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해도 내 쪽에선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어. ...어색할 뿐이고. ...동료니까."
물론 아스텔이 다른 동료들과 친분이 많냐라고 하면 조금 애매했다. 그렇다고 아스텔에게 동료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많았다. 여기선 그 누구도 서로를 죽이려고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으며 자신도 낚시라는 것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모두 로벨리아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런 동료에 대한 저항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많이 갈구했던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고작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 나왔다고 어색해지는 것은 질색이었다. 애초에 자신에겐 그저 지나간 정도의 일이었으니까.
"...약속은 못 해. ...임무가 있고, 춤 추는 건 역시 어색하니까. ...정말로 가끔이라면 생각 정도는 해볼게."
방금 전에 춘 춤 같은 것이라면 다시 추라고 요구하면 출수야 있지만 그래도 역시 어색했다. 누군가와 합을 맞추는 작전이라면 모를까. 누군가와 합을 맞춰서 추는 춤이라니. 괜히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살며시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잡고 지탱하면서 췄던가. 어색한 미소가 입가에 흘러내렸고 아스텔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올렸다.
"...그보다 왜 춤이야? ...춤 추는 거 좋아하는거야?"
단련, 훈련 상대. 그런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왜 굳이 춤인 것일까. 그녀의 취미인데 혼자서는 추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가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물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아무튼 특별히 친하게 지내달라고는 하지 않아. ...내 쪽에선 그저 동료로서 교류할 수 있으면 족해. ...가져보고 싶었거든. 동료라는 거.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그렇게 말을 마무리지으면서 아스텔은 기지개를 쭈욱 켠 후에 건물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만 살짝 돌리더니 그녀를 눈에 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근처 한 바퀴만 돌고 난 다시 들어갈거야. 회식... 아직 이어지는 것 같으니까. 너는 어쩔거야?"
/오늘은 일을 마치고 밥을 먹기 전에 가볍게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돌아왔어요. 하하. 고로 밥 먹으러 갈게요! 다들 맛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설된 부대와 지금까지 여러 번의 실전을 거치고 각자의 매뉴얼이 있는 숙련자의 싸움이지 않은가. 이스마엘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고, 사회에 섞이는 과정에 들어섰기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지만 지금 팀의 유대감은 개판임을 여실히 깨닫기도 했다. 각자 같은 뜻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지만, 틀만 같을 뿐이지 서로 생각하는 바는 다르다. 누군가는 전부 죽여야 한다 하고, 누군가는 죽여서는 안 된다 하며, 누군가는 그저 흥미 위주로 참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스마엘은 그 모든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낙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스마엘은 잠시 대화의 흐름을 곱씹으며 짧은 고민에 빠졌다. 인간이 아닌 걸까. 정말 그렇게 되는 걸까. 하지만 공존을 위해 자신이 일과 감정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오늘 겪어본 일이 이스마엘의 본능에게 그렇게 속삭였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의 연속일 것이며 선택할 순간이 올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분리하는 순간 인간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 혹은 짐승으로 불리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인간일 수가 없게 되고, 이스마엘과 그 사람이 바라던 발전과 성장의 올바른 길이 아니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일부를 남기며 분리할 수 있을까. 그 불완전한 부분을 폐기하면서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변화를 주고 성장한다면, 그렇게 발을 내디딘다면……. 이스마엘의 표정이 하관부터 천천히 굳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눈매에서 표정의 변화를 멈출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필요악의 존재가 있음을 깨달았고, 가급적이면 배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차라리.
"확신이 없고, 논의가 아니더라도 어떻습니까? 천천히 대화하며 이것저것 뱉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 안에서 뭔가 찾을 수 있다면 쾌재를 부르고, 찾을 수 없었더라도 대화라는 자체가 좋다 생각합니다."
대답 치고는 난데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가까웠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모습과 달리 연고를 바르는 손짓은 기계같이 정적이다. 의도가 없어도 지금은 그저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은가. 회의였다면 달랐겠지만 지금은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시간을 보내는 행동이고,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족속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봐주신다니, 기쁩니다." 아직은 인간인 만큼 사랑하라. 마찬가지로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가끔은 노이즈 때문에 안드로이드나 트랜스 휴먼이 아니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농담. 잠시나마 그렇게 믿기로 했다. 더 생각해 봤자 머리만 아픈 일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두워지고 끝이 없는 고민은 홀로 새벽 중에 잠에 들지 못하고 허공을 노려보며 할 생각이기도 하고. 일단은 선을 그어내고 흘려내기로 했을 적, 당신과의 대화는 제법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차분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환부에 스며든 연고는 더 이상 따갑지도 않았다.
"되는 대로 말한다고 해도…… 예, 적으로 두고 싶지는 않군요."
무뎌지는 것보다 첨예하게 느끼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처사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서도 물 흐르듯 넘기는 사람이라. 적으로 두면 안 되겠거니 생각하며 이스마엘은 새삼 어쩌다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마저도 봄날 짤막히 피고 지는 꽃처럼 금세 시들어 사라지는 의문이었다. 당신이 그럴만한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여러 선택을 했던 이유가 있듯이. 본디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는 선택하는 것뿐이니, 그 선택을 기반으로 스스로의 자아를 쌓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신은 그저 선택했을 뿐이노라 생각하며 이스마엘은 손을 뻗어 거즈를 집어 덧대기 위해 피부에 댄다.
"어째서 영양가가 없었다 생각하십니까?"
차분한 바깥의 날씨와 마찬가지로 담담한 모습. 콧노래가 어울릴 것 같은 풍경과 달리 대화는 그렇지 못한 모순의 조화. 이스마엘은 거즈를 고정했다.
당신들이 장난으로 던져 본 별의 별 요구도 알았다며 끄덕이곤 하던 그녀이다. 말리는 것은 오히려 본인이 아닌 주위 사람일 때가 더 많았다. 그런 그녀가 안 된다고 말 한다면 그건 무조건 안 되는 것 일테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든- 그녀는 무엇이 두렵게 느껴지기라도 하는지 한 쪽 손으로 제 팔을 쓸면서 "미안하다." 하고 당신에게 말했다.
"아니다. 엔 혼자서 사냥하게 하겠다."
그리고 당신의 도움은 그런 식으로 거절 되었다.
"쥐는 예민한 생물인 것 같다. 엔 말고 다른 사람이 오면 금방 도망쳐버린다."
그 이유란 그런 것으로, 한 마디로 괜히 다른 사람이 끼어 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일부러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녀는 말하는 것이다. 쥐 잡이란 의외로 전문가의 영역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