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왜 갑자기 자신 쪽이 지적을 받는 느낌이 된거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스텔은 잠시 생각을 했으나 그 답을 찾진 못했다. 하긴, 누군가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결국엔 답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결론을 내리면서 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춤을 좋아한다는 말에는 알겠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 그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다음에 로벨리아에게 다른 춤에 대해서 조금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가끔은 춤을 연습해둬야겠네. ...상대가 되어달라고 한 이상, 늘 같은 것만 할 순 없으니."
시간은 어떻게 분배해야할지 나중에 방에 들어가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괴짜로 시작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엄청 좋아할 것이라는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괴짜라는 부분에 고개를 저으면서 그는 그녀를 보진 않고 앞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언젠가 지옥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을 동료로 봐주는 이들도 있어. ...너를 그렇게 못 볼 이는 없겠지."
굳이 누구라고 이야기를 하진 않으면서 ㅡ눈치가 빠르다면 누구를 말하는지는 알 수 있겠지만ㅡ 그는 따라간다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안 해. ...네가 네 의지로 하는 거니까."
그 정도로 짧게 대답하며 아스텔은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아마 특별한 말을 더 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바람을 쐬는 정도의 일이었으니까. 중간에 이런저런 자잘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달빛이 비치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그는 산책에 집중했다. 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히며. 아직 끝나지 않았을 그곳에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며.
/뭔가 상황상 막레 분위기이긴 하니까 막레로 받을 수 있게 써뒀어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다면 해도 좋고 여기서 끝내도 괜찮답니다.
"사실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제게는 특별한 경험이겠죠. 흐음, 어쩌면 인간이 아닌 존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첫 번째 사람, 그런 거라면 괜찮을지도요."
여전히 농담이다. 간신히 풀어낸 부드러운 분위기를 다시 딱딱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없는 위트라도 애써 쥐어짜야 하는 법. 너는 웃으면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했다.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면 인간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다르니까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럼 어딘가 망가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가? 만약 인간이라면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같은 모습을 했을 때, 그걸 인간이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느 쪽이든 딱히 상관없었다. 지금 네 앞에 서있는 그는 어쨌든 너와 대화를 나눈다. 둘 모두가 인간이든, 둘 중 하나가 인간이 아니든, 어쩌면 둘 모두 인간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는 다른 무엇이든간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그 대화를 서로 이해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은.
"칭찬으로 들어도 괜찮겠죠. 감사합니다. 어쨌든 저와 이스마엘 씨는 아군이니까요, 제 적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전 딱히 위협적인 사람은 아니라서요. 너는 그가 시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종류의 힘, 그러니까 아마도... 염력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 힘을 통해 공격을 막아냈던 걸 떠올린다. 편리하려나. 그 힘을 행사할 때, 힘 앞에 놓인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제 피부에 닿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조금 피어오르지만 조금 더 시간을 들인 뒤에 묻기로 했다. 인간간의 관계에서는 때론 과감함이 중요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섬세함인지라 너는 더욱 시간과 신경을 쏟아 사람을 대하고자 했다. 먼저 말을 꺼내오지 않는 이상 묻는 건 자제해도 괜찮겠지.
"그건... 다행이군요. 당사자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니 그 역시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가 거즈를 완전히 고정하자 손에 들고 있던 거울을 내려놓았다.
"어쩌다 보니 꽤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신경쓸 거리가 많으면 부상에 좋지 않으니 이제 쉬도록 하죠."
이 정도로 치료도 했으니, 저 분들도 별 말 없으실 거고요. 라면서 커튼 너머에 있을 의료진들을 보듯 커튼 쪽을 바라보던 너는 미소지었다.
"아저씨?" 하고 소리내며 고개를 또 다시 기울어진다. '아저씨가 누구지? 츄이는 아저씨였던가?'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아저씨의 말뜻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아저씨라고 인식하기에 당신은 어쩐지 부적합한 대상이였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지만 엔은 직접 쥐를 잡는 걸 더 좋아하고 있다."
이번에도 눈을 깜빡거리며 그리 대답하는 그녀. 미끼를 사용하면 편할 텐데도, 왜인지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인가?
"엔에 대해선 츄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고맙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기포같은 동공이 흠칫하고 일렁인다. 그때부터 시선은 언젠가부터 당신에게로 향해있지 않다. 그녀가 바라 보는 곳은 당신의 어깨 너머 뒷편. 순간적이지만 그곳에서 작은 그림자가 사사삿 거리며 움직였다. 아마도 그건 그녀의 사냥감- 일 것이다. 당신도 고개를 돌렸다면 그걸 볼 수 있었겠지만. 그리고 당신의 눈 앞에 서있던 그녀는 어느새인가 사라져서는, 모서리 코너 쪽에 자세를 깊히 낮춘 몸을 딱 붙이곤 그쪽 편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있다. 그러다가도 당신과 대화중이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렸는지, 그녀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당신에게 도로 눈길을 주었다.
"실례했다. 엔은 이만 가봐도 되나?"
그녀는 언젠가 배웠던 예의를 차려서 당신에게 그렇게 말은 하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눈 앞에 작은 그림자가 기어다니면 대답은 어찌되든 그걸 쫓으러 달려나갈 것만 같은 기세 또한 두르고 있었다.
/ 슬슬 막레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분위기로 해봤습니다! 다음 레스에서 막레 주세요~!
승우는 꽤 오랫동안 이름을 불러줬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불러도 마리는 기꺼워 했을 것이었다. 이름을 불리는 것은 늘 좋았기 때문에.
"나한테 남은 건 이름밖에 없으니까아."
배시시 웃는 얼굴은 조금 서글퍼 보였을까. 세상에 살아계시지 않는 부모를 그리워하기 위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늘 마리를 괴롭게 했다. 그저 색이라도 물려받았다면 좋았을텐데. 자신은 부모의 색 조차 물려받지 못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주워온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니까.
마리는 승우의 머리카락을 자그마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눈 앞에 다가왔던 손바닥도 이내 사라져서 시야가 더 잘 보이니 더 정성껏 승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승우의 물음이 닿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스르르 내려간다.
"빨강은 모든 걸 태워버리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그린우드인데 내가 불 같은 빨강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그래서 돌아가신 걸거야. 응. 내가 다 태워버린 걸거야."
이내 마리의 손이 승우에게서 떨어져나가고 마리의 눈썹도 추욱 쳐졌다. 이내 벤치 위에 무릎을 접은 채로 앉은 마리는 좀 침울해보였다. 여우귀도 축 옆으로 늘어져 쳐진 모습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고. 살랑거리던 꼬리도 이내 힘이 빠져버렸다.
"...이제 승우가 쓰다듬어 줄 차례야."
자신이 쓰다듬어준 것은 쓰다듬을 받기 위해서였는 듯한 태도다. 울망울망한 눈동자로 승우를 쳐다본다. 싫다는 듯한 말을 꺼내면 "제이슨도 쓰다듬어 줬었는데...."하고 혼잣말을 덧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