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어린 시절 본인의 미모며 열애사를 자랑하는 말을 들으려니 배알이 꼴린다. 그래, 약간 짜증이 나는 걸 넘어서 좀…… 그, 뭐라 표현할 말을 못 찾겠네. 진짜인지 허풍인진 몰라도 아무튼간에 그는 이때만큼은 친구의 절절한 연애사를 듣고 질색하는 평범한 청년이었으므로, 귀 막고 유치하게 말 늘이며 모르는 척을 했다. 그러다 슬슬 손을 뗄 무렵 들린 말에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씨* 결론이 왜 그렇게 되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마. 제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소망할 자격은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무엇이라도 던져 준다면 감지덕지해야 했던 쪽이었던 데다, 사실 단순히 받기만을 원했던 것도 아니라─. ……그렇지만 이제 와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 것들이다. 그는 침대 위에 누우려다 가볍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한쪽 다리는 침대 바깥으로 내놓고 남은 한쪽은 양반다리 하듯 구부려, 거기에 체중을 실은 비뚜름한 자세로.
"어, 우리 누나. 참고로 내가 걜 닮아서 성격이 지*맞아."
실실거리며 능청을 떨다 다시 픽 드러누워 이리저리 구르기나 한다.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듣기에 따라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말이었지만 애초에 그는 그 사실을 눈치챌 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뭐, 그렇더라도 유루가 어련히 잘 알아들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하여튼 아싸 새*라니까." 관심 받기 싫었다는 말에 돌아간 대답이었다. 조금 뒤에야 기껏 덧붙이는 소리가 이런 딴소리밖에 없으니 밉살스럽다.
그러다 유루가 무언갈 하려는 듯 보이자 고개만 까딱 들어서 하는 짓을 구경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그냥 또라이 짓이라는 거다. 저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보다, ch… chiasmus? 그게 뭔데. 하여간에 예술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
"뭐냐, 씨*. 욕 안 하기만 하면 좋은 데 갈 자신은 있고?"
우리 또라이가 그렇게 착한 새*였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이죽거리며 장난질을 해대다 제풀에 질려 그만두었다. 유루가 대신 일한 덕에 할일도 줄었는데 덜 건드린 절반이나 마저 치울까 싶어진다. 그런 생각이나 해대다 결국 발싸움에서 져버렸다.
"으악, *. 그거 개* 소름 돋으니까 하지 마라."
황급히 발을 물리고는 데굴데굴 굴러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졌다고는 해도 다리부터 내려갔으니 그저 호들갑스러운 퇴장일 뿐이다. 아, 새* 진짜. 안 그래도 비켜줄까 말까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나니 가만히 못… 있어야 하겠지만, 잘 보니까 정말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청소도 도와줬으니 입술만 삐죽이고 말았다. 꼼짝없이 자리를 내어준 그는 벌떡 일어나 꾸역꾸역 한쪽 자리에 걸터앉으려 애썼다.
작은 불티가 터지는 것을 보면서 마리는 눈을 깜빡였다. 자신은 파란색인데 불태우는 것이 된다는 말에 마리는 작게 웃어버렸다. 승우가 정정해나가는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쓸모없는 미신. 응. 그런게 맞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붉음으로 태어난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것 그 자체가 문제였을 것이었다.
“응…. 승우 말이 다 맞아—. 빨강이 싫은 게 아니라아, 나는 내가 싫은 거야. 내가 싫어서 빨강이 싫은거야아.”
마리는 승우가 머리를 쓰다듬고 도닥거리는 것에 맞춰 눈을 감고 귀를 눕히다가 이내 머리를 꾹 누르는 것에 꺅, 소리를 냈다. 순간 놀라 뒤로 몸을 물린 마리가 어떻게 자신에게 그럴 수 있냐는 눈으로 승우를 쳐다봤다.
“괴롭히지 마아! 승우 나빠. 나쁜 애야.”
술 취한 사람이 반성 같은 걸 할 리가 없다. 마리는 베에, 혀를 내밀고는 이내 고양이로 변신해서 슈퍼의 안쪽으로 쏙 들어가버렸을 것이었다. 취했는지 발이 꼬여 한바탕 데구르르 구른 것은 덤이었다. 술취한 애 술주정 받아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