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회 초짜인지는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에게 신입은 다 사회 초년생이다. 그의 첫..? 사회가 이곳이라고 다른 이들도 마땅히 그럴 거라는 생각은 별 의미 없는 스키마이다. 자신의 잘못이었든, 아니든, 어쨌든 괜찮다는 뜻인것 같으니 머리 더 굴릴 의미는 없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당신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걸 가만 바라본다. 이야, 멧돌 굴러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잡)생각이 많은건 나도 매한가지였지,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희미해진다.
“...그래. 그래서, 네 이름은? 그러고보니 통성명도 안 한 사이였네.”
"내 성은 '유루', 이름은 푸르른 단어면 전부 반응해. 편하게 불러."
이것 봐라, 긴장 풀라더니 아직도 이러네. 괜히 이런걸 또 상기시켜줘 봤자 결과는 더 안좋을터, 그러니 그냥 넘어간다. 자신의 텐션이 더 높았다면 놀리고도 남았겠지만. 무엇보다 목마르다, 뭐라도 얼른 사먹고 싶은데. 이러다가 삑사리 나면 좀 창피하겠는데. 헛기침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당신이 비명도 지른걸 보니, 여간 긴장했나 보다. 본인이 무서운 인상이라곤 생각해본적 없는데, 거울이라도 다시 봐야 하나. 놀랄수도 있던 상황임에도 내색 없이 가만 서 있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수 없는 미소다만, 사실 별 생각 없다. 기회도 왔는데, 캡틴주스라도 마셔볼까. 당신의 귀를 보아하니, 아까의 색보다 더 어두운 회색으로 변해있다. 그렇게 당황스러웠나? 아님 내가 잘생긴 걸까? 후자는 아니겠지. 반란하러 들어온데서 미남 따위가 눈에 들어올까. 당신도 당신만의 목표가 있겠지. 조금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전투는 제대로 할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의 눈에 비치는 당신은 겁쟁이, 그래도 자신의 과거에 비하면 당신은 준수한 부대원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선 입을 연다. 여기까지 이어져 었던 침묵은 당신이 느끼기에 길었을까.
“그래, 고마워.”
‘죄송’을 분명히 들었다만, 굳이 더 꼬집어봐야 자신만 귀찮지. 당신을 잠깐 내려다봤던 표정은 무심해 보였다. 비키는 속도 보니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같은 의미불명의 생각을 하곤 자판기에 돈을 넣는다. 누른 음료는 지코.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잠깐의 정적후에 버튼을 한번 더 눌러본다. 또 정적.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눌러보아도, 주먹으로 버튼을 툭툭 쳐봐도 이어지는 정적.
“뭐야, 고장났네.”
분명 어제는 잘 작동 했는데. 그러고보니 아침 즈음 누가 동전에 실을 감아 음료수 무한 뽑기를 시전했었지. 그걸 그냥 무시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풀리네. 이제 이게 망가졌다는걸 에스티아 양에게 보고해야 할텐데, 그렇다면 왜 망가졌는지도 말해야 할테고. 그러면 방관했다고 야단맞을 수도…아! 귀찮다! 귀찮음이 얼굴에도 그려지듯, 미소가 무표정으로 덧씌워진다.
“너 운 좋네, 이거 썼으면 돈만 낭비할 뻔했어.”
아까와는 다른 변덕일까, 당신더러 괜히 이 상황에 뇌 굴리지 말라는듯, 굳이 말을 잇는다.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고는 또박또박 상대의 질문에 대답한다. 먼저 이름을 소개하는 게 맞았을까?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거랑, 지금까지 긴장한 태도가 '당신과는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네요'라고 비춰지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으니 그만뒀지만.
"아, 네, 유루 씨...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그, 이름은 천천히 생각을 좀...해보겠습니다."
푸른 단어라면 전부 반응한다지만 그렇다고 아무 단어나 써서 사람을 부른다니 묘한 거부감이 든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도 같지만... 그보다는 지금 자판기 앞에 선 남성이 버튼을 눌러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사실에 당연히 이어져야 하는 결과, 즉 음료수가 나와야 한다는 결과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고장 났다는 걸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나? 아니, 분명 상대방도 알고 있겠지,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러면 뒷북이 되나? 아니, 단순 뒷북이 아니라 지금 놀리는 거냐고 할지도 모르는데... 이걸 어쩐담. 손에서 땀이 나는 건지, 단순히 차가웠던 캔의 겉면에 습기가 생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손이 축축해지고 있었다.
"그게... 사실 저도 여기서 음료수를 마시려고 했는데, 고장이...난 것 같아서 그... 미리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 텐데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큰일이다, 뭘 마시려고 했었지?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까, 어떤 음료수였더라? 한 번 누른 것도 아니고 여러 번 누르는 걸 봤으니. 아마 코코넛 음료수였던 것 같은데, 그는 빠르게 뒤로 돌아서 멀쩡한(콜라가 뒤바뀌어 나오긴 했지만) 자판기 쪽으로 달려가, 그가 찾는 음료가 있는지 살폈다. 있었다면 그대로 뽑아서 돌아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