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는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그러다가도 사실 별 신경 안 쓴 것이였는지, 곧 주제를 바꾸듯 흘려보낸다.
“어릴때가 외모 절정이였는데 말야. 애들 다 나만 보면 손 잡자고 난리였어. 어른이 되면 결혼해주겠다고 한 60번은 말했을걸?”
이유 모를 사족을 덧붙이며, 본 주제에서 조금 동떨어진 청소년 시절을 잠시 회상한다. 무언가 허풍을 떠는듯한 말투라 신빙성 있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다만. 싱긋 웃고, 맞받아 치고선, 순순히 대답을 하는 승우를 아무런 반응 없이 쳐다본다. 그런 단순함과 은근히 유한 성격은 참 한결같다고 생각이 들면, 공명하듯 말소리가 들려온다.
“관심 받길 원했다니, 나랑 정 반대였네.”
앞을 잘라먹고 뒷부분은 제 나름대로 해석(날조) 해버린다. 제딴에 생각나는 사람 좋아할 이유는 무언가 결핍 되었을때 뿐. 그 결핍이 뭔진 모르겠다만,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관심, 사랑’같은 추상적인 것 뿐.
“그래서, 제일 좋아하던 사람은 누구?”
질문을 하면서 다른 곳을 보고있어, 관심 없지만 아무 질문거리나 던지는 듯해 보인다. 실상은 구석에 있던 흐릿한 물체가 바퀴벌레인지, 그냥 먼지인지 분별 해보려던 것이지만. 그러다가도 그닥 재밌지도 않은, 오히려 조금 살벌하게도 들리는 말을 하고선 낄낄대는 침대 위의 호구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가, 눈이 가늘어지게끔 웃는다. 상황에 맞지 않아, 어딘가 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와, 방금 좀 예술적이였어. 뭐였더라, chiasmus? 아니면 안티테제?”
흐리게 연상되는 것은 폭음. 문학도 가끔은 아름답다고 느낀다. 대화를 나누는 대상은 당신이다만, 어째 혼잣말로도 들리는것 같다. 뱉은 두 표현은 뜻도 다르고, 말 자체의 뜻도 주제와 붕 떴다. 맑아진 얼굴을 하고선 주위를 둘러본다. 근처에 필기구가 굴러다녔다면, 주워서 당신이 다 썼던 공책 하나를 집어 그 뒷면에 아까의 문장을 옮겨 적었을 것이다. 욕까지 다, 말한 그대로 말이다. 따옴표로 문장을 감싸고, 그 옆엔 괄호를 쳐 출처를 적는다. 무언가 당연한 일을 하는 듯한 능동적인 행동. 다 쓰고 나면 공책을 다시 있던 곳으로 쑤셔 넣는다.
“아까도 욕 했는데, 이 이상 말 더럽게 하면 나 지옥 가. 지옥 가면 니놈이랑 평생 봐야 하고.”
진실성이 빈듯 한 어조와 옅은 키득임이 들려온다. 옆구리가 찔리면 간지러운듯 살짝 움츠리지만, 있을수도 모르는 후속타를 피하려 몸만 틀 뿐 딱히 승우를 제지하진 않는다. 기분이 좋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걸까. 삶에 필사적인 사람은 변화를 거듭한다. 그렇다고 너무 변화만 해대면 흘러가는 시간에 마모된다. 만족의 기준치가 어느 정도로 높아야 이런 변신을 계속 해대는 걸까.
“고마우면 좀 꺼져봐. 형 피곤하다.”
발길질을 해대면 발목을 낚아채 막고선, 한 손으론 발바닥을 간지럼 태울 것이다. 그래봤자 간지럼엔 소질이 없는지, 그냥 손가락 끝마디로 약하게 쓰다듬듯 하는 것이 다일 것이다.
당연히 칭찬이라면서 약간의 부연설명을 해주는 그에게 너는 웃으며 답했다. 그런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 좋게 생각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언제나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라면 항상 불안할 텐데,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렇게 껄끄러운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그가 말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말투의 경박함은 전혀 상관없었다.
"별말씀을, 서로 돕는 건 음, 동료니까요."
당연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래, 당연한 것 따위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그는 네 동료였고, 적어도 동료에게 해야 할 도리라고는 생각하자. 그걸로 족하다.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간 거울에 마지막으로 비친 그의 얼굴은 완벽하게 처치가 끝나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때일까.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아... 그럴까요. 조금이지만 피로도 있고... 잠들어버리면 조금 민폐일 것 같으니 말동무라도 해주시겠습니까?"
'같이' 쉬는 건 어떻겠냐는 말이었으니, 아마 그 역시 여기서 잠시 머무른다는 이야기였겠지. 그렇다면 역시 가만히 눕는 것보다야 짤막한 의미 없는 대화라도 나누는 게 좋지 않으려나. 뭐, 그러다가도 잠들어버릴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어떻게 넘어가 주지 않을까. 너는 그 말과 함께 비어 있는 침대를 찾아 걸터앉았다. 다리는 벌써부터 땅에서 떨어져 허공에 흔들린다.
"그럼 조금 쉬도록 하죠, 새삼스럽지만... 임무 수고하셨습니다. 이스마엘 씨."
//이셔주의 갱신레스를 보고 그제야 할일이 떠올라 후다닥 써온 건에 대하여... 아무튼 막레입니다! 같이 침대 하나씩 잡고 누워서 이런저런 잡담하다가 잠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드네요... 이셔는 아마 안 잤겠죠...! 얼굴 숨겨야되니까...(아쉽
뜬금없이 어린 시절 본인의 미모며 열애사를 자랑하는 말을 들으려니 배알이 꼴린다. 그래, 약간 짜증이 나는 걸 넘어서 좀…… 그, 뭐라 표현할 말을 못 찾겠네. 진짜인지 허풍인진 몰라도 아무튼간에 그는 이때만큼은 친구의 절절한 연애사를 듣고 질색하는 평범한 청년이었으므로, 귀 막고 유치하게 말 늘이며 모르는 척을 했다. 그러다 슬슬 손을 뗄 무렵 들린 말에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씨* 결론이 왜 그렇게 되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마. 제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소망할 자격은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무엇이라도 던져 준다면 감지덕지해야 했던 쪽이었던 데다, 사실 단순히 받기만을 원했던 것도 아니라─. ……그렇지만 이제 와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 것들이다. 그는 침대 위에 누우려다 가볍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한쪽 다리는 침대 바깥으로 내놓고 남은 한쪽은 양반다리 하듯 구부려, 거기에 체중을 실은 비뚜름한 자세로.
"어, 우리 누나. 참고로 내가 걜 닮아서 성격이 지*맞아."
실실거리며 능청을 떨다 다시 픽 드러누워 이리저리 구르기나 한다.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듣기에 따라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말이었지만 애초에 그는 그 사실을 눈치챌 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뭐, 그렇더라도 유루가 어련히 잘 알아들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하여튼 아싸 새*라니까." 관심 받기 싫었다는 말에 돌아간 대답이었다. 조금 뒤에야 기껏 덧붙이는 소리가 이런 딴소리밖에 없으니 밉살스럽다.
그러다 유루가 무언갈 하려는 듯 보이자 고개만 까딱 들어서 하는 짓을 구경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그냥 또라이 짓이라는 거다. 저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보다, ch… chiasmus? 그게 뭔데. 하여간에 예술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
"뭐냐, 씨*. 욕 안 하기만 하면 좋은 데 갈 자신은 있고?"
우리 또라이가 그렇게 착한 새*였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이죽거리며 장난질을 해대다 제풀에 질려 그만두었다. 유루가 대신 일한 덕에 할일도 줄었는데 덜 건드린 절반이나 마저 치울까 싶어진다. 그런 생각이나 해대다 결국 발싸움에서 져버렸다.
"으악, *. 그거 개* 소름 돋으니까 하지 마라."
황급히 발을 물리고는 데굴데굴 굴러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졌다고는 해도 다리부터 내려갔으니 그저 호들갑스러운 퇴장일 뿐이다. 아, 새* 진짜. 안 그래도 비켜줄까 말까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나니 가만히 못… 있어야 하겠지만, 잘 보니까 정말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청소도 도와줬으니 입술만 삐죽이고 말았다. 꼼짝없이 자리를 내어준 그는 벌떡 일어나 꾸역꾸역 한쪽 자리에 걸터앉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