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담을 들고 있는 아리아를 바라보면서 로벨리아는 혼잣말을 하듯 툭 이야기를 던졌다. 말소리가 들려오면 앞을 보더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필담이 생겨버리면 계속 옆을 봐야하니 그녀로서는 상당히 번거로웠다. 허나 말을 하라고 해서 들을 이도 아니었다. 좋을대로 하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로벨리아는 다시 안주를 스푼으로 떠서 한 입 먹으면서 천천히 씹었다.
"안 먹어. 먹으면 취하거든. 애석하게도 난 술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어서. 술을 깊게 마시고 싶다면 아스텔이나 다른 이들에게 말하면 깊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아스텔은 술이 꽤 강하니까.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대원들을 파악한다고 해도 주량까지 다 파악할 순 없는 법이었다. 이내 탄산수를 또 한 모금. 이어 티슈를 뽑은 후에 그녀는 입을 조용히 닦아냈다. 그리고 가만히 안주를 씹다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리아를 바라봤다.
"그다지 취하지 않은 모양인데 술이 꽤 강한가보지?"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순수한 호기심일 뿐. 그야 자신은 조금 이후에 왔고, 이미 취해서 우는 이도 보였으니까. 물론 취해야만 한다는 법은 아니었지만 꽤 멀쩡한 것 같았기에 그녀는 그렇게 물음을 던지고 다음 필담을 기다렸다.
면접 때 밝혔던 이야기를 하고는 가볍게 미소짓습니다. 그러다 한입 마시고 난 후에 빈 와인잔을 보고 식탁 위에 소리나지 않게 내려놓습니다. 으음 이정도만 해둘까. 취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대장은 술에 약한가 그런가- 마음 속에 정보를 저장해두고는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입니다.
'술을 깊게 마시는 취향은 아니라서 괜찮습니다.'(필담)
가벼운 느낌으로 그 제안에는 사양하고는 안주를 씹는 로벨리아를 잠시 본 뒤 회식 풍경을 가볍게 봅니다. 하아 참 일일히 일희일비해서는 좋을 것도 없을텐데 말이지. 가면 너머의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조금은 한심한듯 생각합니다. 물론 그 것이 겉에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술에 강하다기 보다는 주량에 맞춰 조절해서 마시고 있었죠. 취해서 민폐를 끼치는 것은 좀 그렇다고 할까요.'(필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로벨리아의 질문에 답할뿐이다. 폭풍전야라고 하던가. 마치 그 것과 같은 예감을 느끼며, 빈 와인잔을 슥하고 손에 걸리지 않게 살짝 밀어낸다.
그녀의 필담에 로벨리아의 답은 별 감흥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나오는 어투였다. 입으로 하는 대화는 별로라. 글쎄. 과연 그럴지. 그런 것 치고는.. 이라고 생각을 하나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으며 로벨리아는 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입으로 말을 하건 필담을 하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번거로운 것은 있으나 일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곳은 무엇을 하더라도 자유가 주어지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은 이 에델바이스를 만들었고. 그러면 그녀의 필담 역시 자유였다. 그것으로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족할 뿐. 그리고 그런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때 처리해도 늦을 일은 없었다.
"그래준다면 나야 고맙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꼭 일어나서 움직일 필요는 없지. 옮기고 싶다면 옮기고, 거기에 있고 싶으면 있어도 좋아.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단순히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일어나게 해서 자리를 옮기게 하는 것은 여러모로 민폐가 아니겠는가. 그에 대한 선택은 아리아에게 보내면서 로벨리아는 가만히 안주를 먹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묻고 싶다만 그런 필담으로 작전 내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건가? 아니면 작전 내에서는 입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나?"
작전 중에 필담을 쓰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싶지만. 일단은 확인이라도 할겸, 그녀는 그렇게 가볍게 대꾸했다.
아무렇지 않게 '전략'이라고 적으며, 그녀는 웃어 보였다. 가면을 쓰고있으나, 자신의 목적은 충분히 상대도 알고있을테니까. 그 때는 '가면'을 쓰지 않았거든. 적어도 그 때는.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다. 내 자유를 위한다고 해도, 파탄나면 그 것은 그것대로 성가셔질테니. 꼭 해야할 이야기가 없으면 안 옮겨도 된다는 말에는 '그럼 호의를 받아'라고 적은 창으로 바꾸며, 가만히 앉아서 다른 안주를 한입 베어문다. 소시지인가- 내일은 운동을 조금 더 해야겠구만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먹은 양을 계산한다. ...아아 습관은 귀찮구나
'작전 내에서도 필담으로 하고 있답니다. 전투 도중에는 제가 알아서 상황을 판단하지만요'(필담)
그것은 틀림없는 민폐, 그렇지만 적어도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격전이 되면 그 때는 필담으로 이야기를 못할테지만, 뭐 그 때는 '입'으로 이야기를 해야할 수 밖에 없겠지.
'....그래서 여동생분인 에스티아말인데요- 엄청 밝아서 저도 금방 넘어가 친구가 되버렷네요'(필담)
상황이 급변하는 작전지 내에서 필담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니. 애초에 다른 이들이 제대로 볼 수는 있는건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가. 다른 쪽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로벨리아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일단 당장 문제는 없었으니 조금 주의깊게 바라볼 필요는 있겠다고 로벨리아는 판단했다. 만약 그 행동이 작전에 지장이 생기고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드린다면, 이를테면 빠르게 전달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필담을 고집하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자신도 분명하게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와중, 갑자기 바뀌는 내용에 로벨리아는 피식 웃었다.
"너무 티가 나게 주제를 바꾸려고 하는군. 그 쪽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면 되겠나? 뭐, 좋아. 당장 문제가 없다면 그 부분은 나도 건들지 않도록 하지. 어디까지나 당장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티가 나지 않는가. 에스티아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렇게 단순하게 보였던 것인가. 피식 웃으면서 로벨리아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에스티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에 대해서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뭐, 아무튼 그 애와 친하게 지내준다면 고맙지. 우리 귀엽고 예쁘고 깜찍한 에스티아를 잘 부탁하도록 하지. 친구로서."
그 이상 간섭할 것은 없다는 듯, 로벨리아는 그 정도로 말을 끝냈다. 여기서 에스티아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할까. 그렇게 고민을 하나 그녀는 굳이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너무 시스콘같지 않은가. 아니. 정확히는 다르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친구로서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아직 에스티아를 배반할 생각은 없다. 그녀는 적어도 신뢰할만해보이니까. 그녀는 이른바 중간 중간 있는 착한 아이니까 말이다 예전의 자신처럼. 티가 나게 바뀌는 이야기에는 뭐 어쩔수 없지 않는가. 깊게 파고들어 봤자 서로 피곤할 따름일테니.
'충분히 뒤엎어버릴 요소들이 있어서 할만하네요. ...뭐 가디언즈가 바보가 아닐테니, 아마 다음부터는 진짜로 격전이겠지만요'(필담)
이번엔 격전이라기에는 이 쪽이 '일방적'이었다. 사실상 나를 빼고는 위험했던 이도 없었으니까. 아마도 다음 번엔 가디언즈도 대책을 세우겠지. 그래, 최악의 발상을 한다면..
직속 세븐스 중 하나를 일부러 정보를 흘린 이번 블러디 레드 같은 곳에 잠입시킨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에 대한 대책은 신뢰하고 있습니다 대장님'(필담)
옅은 미소를 띄운채 그리 가볍게 떠넘깁니다. 현장 판단이라면 모를까. 작전을 짜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
누구나 한 가지씩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으려나. 비밀... 말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너는, 느긋하게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마리의 말에 조금 놀란다. 어떤 걸... 기다린다는 걸까, 지난번에 흐려버렸던 말? 네가 누군지 알아내고 하는 말은 아닐테니, 아마 그게 맞겠지.
"아, 네. 이야기했었죠."
아하, 그래서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 몸을 보호하는 데 사용하는 동물들에 대해 알아봤다는 이야기였구나.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다 짐작했다는 듯 이유를 설명해주는 마리에게 웃음짓는다.
"신기하네요, 그렇담 전기뱀장어끼리는 적어도 전기를 만들어내는 동안엔 서로 마주볼 수 없는 걸까요?"
서로의 뒤만 따라갈 수 있는 걸까나. 자석이 같은 극끼리 만났을 때 서로 밀쳐내는 걸 생각하면서 그런 실없는 질문을 해 본다. 하품하는 마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다. 슬슬 보내주는 게 좋을까. 회식자리보다는 잠을 자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