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들어서기 전에도 구운 닭의 냄새가 제 코 앞을 스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방도, 식사도 아주 고급진 건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강도나 다름 없는 겁니다. 제가 지불 한 건 고작 3 은화라고요. 게다가, 저희 고향에서는 식문화 대부분이 수산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닭을 먹을 기회는 그렇게 흔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아주 만족이었답니다. 닭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충분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여관 주인께 간단히 인사한 뒤에 닭을 천천히 음미해봅니다. 닭은 조금 작지만 여사분의 정성이 그것을 커버하고 있군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죠. 아주 괜찮은 식사예요.
"정말 맛이 좋네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사에게 살풋 웃어보이며 말했습니다. 배가 굶주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뒤로 저는 말 없이 그릇을 비우는데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에 살았'었다'라. 왜 과거형인걸까요. 살짝 신경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부러 묻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을 뿐더러... 뭐, 그냥 별 의미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동대륙... 말인가요."
그리고 이곳의 여주인, 그녀는 이미 충분히 넉살이 좋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저는 먹던 닭을 천천히 그릇 위에 올려두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습니다. 물론, 여주인이 듣고 싶어하는 동쪽 대륙의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죠. 글쎄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잠깐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습니다.
"제가 온 곳. 그러니까, 동쪽 대륙은 매우 치열한 곳입니다. 땅은 이 로라시아보다 3배는 더 작은데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죠. 바닷물이 만조에 이르렀을 때는 해저에 도사리는 야수들이 주민들을 해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무릎까지 치밀어오른 파도 안에서 주마등처럼 땅을 맴도는 등대와 랜턴의 불빛에 의존해가며 싸워야 해요. 거기서 곱게 죽으면 운이 좋은 거고, 살아남아 광증에 걸려 그 야수들과 같은 몰골이 되면 운이 나쁜 거죠. 그런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저희 등대지기들. 심문관이 조직 된 겁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제 눈은 흔들림 없고, 얼굴은 여느 때와 비견해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진지했습니다. 결단코 여주인분을 겁주거나 귀찮게 생각하여 떠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아예 입을 열지 않았겠죠. 그러니 이것이, 일말의 과장 하나 없는 동대륙의 실태였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제 고향의 모습이요.
"제가 이렇게 떠드는 지금에도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돌아갔을 때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치며 먹다가 남은 닭을 마저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이 닭은 정말 맛있네요.
이런, 아무래도 여주인의 기세가 한 풀 꺾인 것 같네요. 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은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제 땅에 대한 이야기를 미화할 생각은 정말 요만큼도 없답니다. 그거야말로 저희가 하고있는 처절한 투쟁에 대한 기만일테니까요. 오히려 말할 거라면 이렇게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겠죠.
"그래도 사람들은 점잖고 재치있으며 용맹하답니다. 특산물인 생선요리도 맛있고요. 땅이 좁아서 오히려 관광하기도 편해요. 언제 한 번 방문하시죠, 대접 해드릴테니."
익살스럽게 살짝 입꼬리를 휘어보이며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말해봤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권유라는 걸 압니다. 대체 어느 누가 수생 야수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무의 바다를 건너서 일부러 그런 오지까지 올까요. 정말 대단한 사명을 지니고 있거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 이상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할 거예요. 그게 지금까지 로라시아와 저희 대륙이 교류가 단절되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을테고요. 즉, 농담이라는거죠.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는 처음으로 나누는 제대로 된 대화니까요."
닭을 나이프로 썰다보니 뼈에 툭 걸리는 느낌이 납니다. 세상에, 저는 이걸 벌써 다 먹은 걸까요. 아쉽네요. 모처럼 먹는 닭요리였는데.
"사실 제가 하고 있는 이 원정은, 그들을 고통에서부터 해방시킬 방법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 닭고기 한 점을 입 안으로 가져가, 말끔히 뼈 밖에 남지 않은 접시를 옆으로 치웠습니다.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봅니다. 어두운 심야네요.
여성도 엘레나의 말이 농담인 걸 아는지, 마찬가지로 가벼운 대답으로 응수합니다. 금세 기운을 되찾은 모습입니다.
"어머나, 그런 숭고한 뜻을 가지고 계셨다니."
그 말에 여성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손을 맞대어 가벼운 박수소리도 한 번 냅니다. 순수한 놀라움의 의미입니다. 약간의 존경도 담아서요. 다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홀로 여행길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엘레나 양의 원정을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그녀가 그리 말하며 웃습니다. 엘레나가 닭을 전부 해치웠을 무렵, 딱 알맞은 타이밍에 남성이 식당으로 들어섭니다. 작은 쟁반을 든 채로요. 그는 뼈만 남아버린 닭을 보고서 호탕하게 웃습니다.
"식사는 맛있게 하신 모양이오. 이건 요청하신 디저트요."
곧 테이블 위에 디저트 두 접시가 올라옵니다. 하나는 손바닥 크기의 블루베리 파이입니다. 파이 틀에 새콤달콤한 잼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반으로 쪼갠 생 블루베리도 올라가 있어 씹는 맛이 한껏 배가됩니다. 다른 하나는 노란 빛깔을 내는 복숭아 푸딩입니다. 탄력 있고 탱글탱글해서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숭아 과육이 알알이 박혀있습니다. 한 스푼 떠먹으면 기분 좋은 단맛이 느껴집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남편 자랑인가요. 하지만 충분히 이해 되네요. 이런 디저트를 만들 수 있는 남자가 어디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럼 내일도 기대하고 있도록 하죠. 후후."
디저트를 전부 비우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맛있는 건 이렇게 금방금방 사라진다니까요. 아쉬운 일이죠 정말.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부부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앞서 만난 안 좋은 소식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식사였어요.
부부도 각자 엘레나에게 인사를 하고서 제 할 일들을 합니다. 식기 치우는 소리가 분주합니다. 배를 이리 만족스럽게 채웠으니 좋은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엘레나는 다시 방으로 올라갑니다. 간소한 방은 아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노란 빛의 등불이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열린 창 너머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들어옵니다. 밝은 색의 커튼이 가볍게 살랑입니다. 지금 잠자리에 들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여행길에는 많은 일들이 따라오는 법이죠. 그것이 좋든, 그렇지 않든 말이에요. 오늘처럼 긴 여행길은 저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분명 더욱 길겠죠. 이 여행은 언제 끝나며, 결말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뭐, 그것을 위해서는 일단 지금 자두는게 좋을 것 같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저는 그렇게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해 잠에 들었답니다.
잠자리가 썩 편안하진 않지만 여행의 피로를 풀기엔 충분합니다. 엘레나는 그렇게 깊은 잠에 듭니다.
그리고 엘레나는 깨어납니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깥은 늘상 어두컴컴하지만 인간의 몸만은 기가 막히게 제 시간을 맞추곤 합니다. 낯선 타지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날입니다. 지난 밤 엘레나는 꿈 없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몸의 피로가 전부 풀린 것 같습니다. 시간이 이른 만큼 주인 부부가 깨어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어제 든든히 먹어둔 덕에, 그렇게 허기지진 않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맑아진 머리와 타지의 어두운 하늘이 저를 맞이해 줬습니다. 먼 옛날, 전해져오는 구전으로는 하늘에서 빛이 내려올 때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뜬구름 잡는 신화적인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군요. 그나저나 마차의 출발 시간은 어떻게 되려나요. 홀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마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와 저는 같은 여관에 머물고 있었으니까요. 자, 그럼 또 움직여볼까요. 준비와 몸단장을 마치고 홀로 내려가봅니다.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찾던 여성은 곧 찾았다, 하며 숙였던 고개를 들고 엘레나를 바라봅니다. 그녀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습니다.
"아니, 줄 게 있어서 말이지요."
곧 여성이 카운터를 빠져나와 엘레나에게 다가갑니다. 그녀가 손을 펼치자, 주먹 크기 정도 되어보이는 돌멩이가 보입니다. 바른 모양으로 보기 좋게 깎아놓았군요. 그뿐만 아니라 돌에서는 금빛 기운 같은 게 넘실넘실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돌의 표면도 노랗게 반짝입니다.
"수도로 가는 전송석이에요. 전송 마법을 담아놓은 거랬나, 사용하면 바로 수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더래요. 한 번만 쓸 수 있고요. 참, 마법이란 게 신기하긴 해요."
그러니까 이 돌은, 마력을 불어넣어서 마법을 기억시킨 도구였던 겁니다.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각종 기계와 장치들처럼요. 다만 전송 마법을 사용하는 도구는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전송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마법 사용자들이 별로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상당한 희귀품이었습니다. 일회용이라는 점도 한 몫 하고요.
"수도에 사는 우리 아들 본다고 비싼 돈 들여서 사놓았는데, 녀석이 그렇게 떠나버려서 쓸 일이 없어졌지요."
그러면서 여성은 맥없이 웃어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분명 그런 얘길 했었죠, 수도에 아들이 살았었다고. 하지만 부부의 아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세상을 뜬 모양입니다.
제가 있던 땅은 마법이 발달하지 않아 마법 사용자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마도구를 기용하는 일 자체는 꽤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도구의 성능은 진짜 마법에 비해서는 한계가 명확하지만 관련 학문을 닦지 않은 문외한이라도 사용 할 수 있는게 장점이니까요. 그렇기에 여주인이 손을 펼쳐서 제게 보여준 돌맹이가 평범한 돌맹이가 아닌 마법이 담긴 물건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드님이 말이지요."
그러고보면 어제도 그런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일부러 묻지는 않았지만 역시 아드님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거군요.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물건입니다. 이런 걸 제게 넘겨도 괜찮은걸까요. 저는 잠시 돌맹이를 바라보다가 그 금빛의 전송석을 제 손으로 가져왔습니다.
여성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여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보았던 어떤 것보다 더욱 밝은 표정입니다. 애물단지라고는 해도, 그녀에겐 아들을 추억하게 해주는 물건이었을 겁니다. 그런 것을 넘겨준 건 엘레나에게 호의와 존경을 보인 것과도 같습니다. 아무래도 어제의 대화가 썩 인상깊었던 모양입니다.
"아, 이제 슬슬 아침 준비가 끝났겠네요. 식당으로 가 계시면 바로 식사를 내올게요."
여성은 그렇게 말하고서 주방으로 종종걸음을 합니다. 엘레나가 식당으로 들어서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홀을 흘겨보던 마부를 볼 수 있겠네요. 그의 테이블에 놓인 접시는 싹 비워져 있습니다.
손 안에서 금빛을 은은히 자아내는 귀환석이 구르고 있었습니다. 분명 당장은 쓸모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여주인에게는 아들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었을 겁니다. 마법은 웬만해서는 시세가 떨어지는 일도 없으니 다시 팔아도 비싼 돈을 받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고 오로지 호의로 이런 물건을 제게 넘겨주는군요. 저는 단지 이방인인데도 말이에요. 아무래도 이곳의 부부는 과거를 딛고 설 수 있을만큼 현명하고 사려깊은 인물들인 모양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들르도록 하죠."
가볍게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힘내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이제 아침을 먹고 힘내서 수도로 향하는게 좋겠습니다. 다시 밤 중에서도 깊은 밤이 찾아오기 전에 말이죠. 참, 팬케이크도 맛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