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역시 보통이 아니라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물론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면서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좁혀지는 환경 속에선 압박을 느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저렇게 여유롭게 있는 것도 모자라서 기술을 준비하는 것이 그의 눈에는 신선하게 보였다. 어지간한 가디언즈 병사들보다는 훨씬 강하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솟구치는 사슬과 나선을 그리면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 사슬은 회오리를 뚫으면서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일격에 부딪치려고 하는 것일까. 스페셜 스킬을 사용하면 될지도 모르나 출력이 부족하기에 스페셜 스킬을 사용할 정도의 힘을 끌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스페셜 스킬이 아니라 자신 나름대로 한 방을 준비했다.
방금 전까지 레레시아를 압박하던 회오리의 움직임이 바뀌었고 그 회오리는 거의 검을 향해 압축되듯 한 점으로 모였다. 공기의 흐름을 지배하고 컨트롤해서 한 지점에 압축하니 그 녹색 빛이 상당히 강렬했다. 이내 아스텔은 두 손으로 검을 잡았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 검은 사슬을 향해 아스텔은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이내 모아놓은 공기의 흐름이 터지면서 칼바람처럼 땅을 향해 쏟아졌다. 검은 사슬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고 아마 그 안에 있을 이도 여차하면 심각하게 베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야말로 자비 따윈 없이, 다수를 멸하기 위한 칼바람의 움직임은 세븐스의 영향을 받아 끊어지는 일 없이 계속해서 여러 방향으로 움직였다.
허나 출력이 낮은 탓인지, 아니면 그녀의 기술이 강력했던 탓인지. 아스텔은 이를 악물면서 관통된 오른쪽 어깨 부분을 손으로 잡았다. 날개 무장이 부식되듯 박살나고 그 때문에 공중에 떠 있던 아스텔이 땅으로 착지했다. 상당히 아픈지, 표정을 찡그리던 그는 숨을 약하게 내뱉으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나름 확실하게 갈라버렸다고 생각했다만 조금 늦었던 모양이야. 무승부라고 봐도 좋겠지. ...이럴 경우에는 소원권이나 명령권은 어떻게 되지?"
/답레와 함께 갱신이에요! 그래도 여기서 아무런 타격도 없이 이겼다고 한다면 너무 오버밸런스니 아스텔도 꽤 강하게 데미지를 입었다는 것으로.
시간 오후 5시 30분까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단말기에 제 0 특수부대원 전원의 집합을 요하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당연히 발신인은 대장인 로벨리아였다. 현 시간은 오후 5시 00분. 지금부터 출발한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 볼일로 잠시 말을을 나간 상태라면, 그리고 그것이 로벨리아에게 보고가 된 상태라면 로벨리아도 그 정도 사정을 봐줬을 것이다. 물론 전혀 보고가 안된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아무튼 모임 장소는 이전처럼 지하 2층에 있는 회의실이었다. 만약 회의실 안에 들어가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벽에 붙어있는 스크린에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조작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에스티아가 하고 있었다.
"아. 들어왔나? 그럼 자리에 앉아. 이야기는 다 모이면 하도록 하자."
당연하지만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로벨리아가 이야기를 하는 일은 없었다. 오늘 다 모아서 할 이야기는 전원이 다 모여야 시작될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지막히 그런 혼잣말을 내뱉고서, 지하 2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특수부대가 결성된 날 이후로 그리 먼 곳에 다녀온 적이 없기 때문에-이유는 아마 소집 명령이 내려오고서 바로 회의실로 향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단말기에 전송된 메세지를 확인하고서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내로 회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로벨리아 대장님. 오늘도 좋은 날이에요."
언제나, 또 누구에게나 그랬듯 간단한 인사와 함께 생긋 미소를 지어보이고서, 적당히 사람이 없는 자리를 찾아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설렁한 발걸음을 하곤 5시 5분 정도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성. 평소에도 좀 퀭해 보이지만, 지금은 자다 깼는지 눈도 게슴츠레 떠서 더 졸려 보인다. 로벨리아에게 목례를 가벼이 하고선 회의실을 한번 둘러본다. 보이는 것에 별다른 감상 없이 자리를 찾아 앉는다. 잠은 조금 깼는지 아까보다야 말똥해 보인다만, 입에서 느껴지는 단내가 여간 불편한 듯. 과묵히 자리에 앉아 버티고 있다.
메세지가 단말기에 들어왔을 때. 레레시아는 멀리 있지 않았다. 개인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홀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 레레시아가 명상이라니 전혀 상상도 안 될 것 같지만, 의외로 자주 하곤 했다. 특히나 임무가 있기 전에는 꼭.
"...드디어인가."
집합, 그것도 제 0 특수부대의 요하는 메세지의 내용을 보고 작게 중얼거린다. 아스텔이 말했던 조만간이 드디어 온 것인가.
천천히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클로젯에 항상 말끔히 준비해놓는 옷을 입고 새 장갑을 꺼내 손에 끼우고 마지막으로 모조 보검인 허리장식을 착용한다. 검게 반짝이는 허리장식을 두른 모습이 거울에 비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방금 전까지 무표정하던 얼굴을 느슨하게- 특히 입가의 힘을 풀어 희미한 곡선을 만들어 평소의 표정을 만든다. 손을 내려 얼굴을 확인하고나면, 특유의 느긋한 걸음으로 개인실을 나선다.
"와- 오늘은 꼴찌 아니네에."
여유롭게 도착한 회의실 안은 아직 다 모이지 않아보인다. 오늘은 마지막이 아니라며 종종걸음으로 들어가 빈자리 아무곳이나 앉았다. 앉자마자 테이블에 늘어지며 긴장감이라곤 1도 없는 모습을 보인다.
몸을 일으킨 이스마엘은 무언가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쇠끼리 부딪쳐 찰랑거리는 하네스를 착용하곤, 옷걸이에 걸린 점퍼를 걸쳤다. "페이스 재밍 모드 켜줘." 문을 열기 전 현관의 거울에 비친 얼굴이 사라진다. 이스마엘은 만족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쿠당탕 소리가 또 들린다. 이스마엘의 것이 분명하다. 넘어졌는지 무릎에 먼지가 묻어있지만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출석합니다!"
자리에 앉은 이스마엘의 재머가 싱글벙글 웃는 상으로 바뀐다. 임무인가? 아무래도 임무인 것 같다! 이상향으로 갈 수 있는 첫걸음!
대장으로부터 호출, 위치와 시간은 있지만 목적은 없다. 훈련? 간단한 훈련 정도였다면 이렇게 그저 호출만을 했을 가능성이 좀 낮지 않을까. 그럼 뭘까. 호출을 확인한 동시에 발걸음을 옮기며 너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실전에 준하는 훈련, 그리고 대기, 오늘에야 온 두 번째 호출.
"호출을 받고 왔습니다, 대장님."
회의실에 들어서 로벨리아에게 목례한 뒤, 화면을 조작하고 있는 에스티아에게도 마찬가지로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전부 온 건 아닌가, 그는 빠르게 주변을 훑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