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레시아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는가 싶었지만, 모두 모이고 로벨리아가 입을 열기 전 그 짧은 사이에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냉큼 무릎을 올려 두 팔로 다리를 안고서 발끝을 까딱거리며 상당히 삐딱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녀의 자세에 대한 걸 지적해봤자 고분한 대답과 달리 똑바로 앉을 가능성은 제로라는 걸 알 사람은 알 것이다. 레레시아는 그렇게 제멋대로인 채 자리를 차지하고서, 단말기로 전송된 사진을 보았다.
"흠냐."
무차별적 학살의 장면을 보고도 레레시아는 눈만 깜빡였다. 평온한 표정은 되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것 같다. 사진 두 장을 슥슥 넘겨보고 단말기를 집어넣은 레레시아는 의자 위에서 둥글둥글 몸을 기우뚱거렸다. 무릎 뒤로 얼굴을 반 감추고 눈만 빼꼼히 내밀어 로벨리아를 빤히 응시한다. 제 0 특수부대니, 로벨리아의 직속이니, 위험하다느니, 그런 말 전부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인다. 긴 설명 끝에 훈련장으로 가자는 말이 나오자 폴짝 뛰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문- 없으니까- 먼저 가야지이."
제일 늦게 들어온 주제에 훈련장으로 가는 건 또 잽싸다. 회의실에 올 때처럼 다다닥 뛰는 소리가 복도를 짧게 울렸을지도.
분명한 목소리로 로벨리아의 말에 답하며 모자를 매만지던 그는 곧 자신의 단말기에 보이는 사진을 확인하곤 잠시 두 사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민하다가 두 장소가 완전히 동일한 장소이며, 두 번째 사진에는 얼음덩어리, 정확히는 냉동된 시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음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자연재해? 아니, 그런 일로 이렇게 소집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아, 설마..."
가디언즈와 레지스탕스가 격돌한 장소, 그리고 레지스탕스인 '와일드 팽'이 전멸한 장소. 단순히 가디언즈 부대와 하나와 격돌해서 전멸당했다는 건 믿기 어렵다. 더군다나 상대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라면 손속을 뒀을 리도 없을 텐데 전멸을? 그 정도로 전력차가 난단 말인가? 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른침을 삼켰다. 갑자기 멀쩡하던 벌판에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지거나, 그대로 기온이 수직하락했다고 해도 저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 그때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한 듯, 가디언즈의 대장 중 하나의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말이 들려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갤 숙였다.
"그, 대장님. 어째서 저 같은 사람이 직속으로... 아니, 아닙니다. 좋게 보고 계시는 거라면 감사합니다만 그저, 조금 의구심이 들어서."
아직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다. 물론 이전에 몸담고 있던 곳에서 실전 경험이라면 꽤 쌓았지만 과거는 과거, 현재 그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지, 입장이 정반대가 되었으니. 때문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에 배속되다니, 뭔가 행정 착오가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긴장감에 위가 쓰린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들어오라고? 신기하다, 천천히 들어와도 되는구나! 그렇지만 마음이 급했다. 첫 명령이라니, 이렇게 떨리는 순간이 있을까? 음, 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 순간을 굳이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의자를 앞으로 당겼을 적, 다시금 단말기가 삑 하고 소리를 낸다. [사진 데이터를 송신했습니다. 재머 서비스 - 페이시에 연결할까요?] 자동으로 뜨는 블루투스 엑세스를 거부하고 화면을 들여다본 이스마엘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는지 사진을 몇번이고 확대했다. 새하얀 벌판을 뒤로 얼음 조각이 보였다. 이게 문제인 걸까? 문제였다. 이스마엘의 문제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확대한 사진에는 사람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육편이 얼어붙어있다. 이스마엘은 속으로 외쳐야 할 것을 입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맙소사, 신이시여."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에 당혹감이 서려있다. 말로 담을 수 없을만치 끔찍하다. 이스마엘은 이런 시체를 처음 봤다. 매체로 조금 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훼손된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잃었다는 괴리감이 등골을 싸늘하게 식혔다. 오늘 잠들기는 글렀다. 심지어 이게 레지스탕스 부대라면.. 이스마엘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참혹함에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왜? 같은 사람이면서 이렇게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이스마엘은 이어지는 말에 다짐을 굳히려 무진 애썼다. 특수부대 소속에, 위험하고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저렇게 될수도 있지만……. 그건 안 된다. 이스마엘은 살아야 했다. 살아서 해야할 일이 있었다. 페이스 재머에 가려진 창백한 표정을 갈무리했다.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내었다.
"……저희가, 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 싸울 수 있습니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산더미다. 그렇지만 가장 최우선되는 것을 묻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령에 따라야한다. 명령에.
그녀는 단말을 꺼내어 수신 된 이미지를 확인했다. 잔혹한 모습이었지만 잘도 눈을 피하지도 않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고기의 눈엔 고기밖에 안 보인다고. 그녀에게 있어선 이런 그림이 이젠 익숙한 걸지도 모른다.
"특수부대?"
그러다 문득 엔은 고개를 기울이며 혼잣말을 한다. 현장의 과격함에 대해선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제 0이니. 특수부대니. 직속이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 건지는 정작 전혀 모르겠다는 거다. 지나온 나날들과 에델바이스에서의 활동들. 그리고 이제부터 겪게 될 일. 매일같이 살기 바빴던 터라 그 차이가 무엇인지 엔은 잘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엔이 에델바이스에 속해있는지도 벌써 2년 가까이였다.
"엔은 질문이 없다. 대장을 따라가겠다."
달리 말하면 설명이 필요 없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이나 소속이 바뀌어도 에델바이스의 대장인 로벨리아의 진행 방식이 어떤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군말없이 단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기다린다. 붉다란 눈이 회의실을 살피며 다른 사람은 어떤 말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