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 특수부대가 신설되고 팀의 소속이 된 후, 한동안은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일상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훈련을 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고-
그렇지만 다른 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막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너도 이제 팀이 생겼으니 팀원들하고 어울리라며 그녀의 반신에게서 거리두기를 요청받았다. 왜 갑자기 그러냐며 항의를 하긴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진작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는 걸. 아무리 가깝고, 아무리 닮았어도- 쌍둥이는 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마주보고 거울처럼 서로를 따라하는 놀이는 할 수 없다.
조금씩 늘어가는 혼자의 시간을 채우려 레레시아는 더욱 훈련에 몰두했었다. 마침 모조 보검의 사용법을 익히기도 해야 했으니 얼마간은 혼자인 것도 시간 흐르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 몰두한 탓인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모조 보검의 형태를 갖춰버렸고 그만큼 시간이 떠버렸다. 빈 시간만큼의 공허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인지라. 그 헛헛함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건 수면이었다.
"...으으음..."
느즈막한 한밤중. 한참을 잠자리에서 뒹굴다가 기어코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훈련에 지친 몸은 늘 눕자마자 골아떨어지곤 했는데, 오늘은 정신만 피로에 쩔었지 좀처럼 잠들 수가 없다. 따끈한 음료라도 마시면 괜찮을까 싶어 간단히 옷을 챙겨입던 레레시아는 돌연 외출용 겉옷을 꺼내 휙하니 걸쳤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무장은 챙기지 않은 채 개인실을 나갔다. 보폭 큰 걸음이 성큼성큼 걸어서 향한 곳은 내부 휴게실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완전히 바깥으로 나오자 하늘은 이미 검푸르고 드문드문한 구름들 사이로 반쯤 기운 달만이 세상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거리는 어둡고,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보는 눈이 적으니 차라리 낫다. 후- 긴 숨을 내쉰 레레시아는 겉옷에 손을 넣고 길을 따라 걸었다. 작지만 있을만한 건 다 있는 작은 마을에는 그만큼 작은 공원도 있었다. 가로등 몇 개 만이 간간히 비추고 있는 공원은 밤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탓인지 작은 기척조차 없었다. 레레시아는 그 분위기 사이를 뚫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 가장 가까운 벤치에 가서 드러누웠다. 밤공기에 식은 벤치는 서늘했지만 누워서 위를 보기엔 적당했다.
"...♪-"
두 손을 머리 뒤에 받쳐 베개를 대신하고, 누워서 다리를 꼬곤 휘파람으로 작은 멜로디를 흘리며 멍하니 하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멜피의 조언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있는 마리는 저절로 훈련실에 가 있는 일이 많았고 자연스레 훈련실에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안면을 익히게 되었다. 할 일이야 훈련하는 것밖에 없던지라 훈련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살짝만 잔다는 게 깜빡 크게 잠이 들어서 잠에서 깼을 때는 깜깜한 한 밤 중이라 마리는 낭패어린 표정을 지었다.
“산책이나 다녀와야 하나.”
깜깜한 밤이니만큼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마리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 거리로 나왔다. 역시나 다른 이들은 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높아진 시야로 구경하던 중 공원에 도착하자 누군가 있는 듯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놀란 마리가 얼른 고양이로 변신했으나 여전히 휘파람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고 마리는 살금살금 소리가 향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벤치에 누운 채 멍하니 하늘 구경을 하고 있는 레레시아가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과 능력 정도만 얼핏 들은 정도일까.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던 사이였지만. 마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벤치로 다가가 벤치 빈 부분에 앞발을 올리며 야옹 인사했다.
에델바이스에는 역설적인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아마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대식가로 정평이 난 Project n은 식당에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승우."
그런 그녀가 식당에 나타나는 경우는 단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을 때. 2. 식당에 쓰이지 못한 냉동육이 남아 돌 때.
"아무래도 엔에게 먹일 것과 뒤바뀐 것 같다."
이 경우는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일부러 당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무언가를 원하는 기색으로 서있을리가 없다. 당신의 앞에는 아마도, 채소나 반찬따위는 일절 없이 구운 고기만 산처럼 쌓인 폭력에 가까운 밥상이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정도라면 보는 것만으로 질린다.
"엔의 생각엔 이것이 승우가 원래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민다. 당연히 이쪽이 정상적인 식사다. 그 위에는 '봤지?'라고 하는 듯한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
"엔은 교환하고 싶다."
라고 해야할지, 당연히 바꿔야하는 상황이겠지만. 그래도 엔은 동료를 위해 의사결정을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다.
긴 벤치를 혼자 차지하고 누워서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아무 소리나 내도 된다는 건 굉장-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탈감을 주었다. 처음도 아니었고 그 시절로부터 벌써 2년이나 지났건만. 레레시아는 지금도 가끔 옛날의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옛날엔 항상 라라와 함께였는데.
"♪... 응?"
나홀로 휘파람을 간간히 이어가던 중, 새로운 소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야옹. 소리를 따라 머리를 살짝 들고 보자 벤치에 앞발을 올린 고양이가 보였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휘파람의 청중이 딱 하나 있었나보다. 레레시아는 고양이의 앞발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모로 누워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서 고양이를 향해 남은 손을 뻗었다. 쓰다듬기라도 하려나 싶던 손은 고양이가 걸친 앞발의 근처에 내려져 손끝으로 벤치를 톡톡 두드리며 놀아주려는 듯 했다.
"안녕. 야옹아. 너도 나처럼 잠이 안 오니? 아니면 지금이 네 시간일까나."
레레시아는 그 고양이가 최근 면식을 튼 사람일거라곤 생각치 못 했다. 그래서일까. 늘어지지도, 답답하지도 않은 차분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고양이를 보는 표정 역시 잠잠히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뭐라도 주고 싶은데. 갖고 나온게 없네. 뭐, 처음부터 내 건 없었지만."
토도독 토도독. 레레시아는 그저 벤치를 두드리기만 하며 이런저런 말을 던졌다. 답을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멀거니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쓰다듬어보려는 듯 손을 다시 들어보지만, 살짝 들린 손은 다시 벤치 위로 내려져 벤치만 두드렸다.
여승우는 입이 짧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맛있는 걸 먹어도 그렇구나 정도에 그치고 맛 없는 것도 그러려니 삼키고 마는, 식사에 무관심한 유형이다. 물론 체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데다 먹지 않고 굶는 것은 힘드니 꾸역꾸역 건강하게 정량으로 챙겨 먹긴 하지만. 그런 연유로 그는 오늘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뭐나 먹을지 고민하다 적당히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르게 되었다. 자주 들락거리지는 않아도 다시 방문할 정도는 되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전후 사정은 그렇고, 어쨌거나 그렇게 대충 먹고 마는 그에게도 호불호 정도는 있는 법이다. 고기와 채소 비율은 이왕이면 3:7이 좋고 무거운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뭘까. 그는 종업원이 제 것이라며 가져온 접시를 슬쩍 보고는 눈썹을 까딱거렸다. 음식이라고 하기에도 무식할 정도로 구운 고기만 가득한 이걸 메뉴라고 불러도 옳은가? 이 정도면 기름을 퍼먹는 수준이다 싶다. 보기만 해도 느글거리는 고기 덩어리들을 보려니 표정이 자연스레 질린 얼굴이 됐다. 딱 봐도 음식이 잘못 나온 듯하니 그는 곧장 직원을 부르려 했다. 식탁 앞에 진 그림자에 고개 들어 인기척의 주인을 쳐다보기 전까지는.
"에휴, **. 딱 봐도 그래 보이네."
그는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다 그릇을 들어 엔에게 내밀었다. 음식 양도 상당하니 꽤 무겁다. 그릇을 건네고선 그가 한숨을 쉬며 쓸데없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했다. 아니, 헷갈릴 걸 헷갈려야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엔의 식성을 모르는 경우가 더 드물 거다. 직원이 엔을 당연하게 안다는 보장이 없다는 건 가볍게 무시하는 푸념이었다. 음식이 왔으면 먹을 생각부터 할 것이지, 그는 제 접시를 앞에 두고서는 두 손을 뒤로 넘겨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기대는 폼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덤이었다.
마리는 고양이의 모습인 자신에게 손을 뻗는 것을 빤히 바라봤다가 이내 그 손이 앞 발 근처에서 왔다갔다하자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그 손가락을 쫓았다. 이내 앞 발을 허우적거리듯 레레시아의 손가락을 툭툭 건들이다가 레레시아가 말을 걸자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앞발을 떼었다.
크림색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라고 해도 역시 본 모습은 사람일거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긴 했다. 괜히 오해를 사거나 해서 어색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금새 변신을 풀었다. 방금과 같은 크림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으로 돌아온 마리는 벤치 앞 바닥에 앉은 채로 레레시아와 눈을 마주할 것이었다.
“…잠이 안 와서 나온 거야?”
자신도 그렇다는 듯 깜빡이는 눈동자는 레레시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었다. 마리는 지나가면서 레레시아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마리의 또래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래 친구가 없었던 마리는 레레시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