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회 초짜인지는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에게 신입은 다 사회 초년생이다. 그의 첫..? 사회가 이곳이라고 다른 이들도 마땅히 그럴 거라는 생각은 별 의미 없는 스키마이다. 자신의 잘못이었든, 아니든, 어쨌든 괜찮다는 뜻인것 같으니 머리 더 굴릴 의미는 없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당신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걸 가만 바라본다. 이야, 멧돌 굴러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잡)생각이 많은건 나도 매한가지였지,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희미해진다.
“...그래. 그래서, 네 이름은? 그러고보니 통성명도 안 한 사이였네.”
"내 성은 '유루', 이름은 푸르른 단어면 전부 반응해. 편하게 불러."
이것 봐라, 긴장 풀라더니 아직도 이러네. 괜히 이런걸 또 상기시켜줘 봤자 결과는 더 안좋을터, 그러니 그냥 넘어간다. 자신의 텐션이 더 높았다면 놀리고도 남았겠지만. 무엇보다 목마르다, 뭐라도 얼른 사먹고 싶은데. 이러다가 삑사리 나면 좀 창피하겠는데. 헛기침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당신이 비명도 지른걸 보니, 여간 긴장했나 보다. 본인이 무서운 인상이라곤 생각해본적 없는데, 거울이라도 다시 봐야 하나. 놀랄수도 있던 상황임에도 내색 없이 가만 서 있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수 없는 미소다만, 사실 별 생각 없다. 기회도 왔는데, 캡틴주스라도 마셔볼까. 당신의 귀를 보아하니, 아까의 색보다 더 어두운 회색으로 변해있다. 그렇게 당황스러웠나? 아님 내가 잘생긴 걸까? 후자는 아니겠지. 반란하러 들어온데서 미남 따위가 눈에 들어올까. 당신도 당신만의 목표가 있겠지. 조금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전투는 제대로 할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의 눈에 비치는 당신은 겁쟁이, 그래도 자신의 과거에 비하면 당신은 준수한 부대원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선 입을 연다. 여기까지 이어져 었던 침묵은 당신이 느끼기에 길었을까.
“그래, 고마워.”
‘죄송’을 분명히 들었다만, 굳이 더 꼬집어봐야 자신만 귀찮지. 당신을 잠깐 내려다봤던 표정은 무심해 보였다. 비키는 속도 보니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같은 의미불명의 생각을 하곤 자판기에 돈을 넣는다. 누른 음료는 지코.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잠깐의 정적후에 버튼을 한번 더 눌러본다. 또 정적.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눌러보아도, 주먹으로 버튼을 툭툭 쳐봐도 이어지는 정적.
“뭐야, 고장났네.”
분명 어제는 잘 작동 했는데. 그러고보니 아침 즈음 누가 동전에 실을 감아 음료수 무한 뽑기를 시전했었지. 그걸 그냥 무시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풀리네. 이제 이게 망가졌다는걸 에스티아 양에게 보고해야 할텐데, 그렇다면 왜 망가졌는지도 말해야 할테고. 그러면 방관했다고 야단맞을 수도…아! 귀찮다! 귀찮음이 얼굴에도 그려지듯, 미소가 무표정으로 덧씌워진다.
“너 운 좋네, 이거 썼으면 돈만 낭비할 뻔했어.”
아까와는 다른 변덕일까, 당신더러 괜히 이 상황에 뇌 굴리지 말라는듯, 굳이 말을 잇는다.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고는 또박또박 상대의 질문에 대답한다. 먼저 이름을 소개하는 게 맞았을까?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거랑, 지금까지 긴장한 태도가 '당신과는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네요'라고 비춰지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으니 그만뒀지만.
"아, 네, 유루 씨...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그, 이름은 천천히 생각을 좀...해보겠습니다."
푸른 단어라면 전부 반응한다지만 그렇다고 아무 단어나 써서 사람을 부른다니 묘한 거부감이 든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도 같지만... 그보다는 지금 자판기 앞에 선 남성이 버튼을 눌러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사실에 당연히 이어져야 하는 결과, 즉 음료수가 나와야 한다는 결과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고장 났다는 걸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나? 아니, 분명 상대방도 알고 있겠지,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러면 뒷북이 되나? 아니, 단순 뒷북이 아니라 지금 놀리는 거냐고 할지도 모르는데... 이걸 어쩐담. 손에서 땀이 나는 건지, 단순히 차가웠던 캔의 겉면에 습기가 생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손이 축축해지고 있었다.
"그게... 사실 저도 여기서 음료수를 마시려고 했는데, 고장이...난 것 같아서 그... 미리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 텐데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큰일이다, 뭘 마시려고 했었지?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까, 어떤 음료수였더라? 한 번 누른 것도 아니고 여러 번 누르는 걸 봤으니. 아마 코코넛 음료수였던 것 같은데, 그는 빠르게 뒤로 돌아서 멀쩡한(콜라가 뒤바뀌어 나오긴 했지만) 자판기 쪽으로 달려가, 그가 찾는 음료가 있는지 살폈다. 있었다면 그대로 뽑아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친하게 지내자'라던가 '편하게 지내자'같은건 말이 잘 안나온다. 지금 평화로워도 우리는 지금 목숨을 내놓다시피한것 아닌가. 그런 말 하는것도 상황엔 안 맞겠지. 천천히 생각해보겠다는 당신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곤 묵묵히 서 있다. 요즘들어 만난 애들은 어째 죄다 성씨만 골라 부르네. 하기사, 이건 내가 첫인상을 이상하게 줘서 그런 거겠지. 전에는 그래도 이름에 버라이어티가 있던게, 참 재밌었는데.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 또라이라고 부르는 놈도 있는데 뭐."
그것도 명백히 내 잘못이 있지만. 성격 좀 죽이면 그때처럼 이름으로 불리는게 더 많으려나. 그렇게 생각한건 매우 짧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때는 너무 지루했어. 오늘은 되는일이 하나도 없네. 이런 날에 능력을 쓰려면 더 피곤해질 테지. 오늘 훈련은 보류해야겠다. 당신의 뇌리에 무슨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있는지는 신경도 안 쓰듯, 평온한 그. 아마 지금쯤은 능력의 사용 가능성 생각중일것이다.
"천천히 생각해, 진짜 아무거나 괜찮거든. 그때그때 달리 부르는것도 괜찮아."
뒤늦은 타이밍에 말을 이어붙인다. 혹시나 해서 그런거다, 왜, 당신이 이런 문제 따위에 골머리 썩히면 결국 본인 탓 아닌가. 그런건 자신도 사람인지라 거부감이 든다. 버튼 누르기를 포기하고 에스티아 양이 지금쯤 어디 있을지 상상도를 펼쳐본다. 개발실? 아니면 대장과 함께? 만약 지금쯤 다른걸 하고 있을수도 있지. 그냥 얼굴만 아는 사람인지라, 주어진 정보가 몇 없다. 그냥 내버려 두면 언젠가 고치려나. 그런 생각이 꼬리를 잡던 중, 당신의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본다. 눈을 가늘게 뜬건 아마 별 실없는 생각 중이었어서 그런 것일테다.
"그래? 아깝네, 돈 날려서. 내가 계속 말 걸어왔으니 말할 타이밍이 없었겠지."
말이 나오기 무섭에 당신이 자판기 쪽으로 달려가는걸 가만 바라본다. 무표정인 얼굴로 눈만 깜박이더니, 이내 자신도 당신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자판기에는 지코가 .dice 1 2. = 1 (1=있다 2=없다)
1= 안 사줘도 된다고 뭐라 하려 했는데, 이미 음료수를 뽑은 상태라면 그냥 받을 것이다. 뭔가 고전 만화에 나오는 양아치가 된 기분이라 조금 거부감이 들지만, 안 받으면 그건 그것대로 무례하지 않은가.
"말리려고 했는데, 늦은겄 같네. 고마워, 잘 마실게."
이게 그렇게 맛없다던게, 과연 소문 값은 할까. 뚜껑을 열고선 한 입 마신다. 괜찮은데? 코코넛 워터 맛이네. 역시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가. 그런 생각을 한다. 당신을 주시한 결과, 지금 떠나면 자신이 화났다고 오해할 확률이 꽤 높다. 그건 그것대로 귀찮은데. 나중에 같이 임무 나갈수도 있고, 그런건 팀워크가 중요하니. 근데 좀 눕고싶다. 피곤한지, 눈이 조금 가늘어지곤 주위를 둘러본다.
"괜찮으면 어디 앉아서 마실래? 물론 네가 괜찮다면."
굳이 같이 마시자는 소리까진 안 했지만, 말엔 뉘앙스가 있다고 그는 믿는다.
2= 그는 이제 음료수는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벌써 두캔어치 돈을 썻는데 계속 쓰기엔 기분이 좀 찝찝했다. 당신이 아무것도 뽑지 않았다면 당신의 얼굴 앞에 손을 휘적댄다, 됐다는 뜻이다.
"괜찮아. 물 마시면 돼. 너도 가서 일 봐, 자판기는 내가 알아서 말 전해 놓을게."
굳이 막 들어온 신입한테 잡무라던가, 이런 불편한 상황에 방치해 놓을 정도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러면 너무 선을 긋는것 같아보여도, 첫만남에 너무 짜증나게 계속 말 걸면 누구라도 불편할테지. 그가 알 바는 아니다만. 이 부대에 대해서도 드는 생각이 몇 있었지만, 그건 굳이 지금 곱씹긴 싫다.
그래, 이 정도면 좋겠다. 적당한 거리감에, 적당한 친밀감. 이런 걸 친밀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한 거리감이 곧 적당한 친밀감이겠거니 생각하다가 그가 잠시 뜸을 들이자 뭔가 말을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할 말이 남았을까? 생각한다. 그 뒤에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는 말과 함꼐, 누군가는 또라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에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농담이겠지? 아닌가?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루 씨."
일단은 무난하게, 성씨로 부르는 걸로 결정했다. 그의 말마따나 천천히 생각하는 게 낫겠지, 어떤 이름이 그의 마음에 들까 생각하는 건 꽤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나쁠 게 없을 테니까. 사람마다 부르는 호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꽤 특별하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보다는 지금, 그에게 가져다 줄 음료수가 자판기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자판기에는 그 음료가 있었다.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상대방, 그는 서둘러 동전을 넣고 그 음료의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이 자판기는 멀쩡했고, 다음 순간 음료수는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유루 씨."
그렇게 건넨 음료를 그는 고맙다며 받아들었다. 말리려고 했다는 말에는 조금 괜한 행동을 한 걸까 생각했지만 아마 그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만약 괜한 짓이었다면 고맙다는 반응은 하지 않았겠지. 자신의 앞에서 곧바로 음료의 뚜껑을 열고 마시는 모습을 올려다본다,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그런 걱정이 생긴다. 음료 때문에 이리저리 움직이게 된 것 때문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아, 그제야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벌써 탄산이 반쯤 빠져 버렸지만, 여전히 시원했기에 괜찮았다.
"아, 네, 괜찮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는 상대방의 모습으로 미루어봤을 때,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려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바로 어디론가 가버렸을지도. 그랬기에 그는 상대방이 하는 말이 같이 잠시 음료나 마시지 않겠냐는 말이라고 이해했다. 물론 뒤엣말을 정확히 듣기 전에는 서서 마시는 게 불편해보인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 어딘가 찾아서 앉아 음료를 손에 쥐고 마시기 시작한다면 뭘 해야 하나, 무슨 말이라도? 그렇다면 화제를 골라야겠지... 또 복잡해지는 생각을 애써 정리하면서 주변에 앉아서 쉴 만한 자리를 찾는다. 보통 자판기 옆에는 으레 앉을 만한 의자나 기댈 만한 턱이 있을 텐데...
어느정도 돌아다닌 바, 마을의 구조는 구석구석 샅샅이 다 알게 되었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마을의 비능력자인 사람들은 잘 몰랐겠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는 호수가였다. 원래 물이라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렇게 밤중에 호수가를 찾은 마리는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단은 가장 머릿속을 많이 채우고 있는 것은 지급받은 레플리카 보검이었다. 이 보검을 어떻게 이용하여 제 능력을 강화할지에 대해 조금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방어구 커스튬을 본인이 직접 하라는 것에 조금 막막해지는 것도 있었고.
나름 그 때 본보기를 보여준 아스텔을 생각하면서 그런 비슷한 착장을 해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밤중이라 사람이 없어 동물의 모습이 아닌 본래 모습으로 돌아다니다 호수가에 다다랐을 때, 마리는 뭔가 노랫소리 같은 게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마리는 빨려가듯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리고 한 여성의 인영을 발견했다.
달밤에 달은 빛나고, 그녀는 노래한다. 당신이 노래 소리에 이끌려 발견한 것은 검은 머리에 하얀 머리가 구레나룻 부분에만 있는 여성 주변에 신경쓰지 않듯 그녀는 노래하고 있었다
"~♪"
호수가에 울려퍼지는 것은 하나의 노래, 격정적이면서 어딘가는 잔잔한 가사의 노래를 그녀는 부른다. 호수가의 정적을 동료로 삼듯,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노래를 듣고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녀를 발견하지 못하겠지. 노래를 부르다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듯, 노래를 멈춘다.
"...부족하네"
부족하다. 아직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경지가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은데 닿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기척을 느끼고 그 쪽으로 시야를 돌린다. 보이는 것은 한명의 여성, 키는 자신보다는 크지만 어딘가 앳된 자태가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
당신을 보고 뭐지?하고 쳐다본다. 연습을 들킨 것 자체는 괜찮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을 들린 것이 부끄러울뿐 아리아는 당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레레시아는, 정확히 쌍둥이는 자기소개를 할 때 항상 부를 이름을 따로 일러주곤 했다. 그러나 강요는 아니었으니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불러도 쌍둥이는 큰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둘만의 호칭을 선뜻 입에 담지만 않는다면.
"헤- 아리아는 노래로 하는구나아. 좋겠다아. 나도 노래는 좋아하지만 그런 건 못 해-"
그녀가 불러달라는 대로 패드에 적히자 빤히 바라보다가 이어진 문장에 재잘재잘 떠든다. 노래와 관련된 세븐스. 잘 모르겠지만 노래하는 걸로 능력이 된다니 진심으로 부럽다. 그녀처럼 조심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보이니까. 좋겠다아. 다시금 중얼거린 레레시아는 남은 쇼핑에 동행해주려는 아리아를 보고 눈매를 살짝 휘었다. 웃는 것처럼.
"같이 가주는 거야-? 와아. 리아랑 같이 쇼핑-"
말만 보면 참 기뻐하는 아이 같지만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그 톤이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친 그런 식의 반응을 하도록 짜여진 알고리즘 같다. 아니면 그저 맹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레레시아는 느긋한 걸음으로 몇개의 매대를 지나쳐 한 코너에 멈췄다. 여성이라면 꼭 있어야 하는 필수용품이 빼곡히 들어찬 매대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원하는 걸 찾은 듯 패키지 하나를 집어 장바구니에 휙 던져넣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리아느은 여기 언제 들어왔어-? 왜 온 거야아?"
으응? 긴 머리가 와르륵 쏟아질 만큼 고개를 푹 기울여 아리아를 한 번 보고, 얼른 고개를 들었다. 아까처럼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 부딪히면 안 되니까. 짧게 스쳐간 시선은 한순간이지만 아리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당신의 말투를 보아하니 긴장은 풀린걸까, 이젠 신경 쓰지 않아도 될까싶어 그도 내심 편한 기분이다. 근처에 있는 테이블중 제일 가까운 데로 가 앉는다. 더 깨끗한 테이블들도 근처에 널려있는데, 정말 대충 산다… 테이블에 널린 과자 부스러기 등을 털지도 않고, 의자에 널부러져있다.
“그래, 리오. 능력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
음료수를 입에 댄 채로 질문을 던지고, 곧이어 든 손의 각도를 기울여 음료의 반 정도를 입에 털어넣는다. 언제 임무가 떨어질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일찍히 동료를 파악해서 나쁠거야 없지.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샛노란 눈은 당신의 검은 눈을 가만 바라보고 있다. 그나저나 당신의 눈은 검은색인걸까, 아니면 다른 짙은 색인걸까.
“내 능력은 뭐라고 생각해?”
이건 또 뭔 질문이지, 그저 남이 보는 자신은 어떤 능력을 갖게 생겼나 궁금한 것이다. 아까부터 변화가 없는 무표정은 언뜻 서늘해 보이기까지 한다. 별 의미는 없고 그냥 아싸 체질이라 사회생활 좀 하려니 기가 딸리나 보다. 당신이 답을 할때까지 가만히 주시할 기세다. 남은 음료를 입에 머금고, 혀로 잠시 굴리더니, 삼킨다.
패드에 문장이 쓰일 때마다 레레시아는 틈틈히 보고 대답을 했다. 은근슬쩍 줄인 이름에 애칭인가 하는 문장이 뜨자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고, 그녀가 한 말에 상대가 뭐라고 생각하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무미건조하게 내뱉은 말이 거짓으로 들리든 아니든- 레레시아에겐 아무래도 좋은 부분들이다. 그저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흐응."
지나가는 길에 적당히 꺼낸 질문에 아리아가 패드에 문장을 쓰자 힐끔 그것을 본다. 가볍게 다물린 입술 사이로 목 울리는 소리가 작게 나고, 레레시아의 손이 매대에서 물건을 꺼내 장바구니로 휙 던져넣는다. 바늘이 종류별, 사이즈별로 들어있는 반짇고리 세트가 달그락대며 물건들 사이에 섞여든다. 제대로 들어간 걸 시선 끝으로 확인하곤 레레시아가 아리아를 보았다.
"그으럼 영영 알 일 없겠네에. 뭐 그냥 해본 말이니까아."
빈 말이든, 진심이든, 친해지면 알려준다는 건 레레시아로서는 안 알려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 정도로 가까워질 생각도 친해질 의향도 없으니까. 니히. 다시금 레레시아의 눈이 가늘게 휘어지고, 장바구니를 한 번 덜걱대곤 계산대가 있을 방향으로 휙 돌아섰다.
"다 찾았으니까 계산하러 갈까나- 가자 가자아."
말은 가자고 하지만 아리아와 걸음을 맞추거나 팔이나 어깨를 잡아 이끄는 행동 따위는 없다. 큰 키만큼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서 계산대로 향했다. 한 번 돌아봄도 없이.
별 것 아니라는 태도, 뭐 누구든 사정이 있는 법이지. 그리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간다. 영영 알 일이 없다라. 뭐, 상관없으려나. 굳이 모든 이와 친해진가더나 할 생각은 없다. 삶은 고독, 외로움, 정체니까.
'가볼까요-'(필담)
그리 말하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밝은 척 연기하는 어린 아이라는 느낌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배우에도 어울렸을까.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며 그녀를 따라 걷는다. 나는 상담사가 아니니. 한참 계산이 끝나고 패드를 레레시아에게 보여주고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괜찮다는 말은 아마도 정답이었던 것 같다. 상대가 그대로 가장 가까운 테이블,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의자에 가서 앉자 그 역시 그를 따라서 의자를 잡아당긴 뒤 그 위에 앉았다. 테이블이 조금 지저분하긴 한데, 아마 별 생각 없이 여기에 앉은 거겠지. 이런 부분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아, 능력이라면... 감각의 활성화라고... 해야 할까요, 네. 이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오감은 물론이고, 불가사의한 감각, 즉 육감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지닌다. 그런 것까지는 입 바깥으로 내지 않으면서 그는 당신의 얼굴로부터 자신의 손에 들린 캔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그마한 캔의 입구 안으로 보이는 음료가 찰랑인다.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전혀 의도하지 않은 눈맞춤에 두어 번 눈을 깜빡인다. 왜 저렇게 바라보는 걸까.
"유루 씨의... 능력...말씀이시죠?"
뭔가 힌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방금 막 만나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사람의 능력을 추측하라니, 정보가 아예 없는 걸 추측하는 건 추측이 아니라 그저 찍어맞추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그런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니 전혀 상황이 나아지는 않았지만. 감정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안 그래도 더욱 신중해지고 있다. 신중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그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글쎼요, 염력...이라거나? 제가 이런 쪽으로는 전혀... 재능이라거나 없는지라."
그는 조금 딱딱한 것 같은 상황을 풀어보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금새 다시 천천히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양 손을 공손히 무릎에 뒀지만.
>>193 이 스레에서의 설정을 토대로 하자면 보검을 쓰는 세븐스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무장을 장착한 상태로 변신하는 느낌이지만.. 변신의 개념은 개인의 자유로 두고 있어요. 그냥 강화시키는 것으로 하고 싶다면 하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보검은 기본적으로 검 형태이긴 하지만 자신이 커스터마이즈 해서 다른 형태로도 가지고 있을 수는 있다는 설정이에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단 기본형태는 검이에요. 진품은 어림도 없지만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조품. 즉 레플리카니까요.
그가 문을 쾅 쳐서 회의실로 들어왔다면 의자에 앉아 벽에 달린 스크린으로 가디언즈 V 영상을 보고 있던 아스텔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아스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당히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면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이 마냥 멍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튼 문이 쾅 열리는 소리에 아스텔은 고개를 가만히 돌렸다. 대장 나오라고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받으러 왔다는 그 말에 아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의실에 설치되어있는 기기에서 비디오를 꺼낸 후에 제이슨에게 넘겼다.
"...미안. 대장이 돌려주라고 1시간 전에 말을 하긴 했는데 대체 이게 어떤 비디오인지 내용이 궁금해서."
별 감정이 담겨있지 않는, 그냥 말 그대로 딱히 비디오에 대한 찬양이나 부정없이 그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아스텔은 제이슨이 비디오를 받을쯤 손을 아래로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약하게 내뱉은 후, 아스텔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당연하지만 내가 아는 보검 사용자들은 하나도 없었어."
하긴, 이런 비디오에 나올리가 없지. 그렇게 조용히 혼잣말을 하며 아스텔은 제이슨을 가만히 바라봤다. 혹시나 무슨 말을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물론 아무 말도 없다면 그것으로도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가디언즈를 홍보하고자 하는 프로파간다 비디오 같은데 조금은 닮은 이를 내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아스텔은 생각했으나 눈앞의 상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2차 매체. 2차 창작물 같은 것일까. 그것이 뭔지 아스텔은 당연히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보다 왜 그런 2차 창작 비디오를 그가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자신의 추측대로라면 그는 가디언즈에게 좋은 감정이 없을터인데, 오히려 재밌지 않냐고 물으면서 눈을 빛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적어도 아스텔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디언즈가 아니라면, 조금은 더 즐겼을지도. 아니. 재밌게 봤을지도."
역시 주역이 가디언즈라는 것이 아스텔에게 있어서는 그리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가디언즈가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붙이면서 아스텔은 살며시 평가를 간접적으로 표했다. 이내 그가 가지고 있는 비디오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스텔은 제이슨을 바라보면서 비디오를 손으로 콕 가리켰다.
"너는 가디언즈가 싫지 않나? ...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지?"
생각보다는 별로 안 싫은 것일까. 그런 의문을 아스텔은 품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순분자로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었다.
어깨에 올려뒀던 손을 탁탁 털고, 제이슨은 팔짱을 떡하니 낀다. "가디언즈가 아니었다면"이라는 말에 대해, 그는 딱히 별다른 의견을 표하진 않았다. 확실히, 평범한 것은 아니겠지. 보통 여기 사람들은 가디언즈에 대해 딱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제이슨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는 "TV속 멋진 매체"랑 "현실의 이런저런 일"을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왜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냐니. 보라고 부대장. 멋있는 로봇이 나오잖아. 이걸 어떻게 참아.]
[...그리고 말이야. 싫거나 밉다고 해서, 그와 관련된걸 전부 미워하고 싫어해야 하는건 아니라고.]
제이슨이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말했다. 확실히 비디오의 표지에 그려진 로봇은 멋있었고, 그 내용은 보통으로 "평화를 지키는 영웅들"의 내용이었다. 세간에서는 애니메이션계의 희망이라고도 하고, 평가도 괜찮았다. 순전히 그런 이유였다. 제이슨은 "재미있는 것"이 좋았다. 멋진 로봇도 좋아했고, 영웅들의 이야기도 좋아했다. 그런 것이었다.
그게 아스텔이 제이슨에게 품은 감정이었다. 만약 반대로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자신은 절대로 저 작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파괴하러 다니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딱히 가디언즈와 관련된 무언가를 자신의 근처에 둘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방금 전도 대체 이게 무슨 비디오인가 싶어서 봤었던 것 뿐. 아무튼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을 하며 아스텔은 제이슨을 바라보며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딱히 그의 사상. 모든 것을 미워하고 싫어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크게 보자면 오히려 그의 말이 맞았으니까. 단지 자신은 그러지 못할 뿐이었다.
"...정말로 나온다면 모든 작품을 다 볼 자신이 있어. 그건."
로봇을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제이슨처럼 막 엄청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만약 나온다면 자신같은 이도 나올까. 낚시 하는 장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절로 아스텔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작게 지었다. 이내 빠르게 표정을 관리하며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긴 했지만.
"...아무튼 미안. 그 작품에 대해서는 뭐라고 평을 할 수 없어. ...난 U.P.G도, 가디언즈도 좋아할 수 없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듯, 아스텔은 무덤덤한 어조로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이어 고개를 살며시 올린 아스텔은 제이슨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비디오를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에스티아라면, 좋아할지도. 로봇이라는 점에서. 에스티아는 그런 쪽을 좋아하니까."
제이슨은 과장되게 이두근을 자랑하는 자세를 취하며, 반쯤 농담조로 그의 말에 반응했다. 확실히, 그의 생각대로 제이슨은 어딘가 조금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저런 매채를 보고, 좋아하고 하는 것이 적어도 이 에델바이스 내에서 정상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제이슨은 개조인간. 그 개조를 행한 것은 가디언즈와 U.P.G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제이슨은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그런 몸으로 만든게 그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이들일지도 모른다. 아는게 하나도 없다면, 적어도 좋아하는 걸 보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게 그의 생각이었다.
[오, 좋지... 부대장도 낚시가 취미인 은둔 고수같은걸로 나올지도 모르고.]
문득 하얀 수염을 기른 아스텔을 생각하고, 제이슨은 웃음을 참았다. 크흠, 헛기침을 한 제이슨은 에스티아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그래? 언제 한번 보여줘볼까... 싶긴 한데. 그 꼬맹이는 내가 잘때 손목을 떼고 커피 포트를 달아버리는게 아닐까 싶다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제이슨이 말했다. 물론 반은 농담이지만,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마음도 살짝 있었다. 몸의 수리 등은 그녀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그였지만 말이다.
반짝 반짝 빛나는 햇빛이 예뻤다. 길거리에 반짝이를 뿌린 것처럼 희게 반사되는 햇빛과 어우러지는 풍경에 흠뻑 취해 콧노래를 부르면서 미카엘라는 영화관에 홀로 걸터앉아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고 한 손으로는 팝콘을 집어 입으로 넣었다. 얼마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는 문화생활인지 스크린에 비치는 평화로운 엔딩장면에 파묻혀 기억을 되뇌어보지만 까마득했다.
"너희들도 살아서 이 자리에 있다면 좋을텐데.."
화면 속 가상의 이야기에 빠져 방실방실 웃던 얼굴이 금세 쳐져 시무룩한 울상을 만들어내고 감상에 빠진 여인은 행복하게 화사한 거리를 바라보는 주인공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들어갈 때 적색과 노란색으로 붉게 저녁놀이 졌던 하늘이 어두운 푸른색으로 물들어져 깜깜했고 그녀는 멍한 얼굴로 하늘을 한 번 쳐다보다 거리를 바라보다 드디어 앞을 바라보았다.
"어어? 안녕하세요! 영화 보시러 온거에요?"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동료니까, 반가운 마음에 팝콘 통을 잡고 있지 않은 쪽 팔을 들어 좌우로 흔든다.
허나 자신은 낚시를 좋아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낚시로 나와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사실 딱히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별 감정은 없었다. 어차피 거기에 있는 것이 진짜 자신도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은 별 임무가 없을 것 같으니 밤낚시나 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살며시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역시 오늘은 나가자. 재밌을 것 같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작은 미소를 슬며시 보였다.
"...아무리 에스티아라도 그런 짓은 안 해. 그보다 왜 커피 포트?"
갑자기 커피 포트를 단다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아스텔은 고개를 살며시 갸웃했다. 에스티아가 그에게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로벨리아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에스티아에게 가서 주의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로벨리아에게 말해봐야 애가 물건 좀 만들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밖에 나올 것 같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적이기에 가능한 소리지만. 아무튼 나중에 에스티아에게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튼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둬. ...비디오도 보고... 로봇도 보고. ...아마 조만간에 출격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세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아스텔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괜히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을 좀 더 허리춤에 끼운 후, 그는 다시 말을 한마디 더 읊었다.
정말로 그 뿐, 딱히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아-하지만, 에스티아라면 몰래는 아니어도 "그럼 편리할지도"라고 한 마디만 해도 달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번에, 내 가슴에 호랑이 머리를 단 적이 있었지... 엄청 멋있어서 좋아하긴 했는데... 역시 너무 많이 눈에 띄어서 둘이서 눈물을 머금고 떼어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후에 둘이서 몰래 "다음엔 사자 머리나 용 머리를 달아보자" 한 것은 비밀이고.
[모조 보검? 아아, 그거 말인가. 쓰기 어렵진 않더라. 사용법 정돈 이미 꽤 숙지했다고.]
그렇게 말하며 제이슨은 자신이 받았던 모조 보검을 소환한다. 그 보검은 길고, 고리가 달린, 마치 석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중국풍 분위기에 맞춰서 모습을 변화시킨 것이겠지.
[30%라고 했나. 그래도 대단하더라. 팔 만이 아니라 다리랑 상하반신이나 머리도 분리시킬 수 있었어.]
>>304 평상시 쌍둥이? 각자 소속이 다르니까 같이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 아니면 훈련시간인데! 대신 어릴 때 같이 놀았던 시절로 대답을 해주자면~~ 서로 마주보고 표정과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일명 거울 놀이를 즐겨했어! 어릴 때는 머리길이도 비슷했고 눈동자만 아니면 똑같이 생겼으니까!
선우는 검을 바닥에 찍어 지팡이처럼 몸을 지탱했다. 숨을 고르면서 몸을 회복했다. 정신 없이 날아오는 과녁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성을 버리고 오직 몸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은 지금의 그로썬 너무나 어려운 경지다.
선우는 멜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괜찮지 않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너야말로 과녁 움직이는 솜씨가 예술인걸?"
멜피가 준 음료를 들이키자 차가운 냉기가 온 몸을 휩쓸었다. 몸의 열기가 진정되며 회복이 되는 것 같았다.
"선배야 말로 수고했어!"
힘이 빠진 선우는 그녀의 옆에 앉아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네. 과녁 움직이는 것도 나름 힘들었을 텐데."
선우는 그녀의 과녁 다루는 솜씨를 칭찬하며 그녀가 전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음을 대단히 여겼다. 물론 그가 몸을 움직였으므로 더 힘들었겠지만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역시 선배는 선배다라고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약간의 존경심 마저 품게 되었다.
"...에스티아가 3년 동안 연구했지만 그게 고작이었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5%가 고작이었지만 어떻게든 30%까지 끌어내는 레프리카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
그 말의 의미는 에델바이스가 세워질 무렵의 시기부터 이 보검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허나 그에 대해서 아스텔은 굳이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제이슨을 바라보며 제이슨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몇 번 끄덕였다. 검 형태를 커스텀해서 석장 모양으로 만든 것일까. 그 또한 원본이 아니라 레플리카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쨌건 진짜는 아니었으니까. 결국 자신의 형태에 맞출 수 있도록 에스티아가 개조하고 개발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혼자서 납득했다.
"...가능한거야? 그렇게도?"
다리와 상하반신 거기다가 머리까지. 만약 자신이 그런 적을 상대한다면 대체 어떻게 대처했을까. 어디부터 공격을 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순간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적들에게도 혼란을 주기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스텔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앞으로 치켜세웠다.
"굿 잡."
짧고 간결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거론하던 아스텔은 미소를 머금었다. 뒤이어 오른손을 높게 들자 녹색 빛이 모여들었고, 그 빛은 곧 보검의 형태가 되어 그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그 끝이 뾰족하면서도 길쭉한, 일종의 삼각형 모양의 형태를 지닌, 이전에도 보인 적이 있는 바로 그 보검이었다.
제이슨은 딱히 깊게 파고들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이 조직에게 깊게 연관될 생각은 없었고, 그리고 열심히 했으니까 별로 다른 말은 안 하는 편이 낫겠지. 애초에, 제이슨은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깊게 연관되려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사람과 친하게는 지냈지만,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하려 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 몸 탓이 크겠지.
그리고 엄지를 내밀어주는 아스텔을 보고, 제이슨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팔을 똑 떼어냈다. 그리고 그 왼팔을 공중에 띄운채로 엄지를 척 올리고 주먹을 맞대주었다. 뭔가 기괴한 광경이었다.
[음? 그 보검을?]
누구나가 원할게 분명한 진품인 보검, 제이슨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아스텔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꾸욱 밀었다.
[뭔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됐어... 애초에 내가 가져봤자 뭘 하겠어?]
왼팔을 똑 떼어내서 엄지를 척 올리고 주먹을 맞대주는 그 모습이 아스텔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비극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당사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가 얽혀있는 것은 아닐까를 떠올리나 확실하지 않는 가능성을 입으로 거론하지 않으며 아스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의도는 없어. ...그냥 가지고 싶냐고 물어본 것 뿐이야."
손가락으로 꾸욱 밀리자 아스텔은 질 수 없다는 듯 얼굴에 힘을 꽉 주고 버티려고 했다. 물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아무튼 보검을 다시 빛 상태로 돌려버린 후, 아스텔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당연하지만 보검의 형태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보검을 가진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이건 애초에 있어서는 안되는 물건이야. ...됐다고 말한 네 판단은 옳아."
허나 자세하게 말을 하진 않으며 아스텔은 조용히 손을 털었다. 그리고 슬슬 나가보려는 듯,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다 그는 발걸음을 살며시 멈췄다. 그리고 제이슨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네 몸.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세븐스 능력자 중에선 육체회귀를 쓰는 이도 있어. ...지금 어디에 있는진 나도 모르지만."
즉, 그 세븐스가 살아있다면 그의 몸을 원래대로 돌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살아있고, 만날 수 있다면의 야이기지만.
1. 「배달음식이 배달원의 주소 착각으로 늦게 온다면?」 A. 배가 많이 고프니 그다지 나무라지는 않을 것 같지만, 혹시 많이 불어버리거나 한 음식이라면 슬픈 눈을 하고 밥을 먹을지도...이후에 몇 번 더 배달을 시켜서 매번 늦으면 항의 대신 음식점을 바꿀 것 같다!
2. 「몸이 너무너무 아픈데 집에 약도 죽도 없다면?」 A. 아파서 못움직일텐데 눈물이 날것만 같아... 따뜻한 물이나 데워서 마시며 몸이 좀 나아지기를 기다리다가 나갈만하면 나가서 약을 사오겠어요!
3. 「일정이 없는 날에 갑작스런 당일 약속을 권유받는다면?」 A. 일정이 없었으므로 되도록이면 받아들일지도, 갑자기 인원이 모자라서 채우는 걸로 불러진다면 가긴 가겠지만 가슴이 쓰릴것만 같다... 그게 아니라 상대방 역시 갑자기 하고싶은 게 생겼을 때 생각난 사람이 자신이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만!
고개를 드니 하늘은 금방이라도 해 저물 듯 끄트머리가 주황빛이 되었다. 오늘 하기로 정해둔 일과는 막 끝마친 참이고, 저녁도 이르게 해결했으니 이제부터 남은 시간은 여가로 넘어갔다 그 말이다. 그 지점에서 그는 나름의 곤란을 느꼈다. 이곳에 머물게 된 지가 두 해를 넘었건만 아직까지도 그는 이렇다 할 취미를 들이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쉬려고 해도 할 일이 없어 멍이나 때리려니 아는 놈한테 백수같이 그러지 말고 차라리 술이라도 마시고 놀라며 잔소리를 들었더란다. 술 못 마시는 놈한테 그게 할 말이냐 하니 중지로 욕을 하더라. 그도 마주 욕해주고 제 마음대로 했다. 그냥 '편하게' '알아서',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쉬면 된다고는 하는데 그게 말대로 쉬우면 이러고 있겠나. 누구는 여기를 더러 작은 시골마을이라 이르곤 하지만, 이런 작은 마을에서조차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이렇게나 많으니 외려 무엇을 해야 편안한 것인지도 잘 모르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을은 그새 조금 더 드리워졌다. 멍하니 하늘구경이나 하던 그가 제 머리칼을 마구 흩어댔다. 이런 고민도 참 새삼스럽다. 어차피 이런 생각 해봤자 결론은 하난데 뭐. 그러니 제 가장 잘 하는 일이나 하는 게 이로우리라. 그리하여 그는 걷기로 했다. 행선은 정하지 않고 적당히 자리 나는 곳에 발 딛고 앞으로만 향하는, 산책이라 하기에도 무엇한 떠돌이 행선이다. 발걸음을 뗌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걸음수를 세는 것은 산책을 시작하며 해내는 사소한 습관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열다섯, 열여섯. 열여섯을 넘어선 후로부터는 그만두는 것도 습관에 포함이다.
어디를 향할지, 무엇을 볼지 특별히 정해두지는 않았으니 그렇게 도착하는 결과는 무작위다. 날마다 도착하는 곳이 다르니 매일마다 이 의미 없는 짓도 어찌 보면 취미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오늘은 영화관이다. 막 영화 하나가 상영이 끝났는지 때마침 상영관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뭉쳐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뭐 재밌는 거라도 하나? 관객들의 표정이 썩 괜찮기에 입구를 기웃거리며 죽 늘어선 포스터를 구경했다. 그러다 가까이에서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어어, **. 깜짝이야. "
아니, 왜 반갑게 인사를 해줘도 욕일까?
고개를 돌리니 보인 얼굴이 어딘가 낯선 듯하면서도 익숙한 감이 있다. 아, 조금 더 보니까 알 것 같기도. 그는 턱을 짚으며 제 앞의 상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눈이 조금쯤 게슴츠레하게 가늘어진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 너 뭐하는… 그거, 뭐더라. 너 뭐 돼?"
너 뭐하는 새*,라고 하지 묻지 않은 것만 해도 '아는 사이 같으니 나름 말 곱게 꺼내겠다'라는 뜻이다. 그냥 누구냐고 물으면 될 말이 '그거, 뭐'를 넘어서 '너 뭐라도 되냐'라는 말로 변질된 시점에서 이미 망했지만. 그의 처참한 어휘 선택이 말꼬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1. 「친구가 몰래 자신을 욕한 것을 알게 된다면?」 - 당장 찾아가서 진짜냐고 묻고 대답 여하에 따라 어떻게 할지 생각해봅니다... 근데 '쟤가 너 욕했음'이라고 고자질한 자식도 의심스러우니까 같이 끌고가서 삼자대면한 상태에서 따져요(?)
2. 「자신이 악역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알게 된다면?」 - 뭘 새삼? 에델바이스 봄... 안봄... 에델바이스랑 별개로 진짜 악역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주의야. (특별히 나쁘게 산 것도 아니지만)딱히 착하려고 사는 게 아니고 굳이 착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나쁘든 말든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함... 이런 마음 먹고 사시면 안 됩니다
3.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겉으로 드러내는 편인가?」 - 참는 쪽.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점이 된다면 드러내는데, 드러내는 방식에 좀 문제가 있는 편이긴 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겟습니다
1. 「누군가의 집에 놀러갔다가 물건을 망가뜨린다면?」 A.물건이 어떤거냐에 따라 다르다 소중한 것이라면 책임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돈으로 배상 2. 「계란 프라이는 완숙? 반숙?」 A.남이 해주면 둘 다 3. 「자신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괴롭혔다는걸 알게 된다면?」 A.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또 그랬나하고 쓸쓸하게 뒤에서 웃는다
오늘의 그녀는 매우 한가로워 보였습니다. 지하 1층에서 적당히 늘러붙어서 소파에 반쯤 누워있는 그녀였는데. 뭘 하는가하면, X튜브에서 고양이 영상을 보고 있었죠. 기본적으로 그녀는 동물이라면 다 좋아하는편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양이는 평상시에도 볼 가능성이 있다보니 이렇게 영상을 자주 보는편입니다.
뭐.. 본인이 고양이를 직접 만져본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녀는 그렇게 자주 고양이를 보지 못합니다만.
"골목길도 자주 다니는데 왜 안 나오는걸까.."
당신이 위험해보여서가 아닐까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영상속의 고양이를 그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스메라기 아리아: 083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일 때 머리나 몸이 가렵다면? A. 무시한다. 201 캐릭터가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 A. "당신이 심연을 보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심연은 당신을 볼 때 역광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079 인간과계는 넓다 or 좁다 A. 표면적으로는 넓지만 실질적으로는 좁다.
멜피가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해주자 마리는 조금 신이 났다. 멜피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말했다.
“곰 말고 공격하기 좋은 다른 동물에 대해서 고민 중이에요.”
여러 맹수를 생각했지만 곰 이상의 무언가는 생각나지 않았다. 곰, 호랑이, 사자, 표범? 지금까지 마리는 공격보다는 탐색이나 수색에 집중해왔다보니 여전히 전투 부분에는 센스나 그런 것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응. 저도 이래저래 연습 중이에요.”
보검의 힘으로 방어구나 착장이 바뀌는 게 제 능력하고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그걸 응용하면 동물로 변했을 때에도 방어구 착용 상태가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곰의 가죽이 질기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보호장치를 덧대는 게 더 안전하지 않던가. 지금까지는 동물로 변할 때마다 그 사이즈에 알맞는 방어구를 구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못했으나 보검의 힘으로 그 부분이 보완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녀는 새로 변하고나서 날개에 무장을 단다거나 하는 식으로 유동적인 무장변화가 가능하다면 전술의 폭이 엄청 늘어나지 않겠냐며 미소지었습니다. 모조 보검이라면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라한들 전투로 쓸 수 있을 정도일테니까요.
"공격하기 좋은 생물이라면 역시 맹수계열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역시 실존하는 생물밖에 안되려나?"
가령 유니콘이라던가. 그녀는 전설이나 환상속의 생물로도 가능하면 재밌을거 같다고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물론 능력의 한계라는건 엄연히 존재하니 안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그리고나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묻는 당신의 모습에 미소를 짓더니 손위에서 검은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라, 당신 방금 망설였죠? "이런거~"
그리고 이내 그림자로 만들어진 검은 고양이가 휙하고 당신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물론 할퀴거나 한다는건 아니니까요.
갑작스러웠던 훈련 이후에도 여전히 적응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이 별로라서? 사실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악은 아니었고, 그런 걸 따질 만한 처지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뭐지? 뭐가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었을까. 주변을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그에게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말을 받아서 대화를 시작했고, 그런 대화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어색한 지금, 얼굴을 많이 마주치지 않는 길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지..."
결국 사지라고도 할 수 있는 곳에 함께 뛰어들 사람들인데, 그들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었다. 아니, 행동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게 어떻게 행동이 될 수 있겠어. 때문에 그는 오늘은 조금 용기를 내서, 본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하는 사람들과는 간간히 인사도 나누고, 그렇게 얼추 한 바퀴쯤 돌았을까. 목이 탔기에 그는 휴게실로 들어섰고 그 곳에서「고장」이라고 써붙여져 있는 자판기를 지나쳐, 찬장에 놓인 찻잔을 집어들었다. 차가운 녹차라도 한 잔 해야겠다. 그는 먼저 물을 끓였다. 차가운 녹차인데?
"......"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가 휴게실 안에 퍼진다. 사람은...없나. 물론 그가 휴게실을 둘러보지는 않았으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물이 끓는 것을 보며 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다 접히지 못한 모자가 재킷 주머니에서 삐죽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한번 휴게실에 들어가볼까. 그리 생각하며 끼익 문을 열어본다. 그 곳에 들리는 것은 물 끓이는 소리, 누가 있는건가하고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것은 짙은 초록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잠깐 휘둥구레한 시선을 그에게 보내고는 패드를 꺼내듭니다. 그 때는 괴롭힘으로 목소리를 못 들려줬기도 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는 '싫은 것'이지만 그에게는 쑥스럽다가 적용되겠지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필담)
그렇게 그에게 말을 겁니다.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사람. 내게 혁명에 동참하게 한 계기가 된 기수를 든 자. 적어도 아리아에겐 그리 인식되는 것입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그 쪽을 보려고 했지만 보글보글, 칙, 치익, 하고 수증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끓였다간 물이 다 날아가 버리겠지, 라는 생각에 일단은 급히 온열기의 전기를 끊는다. 그제서야 누가 온 거지? 하고 돌아보려니. 갑자기 패드에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장시키려는 듯 가슴팍에 손을 올려둔 채로 다시금 패드에 쓰인 글씨와, 그 패드를 들고 있는... 여성,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는 아, 이러면 실례겠지. 하고 살짝 고갤 숙인다.
"아, 네. 오랜만에... 네?"
무심코 오랜만이라고 말해버렸지만, 그렇다는건 이전에 마주쳤었다는 건가? 언제? 어디서? 대체 뭘 하다가? 갑자기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시선이 흔들린다. 에델바이스 내에서는 처음 마주친 것 같은데, 아닌가? 그럼 엄청난 실례 아닌가? 설마 그 이전에 만났던 사람? 틀렸어, 어느 쪽으로 생각을 해 봐도 나쁜 일만 떠올라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차, 좀 드시겠습니까?"
일단은 화제를 바꾸고, 생각을 좀 해 보자.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잖아, 언젠가 좋은 일, 그게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로 만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으며 끓는 물이 담긴 주전자를 집어들었다.
상대가 건네는 차를 받습니다. 얼마만이던가- 2주 전? 날짜조차도 생각 안 나긴하지만 내 목숨을 구해준 영웅이니. 어느 휴게실 배치가 그러하듯 테이블 건녀편의 자리에 앉는다. 평상시 날카로운 인상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영웅을 만난 소녀의 표정만 남아있을 뿐. 원레라면 상대가 따라줄 차가 뭔가인가부터 따졌겠지만 상대가 영웅인데 그게 중요할까요.
'여기서 뵈다니 상상도 못 했네요'(필담)
실제로 그녀는 깜짝놀랐습니다. 휴게실에 들어갔더니 자신을 구해준 이가 있을 확률, 하필 그 곳이 자신이 속한 레지스탕스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상대에게 안 들리길 빌며 그녀는 조신히 앉아있습니다.
그녀에게 건넨 차는 간단하게 녹차였다. 따뜻한. 반대로 그는 시원한 걸 마실 생각이었으므로 찻잔 대신 조금 큰 머그컵을 찾았다. 어쩌다 보니 찻잔을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된거 같은데... 어쨌든 머그컵에 우린 녹차를 반 정도 붓고, 차가운 물과 함께 얼음을 띄웠다. 얼음이 빠르게 녹다가 멈춘다. 충분히 시원해졌다는 것처럼. 슬슬 온도를 전해 차가워지는 머그컵을 손에 든 채,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아, 그...예."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잘못 보신 건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제 기억에는 없어서. 라고 이야기한다면 상처가 되지 않을까? 그 반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기억하는 척,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다가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더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 머리가 아픈 것 같다. 만약 사소한 일이었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야속했다. 그는 서둘러서 기억을 헤집는다. 그녀의 특징을 잡아내 기억 속에서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려고 했다. 짙은 색의 피부, 조금 날카로운 듯한 인상과, 저 패드. 그리고 필담... 작게 중얼거리더니 흐릿하게나마 무엇인가 떠오른다. 누구였지? 그 때에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왜지?
"...필담 때문에?"
그 때에도 필담을 했으니까? 그는 조금 초조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잔을 내려다보다가 한 모금 마셨다. 이건 안 돼, 확실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는 없지.
"저, 휴게실에는 무슨 일로..."
당연히 쉬러 왔겠지, 그는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니, 대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라고 덧붙이곤 얼굴을 가렸다.
차가운 녹차를 준비하는 과정을 멍하니 바라본다. 딱히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것도 있지만, 상대가 무엇을 하는가하는 호기심도 있으리라. 영웅이 타준 녹차를 한모금 마신다. 상대가 조금 기억 못하는 표정인 것으로 볼 때 자신을 기억 못하는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척을 한다는 것은 역시 상냥하네.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시길 원하시는건가요?'(필담)
한모금 마신 녹차를 내려놓는다. 녹차에 담겨있던 은은한 따뜻함이 목을 타고 넘어간 것과 동시에 상대의 혼잣말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뭐하러 왔냐는 말에는 짖궂게 놀리듯 가볍게 필담을 적어둔다.
보통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는 게 더 빠르고 편안하니, 그렇게 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는 고갤 살짝 저었다. 내가 편하자고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감수하게 할 수는 없지, 당장 저 글씨가 악필이라든가 하는 이유로 알아보는 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목소리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영웅...? 저 말씀이십니까?"
영웅이라니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영웅, 영웅이라는 말을 들었던 때를 떠올린다. 영웅시되었던 때는 그 때 뿐이었을 텐데, 그 때의 기억이 영웅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눈웃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 저 말고도 영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많은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에델바이스 소속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나아졌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영웅이겠지. 그는 웃으면서 차를 한 모금 넘겼다. 그녀가 이미 자신이 뭔가 얼버무린다는 걸 알아채지는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좀, 기분이 이상해졌지만.
상대의 호의에 미소짓는다. 긴장이 좀 풀린 것일까. 글씨 연습을 잘해두는 것은 역시나 중요한 법이다. 어릴 때 그 교육들은 다 쓸모없다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도움되는구나
'아아, 역시 기억 못하시는건가요'(필담)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머쓱한 표정을 짓는 상대를 보며 미소지은 표정을 유지하며 차를 마신다. 자세히 보면 차를 마실 때 우아한 자세인 것을 보아, 부유한 가문 출신인 것일까. 그녀는 한모금 마신 후의 녹차를 내려놓는다. 자신을 구한 것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어서 그랬다는걸까? 포용력이 높네 저 사람은.
'아뇨, 딱 적당한 온도라고 생각합니다. 당신께서 타주신 것인걸요'(필담)
미소지은 표정 그대로 당신에게 그리 적어 보여줍니다. 당신에 대한 평가가 높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네요
자연스럽게 그의 평가가 아리아에게 좋음을 표현합니다. 자유는 그녀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이니까. 그 것을 위해 에델바이스에 들어왔을 정도로. 그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그저 싱긋하고 미소짓는다. 어느정도는 놀리는 것일까.
'그 날은 제가 세븐스 혐오자들에게 잡혀갔을 때였죠..'(필담)
그리고 이내 그 날의 이야기를 풉니다. 유괴되어 그들의 사무실에 끌려갔다는 것,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세븐스는 이레도 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옷을 찢으려 든 것, 거기에 저항하자 폭행하며 그럼 이 녀석 팔부터 날려볼까?하고 상대가 톱을 든 것 등 잔혹한 이야기가 스르르 적힙니다.
'그 때 당신께서 오셨죠'(필담)
그 후 쥬데카와 나눈 자유란 무엇인가, 왜 세븐스는 당해야하는가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쭉 풉니다.
당연한 것이라...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지금은 그렇겠지만. 그는 그녀의 필담에 뭐라 대답하는 대신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나서 적히는 글에 시선을 옮기니 자신과 그녀가 마주쳤을 때의 일이 스르륵, 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
그렇구나, 그 때였구나. 그는 그 상황을 떠올렸다. 그땐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 연기였다. 어느 정도는. 어째서 어느 정도였느냐 한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충돌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저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곳의 힘을 빌리면서까지 그렇게 행동한 건 그게 임무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도움이 됐고. 그 직후 나눈 대화도 길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세븐스의 자유? 짧지 않은 시간을 마모되어 왔기 때문일까, 무기력하게 당하던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그녀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자신은 거짓임에 틀림없다고. 그는 스스로 생각했다.
"네, 기억...납니다."
영웅... 벌써 몇 번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뇌이면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눈을 감고, 텅 빈 어둠을 마주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그제서야 그녀가 목소리를 냈다는 걸 깨닫고 눈을 떴다.
"방금, 말을..."
처음 듣는 목소리였으나 부드러운 어투였기 때문이었을까, 목소리가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놀란 듯 쳐다보았다. 잠깐만, 이럴 때가 아니지, 애초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 게 아니었으니 말을 하더라도 문제는 없는데다가, 그녀를 계속 쳐다볼 만한 자신도 없었기에 그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차가 거의 없다.
"죄송합니다, 조금 놀라서... 그, 제 이름은 쥬데카 뷔시카리오입니다."
리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영웅 씨, 라는 호칭을 어떻게든 정리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서둘러 자신의 이름을 내뱉었다.
순수하게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는, 마지막 남은 차를 전부 마셨다. 조금 더 마실까? 아니야.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자. 자신의 이름 소개에 이어서, 그녀가 스스로의 이름을 소개하자, 고갤 끄덕였다. 그렇구나. 아리아라. 어쩐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자신을 쥬데카 씨라고 부르자, 그녀를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아리아 씨. 그럼...잘 부탁합니다."
리오라고 부를 줄 알았는데, 쥬데카라고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었던지라 그는 조금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름이야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알 만하면 충분하기도 하고, 그녀가 그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하는 것 같았으니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불편한 것도 아니었고.
"그러면... 아리아 씨는, 에델바이스에는 언제 입단하셨습니까?"
그 일 이후겠지, 그때 자신이 있었던 레지스탕스는 괴멸했다, 한번 박해받아 본 세븐스는 안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그렇기 때문에 숨 죽이고 사는 게 아니라면 레지스탕스를 찾아갔겠지. 그녀가 여기 있다는 건 그 일이 있고 나서 에델바이스로 찾아왔다는 말이 될 테니... 사실 시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가 끊어지는 게 불편했을 뿐이다.
일주일...인가. 생각보다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그때와 크게...달라진 모습은 없는 것 같은데, 아닌가? 이미 그녀가 말해주기 전에 스스로 기억해내지 못했으므로 자신의 기억력을 제대로 믿지 못했기에 확신하지는 못했다.
"예, 많이 늦었습니다. 저는... 고작 이틀 전이니까요."
오자 마자 리더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로벨리아를 마주했을 땐 정신이 없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자신의 과거를 상당히 털어놓았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자신은 여기 있었고, 심지어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부대에 들어가서 싸우기까지 했다. 훈련이었지만.
"목적이라... 글쎄요, 저를 받아준 게 에델바이스 뿐이었으니까, 라고 해야 할까요."
죽이려 들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인 곳도 있었다. 그 전에 그가 레지스탕스에 입단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한몫하긴 했으나, 그가 괴멸에 일조했던 레지스탕스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한때 동료였던 이들에게 쫓긴다는 건 전혀 유쾌하지도, 버틸 만하지도 않았다. 여기 오지 못했다면 글쎄, 어딘가에서 객사했을지도.
살짝 장난기 어린 어조로 당신에게 이야기한다. 받아준 곳이 여기뿐이라. 누구나 사정은 있는 법이니 그런 것은 뭐 상관없으려나. 그러면 내 목적을 유일하게 밝혀도 되겠지.
"제 목적은 말이죠.."
자유랍니다- 그렇게 그녀는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녀는 당신에게 구원받은 때부터 오직 자유만을 바랐다. 그녀가 세븐스기에 빼았긴 자유를, 그녀가 스메라기였기에 빼았긴 자유를 되찾는 것. 하지만 타인의 자유는 관심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유지. 타인의 자유가 아니니까.
"뭐- 그럼 슬슬 휴게실을 나갈까요. 안 그럼 휴게실에서 연애하나-하는 의혹을 받을지 모르니"
농담투로 이야기하고는 쿡쿡하고 웃고는 그녀는 당신에게 받은 찻잔을 싱크대 안에다 넣어놨다. 누군가는 필요하다면 씻어서 쓸 것이다. 자신에겐 저걸 안 씻을 자유도 있으니까.
그게 저랍니다. 라는 듯이, 당신도 저를 너무 믿지는 마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듯이 말하며 당신의 장난기 어린 어조에 힘없이 웃는다. 여기에서는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언젠가 떠나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이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또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들려온, 어쩌면 전혀 가볍지 않은 이야기, 에델바이스에 온 그녀의 이유. 자유라, 그는 속삭이듯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유,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넓고도 넓어서, 그녀가 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것 역시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저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그 때의 그 모습 뿐이기 때문이겠지.
"네, 먼저 가시죠, 저는 차를 한 잔 더... 마시려고 합니다."
휴게실에서 연애하나- 라는 말에는 누가 그렇게 생각할만한 상황인가, 생각하며 머쓱하게 눈웃음지었다,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맞나? 아닐지도, 자신의 외모를 생각해 보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씁쓸한 생각을 하면서 당신이 넣어둔 찻잔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그럼...나중에 보죠, 아리아 씨."
아마 휴게실을 나서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그는 그녀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줄 터였다, 좁다 못해 없다시피한 인간관계에 갑자기, 아니, 잊었던 관계가 자리하니 조금 기분이 달라졌을까. 언젠가 알 날이 올까, 자유가 무엇인지를, 그녀가 원하는 자유가 뭔지, 아니면, 자유가 지닌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렇게 생각하며 싱크대에 놓인 찻잔을 닦는다.
//막레입니다!! 수고하셨어요!! 뭔가뭔가 조심스러워지는 그런 일상이었습니다... 지인을 잃지 않기 위한 쥬데카의 몸부림(??) 잘 보셨는지요...(???)
헉...... 이스마엘이 보스면......(호달달) 보스 포스가 엄청나잖아....! 멋있다...... 이상향이라는 게 사후세계를 뜻하는 건 아니겠죠?(바들바들) 뭔가, 이스마엘 과거사의 편린을 본 것 같은데...! 이스마엘 과거 궁금하다.....!!!(언젠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팝콘 튀기기)
토글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만, 안된다는 전제 하의 사족을 덧붙여본다. 혼잣말을 하듯 말 끝을 늘려보는게, 답을 기대하고 한 말인지, 그냥 생각없이 뱉은것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안될거란 생각은 별 의미 없는 사고회로일수도 있고, 아까 (제딴엔) 별거 아니던 거에 하던 반응을 보고 하는 말일수도 있겠다.
“맞아, 염력이야.”
옅게 미소지으며 긍정한다. 눈을 두어번 깜박이는 당신을 보곤 눈을 접어 웃어보인다. 즉흥적인 거짓말을 하고선 빈 음료수의 안을 슬쩍 들여다보자 보이는건 근처의 색들보다 확연히 짙은 회색.
“최대 3톤까지 들수 있어. 고체 뿐만 아니라 기체, 액체도 조종 가능해. 능력이 능력인지라 남을 서포트 하려 임무에 투입되는게 많고.”
거짓말 하나 하는데 뭐 설정이 이리 잡다할까. 안색의 변화 하나 없이 보이는건 가늘은 미소뿐. 당신이 머리를 긁적이다 다시 공손한 손모양을 하는 텀의 사이에 그는 한 마디 끼워넣어본다.
“똑똑하네-”
지금까지 들은 것과 달리, 말꼬리를 잡고 부드럽게 늘어뜨린 어조. 좋게 들으면 띄워주는 투고, 나쁘게 들으면 비꼬는 투. 뭐가 들어있지도 않은 곽을 가벼이 흔들어본다. 그러고선 일어선다.
“나중에 같이 일할수도 있는데, 능력 정도는 알아도 나쁠것 없지?”
말 끝에 다다라서야 묘하게 문장이 질문으로 변한다. 여전히 접혀 웃고있는 눈, 그 동공은 당신을 비추고 있다. 본래 당신이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주려 했으나, 마음이 바뀌었다. 사람 마음은 갈대같다더니, 이건 헬륨풍선 수준인데. 자리를 비켜선 테이블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뚜껑은 일반쓰레기, 음료 곽은 납작하게 해서 재활용 쓰레기로 버린다. 그는 당신에게 이제 물어볼만한게 없으니, 대화를 더 끌고 싶으면 그건 당신의 역량.
/꺄악 일이 생겼었다...미안 우리 귀요미 (와그작) 이제 거의 막레 느낌이네~ 유루 지문 칠때마다 머리 팍 친다 웨 행동거지가 그따구냐고~~
>>752 마리는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어. 한 2주 정도? 초면 일상은 너무 많이 해서 서로 얼굴하고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할까? 요즘 훈련 많이 하는 것 때문에 근육통이 있어서 양호실에 파스 받으러 왔다갔다하다가 얼굴이랑 이름 정도는 익힌 걸로 할까? 상황은 밤산책도 괜찮을 것 같아. 고양이의 모습일 것 같은데 괜찮을까? 마리인 것 알아봐도 오케이고 몰라도 괜찮구. 선레는 다이스로?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속박이었다면 너는 어떨까.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인줄 알았는데 그 자유로운 하늘이 사실 새장 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야. 네가 그랬지. 예절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스메라기의 이름을 받은 너라면 지켜야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지켰다. 그것이 내 자유인 줄 알았기에. 또 너는 그랬지. 노래를 남 앞에서 부르지마라. 그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르지 않았다. 내 자유를 지키며 남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게 뭔데"
어쩐지 하인들이 적고 늙은 사람들뿐이다 싶은 것을 눈치챌을 때는 너는 말했다. 그들이 숙련자기에 네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라고. 아아 왜 몰랐던 것일까. 너에게 있어 나는 버리고 싶으나 스메라기라는 이름의 값어치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썩어도 자신의 딸이라는, 자신의 혈통을 이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비세븐스였던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하하.. 뭘 위해서"
홀로 부르는 노래는 도달하지 않는다. 들을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치채야 했다. 하인들이 왜 날 두려워하는지. 그것은 내 권위가 아니라 내가 세븐스여서 두려워하는 것이었다고. 4살 때 아프다고 해도 냉정한 시선으로 날 쳐다봤을 때도. 네게 필요한건 내가 아니라 나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너는 별장에 나를 가둬놓은 것이겠지. 인터넷도, 안되는 그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는 네가 예절을 위해 가져다놓은 책들과, 가끔 트로피로서 보일 때에만 필요한 정도의 부유한 아가씨 특유의 행동거지만 너에게 필요했던 것들만이 날 속박하기 위해 놓은 것이라고.
"덕분에 잘 깨달았어. '아버지' "
아아, 넌 뭘 무서워하는 것일까. 내 세븐스로는 너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텐데. 너에게 있어서 난 실패작이었잖아? 그러니, 얌전히 죽어주라고. 스메라기는 오늘로서 멸망이니까.
탕-하고 작은 총성이 일었다. 그리고 훗날 가스 폭발이 원인이라고 이름붙여질 스메라기가 화재 사고가 일어난 것은 그녀가 그 감옥을 떠나간 후였다.
답을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당신이 하는 말에 그는 긍정하듯 살짝 고갤 끄덕이며 웃었다. 신경을 더 곤두세울 수는 있어도 무뎌지게 만드는 건 어렵다,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그는 캔에 담긴 음료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역시 그렇겠...예? 염력이 맞습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 본 건데, 물론 충분히 고민하긴 했지만 사실상 쓸모 없는 고민이었고, 그랬기에 역시 틀리겠거니 하고 대답하다가 정답이라는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진짜?
"그렇...군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 같습니다."
아까 전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해준 것처럼, 그 역시 당신의 능력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내놓는다. 진짜로 편할 것 같다. 최대 3톤이라니 힘 조절이 조금 어렵다거나 할까. 조금,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감돌긴 했지만 딱히 적대감도, 살기도 내뿜지 않는 상대에게 그런 촉으로 알아낼 만한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캔을 만지작거렸다.
"똑똑한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네, 감사합니다."
어쨌건 칭찬이니까, 그는 굳이 말을 비꼬아 듣지는 않기로 했다. 그런 말보다는 당신이 일어서며 하는 말이 보다 중요하기도 했고. 대답을 해야 했으니까.
"물론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임무에 임하는 건 위험하니까요."
올바른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웃고 있는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는, 아. 일어날 때인가보다. 하고 얼른 캔을 비운다. 사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캔을 구겨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어느새 쓰레기통 앞, 그리고 당신의 옆.
"그러니까 유루 씨, 제대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으니까요. 라고 덧붙이며 조금 미안한 듯 웃는다, 조금 무례했으려나. 사실 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이렇게 한 번쯤... 이야기해서 손해는...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그렇게 말해본다.
제 0 특수부대가 신설되고 팀의 소속이 된 후, 한동안은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일상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훈련을 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고-
그렇지만 다른 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막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너도 이제 팀이 생겼으니 팀원들하고 어울리라며 그녀의 반신에게서 거리두기를 요청받았다. 왜 갑자기 그러냐며 항의를 하긴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진작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는 걸. 아무리 가깝고, 아무리 닮았어도- 쌍둥이는 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마주보고 거울처럼 서로를 따라하는 놀이는 할 수 없다.
조금씩 늘어가는 혼자의 시간을 채우려 레레시아는 더욱 훈련에 몰두했었다. 마침 모조 보검의 사용법을 익히기도 해야 했으니 얼마간은 혼자인 것도 시간 흐르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 몰두한 탓인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모조 보검의 형태를 갖춰버렸고 그만큼 시간이 떠버렸다. 빈 시간만큼의 공허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인지라. 그 헛헛함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건 수면이었다.
"...으으음..."
느즈막한 한밤중. 한참을 잠자리에서 뒹굴다가 기어코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훈련에 지친 몸은 늘 눕자마자 골아떨어지곤 했는데, 오늘은 정신만 피로에 쩔었지 좀처럼 잠들 수가 없다. 따끈한 음료라도 마시면 괜찮을까 싶어 간단히 옷을 챙겨입던 레레시아는 돌연 외출용 겉옷을 꺼내 휙하니 걸쳤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무장은 챙기지 않은 채 개인실을 나갔다. 보폭 큰 걸음이 성큼성큼 걸어서 향한 곳은 내부 휴게실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완전히 바깥으로 나오자 하늘은 이미 검푸르고 드문드문한 구름들 사이로 반쯤 기운 달만이 세상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거리는 어둡고,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보는 눈이 적으니 차라리 낫다. 후- 긴 숨을 내쉰 레레시아는 겉옷에 손을 넣고 길을 따라 걸었다. 작지만 있을만한 건 다 있는 작은 마을에는 그만큼 작은 공원도 있었다. 가로등 몇 개 만이 간간히 비추고 있는 공원은 밤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탓인지 작은 기척조차 없었다. 레레시아는 그 분위기 사이를 뚫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 가장 가까운 벤치에 가서 드러누웠다. 밤공기에 식은 벤치는 서늘했지만 누워서 위를 보기엔 적당했다.
"...♪-"
두 손을 머리 뒤에 받쳐 베개를 대신하고, 누워서 다리를 꼬곤 휘파람으로 작은 멜로디를 흘리며 멍하니 하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멜피의 조언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있는 마리는 저절로 훈련실에 가 있는 일이 많았고 자연스레 훈련실에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안면을 익히게 되었다. 할 일이야 훈련하는 것밖에 없던지라 훈련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살짝만 잔다는 게 깜빡 크게 잠이 들어서 잠에서 깼을 때는 깜깜한 한 밤 중이라 마리는 낭패어린 표정을 지었다.
“산책이나 다녀와야 하나.”
깜깜한 밤이니만큼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마리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 거리로 나왔다. 역시나 다른 이들은 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높아진 시야로 구경하던 중 공원에 도착하자 누군가 있는 듯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놀란 마리가 얼른 고양이로 변신했으나 여전히 휘파람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고 마리는 살금살금 소리가 향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벤치에 누운 채 멍하니 하늘 구경을 하고 있는 레레시아가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과 능력 정도만 얼핏 들은 정도일까.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던 사이였지만. 마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벤치로 다가가 벤치 빈 부분에 앞발을 올리며 야옹 인사했다.
에델바이스에는 역설적인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아마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대식가로 정평이 난 Project n은 식당에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승우."
그런 그녀가 식당에 나타나는 경우는 단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을 때. 2. 식당에 쓰이지 못한 냉동육이 남아 돌 때.
"아무래도 엔에게 먹일 것과 뒤바뀐 것 같다."
이 경우는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일부러 당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무언가를 원하는 기색으로 서있을리가 없다. 당신의 앞에는 아마도, 채소나 반찬따위는 일절 없이 구운 고기만 산처럼 쌓인 폭력에 가까운 밥상이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정도라면 보는 것만으로 질린다.
"엔의 생각엔 이것이 승우가 원래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민다. 당연히 이쪽이 정상적인 식사다. 그 위에는 '봤지?'라고 하는 듯한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
"엔은 교환하고 싶다."
라고 해야할지, 당연히 바꿔야하는 상황이겠지만. 그래도 엔은 동료를 위해 의사결정을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다.
긴 벤치를 혼자 차지하고 누워서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아무 소리나 내도 된다는 건 굉장-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탈감을 주었다. 처음도 아니었고 그 시절로부터 벌써 2년이나 지났건만. 레레시아는 지금도 가끔 옛날의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옛날엔 항상 라라와 함께였는데.
"♪... 응?"
나홀로 휘파람을 간간히 이어가던 중, 새로운 소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야옹. 소리를 따라 머리를 살짝 들고 보자 벤치에 앞발을 올린 고양이가 보였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휘파람의 청중이 딱 하나 있었나보다. 레레시아는 고양이의 앞발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모로 누워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서 고양이를 향해 남은 손을 뻗었다. 쓰다듬기라도 하려나 싶던 손은 고양이가 걸친 앞발의 근처에 내려져 손끝으로 벤치를 톡톡 두드리며 놀아주려는 듯 했다.
"안녕. 야옹아. 너도 나처럼 잠이 안 오니? 아니면 지금이 네 시간일까나."
레레시아는 그 고양이가 최근 면식을 튼 사람일거라곤 생각치 못 했다. 그래서일까. 늘어지지도, 답답하지도 않은 차분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고양이를 보는 표정 역시 잠잠히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뭐라도 주고 싶은데. 갖고 나온게 없네. 뭐, 처음부터 내 건 없었지만."
토도독 토도독. 레레시아는 그저 벤치를 두드리기만 하며 이런저런 말을 던졌다. 답을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멀거니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쓰다듬어보려는 듯 손을 다시 들어보지만, 살짝 들린 손은 다시 벤치 위로 내려져 벤치만 두드렸다.
여승우는 입이 짧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맛있는 걸 먹어도 그렇구나 정도에 그치고 맛 없는 것도 그러려니 삼키고 마는, 식사에 무관심한 유형이다. 물론 체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데다 먹지 않고 굶는 것은 힘드니 꾸역꾸역 건강하게 정량으로 챙겨 먹긴 하지만. 그런 연유로 그는 오늘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뭐나 먹을지 고민하다 적당히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르게 되었다. 자주 들락거리지는 않아도 다시 방문할 정도는 되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전후 사정은 그렇고, 어쨌거나 그렇게 대충 먹고 마는 그에게도 호불호 정도는 있는 법이다. 고기와 채소 비율은 이왕이면 3:7이 좋고 무거운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뭘까. 그는 종업원이 제 것이라며 가져온 접시를 슬쩍 보고는 눈썹을 까딱거렸다. 음식이라고 하기에도 무식할 정도로 구운 고기만 가득한 이걸 메뉴라고 불러도 옳은가? 이 정도면 기름을 퍼먹는 수준이다 싶다. 보기만 해도 느글거리는 고기 덩어리들을 보려니 표정이 자연스레 질린 얼굴이 됐다. 딱 봐도 음식이 잘못 나온 듯하니 그는 곧장 직원을 부르려 했다. 식탁 앞에 진 그림자에 고개 들어 인기척의 주인을 쳐다보기 전까지는.
"에휴, **. 딱 봐도 그래 보이네."
그는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다 그릇을 들어 엔에게 내밀었다. 음식 양도 상당하니 꽤 무겁다. 그릇을 건네고선 그가 한숨을 쉬며 쓸데없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했다. 아니, 헷갈릴 걸 헷갈려야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엔의 식성을 모르는 경우가 더 드물 거다. 직원이 엔을 당연하게 안다는 보장이 없다는 건 가볍게 무시하는 푸념이었다. 음식이 왔으면 먹을 생각부터 할 것이지, 그는 제 접시를 앞에 두고서는 두 손을 뒤로 넘겨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기대는 폼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덤이었다.
마리는 고양이의 모습인 자신에게 손을 뻗는 것을 빤히 바라봤다가 이내 그 손이 앞 발 근처에서 왔다갔다하자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그 손가락을 쫓았다. 이내 앞 발을 허우적거리듯 레레시아의 손가락을 툭툭 건들이다가 레레시아가 말을 걸자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앞발을 떼었다.
크림색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라고 해도 역시 본 모습은 사람일거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긴 했다. 괜히 오해를 사거나 해서 어색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금새 변신을 풀었다. 방금과 같은 크림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으로 돌아온 마리는 벤치 앞 바닥에 앉은 채로 레레시아와 눈을 마주할 것이었다.
“…잠이 안 와서 나온 거야?”
자신도 그렇다는 듯 깜빡이는 눈동자는 레레시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었다. 마리는 지나가면서 레레시아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마리의 또래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래 친구가 없었던 마리는 레레시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크게 뜬 당신을 꽂꽂히 바라보며 거짓말이나 해댄다. 그나저나 조금만 불편하다니, 육감이 자신의 능력이었다면 하는 생각의 시작과 함께, 밑 빠진 독에 물 흘려넣는 양 의식은 흘러간다.
“쓸모야 당연히 많지. 아군의 손해를 최소화 할수있는 능력이니. 독을 쓰는 동료가 있다면 우리 쪽엔 독가스가 안 오도록 조종할수 있고, 폭발을 일으키는 애가 있어도 상처 하나 없이 임무를 끝낼수 있지. 자기보호도 가능하니 발목 잡을 걱정도 없고.”
거짓말에 살이 붙는걸 보아하니 즐거운 모양이다,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무표정이지만. 당신의 능력은 어떤 식으로 응용하는지 조금 궁금했다가도 말을 돌린다.
“리오는 이곳에서 뭘 할수 있을까.”
담담한 말은 언뜻 들으면 질문으로 들리지 않을 투지만, 질문이다. 당신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어보이는, 조금 부드러워진 무표정일뿐. 얄쌍한 눈썹은 살폿 쳐져 내리앉아있다. 그는 자신이 할수 있는것과 자신의 잠재력이 낮다는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도 그럴게, 지금 너무 대충 살고 있어서 막강한 목표를 가진 다른 이들과 같은 강인함은 없을터. 전력을 확인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지 알쏭달쏭한 그의 머릿속. 도출한 답은 무엇일까.
“뭐야, 똑쟁이 맞네.”
아무것도 모른체 임무에 나서는건 위험하다, 어찌 들으면 당연할수도 있는 말에 피식 웃는다. 긴장감은 좋은 것이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거 다 이유 있는거다. 자신의 옆에 온 당신을 보곤 당신의 물음에 멀뚱히 서있는데. 말을 다시 하기까지 걸린 잠깐의 텀까지 보인 표정은 ‘뭔 생뚱맞은 소리야’ 정도를 말하고 있었겠다.
“특별한 파란색의 물체는 그게 뭐든 물리력을 행사할수 있어.”
시치미를 뗄까, 말까 하다가 결국 말한건 진실. 미안한듯 웃는 당신을 보는 그의 표정은 자못 부드러워 보인다. 당신은 그의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할까.
“주의할 점은 내가 전색맹이라는 것. 때문에 능력 사용할때 가끔 실패해.”
이것도 알아야 할것이라고 생각해 덧붙여준다. 이 말을 듣고 그를 폄하하여도 그는 괜찮다. 애초에 전장에 놓일수도 있는 상황에 잠재적 동료가 오락가락 한다니. 그가 당신의 입장에 놓였었어도 불쾌할 것이다.
대의적인 뜻을 품고 이렇게 거점까지 꾸려놓았지만 레지스탕스라는 것은 그다지 자랑하고 다닐 만한 일은 아닐테다. 존재만으로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다. 이런 곳에서의 식당은 몇 안되겠지만 필연적으로 난이도가 치솟는다. 게다가 그녀의 이런 괴상한 밥상은 달에 한 번 정도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메뉴에도 없는 주문일테지.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엔은 이해한다."라며 너그럽게도 말한다. 그럼에도 '서비스가 이게 뭐야?'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결국 식당의 운명이라는게 그렇다.
"맛있다. 적어도 엔이 먹어봤던 것 중에는."
이어지는 당신의 질문에 그런 그녀는 잠시 턱을 들어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답을 내놓는다. 그 잠시간의 텀도 그렇고, 마치 맛이라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먹어 온 사람의 대답처럼 들린다. 그래도 판단하자면 맛있다의 축에 든다는 것이겠지만, 거의 산처럼 쌓여있는 고기는 역시 범인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엔의 배를 채울 수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선 '육류'이기만 하면 굽든 삶든 아무래도 좋은 걸지도. 그렇게 대답을 마치면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지만, 아뿔싸.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래서 아는 사람끼리라고 하더라도 후미진 곳의 식당은 안 된다. 다가가서 평범하게 물러나달라고 해도 되겠지만, 어째서인지 엔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야에는 당신의 테이블 맞은 편에 비어있는 의자가 들어온다.
대도시의 가장 외곽은 슬럼을 넘어서 폐허에 가깝다. 한창 개발을 추진하다 모종의 이유로 중단된 지역에 남은 것은 설치하다 만 스크린과 뼈대만 세워둔 건물 두어 채, 허름한 상가 건물, 아무렇게나 놓여 거미줄이 쳐진 건축자재와 경비 시스템이 탑재됐으나 배터리가 다 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녹슬어버린 안드로이드, 격렬한 전투의 흔적뿐이다. 한때 이 개발 중단 구역에 도망친 반동분자가 모여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오래전에 전부 사살됐기 때문이다. 가끔 사이렌 울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마저도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미약한 전류가 잘린 전선에 영향을 줘서 오작동이 벌어지는 때가 다수다.
그리고 여기 완공됐으나 아무도 살지 않아 허름한 건물이 있다. 비록 폐허지만 넓은 건물을 통째로 가지고 말겠다는 삶의 목표를 어느 정도 실현한 셈이니, 나름 그의 낙원이라 할 수 있다. 난방 기기를 쓸 수 없어 쾌적한 온도를 맞추긴 어려웠지만 더운 날에는 쿨러 옆에 붙어있으면 되고, 추운 날에는 가져온 옷가지를 태우면 된다. 어디서 가져온 옷가지인지는 비밀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모를 것이다. 타일 시공이 덜 된 욕실에 달린 미닫이 거울 찬장을 열고, 제법 괜찮은 수건을 꺼내 머리를 탈탈 털던 그는 고개를 돌려 햇빛에 비쳐 희미하게 일렁이는 홀로그램 달력을 봤다.
"오늘은 늦게 들어오겠는데."
오늘은 일이 있는 날이다. 그것도 제법 중요한 일이고, 인생과 직결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수건을 거뒀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집'을 비우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 괜찮지만, 요즘 들어 불시 순찰이 늘어 걱정이 앞섰다. 그가 요사하고 간악한 수를 썼기에 이 외곽까지 가디언즈가 오는 일은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가 없는 사이 순찰을 나온 누군가가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고 매복할지도 모른다. 그건 안 된다. 아직 인생의 빛도 제대로 못 보고 살았는데, 앞날 창창한 나이에 끌려가 신체의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이라는 명목 하의 고문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오늘은 지금껏 태양열을 모으고 모아 아껴둔 전기로 방범 시스템을 돌리는 수밖에.
그는 부엌으로 가 그릇을 꺼내고, 그 짧은 사이에 또 생긴 거미줄을 팍팍 털어냈다. 찬장에서 시리얼을 꺼내며 흔들어 보니 시리얼도 아침에 먹을 분량만 남은 것 같다. 오늘은 오는 길에 시리얼도 좀 사야겠다. 최근에 버추얼 배우의 미니 피규어가 들어있는 마시멜로 시리얼이 그렇게나 유행이라는데, 그거나 사 올까. 달콤한 설탕 가루까지 남김없이 털어 주고 나서야 그는 그릇을 테이블 위로 밀어놓을 수 있었다. 오늘은 인기 버추얼 진행자 바바라의 토크쇼가 있다. 초대 게스트는 '수잔나 엥엘'로, 긴 밧줄처럼 촘촘히 땋아내린 새하얀 머리와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인 미인이다. 듣자 하니 인체의 효율적인 개조를 위한 각종 부품과 프로그래밍에 대해 박식하며, 트랜스휴먼을 이끄는 선구자로도 불린다고 했다. 가디언즈의 기술팀 연구에도 여러 번 지휘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그가 맡은 일은 이 지루한 대화 속에서 졸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지금까지 졸지 않기 위해 속으로 여러 번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느라 질문을 듣진 못했지만, 수잔나는 바바라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세븐스는 진화된 인간이 맞다. 이것이 제 의견입니다." "놀랍군요! 세븐스에 대한 옹호인가요?"
바바라는 자극적인 주제를 꺼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주변에서 생글생글 꽃이 피어나는 효과가 송출되고 있었다. 수잔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니오, 진화된 것은 맞으나 그건 자연적인 것이죠. 언제 퇴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비능력자는 앞으로 더 진화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걸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트랜스휴먼은 인공적으로 진화하는 인간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진화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항하는 진화 말입니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기에 퇴화할 걱정은 없고, 발전할 길만 남아있지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길만 남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연적으로 생겨난 찌꺼기인 세븐스를 더 확실하게 짓밟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멋진 말이군요! 다음 질문입니다. 오, 이런.." "무슨 일이죠?" "박사님의 아픈 기억에 대한 질문입니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이젠 아픈 기억도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수잔나 박사가 언급을 꺼리던 것을 생방송으로 송출할 수 있다! 시청률이 하늘처럼 치솟을 것이다. 거금을 들여 안면을 인식하는 트래킹에도 담을 수 없는 기쁨 때문에 바바라의 얼굴 표정이 비정상적으로 출력됐다. 바바라는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처럼 말꼬리를 늘였다.
"아이가 세븐스로 판명이 났다면서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예. 세븐스 검사에서 양성을 보였죠. 완벽한 그이와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나온 실패작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수잔나는 잠시 침묵했다. 스튜디오 전체가 긴장하듯 침묵에 휩싸였다. 편한 소파에 앉은 수잔나의 자세가 꼿꼿해졌다. 주먹을 말아 쥐며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수잔나는 입을 열었다.
"……처분했습니다. 아이를 실험체로 보내는 것도 생각했으나, 국가의 발전에 감히 세븐스다 도모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이와 저의 입장이었습니다." "아이를 가디언즈에 소속시키면 영웅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오점을 이점으로 남길 수 있었는데, 후회하진 않으시나요?"
그는 드디어 고개를 들어 수잔나를 쳐다봤다. 수잔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잔나가 대답하기 위해 입을 벌린 순간, 톡 소리와 함께 그녀는 축 늘어져 경련했다.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난 끔찍한 장면이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말았다.
"맙소사! 박사님!" "습격이다! 전투태세에 돌입해!"
삽시간에 스튜디오는 아수라장이 됐다.
- 좌표 A-07285, 두 명의 세븐스 감지.
그는 수라장 속에서 그는 안타까운 듯 혀를 끌끌 차며 전투용 바이저 헬멧을 쓰며 총을 장전했다.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기에 그는 당신의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질문같은 억양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을지도. 그는 결국 쓴웃음을 지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쁠 것 같습니다, 뭔가 위협적이라는 걸 알아챌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저 뿐일 테니까요."
설명할 수 없다, 뭐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위험한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저릿거리는 듯한, 그러나 촉각도 통각도 아닌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듯한 감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져 조금 침울해질 것만 같아 그만둔다.
"눈이 밝으니 멀리 있는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난시긴 하지만요. 귀가 밝으니 잘 들리지 않는 걸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도요. "
맛도, 촉감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이면서 어떻게든 쓰임새를 찾아본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반응에 역시 무례했나 싶어 당신을 올려다본다. 저 표정을 보면 더 그런 것 같고.
"그렇...군요, 염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능력임을 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역시 괜한 말을 한 것 같은걸. 당신이 덧붙인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아, 그...유감입니다."
당신의 말은 진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떤 근거도 없다. 의심도 근거가 없었는데 신뢰에 근거가 필요하겠는가? 당신에게서 진정성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유쾌한 느낌이 감도는 조금은, 서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능력을...쓰십니까?"
습관적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은 채, 잗신이 하는 말에서 실마리를 잡아 묻는다. 어떻게?
이스마엘주의 독백에 대해 반응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용해져서 무서워졌어요 (´・ω・`) 그치만 저렇게 고품질의 독백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지금의 이스마엘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금도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숨기고 있는 본모습일까 아니면 전환점을 지나 변해버린 지금이 본연의 모습일까 궁금하네요! 멋진 독백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아무리 큰 소리를 외쳐도 영화 속 장면은 멈추지 않았다. 관객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지켜볼 뿐, 그 장면에 끼어들어서 장면을 바꿀 순 없었다. 꿈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이 주역인 꿈도 있겠으나 어떤 꿈은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지금 아스텔이 꾸는 꿈이 그러했다. 저 광경은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었다. 세상이 모두 색이 있었으나 그것을 지켜보는 자신의 모습은 회색빛이었다. 마치 너는 지금 이 세계의 주역이 아니라 관객, 혹은 이물질일 뿐이니 간섭할 수 없다고 세상이 선언하는 것처럼. 당연히 아스텔은 그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꿋꿋하게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매섭게 울리는 채찍소리. 그리고 자연히 풍겨오는 진하고 붉은 철 향. 모든 것이 기억 그대로였다. 모두 자신이 직접 본 것들이었다. 누군가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내 그 울음소리는 멎었다. 아니. 강제로 끊어졌다고 봐야할까?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가 울렸고 이내 어딘가로 밀어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닌 괴물이, 그리고 그 괴물을 관리하는 악마들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패배한 이는 3번..........처분.....
패배한 이. 그 말을 들으며 아스텔은 표정을 찌푸렸다. 절로 자신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으로 손이 갔으나 침착하게 아스텔은 그 손을 내렸다. 알고 있었다. 이것은 모두 영화이며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조용히. 자연히 들리는 고요 속에서 또 다시 뭔가를 질질 끌며 어딘가에 밀어넣는 소리가 울렸다. 쿵쾅쿵쾅. 비명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와 하늘을 가득 채웠다.
"...고 싶어. 살아야..." "그래. 패배자는... 이 힘은..."
남자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여자 아이의 목소리. 또 울먹이고 있는, 정확히는 살려달라고 우는 여자 아이의 목소리.
모든 것이 머릿속에 텍스트처럼 떠올라 그 의미를 울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남자아이가 앞으로 달렸다. 호루라기 소리가 불리고 금새 제압당했다. 근처에 있던 눈빛은 동정. 그리고 수많은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남자아이의 팔이 붙잡혔고 채찍 소리가 강하게 울렸다.
"...님..."
"저기 있는.........를 ......내......할거야."
들려오는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 그것을 듣자마자 아스텔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절대 잊을리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자신에게 있어서...
시계소리가 울렸다. 눈을 뜨고 확인한 시간은 오전 6시 30분이었다. 슬슬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특별한 임무는 없었으나 아침 운동은 물론이며 기본적인 트레이닝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가볍게 순찰을 돌고 낚시를 가야만 했다. 악몽을 꿨기에 더더욱 오늘 하루를 평화롭게 보내고 싶었고 그 하루를 조금 더 누리고 싶었기에 괜히 이불을 정리하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아무 것도 도망치지 않지만 그럼에도 도망치는 하루를 잡기 위해서.
몇살때였더라, 착해빠진 부모님은 법령이 정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태도가 바뀔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것은 집안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가정'이란게 존재했고. 나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넘치던 시기였지. 그 이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게 그 시절의 남자친구. 이름은.. 뭐였더라?
"자, 가자. 오늘 신작 게임 나오는거 안 잊었지?" "그럼 당연하지, 내 컨트롤을 보라구~" "너 저번에도 그 소리하고 광탈했잖아.." "뮈어-?!"
좋은 사람이었다. 뭘 사는데도 제약이 걸리는 나 대신 몰래 음식을 사다주고, 이것저것 마련해주고. 집에 가기 싫어하는 나한테 있을곳을 만들어준 사람. 그 시절의 나에겐 구세주로서 보였겠지. 비능력자면서.. 왜 날 이렇게 도와주냐고 물으면. 그는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사랑하니까."
약간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당신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참을 수 없을만큼 귀여웠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거 같았고 당신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해나갈 수 있을거 같았지. 당신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지내는 날들은 행복했어. 그것만은... 지금에 와서도 속일 수 없으니까...........
"언니, 또 가?" "응? 응. 왜? 뭐 필요한거 있어?" "... 아니, 아니야."
뭐, 그 덕분에 가족이랑은 엄청 소원해졌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나는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가끔 가지고 가는 물품들 정도? 사랑에 눈이 멀었던걸까? 아니면 그냥 눈을 돌렸던걸까. 어쨌건간에 그는 언제나 친절했고. 나만을 사랑해주었으니까. 아니,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한거고 뭔가 이변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어.
"어서! 이쪽이야!!" "으, 응!!"
어느날, 그래.. 비가 엄청 오는날이었어. 갑자기 날 찾아왔다며 누가봐도 흉악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나타났지. 가디언즈였는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시기에 찾아왔다면, 보통 뻔하잖아? 남자친구는 그들에게 밀가루를 뿌리고 날 데리고 도망쳤지. 뛰고, 또 뛰었어. 그래도 이 사람은 이럴때도 날 버리지 않는구나. 하고 내심 기뻐했던 기억이 있어. 응..
병x같이 말이야.
어찌 어찌 따돌리게 되자 남자친구는 골목길로 날 이끌었지. 그때 알고있었어, 이쪽은 막다른 길이란걸. 하지만..
"괜찮아, 내가 비밀통로를 알거든."
멍청하게도 그딴 소리를 믿으며 따라갔고 내 기억대로 막다른 길목에서. 그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어. 키스라도 하려는것처럼 자상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ㅡ야? 아니, 싫다는건 아닌데 지금 이ㄹ"
난생 처음 느껴보는 격통이었지. 이래뵈도 꽤 곱게 살았으니까 말이야. 복부에서 열이 나는듯 싶더니 따끈하게 올라오는 통증은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하게했어. 영화에서 칼맞고 버티는 사람들 말도 안된다니까? 나는 상황파악조차 안된 상태에서 콜록거리며 주저앉아 남자친구를 올려보는것말곤 할 수 없었어. 배에 꽂힌 나이프가.. 너무나도 차갑게 현실로 다가오는게 무서웠지.
"ㅡ, ㅡ야.. 이, 이..게.. ㅁ" "슬슬 지겨워질거 같았는데, 햐.. 그 얼굴을 보니 좋네."
적어도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그는 나에게 능력을 이용해 뭘 시키지도 않았고. 그 날도 찔리기 전까지 아무런 변화없이 친절했으니까. 정말 그저 날 사랑해주는 사람으로밖에 느끼지 못했으니까. 내가 아둔했던거 뿐일까?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데. 피가 줄줄 흐르는 날 보고 웃고있는 그의 모습이 이해하기 싫어도 내가 배신당했다는걸 이해시켜 주었어. 사람이란게 정말 간사하게도, 그 상황이 되니 배의 격통도 잊혀지더라, 웃기지?
"왜.. 그랬을까."
사실 지금에와서도 전모를 아는건 아냐. 나는 나조차도 놀랄 힘으로 능력을 쥐어짜내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그 이후 그 사람은 본적도 없으니까.. 날 잡으면 돈을 준다고 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날 가지고 논걸까? 더 이상 날 지켜주는게 부담이 됐나?
. .
그걸 이제와서 알면 뭐할건데요?
".... 그러게."
뚝, 어느새 코앞까지 짧아져버린 담배를 툭하고 재떨이에 뱉어버리고 달을 바라보던 눈을 감았다. 그냥, 새벽이라 감성적이게 된것뿐이야..
>>907 독백 존버중이던 이뭐시기주 지금 감동 받아부렀시야..🙈 이뭐시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풀릴 테니까!😉😉 이뭐시기가.. 과연 어떤 것이 진짜일까!!(대체) 열심히 떡밥도 뿌려놓고 했으니 거둘 일만 남았다구~ 나야말로 멋진 평가 고마워!😚
헉 독백이다.. 아스텔은 실험체 출신인 걸까? 아니면 억지로 보검을 쥐게 된 걸까? 콜로세움에서 이긴 사람이 보검을 쥐게 된 건가?!(궁예 헛발질) 아스텔이 영화라고 평하는 것에서 아직 과거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했고, 또 과거가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도 느껴져... 떡밥... 너무 고마워..(큰절)
멜피야.... 우리 멜피 누가 칼로 찌르래 이 못된 남자친구야.. 널 남자친구라고 부를 수도 없어..😭 사랑에 목이 말라 집안의 붕괴를 외면했던 것도 새로운 비극이 되는 걸까..(훌쩍) 눈물 펑펑 독백.. 잘 읽었어..🥺 다음편도 기대 되는데 보면 몸부림치며 울 것 같아..
>>940 어차피 진짜 보검이 아니고 레플리카인만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여러분들에게 달려있어요. 그냥 에스티아가 아스텔이 가지고 있는 보검을 연구해서 만든 모조품인만큼 진짜 보검과는 또 다른 거기 때문에 그렇게 하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외형 변화야 가능하긴 한데 가능하면 원작처럼 무장 및 갑옷 느낌으로 하는 것을 권장하는 바에요. 아스텔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어둑어둑한 골목길, 세찬 비는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추적추적 내려댄다. 길 속에는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쓰러져 있는 사람이 세 명... 아니, 서 있는 저것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자의 머리칼처럼 휘날리는 백발에, 회백색의 인공 근육은 섬세한 결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안면은 무기질적인 가면으로 덮여 있었다.
조금만 더 살펴보면 상황을 이해하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계 남자의 손에 들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 구멍이 뚫리거나, 어딘가 부러진 채로 피 흘리는 남자들. 툭툭 손을 털어서 남자는 피를 씻어내고, 골목 사이로 들어간다.
저벅 저벅, 보다는 철컥 철컥이라는 소리가 어울리는 발걸음 사이로, 남자의 옆을 사람들이 지나친다. 술에 취해 뒹구는 부랑자나, 눈이 보이지 않는지 쪼그려 앉은 채 중얼중얼거리는 노인. 억압받고 버림받아 갈 곳을 잃은 세븐스 능력자들의 말로라고 해야 할까, 기계인 남자는 쓰레기통 위에 올려져 있던 질 낮은 술을 낚아채, 구강으로 투입했다.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자 표정을 찌푸리고, 거칠게 병을 버린다.
이윽고 보통의 시민들이 거니는 거리 쪽으로 나오자, 남자는 자신을 감추듯 후드를 눌러 쓴다. 쏟아지는 비의 틈새, 활짝 펼쳐진 우산들과 떠드는 소리, 밝게 빛나는 네온 사인 간판, 남자는 그것들을 봐도-아무 감흥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는 것에 대해, 남자는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짜증을 내며, 다시금 다른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아무렇게나 앉았다.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무서웠다. 대체 머릿속에 무슨 짓을 해 놓은거야? 남자가 생각하는 동안, 옆에 부랑자 노인이 말했다.
"젊구만. 어디서 왔는가."
[고향에서 왔지.]
"그 고향이 어디인데?"
아무 생각 없이 낸 대답에 다시 돌아온 질문에, 남자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선명했다. 들쭉날쭉한 바위가 가득한 협곡에, 흐르는 강. 폭포와 그득그득 쌓인 집들. 사람들. 그래,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어디였지?]
기억하고 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로 이게 내 고향인가? 아닌가, 다른 장소였나? 애초에 고향이 무엇이지?
[...어디였지? 어디였지...? 어디였지.....?]
생각이 얽힌다, 머리가 아프다, 괴롭다살려줘기억나지않아대체뭐였더라내이름은-
시스템 오류... 오류 코드 418 강제 다운 후 재시작... 18%... 39%... 오류. 리부팅 실패. 가까운 [삐-]...
엔 TMI 주세요! 우리 엔... 잠 안 오는 밤에는 뭘 하나요? 아지트의 지상에 있는 슈퍼마켓 위에 올라가 하늘을 봅니다! 단골입니다!
일기는 쓰나요? 오늘의 일기 한번 써 주세요! 「오늘은 식당에서 승우와 밥을 먹었다. 식당은 엔에게 많은 고기를 준다. 그것은 전부 못쓰는 고기라고 했다. 하지만 엔은 상관없다. 배가 불러서 좋았다. 매일 남았으면 좋겠다.」 이런 느낌? (ㅋㅋ) 일기는 안 쓰겠지만 써봤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변할까요? 혹시 안 변하나요? 음~ 변하지는 않지만 알기 쉬워질 것 같네요 하루종일 멀찍히 따라다니려고 한다든가~ (공포물?)
손가락만으로 벤치를 두드려주며 장난을 치니, 고양이는 특유의 몸짓으로 손을 잡으려 했다. 가능한 닿지 않게 움직였지만 한 번씩 고양이의 앞발이 스칠 때마다 레레시아의 표정이 움직였다. 기쁜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 그렇게 놀아주다가 고양이가 멈추자 손도 멈췄다. 노는게 질린 걸까. 말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고양이는 사람이 되었...다...?
"..어...?"
고양이, 아니, 마리가 마주한 얼굴은 과연 어땠을까. 세상에서 가장 놀란 사람의 얼굴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깜짝 놀란 레레시아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크게 뜬 금빛 눈, 힘이 풀린 듯 벌어진 입,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맥 빠진 소리. 놀란 사람의 행동 삼박자를 갖춘 레레시아가 몇 초간 마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짧은 사이였지만 레레시아의 머릿속엔 어마어마한 생각들이 지나갔다. 왜 고양이가 사람이 됐지? 아 사실 고양이가 아니었던 거야? 어? 아니 그런데 어떡하지? 어떡해, 들켰나? 들킨게 확실해? 아직 모르지 않아? 모르면 괜찮지 않아? 아직 괜찮아? 어, 어, 괜찮을거야? 그러니까 침착하게, 평소대로-
"....어, 어- 으응, 맞아- 잠이 안 와서어. 잠깐 산책하구- 쉬는 중- 이야아?"
천천히- 천천히 자신을 진정시킨 레레시아는 자연스럽게 평소와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고양이가 사람이 되서 깜짝 놀랐어어. 과연 씨알이나 먹힐까 싶은 말도 주워넘기며, 느릿느릿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심장이 쿵쾅대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옆자리를 손짓했다.
"바닥- 딱딱하니까아. 여기 앉아-"
그대로 마주보고 있는 것보단 옆에 앉혀두는게 대응하기는 나을 것이니까. 겉으로는 단지 바닥은 차고 딱딱하니 벤치에 앉으라고 말하곤 여기저기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주섬주섬 추슬렀다. 보이지 않게 힐끔- 눈치도 보면서.
수잔나가 경련하는 장면을 뒤로 비명소리와 함께 화면 조정 중 표시가 뜬다. 앞으로 시간 정도면 뉴스에서는 수잔나 박사의 죽음이 담긴 장면을 몇 번이고 송출하며 세븐스의 문제점을 피력할 것이다. 그릇에서 조그마한 동물 모양 통밀 쿠키만 골라 집어먹던 손이 멈춘다. 조막 만 한 손가락은 아직 충분히 길게 뻗지 못해 통통한 감이 남아있고 소파의 한 칸도 아닌 반 칸을 차지하는 몸집은 작다. 멍하니 벌린 입 틈새로 앞니가 빠진 것이 보였다. 그릇이 아무렇게나 굴러떨어졌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다 겨우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목이 턱 막혔다. 비명을 지르면 안 된다. 그러면 들킬 것이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소파 구석에 놓인 담요를 겨우 끌어와 덮어 자신만의 요새를 만들자 새하얀 머리카락도 가려진다. 아이가 웅크리더니, 이내 작은 짐승처럼 끙끙대며 울었다. 너무 끔찍하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날이다. 오늘은 아빠가 일 때문에 늦게 오는 날이라,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진 어디에 털어놓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