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을 직격으로 맞고 사지에서 붉은 혈이 흘렀지만 공격이 명중했다는 흥분에 오히려 황홀한 기분으로 꿈꾸듯 여인은 미소를 지었다. 터져나가는 비명과 온갖 악소리가 희미하게 저 멀리에서 울리는 것처럼 멀어지고 자신을 감싸안는 불길이 안온하고 따스하게만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승리와 아무도 희생당하지 않는 세계의 몽환에 손을 뻗고 이를 갈망하듯 몸을 내밀면서 불꽃의 장막을 그린다.
"저 공격을 맞으면 분명히 저는 그대로 쓰러질 거에요. 그러니 지금 온 힘을 다해 불길을 일으켜서 쓰러지더라도 크게 다를 건 없어요."
화려하게 너울거리던 불꽃의 선이 한데 모여 길게 늘어져 내리며 타오르는 장막을 이룬다. 크게 쇄도하는 공격과 비장하게 울린 외침이 본능적으로 종말을 알렸지만 미카엘라는 기꺼워하며 달려나가 바람을 가득 메울 거대한 휘장을 드리웠다. 공간을 메우는 붉은 기류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살갖에 연기가 올라 같이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보라색 동공에 비친건 오로지 모두를 보호하고 바람을 감싸안을 장막 뿐이었다. 거대한 화염의 선이 춤을추듯 거대한 검격을 날릴 손을 중심으로 상대의 인영을 감싸안았다.
방어는 해냈지만 어디까지나 받아냈다, 의 수준일 뿐, 이런 공격을 두 번, 세 번 막아냈다간 그대로 뻗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는 상처로부터 오는 고통을 참기 위헤 입술을 깨문 채 찡그린 눈으로 아스텔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움직임을 멈추곤 검을 뽑아든 채 무언가를 준비하는 모습, 다시금 머리털이 곤두서는 감각과 함께 피부가 저리기 시작했다. 이건 큰일이다. 저 공격을 막아내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궤도를 예상해서 몸을 움직여? 아니면...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머리를 쥐어짜듯 스스로를 다그친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강한 공격인만큼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면 그 때를 이용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용해야 하지? 어떤 게 정답이지? 아니, 적어도 어떤 게 오답이 아닌지를 알아야만 했다. 누군가 알려줄 리 없는 답을 내기 위해서 그는 검자루에 손을 올린 채 낮게 심호흡했다. 손에서 배어나오는 땀에 검자루는 슬슬 축축하다. 그런 와중에 벌써부터 앞으로 뛰쳐나가는 이들의 모습, 그들은 하나같이 아스텔의 검을 노리고 있었다. 검을 뽑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일까, 저게 정답이라면 좋으련만. 그들의 공격 사이에 끼어들기에는 역량이 모자랐기에, 그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다시금 머리를 굴렸다.
"...이게 최선일지도."
이렇게, 하자. 그는 몸을 낮춘 뒤, 땅을 박차고 달렸다. 방향은 전방...이 아니라 측면, 대각선을 그리며 달린 그는 아스텔의 등이 비스듬히 보일 때까지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등을 옆에서라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땅을 강하게 차고 올라, 검을 거꾸로 쥐었다. 뛰어봤자 공중을 나는 존재에게 닿기가 쉬울 리 없다. 그렇담 하는 수 없지. 검을.
"...던지는 수밖에!"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말하곤 있는 힘껏, 검자루를 쥔 손을 놓으며 아스텔의 다리 부분을 노렸다, 이미 한번 피격된 부위였으니, 맞기만 한다면...!
스페셜 스킬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스마엘은 그대로 몸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로벨리아가 있을 곳을 쳐다보듯 노이즈의 움직임이 변했다. 강렬한 녹색 빛을 한 번, 그리고 로벨리아를 한 번 쳐다본다. 알기 어려운 언어가 한번 더 입을 타고 흘렀지만 오토튠이 이지러져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머리에 큰 이상이 생긴 사람처럼 가만히 있던 이스마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전시에는 누구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정신을 해이하게 두지 말아야 한다. 가장 기본되는 사항을 까먹다니,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가! 집중하자. 자신의 두 뺨을 짝! 하고 쳤다. 당연히 보이지는 않았다. 큰 무언가가 날아올 것이 뻔하다. 이스마엘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보고 심호흡을 했다. 검을 뽑지 못하게 막는 것은 풍압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미안합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휘둘린다. 가장 기본되는 것은 자세다.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스마엘은 눈을 딱 감았다.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인성질을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람 칼날을 맞은 곳이 욱신욱신하다. 곱게 손질했던 머리는 그새 산발이 되었다. 이대로 의무실에 가면 라라가 단전에 힘을 주고 잔소리를 할 거야. 일부러 따끔따끔한 약으로 꾹꾹 찌르면서 으르렁 할 거야. 으. 그건 싫다아. 하지만 지금은 더 큰 위기가 눈 앞에 나타나있었다.
"에- 그런 거 치사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큰 걸 쓰려는 듯한 아스텔을 보고 불만스럽게 종알댄다. 그러나 곧 저걸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한다. 막는다? 이미 뚫렸잖아. 안 돼. 그럼 다시 공격? 어디를? 전체? 아니면 일점사? 가능한 수를 머릿속으로 굴리는 사이 늘어뜨린 손 아래로 독액이 줄줄 새어나온다. 무색의 맑은 액체이던 독액은 레레시아가 목표를 정하자 순식간에 검보랏빛으로 물든다. 그대로 손을 들어올리자 아까보다 더 끈적하고 밀도 높은 독액이 주욱 늘어지며 마치 긴 밧줄, 혹은 채찍에 가까운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거- 뽑으면 아플 거 같으니까아. 못 뽑게 하면 되겠지-?"
아스텔의 검은 아직 뽑히지 않았으니 저것만 막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레레시아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길게 늘어진 독액 채찍을 몇 번 휘둘러 형태를 완전하게 하고, 둥글게 둥글게 감아 손에 쥔다. 레레시아는 날지도 높이 뛰지도 못 하지만 이 독액을 다루는 것 만큼은 무엇보다도 잘 했다. 얼마나 멀리 있든, 높이 있든-
"에잇."
감았던 독액 채찍을 크게 휘둘러 아스텔의 검과 검집을 노렸다. 독액의 독성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금속을 녹이는 것에 더해 플라스틱도 같이 부식되도록 했다. 몸짓에 비해 영혼 없는 기합 뒤로 세차게 뻗어나간 독액이 아스텔의 검과 검집을 봉해버리려 한다.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아스텔은 고요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이스마엘의 세븐스가 자신을 뒤집어도, 그는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고 미카엘라가 불꽃으로 자신을 삼키려고 해도 이를 악물고 데미지를 입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바람으로 밀어냈다. 당연히 레이먼드의 자신을 흔들려는 공격마저도 그는 미동하나 없이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으며 쥬데카가 자신의 다리를 공격했어도 움찔할 뿐 그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그렇게 데미지를 입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허나 멜피의 그림자 검이, 츄이의 쌍떡캐논이, 레레시아의 독액 채찍이, 엔의 촉수가, 그리고 제이슨의 장타 공격이 검을 노리자 그는 힘을 꽉 줘서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검은 검일 뿐, 아스텔이 아니었다. 검을 놓쳐버리면서 아스텔의 자세가 풀렸고 모이고 있던 에너지도 사라졌고 아스텔은 작게 큭 소리를 내며 땅으로 추락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기까지! 15분 동안 잘 버텨냈다."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낸 것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로벨리아는 박수를 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아스텔은 숨을 약하게 몰아쉬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자신의 힘을 다시 풀기라도 한 것인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입고 있던 무장은 온데간데 없이 팟. 하는 느낌으로 사라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벨리아는 아스텔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떨 것 같아? 아스텔?"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어쨌든 저와 비슷하게 싸웠고 저보다 조금 더 우세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던 로벨리아는 방금 전까지 아스텔과 싸우고 위기를 넘긴 대원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박수를 쳤다. 그것은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칭찬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수고했어. 허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 이건 보검의 30% 정도의 출력밖에 되지 않아. 그리고 말했다시피 아스텔은 죽이지 않는 정도로만 싸웠지. 실전에서 보검을 사용하는 세븐스. 즉 가디언즈를 이끄는 대장 세븐스와 싸우게 된다면 이것보다 3배는 더 강력하고,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정말로 죽이기 위해서 덤벼들테고 자연히 사투로 번지게 될 거야. ...그래도 너희들은 싸울 참인가? 이 제 0 특수부대 안에서?"
직접 보검의 힘을 어느 정도 체험해봤으니 남은 것은 선택 뿐이었다. 하기 힘들다면 그것도 상관없었고, 여기에 있겠다면 당연히 그녀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저쪽은 나름 만족한 모양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간신히 착지한뒤 머리를 긁적이고는 대장을 바라봤죠. 이것의 3배,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음에도 보스와 1대 다수의 유리한 매치업이 될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어쩌면 보검 사용자 2명 이상과 동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죠..
다리에 공격을 해도, 뒤집혀도, 불에 닿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럼 실패인가? 아니, 정답은 다른 쪽에 있었다. 저 검, 검을 놓치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 났다. 결국 검을 휘둘러야만 할 수 있었던 공격이었던 거구나. 그제서야 그는 긴장이 조금 풀린 듯 한숨을 내쉬며 모자를 벗었다.
"15분..."
그 시간이 고작 15분이었다는 게 상당한 충격이었음은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으리라. 15분을 견디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전력도 아닌, 30%의 힘으로, 그것도 제거가 아닌 제압이라는 핸디캡까지 안고 있는 상대와 15분간 부딪힌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그제서야 앞으로 대면할 보검 사용자들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최소한 3배, 혹은 그 이상의 강함과 망설이지 않는다는 심리적 요인까지. 솔직히 말하면 요행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꿰뚫고 있는 건지, 들려오는 로벨리아의 목소리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나무라지는 않을테지만, 그게 오히려 목숨을 좀 더 오래 보전할 길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저는 제가 여기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분명 그이기 때문에 해당 부대로 배속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훈련이 마무리된 지금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레레시아의 독액 말고도 다수의 공격이 아스텔의 검에 집중되자 아스텔은 결국 검을 놓치고 자세가 무너졌다. 동시에 에너지가 흩어지며 위험할거란 위기감은 사라진다. 바닥에 떨어져 무장 해제를 하는 아스텔을 보고, 팀원들을 보며 박수를 쳐주는 로벨리아의 말에 끝났음을 깨닫는다.
"와- 끝-"
감흥 없는 투로 무사히 끝났음을 중얼거리던 레레시아. 뒤늦게 깨닫고 왼손에 장갑을 끼운다. 더는 독액이 흐르지 않게 된 손을 한 번 쥐었다 펴고 가지런히 등 뒤로 모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꼿꼿이 선 자세로 로벨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대로 얌전히 대답하나 싶었지만, 그새를 못 참고 한바퀴 빙그르 돌며 떠들었다.
"싸우지 않으면- 나는 가치가 없는 걸- 살아있는 것도 전부-"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에 착, 서서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런 건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이제 와서- 안 한다곤 안 해애."
끝? 이제 올라가도 돼-? 나 배고픈데에. 조잘조잘 떠들며 고개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다. 긴장감도 진지함은 없지만 대답에 거짓됨은 없었다.
15분간 버텼다. 이스마엘의 상관은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지만, 정작 이스마엘은 버텼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었다. 30%의 힘, 그리고 그 힘에서 15분. 과연 이것이 자랑스러운 결과일까?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과연 어떤 부류일지 알 수 없다. 조금 더 우세했다지만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이미 누군가는 죽었을 것이다. 죽이지 않는 정도로만 싸웠다는 점이 그 상황을 보여준다.
이스마엘은 죽음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떠올렸다. 공포, 경외, 필연적인 것, 세상은 눈이 내린 듯 하얗고 아름답다……. 세븐스와의 전투는 필연적이고 죽음 또한 필히 있을 것이다. 과연 이스마엘이 버틸 수 있을까? 이스마엘은 자신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렸다. 무언가를 쥐는 듯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하듯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섰다.
나의 낙원, 이상향, 더는 보금자리가 이상향이자 낙원이 아니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들었다. 멀리 떠나왔고, 별을 쫓아 메시아를 찾았다. 이스마엘은 이 장소가 이상향을 세울 곳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공중에서 땅으로 착지한 엔이 말했다. 그녀는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올려 본래 주인인 아스텔에게 다가갔다.
"엔에게 먹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알려주고 잘 곳을 준 건 에델바이스다."
그녀에게 있어서 결정은 진즉 되어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을테다. 그렇기에 아스텔이 지금 얼마만큼의 힘을 사용했고, 상대가 또 어느정도의 힘을 가지고 죽이려 드는지는 엔의 판단 밖의 것이었다. 비단 그녀 뿐 아니라, 세븐스에게 있어선 매일이 싸움과 같기 때문에. 그것이 조금 더 격렬해진다 해도 그녀는 꿋꿋히 삼켜나갈 것이다.
"그러니 엔은 에델바이스와 함께하겠다."
-라는 것은, 절대 특수부대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고. 어쨌든 엔은 방금 주웠던 검을 아스텔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