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칸으로 넘어간 건 좋았으나, 아뿔싸, 사람이 없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어디선가 스캔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문 잠기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 소리는-
"어레."
레레시아는 천장을 봤다. 그곳에서 무언가 흘러들어온다. 이건 분명 가스 같은데. 이 밀폐된 공간에서? 서둘러 상황을 파악한다.
어디 보자. 팀원 중 한 명이 다른 차량과 통신을 하고 있으니 뭐 그쪽은 맡기면 될 거 같다. 그렇다면 가스는? 그녀는 팀원들을 잡아 끌던가 밀던가 하여 패스워드 입력기가 달린 벽 쪽으로 붙게끔 하고, 일행이 모두 들어올 만한 크기로 독액의 막을 친다. 그리고 막의 바깥으로 창문을 깨거나 녹일만한 독액의 사슬을 날려 창문 깨기를 시도한다.
"이거 오래 못 갈 거 같으니까- 통신 잘 해봐- 아, 이거 건들면 피부 녹으니까 건들지는 말고오."
그건 내 책임 아냐- 일단 말은 해두고 독액의 막을 유지하며 바깥으로 창문을 깨는 시도를 이어간다.
심각한 상황인걸 인지하고는 있는 걸까 의심이 가는 붕 떠있는 듯한 표정으로 잠깐 뒤를 돌아 뒤에 남은 유루와 아리아에게 짧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걸음을 옮긴다. 뒤에 남은 기관총이 걱정되지만 유루씨와 스메라기씨가 잘 해주시겠죠? 살짝 비관론자의 시선에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일 생각과 함께 가볍게 엔과 니나의 뒤를 따라 산보를 하듯 사뿐히 발을 내딛었다.
'와아, 기차에는 이렇게도 좌석이 많았군요. 내 동료들도 언젠가 저런 좋은 자리에 앉아서 평화롭게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광 온 사람처럼, 아니 처음 보는 장소에 발을 내딛은 어린아이같이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진 눈으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얼추 전달받은 사항을 떠올리며 그제서야 고개를 혼자 끄덕이고 "정신차려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눈길을 확 끄는, 명시성이 높은 붉은색 일색인 버튼을 발견하여 곧바로 홀린 것처럼 다가간다. 아하? 이것이 그 비상탈출 버튼이로군요.
"이건 무슨 뜻일까요?"
Danger. System boot. 익숙한 고향의 언어에 혀를 굴리며 조그맣게 발음한다. 으음, 모든 주의사항에는 이를 해설해주는 설명서가 있다고 '박사'들이 그랬으니까 주변을 뒤져봐야 할까요. 주변에 부가적인 무언가가 없나 살펴보며 엔과 니나를 부른다.
6호차에 들어섰지만 이 곳에는 병사를 포함한 그 누구도 없었다. 그저 맞은편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군의 모습이 보일 뿐, 헬멧을 해제해 고글만을 쓴 채 그들을 맞이한 너는 고갤 이리저리 돌리며 6호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긴 꼭, 탈출정 같은 느낌인걸. 네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붉게 빛을 내는 버튼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비상탈출 버튼.
"이건..."
그 밑에 쓰인 문구가 신경이 쓰였다. 버튼을 누르면 비상탈출 말고도 다른 뭔가가 작동된다는 뜻인가? 다른 무언가? 일단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열차를 멈출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너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버튼, 정말 탈출 버튼인가? 너무 손쉽게 제압된 병사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허술하게 대응하는 건 무슨 이유지? 어쩔 수 없는 의심이었다. 혹시... 눌렀다간.
"설마, 터지는 건 아니겠지."
의심만 늘어서 큰일이다, 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내부를 더 살펴보았다. 특이사항은 더 없나?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야 하나? 그 와중에 들려온 무전, 4호차로 향한 인원들이 갇혀 독성 가스에 노출됐다, 너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고민한다. 지금 돌아가서 할 수 있는 게 뭐지? 이미 4호차로 향하는 문은 잠겼다, 부술 수 있을까? 그렇게 허술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열선을 내뿜는 게 아니라면 문을 뜯어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아까 무전에서 뭐라고 했었죠? 뭔가 트랩이 있었던 겁니까?"
함께 6호차에 있는 엔, 미카엘라, 니나, 그러니까 전부 7호차에서 넘어온 이들에게 묻고는 기억을 되살리려 애쓴다. 그러고 보니 버튼을 누르라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지. 너는 엔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버튼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는 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너는 무전을 하기 위해 준비한 채로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안타까운 일이다. 웃던 가디언즈 병사는 결국 죽었다. 꽤 맛있는 냄새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나, 결국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지금, 이것이 좋은 냄새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스마엘은 사람의 지방층이 녹아내리면 어떻게 되는지 안다. 그리고 그 냄새의 말로는 역하게 변할 것임을 안다. 다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할 뿐이다.
망설이면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된다. 이제 그 뜻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잔인해져야 할 수도 있다. 아니, 이건 잔인한 일이 아니다. 이건 이상향을 위한 발돋움이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어째서 숭고함을 잔인함으로 포장하는가, 기운 내자. 아직 살아있는 남은 사람을 쳐다보며 터벅터벅 걸어온 이스마엘이 잠시 무릎을 굽힌다.
"당신도 먼저 간 사람처럼 생각하십니까?"
노이즈 너머로 환한 미소가 미처 가려지지 못했다. 당신도 이 구호를 알까?
"하나. 우리는 조국을 위해 충성하는 존재다. 우리는 조국의 안전과 국민을 위협하는 존재를 배제할 사명이 있다."
이건 이상향을 위한 일이다. 이스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잔인해져야 한다. 아니, 이건 아까도 말했듯 숭고한 일이다. 나의 이상향이 나를 기다린다. 당신은 꿈이 있는가? 나는 있다.
"뜻은 같으나 나의 조국은 이곳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십니까? 당신들은 지금 목적지까지 이송된다며 좋나하고 있지만, 그걸 상관이 예상한 순간부터 버림패로 쓰였다는 뜻일 뿐입니다."
염력이 사람의 손발목을 뒤트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이스마엘은 한 곳으로 이동했다. 맨 앞의 기관총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여기는 1호, 기관총 해체 작업을 시작합니다."
방해가 없다면 염력을 통해 총을 뜯어내려 시도했을 것이다. 재머에 가려진 얼굴은 알기 어렵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저는 30분만 딱 시간을 주고 그 이후로는 다 타임 리밋으로 넘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내가 이걸 해도 될까? 라기보다는 그냥 하세요. 해서 손해볼 것은 없어요. 정 궁금하다 싶으면 이거 당겨도 될까? 정도의 의견은 물을 수 있겠지만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닌걸요.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