군가를 죽이건 말건 경찰에 신고만 하고 도망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념 범죄자는 죽여도 되지만, 불필요한 고통 없이, 최대한 빠르게. 일반 범죄자는 그냥 내버려둘것."
빈센트는 속마음을 무심코 이야기하고, 커피를 마셨다. 사람을 못 죽이게 된 건 불만이 컸지만, 의념범죄자도 인간이고, 싸우는 것도 재미있으니 그러려니 하며.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책을 덮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신에 기가 막힌 조건이 생기지 않았나? 크크... 심지어 이 조건은 뒤에 더 있는 거 아나?"
토고는 언젠가 이 불평등 계약을 완화할 방법을 찾을 것 이다... 사실 불평등도 아닌게 신규 길드가 그만한 자금이 어디서 조달하겠는가? 거기다 아직 특별반은 길드화도 안되었으며, 개개인이 가진 돈을 탈탈 털어봐야 그만한 금액은 나오지도 않을 것 이다. 물론 편입생들은 우리가 한것도 아닌데 왜 내야 해? 하고 나설수도 있으니 크크.. 토고는 미래를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해진다. 해야 할 건 많고 몸은 하나고 뇌는 쥐꼬리만하고.
"문자부터 해보는 게 낫다. 문자 한 통 남겨두면 상대방이 곰곰히 생각할 시간도 주고, 얘가 좀 위태위태 하다 싶음 집으로 잠깐 오라고 한 뒤에 집밥 거하게 차려주고 진지하게 대화도 가능하지 않겠나?" "상대방에게 시간을 주는게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시간을 주는게 좋은 때다."
토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상대방에게 선택을 강요할때는 재촉하는 게 좋지만, 무엇을 하든 자신에게 이득이라면 시간을 넉넉하게 주어서 구경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토고는 생각한다. 그와중에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토고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었지만, 그랴. 가족 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