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차 공격인가, 모두 상태가 최고는 아닐터. 헌데 전투에 항상 최고의 컨디션이랄 보장은 없지. 상대가 약해졌을때 노린다, 이것 또한 당연한 것. 오장육부가 움츠러드는 기분이 든다. 물감은 공중에서 두 개의 단도의 형상을 맺어가고, 여성의 목과 심장 부위를 향해 돌진하듯 날아간다. 물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멜피의 말에 답을 하듯 아이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긴다. 이런 상황에선 후퇴가 알맞겠다마는, 그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폭풍이 지나간 가운데, 배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시는 그녀가 있다. 그녀가 움찔거리며 자세를 낮춘 것은, 이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될 정체 불명의 여성의 등장 때문이었다. 로벨리아가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 이런 현장에 있을 리는 없을 뿐더러, 그 여자에게서는 피부가 따가울 만큼 매서운 살의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동물적인 감이 날카로운 엔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엔은 공격하겠다."
짐승이 적의를 느끼면 공격하듯, 그녀의 그것도 순전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엔, 길쭉길쭉이 되어라."
그녀의 등 뒤로 고기촉수가 휘어져 나온다. 촉수는 대기하는 일도 없이 곧장 여자를 꿰뚫기 위해 돌진했다.
블러디 레드는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 떨어졌다. 이스마엘은 그 사이에서 가디언즈 병사 하나가 발치로 떨어지자 시선을 내렸다. 생존자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자 이스마엘은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손발목이 뒤틀린 병사였다. 이스마엘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다.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끝나버리니 죄책감과 공포가 물밀듯 치고 들어왔다. 만약 이스마엘이 이 사람의 손발목을 뒤틀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지 않았을까? 이 사람도 꿈을 꾸고,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갔을 텐데. 오늘 하루가 이렇게 될 거라 믿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의 앞이었으나 도망치며 신을 부르짖고 싶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얼굴을 확인한다. ……이스마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여성이 나타나며 살기를 느꼈을 때도. 네가 죽였느냐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Nein."
이스마엘은 하나의 단어를 제외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다시 내리자 무언가 겹쳐 보이는 듯싶었다. 이스마엘은 소스라치게 놀라듯 숨을 황급히 들이키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자 얼굴을 덮듯 장갑을 낀 손이 노이즈 너머로 사라진다. 눈을 비비듯 팔이 움직인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못했다. 살이 그새 짓무르기라도 했는지 눈두덩이 시큰거렸다. 이스마엘이 다시금 뱉었다. Nein.
열차는 박살났다. 너는 숨을 몰아쉬었고, 그에 반응하듯 헬멧은 모습을 감췄다. 네 얼굴에 남은 건 걸쳐진 고글 뿐, 고글 너머로 죽어가는, 이미 죽어버린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원 가디언즈였지만. 너는 말없이 시선을 돌린다.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에스티아에게 연락하기 위해 단말기를 만지던 차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에 근처에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분명히 부자연스러운 노이즈, 그리고 노이즈 너머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붉은 머리의 여성, 누구지? 너는 갑자기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이건 위험해. 정도가 심한 살기에 너도 모르게 흐르는 식은땀에 너는 마른침을 넘겼다.
어떻게 하지? 적? 저렇게까지 살기를 내뿜는다는 건 뭔가 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선수를 쳐? 어떻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떨림에 너는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공격도, 도망치는 것도 섣부르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가는 멜피, 정확히는 그녀도 살기를 느낀 거겠지. 그뿐만 아니라 유루, 엔까지 여성에게 공격을 가하자 너는 손발이 차가워지는 듯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저 셋을 전부 막아낼 수 있을까? 생각은 길지만 그 시간은 찰나, 너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잠깐만, 이건 아닌 것 같아. 섣부른 행동인 것 같아. 말하지는 못했다, 이미 꽤 숨이 찬 상태에서 너는 공격을 가하는 아군과 여성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닌데, 단순한 핀잔, 경고를 넘어 의심과 퇴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네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더군다나 저 중에는 껄끄러운 사람도 섞여 있었다, 그때 나눈 대화를 떠올리니 다시금 속이 쓰려온다. 미사일을 막기 위해 펼쳤던 방패가 이제는 아군을 막기 위해 펼쳐진다, 이미 늦었다. 어느 쪽이든, 살기는 코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