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속박이었다면 너는 어떨까.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인줄 알았는데 그 자유로운 하늘이 사실 새장 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야. 네가 그랬지. 예절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스메라기의 이름을 받은 너라면 지켜야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지켰다. 그것이 내 자유인 줄 알았기에. 또 너는 그랬지. 노래를 남 앞에서 부르지마라. 그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르지 않았다. 내 자유를 지키며 남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게 뭔데"
어쩐지 하인들이 적고 늙은 사람들뿐이다 싶은 것을 눈치챌을 때는 너는 말했다. 그들이 숙련자기에 네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라고. 아아 왜 몰랐던 것일까. 너에게 있어 나는 버리고 싶으나 스메라기라는 이름의 값어치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썩어도 자신의 딸이라는, 자신의 혈통을 이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비세븐스였던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하하.. 뭘 위해서"
홀로 부르는 노래는 도달하지 않는다. 들을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치채야 했다. 하인들이 왜 날 두려워하는지. 그것은 내 권위가 아니라 내가 세븐스여서 두려워하는 것이었다고. 4살 때 아프다고 해도 냉정한 시선으로 날 쳐다봤을 때도. 네게 필요한건 내가 아니라 나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너는 별장에 나를 가둬놓은 것이겠지. 인터넷도, 안되는 그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는 네가 예절을 위해 가져다놓은 책들과, 가끔 트로피로서 보일 때에만 필요한 정도의 부유한 아가씨 특유의 행동거지만 너에게 필요했던 것들만이 날 속박하기 위해 놓은 것이라고.
"덕분에 잘 깨달았어. '아버지' "
아아, 넌 뭘 무서워하는 것일까. 내 세븐스로는 너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텐데. 너에게 있어서 난 실패작이었잖아? 그러니, 얌전히 죽어주라고. 스메라기는 오늘로서 멸망이니까.
탕-하고 작은 총성이 일었다. 그리고 훗날 가스 폭발이 원인이라고 이름붙여질 스메라기가 화재 사고가 일어난 것은 그녀가 그 감옥을 떠나간 후였다.
답을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당신이 하는 말에 그는 긍정하듯 살짝 고갤 끄덕이며 웃었다. 신경을 더 곤두세울 수는 있어도 무뎌지게 만드는 건 어렵다,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그는 캔에 담긴 음료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역시 그렇겠...예? 염력이 맞습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 본 건데, 물론 충분히 고민하긴 했지만 사실상 쓸모 없는 고민이었고, 그랬기에 역시 틀리겠거니 하고 대답하다가 정답이라는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진짜?
"그렇...군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 같습니다."
아까 전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해준 것처럼, 그 역시 당신의 능력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내놓는다. 진짜로 편할 것 같다. 최대 3톤이라니 힘 조절이 조금 어렵다거나 할까. 조금,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감돌긴 했지만 딱히 적대감도, 살기도 내뿜지 않는 상대에게 그런 촉으로 알아낼 만한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캔을 만지작거렸다.
"똑똑한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네, 감사합니다."
어쨌건 칭찬이니까, 그는 굳이 말을 비꼬아 듣지는 않기로 했다. 그런 말보다는 당신이 일어서며 하는 말이 보다 중요하기도 했고. 대답을 해야 했으니까.
"물론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임무에 임하는 건 위험하니까요."
올바른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웃고 있는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는, 아. 일어날 때인가보다. 하고 얼른 캔을 비운다. 사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캔을 구겨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어느새 쓰레기통 앞, 그리고 당신의 옆.
"그러니까 유루 씨, 제대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으니까요. 라고 덧붙이며 조금 미안한 듯 웃는다, 조금 무례했으려나. 사실 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이렇게 한 번쯤... 이야기해서 손해는...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그렇게 말해본다.
제 0 특수부대가 신설되고 팀의 소속이 된 후, 한동안은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일상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훈련을 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고-
그렇지만 다른 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막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너도 이제 팀이 생겼으니 팀원들하고 어울리라며 그녀의 반신에게서 거리두기를 요청받았다. 왜 갑자기 그러냐며 항의를 하긴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진작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는 걸. 아무리 가깝고, 아무리 닮았어도- 쌍둥이는 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마주보고 거울처럼 서로를 따라하는 놀이는 할 수 없다.
조금씩 늘어가는 혼자의 시간을 채우려 레레시아는 더욱 훈련에 몰두했었다. 마침 모조 보검의 사용법을 익히기도 해야 했으니 얼마간은 혼자인 것도 시간 흐르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 몰두한 탓인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모조 보검의 형태를 갖춰버렸고 그만큼 시간이 떠버렸다. 빈 시간만큼의 공허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인지라. 그 헛헛함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건 수면이었다.
"...으으음..."
느즈막한 한밤중. 한참을 잠자리에서 뒹굴다가 기어코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훈련에 지친 몸은 늘 눕자마자 골아떨어지곤 했는데, 오늘은 정신만 피로에 쩔었지 좀처럼 잠들 수가 없다. 따끈한 음료라도 마시면 괜찮을까 싶어 간단히 옷을 챙겨입던 레레시아는 돌연 외출용 겉옷을 꺼내 휙하니 걸쳤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무장은 챙기지 않은 채 개인실을 나갔다. 보폭 큰 걸음이 성큼성큼 걸어서 향한 곳은 내부 휴게실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완전히 바깥으로 나오자 하늘은 이미 검푸르고 드문드문한 구름들 사이로 반쯤 기운 달만이 세상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거리는 어둡고,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보는 눈이 적으니 차라리 낫다. 후- 긴 숨을 내쉰 레레시아는 겉옷에 손을 넣고 길을 따라 걸었다. 작지만 있을만한 건 다 있는 작은 마을에는 그만큼 작은 공원도 있었다. 가로등 몇 개 만이 간간히 비추고 있는 공원은 밤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탓인지 작은 기척조차 없었다. 레레시아는 그 분위기 사이를 뚫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 가장 가까운 벤치에 가서 드러누웠다. 밤공기에 식은 벤치는 서늘했지만 누워서 위를 보기엔 적당했다.
"...♪-"
두 손을 머리 뒤에 받쳐 베개를 대신하고, 누워서 다리를 꼬곤 휘파람으로 작은 멜로디를 흘리며 멍하니 하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멜피의 조언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있는 마리는 저절로 훈련실에 가 있는 일이 많았고 자연스레 훈련실에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안면을 익히게 되었다. 할 일이야 훈련하는 것밖에 없던지라 훈련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살짝만 잔다는 게 깜빡 크게 잠이 들어서 잠에서 깼을 때는 깜깜한 한 밤 중이라 마리는 낭패어린 표정을 지었다.
“산책이나 다녀와야 하나.”
깜깜한 밤이니만큼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마리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 거리로 나왔다. 역시나 다른 이들은 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높아진 시야로 구경하던 중 공원에 도착하자 누군가 있는 듯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놀란 마리가 얼른 고양이로 변신했으나 여전히 휘파람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고 마리는 살금살금 소리가 향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벤치에 누운 채 멍하니 하늘 구경을 하고 있는 레레시아가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과 능력 정도만 얼핏 들은 정도일까.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던 사이였지만. 마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벤치로 다가가 벤치 빈 부분에 앞발을 올리며 야옹 인사했다.
에델바이스에는 역설적인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아마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대식가로 정평이 난 Project n은 식당에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승우."
그런 그녀가 식당에 나타나는 경우는 단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1.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을 때. 2. 식당에 쓰이지 못한 냉동육이 남아 돌 때.
"아무래도 엔에게 먹일 것과 뒤바뀐 것 같다."
이 경우는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일부러 당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무언가를 원하는 기색으로 서있을리가 없다. 당신의 앞에는 아마도, 채소나 반찬따위는 일절 없이 구운 고기만 산처럼 쌓인 폭력에 가까운 밥상이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정도라면 보는 것만으로 질린다.
"엔의 생각엔 이것이 승우가 원래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민다. 당연히 이쪽이 정상적인 식사다. 그 위에는 '봤지?'라고 하는 듯한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
"엔은 교환하고 싶다."
라고 해야할지, 당연히 바꿔야하는 상황이겠지만. 그래도 엔은 동료를 위해 의사결정을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