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거리긴 했어도 진심으로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성격이 나쁜 것처럼 굴지만 누가 먼저 때리지만 않는다면 널널한 구석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 뭐. 착하네."
이해한다는 말에 별 뜻 없이 그리 덧붙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얌전히 제 음식 끌어와 수저를 챙겼다. 어쨌거나 엔이나 그나 먹을 것 앞에 두고 길게 이야기할 성격도 아니고, 더 이야기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대충 기대던 깍지를 풀고 많이 먹어라 하며 손 흔들어 주려다 엔이 몸 돌려서 묻자 한쪽 눈썹을 까닥한다. 그러나 곧 "마음대로 해라."라며 설렁설렁 고개 끄덕거렸다.
그도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 하는 짓에 비하면 예절은 얌전했다. 소리 나지 않도록 천천히, 차분하게 먹는 모습이 얼핏 점잖게 보이는 듯도 하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한동안은 그렇게 조용한 식사시간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같은 게 없었더라면 말이다.
"야, 갑자기 졸* 궁금해졌는데 너는 왜 엔이냐?"
사람 이름이 그런 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는 엔의 이름을, 프로젝트 같은 수식은 모르고 평범한 '엔' 정도로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질문하는 것이다.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데엔 이유가 있기는 했다. 원래 밥 먹는 동안에는 쓸데없는 생각이 잘 들기 마련이다. 상대를 앞에 두고 혼자 딴생각을 하다, 그 생각이 ABCDEFG……까지 이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그는 쓸데없는 잡생각과 궁금증을 굳이 참을 만큼 예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도 제 할 말만 하기엔 뭐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쪽으로 슬슬 굴리다 덧붙인 말은 있었다.
그녀는 당신을 말을 듣고서는 맞은 편의 자리에 앉는다. 다만, 식사예절이 점잖은 당신과는 완전히 딴판인 그녀이다. 처음에는 그런 당신에게 맞추듯 식기로 몇번 깨작거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불편한지 그릇을 통째로 들어 얼굴에 파묻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엔이 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그다지 궁금증 해결에는 도움되지 않는 답변이다. 오히려 달리 이유가 있겠냐고 묻듯이 당신을 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아래로는 잠깐 들어서 기울였을 뿐인데 이미 절반 가량의 고기들이 날아가있는 그릇이 있다. 다른 곳으로 간게 아니라는 걸 티내는 것 마냥 그녀의 입가와 뺨에는 반들한 기름기와 고기 부스러기가 붙어있었다. 당신이 보지 못한 사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던 걸까.
"그들이 그렇게 불렀다."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문득 고개를 사선으로 꺾는다. 시선이 향하는 그곳에는, 어쩌면 당신이 알아채지 못했을 후드 가슴팍에 달린 ID 카드가 있다. 증명사진을 가운데에 두고 상하로 바코드와 'Project n'이라고 하는 글이 각인된 물건이었다.
"돌림자가 무슨 뜻이지?"
그러더니 불쑥 당신에게 묻는다. 고개까지 기울여가며 "엔에게 알려다오."하고 말하는게 정말로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마리는 제 변신한 것 때문에 놀란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이 고양이였다가 본 모습을 보인 일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비능력자 앞에서는 변신 모습을 보인 적이 없고 능력자들은 세븐스의 힘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 그러려니 하는 편이니 말이다.
마리는 레레시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크림색 머리카락도 따라서 옆으로 기울여졌다. 레레시아가 몸을 일으키며 자리에 앉아 옆자리를 손짓하고 앉으라고 권했음에도 마리는 이번에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웃 기울일 뿐이었다.
“말 끝을 늘이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뜨며 묻는 질문은 다른 악의나 그런 것 없이 순수한 호기심만 담겨져 있을 것이었다. 고양이일 때에는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쌍둥이인 라라시아도 평범하게 말을 하지 않았던가.
말투가 기본적으로 시비조라 비꼬는 듯 들리기도 하지만 순전히 궁금증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몇 번 수저를 들고 내리던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피식거렸다. 그것도 오래지 않았다. 저런다고 누구한테 해 가는 것도 아니고. 그는 감탄을 끝내고 다시 제 할일에 열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그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긴 하지… 원래 이름은 남이 지어서 부르는 거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저만 해도 승우 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여승우가 됐으니까 뭐. 원래 물어보려던 건 그러니까, 철자에 담긴 의미? 계기? 느낌 같은 것을 물어보려고 했었나? 워낙에 툭 내뱉은 말이라 본인도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걸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서 다시 물어 볼 말재간도 없었고. 애석하게도 엔의 시선이 ID카드를 향했을 때, 그의 눈은 생각하느라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돌며 엉뚱한 것을 쫓고 있었다. 무엇보다 보았더라도 그는 무신경하니 그 정도의 눈썰미가 없어 못 알아보았을 가능성이 컸다. 아마 적당히 옷에 붙은 장식이나 폼을 위한 문구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조금 생각하다 짧게 답했다.
"같은 세대끼리 이름에 같은 글자를 정해서 돌려 쓰는 거. 그러니까 나랑 부모가 같은 형제? 걔들도 이름이 승으로 시작해."
단순 설명이라 그런가, 이번에는 단 한 마디도 험한 말이 들어가는 부분이 없다. 하려면 이렇게 할 수도 있으면서 왜 평소에는 쓸데없는 단어를 못 넣어서 안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