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왕을 무찌르러 떠나는 용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며 웃는 마리의 표정에, '아무래도 좋으려나.' 라고 생각하면서 잠자코 말을 들었다. 어찌어찌 구색은 맞춰지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으음, 확실히. 사전에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여러모로 돌발상황이었죠."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상황 아니었을까. 레인이라는 여성이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살기를 뿜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해도 입히지 않고 돌아갔으니 괜히 싸움을 걸 필요가 없었다. 라는 게 될 수도 있다. 반면 만약에 먼저 공격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리거나, 무시했다면 기습을 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그러니까 너는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둔다. 결국 그녀에게 먼저 공격을 감행한 것도, 그 공격을 막아선 것도 서로 합의하지 않은 행동이었고... 결국 레인은 우리에게 위해를 입히는 대신 떠나 버렸다.
"...사과하고 싶은 건가요?"
막아서 미안했다. 뭐 이런 느낌이려나. 어째서일까, 미안한 마음이라는 건 어째서 생겼지? 눈치가 없었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하고자 하는 걸 방해했기 때문에? 너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네 손에 들린 캔을 내려다보다가 마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과하고 싶다면 사과하면 되는 거에요, 저도...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니까요."
애초부터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일방적인 사과도, 일방적인 질책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과한다면 서로 사과해야만 하는 일이고, 아니라면 둘 다 할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내게는 사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면서도 사과하고 싶다면, 그건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거겠지. 나무랄 수는 없다. 이건 애초부터 사과하고 용서하는 따위의 일이 아니니까.
사과하고 싶은 거냐는 질문에 마리는 눈을 깜빡였다. 사과하고 싶냐라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사과한다면 뭐라고 사과를 하겠는가. 만약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또 여러 상황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서도.
쥬데카도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쥬데카를 본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서도 마리가 보기에 쥬데카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사실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막아선 것이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쥬데카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각각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잠시 생각하는 것이 쥬데카에게는 사과하고 싶다는 것으로 느껴졌는지 사과한다면 뭐라고 하고 싶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마리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고개를 따라 흔들렸다.
“사과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으음…. 마리는 이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과격한 사상을 가진 레지스탕스에 있었거든. 나는 비세븐스와의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나하고 생각이 많이 달랐어. 사실 사상이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설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 하나하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더라구. 아, 내가 만약 이 사람의 입장이었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다 하는 것들 말이야.”
마리는 말주변이 없어서 말이 길게 늘어지는 것만 같아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멜피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을 보면 이유가 있을테고 그 이야기가 있을 수 있잖아. 예를 들어 그 레인이라는 인물은 아는 사람이었고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이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가 무언가를 크게 잃었다거나, 그런 거.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사람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해하다보면 내가 당시 그것을 몰랐다고 해도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고…. 또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서로 반목하더라도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테니까.”
캔을 만지작거리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고나니 목이 말라 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물론 이야기를 안 해 줄 수도 있고, 그걸 물어볼 기회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야…. 응….”
굳이 따지듯이 말하러 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나름의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쪽에 가깜지 않을까. 어쨌든 마리는 제가 한 말이 재미가 없으려나 싶어서 쥬데카 쪽을 힐금거리며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