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아스텔은 고요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이스마엘의 세븐스가 자신을 뒤집어도, 그는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고 미카엘라가 불꽃으로 자신을 삼키려고 해도 이를 악물고 데미지를 입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바람으로 밀어냈다. 당연히 레이먼드의 자신을 흔들려는 공격마저도 그는 미동하나 없이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으며 쥬데카가 자신의 다리를 공격했어도 움찔할 뿐 그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그렇게 데미지를 입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허나 멜피의 그림자 검이, 츄이의 쌍떡캐논이, 레레시아의 독액 채찍이, 엔의 촉수가, 그리고 제이슨의 장타 공격이 검을 노리자 그는 힘을 꽉 줘서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검은 검일 뿐, 아스텔이 아니었다. 검을 놓쳐버리면서 아스텔의 자세가 풀렸고 모이고 있던 에너지도 사라졌고 아스텔은 작게 큭 소리를 내며 땅으로 추락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기까지! 15분 동안 잘 버텨냈다."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낸 것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로벨리아는 박수를 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아스텔은 숨을 약하게 몰아쉬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자신의 힘을 다시 풀기라도 한 것인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입고 있던 무장은 온데간데 없이 팟. 하는 느낌으로 사라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벨리아는 아스텔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떨 것 같아? 아스텔?"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어쨌든 저와 비슷하게 싸웠고 저보다 조금 더 우세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던 로벨리아는 방금 전까지 아스텔과 싸우고 위기를 넘긴 대원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박수를 쳤다. 그것은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칭찬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수고했어. 허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 이건 보검의 30% 정도의 출력밖에 되지 않아. 그리고 말했다시피 아스텔은 죽이지 않는 정도로만 싸웠지. 실전에서 보검을 사용하는 세븐스. 즉 가디언즈를 이끄는 대장 세븐스와 싸우게 된다면 이것보다 3배는 더 강력하고,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정말로 죽이기 위해서 덤벼들테고 자연히 사투로 번지게 될 거야. ...그래도 너희들은 싸울 참인가? 이 제 0 특수부대 안에서?"
직접 보검의 힘을 어느 정도 체험해봤으니 남은 것은 선택 뿐이었다. 하기 힘들다면 그것도 상관없었고, 여기에 있겠다면 당연히 그녀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저쪽은 나름 만족한 모양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간신히 착지한뒤 머리를 긁적이고는 대장을 바라봤죠. 이것의 3배,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음에도 보스와 1대 다수의 유리한 매치업이 될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어쩌면 보검 사용자 2명 이상과 동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죠..
다리에 공격을 해도, 뒤집혀도, 불에 닿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럼 실패인가? 아니, 정답은 다른 쪽에 있었다. 저 검, 검을 놓치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 났다. 결국 검을 휘둘러야만 할 수 있었던 공격이었던 거구나. 그제서야 그는 긴장이 조금 풀린 듯 한숨을 내쉬며 모자를 벗었다.
"15분..."
그 시간이 고작 15분이었다는 게 상당한 충격이었음은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으리라. 15분을 견디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전력도 아닌, 30%의 힘으로, 그것도 제거가 아닌 제압이라는 핸디캡까지 안고 있는 상대와 15분간 부딪힌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그제서야 앞으로 대면할 보검 사용자들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최소한 3배, 혹은 그 이상의 강함과 망설이지 않는다는 심리적 요인까지. 솔직히 말하면 요행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꿰뚫고 있는 건지, 들려오는 로벨리아의 목소리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나무라지는 않을테지만, 그게 오히려 목숨을 좀 더 오래 보전할 길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저는 제가 여기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분명 그이기 때문에 해당 부대로 배속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훈련이 마무리된 지금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레레시아의 독액 말고도 다수의 공격이 아스텔의 검에 집중되자 아스텔은 결국 검을 놓치고 자세가 무너졌다. 동시에 에너지가 흩어지며 위험할거란 위기감은 사라진다. 바닥에 떨어져 무장 해제를 하는 아스텔을 보고, 팀원들을 보며 박수를 쳐주는 로벨리아의 말에 끝났음을 깨닫는다.
"와- 끝-"
감흥 없는 투로 무사히 끝났음을 중얼거리던 레레시아. 뒤늦게 깨닫고 왼손에 장갑을 끼운다. 더는 독액이 흐르지 않게 된 손을 한 번 쥐었다 펴고 가지런히 등 뒤로 모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꼿꼿이 선 자세로 로벨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대로 얌전히 대답하나 싶었지만, 그새를 못 참고 한바퀴 빙그르 돌며 떠들었다.
"싸우지 않으면- 나는 가치가 없는 걸- 살아있는 것도 전부-"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에 착, 서서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런 건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이제 와서- 안 한다곤 안 해애."
끝? 이제 올라가도 돼-? 나 배고픈데에. 조잘조잘 떠들며 고개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다. 긴장감도 진지함은 없지만 대답에 거짓됨은 없었다.
15분간 버텼다. 이스마엘의 상관은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지만, 정작 이스마엘은 버텼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었다. 30%의 힘, 그리고 그 힘에서 15분. 과연 이것이 자랑스러운 결과일까?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과연 어떤 부류일지 알 수 없다. 조금 더 우세했다지만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이미 누군가는 죽었을 것이다. 죽이지 않는 정도로만 싸웠다는 점이 그 상황을 보여준다.
이스마엘은 죽음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떠올렸다. 공포, 경외, 필연적인 것, 세상은 눈이 내린 듯 하얗고 아름답다……. 세븐스와의 전투는 필연적이고 죽음 또한 필히 있을 것이다. 과연 이스마엘이 버틸 수 있을까? 이스마엘은 자신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렸다. 무언가를 쥐는 듯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하듯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섰다.
나의 낙원, 이상향, 더는 보금자리가 이상향이자 낙원이 아니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들었다. 멀리 떠나왔고, 별을 쫓아 메시아를 찾았다. 이스마엘은 이 장소가 이상향을 세울 곳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공중에서 땅으로 착지한 엔이 말했다. 그녀는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올려 본래 주인인 아스텔에게 다가갔다.
"엔에게 먹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알려주고 잘 곳을 준 건 에델바이스다."
그녀에게 있어서 결정은 진즉 되어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을테다. 그렇기에 아스텔이 지금 얼마만큼의 힘을 사용했고, 상대가 또 어느정도의 힘을 가지고 죽이려 드는지는 엔의 판단 밖의 것이었다. 비단 그녀 뿐 아니라, 세븐스에게 있어선 매일이 싸움과 같기 때문에. 그것이 조금 더 격렬해진다 해도 그녀는 꿋꿋히 삼켜나갈 것이다.
"그러니 엔은 에델바이스와 함께하겠다."
-라는 것은, 절대 특수부대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고. 어쨌든 엔은 방금 주웠던 검을 아스텔에게 건넸다.
엔이 내미는 검을 아스텔은 정중하게 받았다. 이어 그 검을 허리춤에 찬 후에 가볍게 몸을 털었다. 한편 멤버들이 받은 상처는 어느 순간 아주 깔끔하게 회복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어리둥절한 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확인하지 않으며 로벨리아는 모두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고개를 내민 멜피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은 후, 로벨리아는 손을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가. 각자의 이유가 있고 여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는 잘 들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세븐스들은 억압받고 있고 같은 동포인 세븐스인 가디언즈에 의해 죽어가고 있으며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그것을 바꿔보고자 하는 비능력자들도 강하게 탄압받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 이 현실을 가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나는 지금 이 제 0 특수부대라고 생각한다. 아니. 확실한다. 너희들이 15분이나 버텨낸 것이 바로 그 증거지."
이어 에스텔라는 숨을 약하게 내쉬었고 아스텔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훈련장 밖으로 향하는 문을 가리키자 아스텔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빠른 걸음으로 훈련장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에스티아가 모두를 바라보면서 두 손을 모아 미소를 짓고 이야기했다.
"이 훈련장은 자동 수복 장치가 되어있어요. 사실 이것도 우리 에델바이스에 소속된 세븐스의 능력을 토대로 만든 기술인데 적어도 이 안에서 받는 상처나 손상은 모두 자동으로 회복되니까 이 안에서는 어지간하면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모두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사용해주세요. 대련을 해도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으니까요. 시간이 되면 자연히 회복되고요. 하지만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생긴 상처는 회복되지 않아요. 그 점은 명심해주세요."
"아무튼 말을 다시 이어서 하도록 하지. 너희들이 본 것은 '보검'. 가디언즈를 이끄는 대장 세븐스 일곱 명이 사용하는 특수한 검이야. 사용자의 세븐스를 등록하여 그 세븐스를 최대 100배에서 1000배 사이로 강화시키지. 그런 보검을 저쪽에선 일곱 명이나 가지고 있어. 그리고 너희들이 본 아스텔의 보검 역시 진짜 보검이야. ...왜 아스텔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는... 지금 여기서 말할 순 없으니 이해해줬으면 해. 허나 아스텔은 믿을 수 있는 이야. 그건 모두들 알아줬으면 해."
아스텔에 대한 사정, 그리고 왜 아스텔에게 보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는 듯이 로벨리아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이어 문이 열렸고 아스텔이 커다란 박스를 품에 안고 천천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박스를 로벨리아의 옆에 내려놓았다. 그 박스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에스티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상자 안에 있는 것을 앞으로 사용해주세요. 그건 아스텔이 가지고 있는 보검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서 만들어낸 '모조 보검'이에요. 물론 어디까지나 모조품이라서 진짜 보검 정도의 출력을 낼 순 없어요. 아무리 강하게 내봐야 진짜 보검의 30% 정도가 고작이에요."
"그래. 너희들이 상대한 딱 그 정도의 힘이다. 이 모조 보검은 어디까지나 모조품. 그렇기에 인자의 상성을 상당히 타고 있어. 그리고 너희들 전원은 이 에델바이스에서 나와 에스티아를 추가해서 모조 보검과 상성이 맞는 세븐스 인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이것이 너희들이 제 0 특수부대에 편성된 이유다."
"...사용법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검을 들고 능력을 검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보검에 세븐스 인자가 저장이 돼. 그리고 그것을 소환한다는 느낌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어디서라도 그 보검을 소환할 수 있어. ...그리고 보검의 힘을 해방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무장을 몸에 두를 수 있고 세븐스의 출력도 그만큼 강해지지. ...나중에 시험해 봐."
에스티아의 말이 끝나자 로벨리아와 아스텔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은 앞으로 제 0 특수부대원들의 힘이 되어줄 '모조 보검'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것을 사용할지, 말지는 각자의 자유였으나 적어도 위험 요소는 없는 모양이었다.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진짜 보검의 고작 30% 정도밖에 출력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강력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다.
"자. 보검은 나중에 제대로 다뤄보도록 하고... 지금부터 제 0 특수부대의 결성을 선언하마. 많은 위험한 일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절대로 굴하지 말고 죽지 말고 반드시 살아남아라. 우리들은 영웅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이 세계를 뒤집어엎고 우리가 누려야만 했던 권리와 자유를 반드시 되찾을테니까! 그러니까 죽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말고 비참해도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라. 그것이 제 0 특수부대의 기본 방침이자 정신이다! 알았나!!"
제 0 특수부대. 비록 모조라고는 하지만 보검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에델바이스의 특수 부대. 그들의 길고 힘든 여정이 지금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