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남아있는 상태의 전 연인과 연애프로그램에 서로 합의하에 참여하였고 거기서 다시 옛 연인과 재결합을 할지,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을지는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허나 그 결과가 항상 좋을 순 없으며 당신의 캐릭터의 사랑에 대한 미래는 그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
#전 연인 선관은 어디까지나 선관일 뿐입니다. 그것을 핑계삼아 편파를 하거나 해선 안됩니다.
#시트에 견제나 이간질이 다 가능하다고 되어있는 캐릭터에 한해서는 그 캐릭터에 대한 견제나 이간질을 시도해도 상관없으나 불가하다고 되어있는 경우는 절대로 하시면 안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캐입이며 오너입으로 오너 견제를 하거나 해선 안됩니다.
#매주 금요일에서 토요일에 자신이 마음에 드는 캐릭터에게 '캐입'으로 비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그 비밀 메시지는 그대로 캐릭터에게 전달됩니다. 어디까지나 비밀 메시지이기에 자신이 누군지 직접적으로 쓰면 안됩니다.
#간접적인 호감 전달이나 플러팅 등은 허용이 되나 직접적으로 좋아한다는 고백 등은 특정 기간이 되기 전엔 불가합니다.
#이 스레는 두 달 단기입니다. 또한 프로그램 특성상 주기적으로 계속 시트를 받을 순 없기 때문에 중간에 무통잠을 해버리면 상당히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캐릭터끼리는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만들어져도 오너들끼린 사이좋게 지내도록 합시다.
#다시 말하지만 라이벌은 어디까지나 캐릭터지. 오너들끼리 견제하거나 편파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합시다.
#여러분들의 캐릭터의 사랑에 대한 미래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 인해 불평을 한다고 한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 외의 문의사항이 있거나 한 분들은 얼마든지 물어봐주시고 이 스레는 상황극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릅니다. 수위가 너무 높아지지 않게 조심합시다. 성행위, 혹은 그에 준하는 묘사나 시도 기타 등등은 절대 불가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불투명한 사람이 좋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예측 불허 한 사람. 감추고 있는 것을 꼭꼭 싸매고 남들에게 들킬까 잔뜩 기를 세우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하기에 구월 또한 그런 사람일 뿐이다. 구월은 투명해지는 것을 결단코 원치 않는다. 상대가 적응하길 바라는 수밖에. 구월은 수수한 웃음으로 '덥다, 그치.' 하고 중얼거린다.
어젯밤에도 그렇고, 그는 x에 대한 얘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구월은 그와 그녀 사이에서의 얘기를 전혀 모르니 감히 참견 할 엄두도 내지 않겠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으론 그래. 탐탁치 않아 보이기에 구월은 더 꺼내지 않기로 했다. 구월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콜드브루랑 아인슈페너."
어딜가도 깔끔함이 보장되어 실패가 적은 콜드브루나, 맛이 없는 원두여도 적당한 단맛으로 커버가 가능한 부드러운 아인슈페너가 좋았다. 맛 없는 것으로 작은 배를 채우는 게 싫거든. 구월에게 다른 메뉴는 죄다 너무 달아서, 카페에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상당히 한정 되어 있었지만 너는 나와 다르게 단 것을 좋아해서. 너의 것을 한 모금 뺏어 먹으면 평생 시킬 일 없는 메뉴들이 어떤 맛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맛들을 잊은지 오래다.
"카페 사장님은 뭘 좋아해?"
주어가 빠졌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만들고 치우기 간단하고 편한 아메리카노를 선호 하려나. 눈꺼풀을 내리깔고 바닥의 개미를 찾다가도,
"이 여행이 끝날 즘엔 가게 열어요?"
구월 역시 단순한 물음을 던진다. 꼭 놀러 가고 싶다는 간접적인 표현인지, 그저 대외적인 이야기일지 그 마지막에만 알 수 있는.
연호의 거절에 손에 들고 있던 냅킨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괜찮다는데 굳이 두번 권하는것이 더 웃기는 상황이었으니깐. 자리에 앉아 커피잔을 들러올리던 찰나에 들려오는 연호의 말에 문득 낯설음을 느꼈다. 무엇이 이상한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 정체를 깨알았다.
"..지금 질투하는거야?"
원래 질투라는걸 모르는 사람이었던 연호의 낯선 모습에 놀란것도 잠시. 뒤이어 떠오르는 생각은 이제와서 왜? 였지만 다시 시작해보고싶다던 연호의 말이 떠올라 채린의 얼굴에 떠올랐던 의아함이 잠시 스쳐지나가는것처럼 사라진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사람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거니까."
연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이상 다른 참가자가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올수도 있는거니까. 수긍을 하면서도 어쩐지 서럽게 울던 연호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직도 많이 힘들어하고있는 연호를 보며 미련인지 아닌지 확인하자는 생각으로 연호를 선택한것이 어쩌면 그에게 큰 실수를 한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연호에 비하자면 자신의 마음은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으니까.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게."
화장실로 간다면서 카페의 출입문으로 향하고있다는걸 눈치채지못한채로 걸음을 옮긴 채린은 딸랑, 라는 문소리가 들러오고나서야 자신이 밖으로 나왔다는것을 깨달았다. 다시 들어가서 화장실로 갈까,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왕 나온거 마음정리도 하고 바람도 좀 쐴 겸 잠시 밖에 있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습관적으로 바지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잡히지않았다.
"아.. 가방에 뒀었지."
술자리에 놓고 온 가방속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다는것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며 카페 앞 돌계단에 걸터앉는다.
콜드브루와 아인슈페너. 단순히 무난하기에 아메리카노를 말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관심이 없으면 잘 모르는 커피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그녀는 나름 취향이 확실한 것이 아닐까하고 은석은 추측했다. 콜드브루는 그렇다고 쳐도 아인슈페너 같은 경우는 커피 종류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커피 쪽으로 특별한 취향이 없으면 잘 나오지 않기에 더더욱. 물론 자신의 추측이 정답일진 알 수 없으나 일단 성향 정도로는 기억해두기로 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슈페너와 카푸치노요.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하거든요. 아메리카노나 다른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역시 그 두 개를 가장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며 은석은 오늘은 방에 돌아가면 카푸치노라도 하나 끓여볼까 고민했다. 물론 기기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카페에서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긴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는 구현할 수 있었으니까. 아. 김에 디저트도 사서 돌아갈까 생각하다 그녀의 물음에 다시 대답했다.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두 달이니까 아무리 못해도 그때면 열겠죠. 일단 다 끝난 후에 일 주 쉬고 오픈할거지만."
이게 다 끝나고도 한 주 정도는 쉴 생각인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막 보이는 공원 입구 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여기로 가면 호수가 있으니까 거기로 가서 시원한 호수 바람이나 쐬자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앞장서듯 천천히 걸어갔다. 더위를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공원에 심어진 나무 그늘 쪽으로 걸어가나 자신이 차지한 위치는 안 쪽이 아니라 바깥 쪽이었다.
"그러면 이번엔 두 번째네요. 일이 없을 시간대엔 평소엔 뭐하면서 보내요? 예를 들면 지금 여기에 오고 나서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이것 또한 큰 의미는 없는 그런 물음이었다. 딱 연애 프로그램이기에 나올 수 있을 법한 물음. 딱 3개만 알려준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물음만 던지는 그의 표정은 참으로 평온하면서도 태연했다. 관심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지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를 굉장히아주많이 소중히 여기게 돼서 자꾸만 귀찮게 군다는 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선율주 화법 너무 웃기고 귀엽잔아....
선율이가 그런 이유로 구월이에게 헤어지자고 한 거라면 너무 마음 찢어진다... 구월이가 그거 직접 들으면 진짜 오열하듯 펑펑 울 것 같아 고작 그런 거 때문이었냐구,,, 나는 내가 문제 있는 줄 알았다고.. 헤어진 기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는데 자기 잘못 아니래서&자기한테 말도 안하고 차버린게 너무 밉고 근데 또 좋고 그래서 오열 할 거 같아...🥹 선율이 바보!!!
구월이는 차이고 나서 학교도 제대로 못나가서 결국 친구들이 억지로 끌고가서 겨우겨우 제적되기 전에 휴학하고..(일이 바빠서가 아니엇던거임!!!) 집에 틀어박혀서 우는 거 밖에 할줄 몰르고 술담배만 줄줄 하면서 만신창이로 살다가 밥도 안 챙겨먹고 하니까 건강이 아작나서 응급실 몇번 실려갔더니 주변 사람들이 구월이 죽을까바 걱정되서 어케 억지로라두 햇살 쬐주고 끌고다니고(이때 SNS에서 옆에 찍힌 얼굴만으로 화제되고..) 여러 사람 소개시켜주고 일 도와줘 너 아니면 안돼~~ 제발 도와줘 구월이 나죽어~~ 이러케 억지로 일 도와주다가 생각보다 모델 일이 너무 적성에 맞아서 정착하게되고.. 겨우겨우 사람 구실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선율이 연락이 다시 와서 와장창!! 무너질 줄 알앗는데 어? 생각외로 구월이가 이상하게 멀쩡한거에요.. 주변 지인들 나가지 말라고 차단하라고 만류하는데 구월이 ㄱㅊㄱㅊ 저 다 갠찬아짐 다 잊음! 이러고 이때까지 지인들한테 신세졌던거 갚겠다고 쇼핑몰이나 협찬으로 홍보 해주겠다고 선뜻 ㅇㅋ하고 나와버린 시나리오..... 다들 구월이가 몬 생각인지 모르는 거야... 이 정도 괜찮나? 너무 있을 법 해서 웃겨 ㅋㅋㅋㅋㅋㅋ
구월이는 누가봐도 선율이 개개개 찐사랑이고 너무 사랑하던거 다 티났어서 차이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선율이 진짜 시러햇을거 같다... 애가 남자친구 만나고 오면 웃음꽃이 활짝이엇는데 다 시들어서는...
선율이는 구월이가 저렇게 폐인으로 지냈다는 거 알고 있을까? 아니명 알고 있는데 모른척? 또 아니면 아예 모르고 그냥 sns.. 피팅 사진만 보면서 나 없어도 잘 사네...(또륵) 이랬을까?
연호는 스스로는 잘 눈치채고 있지 못했지만 헤어지고 난 뒤부터 무언가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 뒤늦게야 질투를 시작한 것도, 언젠가부터 웃는 얼굴에 조금 아슬아슬한 듯한 분위기가 섞여든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채린에== 연호는 그저 끄덕이는 것밖엔 하지 못한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아마 더 오래, 결혼이란 걸 생각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상대였던 채린과 헤어져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다녀와..."
그러나 출입문으로 향하는 채린을 제대로 막지 못한 건 첫째 참지 못했던 눈물젖은 얼굴을 잠시나마 수습하느라 그녀의 발걸음을 살펴보길 놓쳤던 탓이고 둘째 문소리가 들리고 나서는 채린이 이 자리에 있기를 더이상 원하지 않아서 일부러 나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놀란 눈을 두어 번 꿈뻑이더니,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선택되었을 때부터 그녀에게 좋은 모습만 보일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정말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 혹시나 몰라 잠시 기다려본 연호는 돌아오지 않는 채린에 이제 이 데이트라 할 수 없는 무언가는 이미 끝났다는 결론을 속으로 마무리짓는다. 자리에 남은 음료를 버리고, 직원에게 가져다주는 연호는 종업원이 손대지 않아도 되도록 테이블 정리를 말끔하게 맡긴 채였다. 그러면서 종업원에게 "고마워요. 잘 마셨어요. 맛있던데." 를 남기는 얼굴은 운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내지 못했지만 제법 친절해 보였으리라.
"가방 놓고 가셨어요." 종업원의 지적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연호는 가방에 남아있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선 연호는 돌계단에 앉아있는 채린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안 갔네?"
어떻게 된 거지? 어쩌면 눈치없게 너무 일찍 나와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가방을 깜빡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걸까? 연호의 뇌가 상황을 따라가려 팽팽 돌았다.
>>7 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 웃기고 귀엽대 아 ㅠㅋㅋㅋㅋ 고마버...() 와 시나리오 넘 갠찬아 내 취향.이에.
오선율 이자식 정신적으로 몰리면 주변사람한테 조언 구하기를 어려워해서 혼자 결정하는 경향이 잇음 아마 병원에서 의사나 상담사가 그거 조심하라고 햇을 텐데 또 실수햇죠?¿?¿ 하...... 구월아 미안해 정말미안해,,, 여친을 울리는 놈은 오너가 용서 못하는데 아
아... 으악... 으악........ (눈물 좔좔) 겨우 살려놨대 나 울어 나 오몰입과타쿠야,,, 하 의외로 멀쩡하단것도 걍 넘슬퍼... 그럼 그동안 오선율 뭐햇느냐면... 만약 구월이랑 선율이의 공통 지인이 있었다면 걔가 선율이한테 그랬을거임 야 너 줠라 잘못하고 있는거야;;; 오선율 좃댐을 직감하고 어... 어... 하면서 애매한 스탠스 취하다가 그 지인한테 구월이 응급실 갔단 소식 처음으로 들었을 때 냅다 도망침 SNS 끊고 지인 연락 씹고 방에서 일만 하고 살았음 그리고 소설 쓰는 걸로 도피해서 일부러 구월이 소식 안 접하려고... 햇음... 자기땜에 힘들어한다면 그런모습 보고싶지 않고 잘 산다면 또 지가 상처받을까봐 보고싶지 않앗음 근데 또 이게 평생 피할순없는거라 웹소설 사이트 팝업으로 쇼핑몰 광고 떴는데 구월이 사진이 있든가 해서 머리 하얘졌을듯
카페 앞 돌계단에 앉아 후덥지근한 바람을 느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있을 무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다 연호와 눈이 마주친다. 잠깐 앉아있는다는것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겼나보다. 고개를 돌려 얼핏보이는 자리가 깔끔히 치워져 있는것을 보니 연호가 정리를 한 모양이었다.
"아.. 고마워 연호씨."
술자리에 놓고온줄 알았는데 술기운에 가방을 챙겨왔었나보다. 일어난것도, 앉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연호에게서 가방을 건네받는다. 많이 마시긴했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가방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어 자연스럽게 입에 물려다 뒤늦게 연호를 떠올리며 멈칫한다.
"먼저 들어갈래 연호씨? 난 한대 태우고 들어갈게."
시원한 카페안과 달리 후덥지근한 밖에 앉아있던탓에 술기운이 조금 오른것이 느껴진다. 여기서 담배까지 피면 좀 더 술기운이 오를것이라는것을 직감한 채린은 이제 남자친구가 아닌 연호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은듯 괜시리 먼저 들어가라고 권유한다.
그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일까? 채린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연호는 그런 알 수 없는 호의를 베풀기를 잘 했다. 어쩌면 채린은 너무 취해 가려다가도 계단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술 깨게 뭐라도 사올 테니까 혼자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채린 씨. 어차피 숙소도 같고, 데려다 줄 테니까. 돌려 보내기 걱정된다."
술자리로 돌아가겠다고 우긴다면==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더 마시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아, 채린에게서 그런 선택지는 남몰래 지워버렸다. 그리 선언한 연호 또한 자신이 베푸는 친절이 연인이었을 적과 같은 것인지 어떤지를 모른다. 그리고 연호는 서서히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돌아왔을 때는 그녀가 그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 아앗, 내가 글자를 잘못 본 모양이네 ;; 그래도 잘 이어줘서 고마워 채린주! 이걸로 막레를 해도 괜찮고 더 이어도 괜찮다!!
아린이는 은석이가 속내를 비추지 않아서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느낌으로요. 당연하지만 은석이도 꽤 힘들어했고요.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구질구질하게 과거에 계속 얽매여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에 가까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린이와 다시 합치려고 마음을 먹어도 과거에 내가 사귀었던 이니까, 원래 누나는 내 여자였으니까 라는 이유가 아니라 내가 그 누나를 좋아하니까 정정당당하게 그 마음을 다시 홀리겠다로 갈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하고. 물론 아직은 오너도 잘 모르겠지만요
>>55 이별 감정이란 참 어렵지~ 은석이 속내야 나는 봐서 알지만 아린이는 은석이 말이나 태도만 보니까 자기만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서 분한 모양이야. 아린이는 그냥 보고싶다는 감정에 홧김에 제안한 거라 아직 마음이 수런수런하고 딱 정해진 건 없는 것 같고. 오해를 하고 있고.....ㅋㅋㅋㅋㅋㅋ.....
>>56 그래서 확김에 파트너 선정 때 은석이를 피해서 선율이를 골랐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묘사가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 이건 정말로 혹시나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딱히 전연인 선관이라고 해서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린주는 아린주 나름대로 자유롭게 놀았으면 해요. 전 선관은 어디까지나 선관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으로 관계가 확정되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메리트가 더 주어진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결론은 꼭 은석이와 뭔가를 하지 않고 다른 이와 막막 자유롭게 놀아도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에요! 아린주 마음 가는대로!
>>57 그런 캐릭터들의 고뇌를 보는 것이 바로 이 스레의 핵심 아니겠나요. 천천히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볼 수도 있고 전 연인에게 가진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전 연인을 바라봐서 잘될수도 있지만 전 연인은 이미 다른 이와 놀면서 플러팅을 당하거나 꼬셔져서 마음이 떠난 상황일 수도 있고.
>>78 연애 전후로 크게 달라진 것이라. 막 연애를 했다고 특별히 더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아린이와 보낼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나름 스케쥴을 조절하기도 하고 괜히 전화나 톡하는 량이 늘어난 것은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반대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할 땐 정말로 집중해서 한번에 많은 량을 하려고 한 것도 있을 것 같고요. 나름 일에도 상당히 충실한 애라서 일도 연애도 다 잡고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 있고 그럴지도 몰라요!
>>82 그렇긴 하지만 워커홀릭이라는 기질 때문에 이 일을 한번에 다 끝내버리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일방적으로 그 일에 집중하고 몰두하면서 혼자뒀다가 나중에 그 일을 다 끝내뒀기에 우리가 이렇게 길게 만날 수 있는 거다라고 우기는.. 그런 나쁜 면도 있지만요. (옆눈)
아린이는 조금 일을 줄였을 것 같기도 하고 전화통화하면서 바느질 같은 거 하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혼자 뒀어도 조금 섭섭해 하겠지만 아린이도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아린이는 친구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은석이는 왠지 인싸에 친구 많을 것 같은 느낌인데 적폐이려나?
그러나 무엇 하나 영월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억지로 어깨를 비틀어 그의 부축에서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가 문제였다. 눈앞이 핑 돌고 힘이 풀리는 다리를 애껏 걷잡아 다시 두 다리로 선 보람도 없이, 무언가가 영월의 어깨와 다리를 붙들더니 영월의 몸이 공중으로 번쩍, 너무도 가볍게 들려올라간다. 그녀를 받치고 들어올린 사람의- 아니 사물의 감각이 싸늘하고 딱딱하다. 마치 지게차 리프트에 걸려 들려올라간 것만 같다. -영월이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의 것이 맞지만, 영월이 기억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감촉이 술에 취한 영월의 감각에 얼마나 와닿을지는 모른다.
"너도 내 동의는 전혀 안 구했잖아."
이것은 어설픈 배려 나부랑이가 아니라 강청 그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고 내린 의도적 행동이라고, 강청은 차갑게 못을 박는다. 무엇 하나 그의 동의를 얻은 게 있던가. 서로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서, 삶을 갈아내어 어설프나마 사랑하고, 그 답례로 예기치 못한 이별 통보를 받았다. 삼 년 동안 이별중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프로그램에서. 이 자리에 불러온 것도 결국 그 무감정하고 단조로운 삶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가 아닌가? 마냥 착했던 전남친을 배경 들러리로 세워놓고 그 앞에서 새로운 애인을 만나며, 그저 질투받는 감각을 즐기고 싶었던, 새로운 시작에 적절한 감정 조미료로 써먹으려는 계획이겠지.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고 무너져내려가는가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말이야.
"여전히 소름끼칠 정도로 이기적이네."
가슴속에 증오가 한 겹 더 화르륵 치민다. 삼 년 쌓은 앙심에 증오 한 겹 더 얹어봐야 티라도 나겠냐마는- 하는 생각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짓이었다. 매일 떠올릴수록 지금까지 쌓아온 만큼의 증오가 그대로 곱으로 붙어 늑골 전체가 오싹하게 타오른다. 생각해보면 늘 이런 식이었지. 내 생각이니 내 마음이니 같은 것은 단 한 치도 중요하지 않았지. 터무니없는 피해망상. 충분히 가능성있는 일이나, 가능성있는 일 중에서도 가장 최악을 최우선으로 상정해버리는 지독히도 뒤틀려버린 마음. 술? 취기? 강청 역시도 영월 못지않게 취했기에 이러는 걸까? 아니, 그가 오늘 하루 영월과 엇비슷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한 건 맞지만, 그는 이 정도로는 안 취한다. 설령 술을 한 방울도 입에 안 댔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면 그는 똑같이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래, 그가 취한 것은 맞다. 알코올에 취한 것이 아니라, 천 일 동안 천 배는 지독해진 애증에 취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영월에게 가장 지독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 인간이었으니까. 전력으로 따뜻하려고 노력해보았고, 이제는 전력으로 싸늘하려고도 노력하고 있으나, 결국에는 어느 쪽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못하는. 제대로 된 극단으로 치닫지를 못하는. 애매한, 어중간한...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등이 적발될 경우 퇴출] 이라는 것도 시트 스레를 보면 있으니까 캐입을 할 때 조심조심하셔야 해요. 동의하지 않았는데, 혹은 원하지 않았는데 내 멋대로 일방적으로 어떤 것을 시도하거나 행한다. 이래버리면 바로 퇴출 루트에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런 거 굉장히 중요하니..
>>12 선율이가 나빴는데 선율주가 사과하는 거 넘 웃겨ㅜㅋㅋㅋㅋㅋㅋㅋ 선율이 병원이나 상담 받는구나 너무 마음 아픈데 ㅜ ㅜ 구월이랑 사귈때는 괜찮아져서 잠깐이라도 안 다녔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 선율이 막 구월이랑 헤어진 동안 쓴 소설 대박 났었으면 좋겠구 막.. 덕분에 돈 많이 벌었는데 쓸데가 없어서 구월이랑 가기로 했던 곳들 떠올렸다거나 그랬으면 기쁠거 같고,,, 선율이 완전 회피형인거 직진 돌직구녀 구월이랑 정반대되서 사귈 땐 어케 구월이가 이케저케 안정되게 바꿔주려구 노력 많이 했었을 거 같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둘의 관계는 선율이는 아직 미완결이라고?? 생각하는데 구월이는 완결이라고 생각하는 그런걸까🤔 구월이는 자기가 살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느낌일 것 같아 정말 정리해야지. 주변 걱정 시키지 말아야지.. 하지만 같이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꾸만 머릿속 한켠은 여전히 선율이로 꾸며져 있고 막..
이거만 달아두고 다시 갈게 다들 안녕 !!! 안녕!! 갈게!!! 답레는 12시 지나서 달 수 있을 것 같아 은석주 먄해 ㅠㅠ
그대로 자신이 가도록 놓아주길 바랐다. 3년 전, 일방적 이별을 통보했을 때처럼. 그래야만 그도 자신도 남은 것에 매듭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니 뒤에 나올 말에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다가오는 기척을 알았어도 피할 틈 따윈 없었다. 그녀는 바이올린 외의 운동신경은 거의 전무하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몸이 굼떴다. 3년간 운동을 했어도 체력을 위한 운동이 순발력도 길러주지는 않았다. 앗, 하는 순간 그녀의 발은 공중으로 떴고, 들려진 몸은 그의 팔에 걸쳐졌다. 느닷없는 상황에 가슴이 쿵광대는 건 놀라서일거라고 애써 외면한다.
"내ㄹ..."
내려주세요. 그 한마디는 청의 말 앞에 무력해졌다. 너도 내 동의는 전혀 안 구했잖아. 그랬지. 그랬어. 일방적, 이란 표현 그대로 그녀는 그에게 동의 따윈 구하지 않았었다. 3년 전 일이긴 하나, 그 부분을 꼬집는다면 그녀는 할 말이 없어진다. 할 말만 없을까. 여전히 이기적이란 말에 가는 어깨가 떨렸다. 겨우 가라앉았던 숨이 다시 턱 끝까지 차는 듯 하여 늦더라도 내려달라고 하려 했다. 그렇게 싫은 거라면 왜 이러는 건데. 괴롭히기 위해서? 자신이 했던 걸 되돌려주려고? 그런 거라면 그를 마주한 걸로 이미 충분하다고, 밀어내려 했다. 밀어내기 위해 들었던 손은 물어볼 것이 있다는 그의 말에 허공에서 멈추었다.
"....네.."
이 행동은 그녀를 향한 배려도, 무엇도 아닌, 그의 목적을 위해 그녀를 붙잡았을 뿐이라는 걸까. 그래. 그렇겠지. 아니었으면 다 가고도 남아있지 않았겠지. 그럴 거라 여기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그녀가 과거 이기적으로 굴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가 그리 굴어도 그녀는 무어라 따질 수도 없는 입장이니까. 지난 날의 업보라고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해 손을 내리다가 그의 옷 위로 옮겼다. 옷깃이 늘어지지는 않게, 허나 가벼운 무게감은 남도록, 청의 옷을 쥐었다. 그가 무슨 말이든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기숙사에 다다를 때까지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가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금 길게 내려온 앞머리로 눈가와 얼굴의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표정을 감추려는건지. 시선을 피하는건지. 엷은 갈색 머리칼이 드리운 그늘 아래에 그녀의 검은 눈은 거의 감긴 듯이 내리뜨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보였다. 그저 청이 물어볼 것이란 걸 기다리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케이크나 도지마롤 같은. 무작정 은석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시선은 바깥 풍경에 고정되어 있던 구월이 고개를 돌린다. 은석을 향한 얼굴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 디저트는 대부분 혀에서 녹는 부드러운 맛이니 단 것도 혹시 좋아하는지 돌려 묻는 것이었다. 디저트는 많이 먹으면 물리고 한 입씩 뺏어 먹으면 맛있어서. 맑은 날씨에 산책을 하고 있자니 흡연 욕구가 차오른다. 가늘게 뜬 눈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걸으니 근처에 있다고 들었던 공원이 시야에 담겼다. 생각보다 넓고, 푸르렀고. 여름의 초록잎은 마음을 들뜨게 해. 무채색의 구월과 다르게 채도 높은 여름은 끝없이 화창하다.
"지금 저 인터뷰 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궁금한 게 없나? 시시한 질문만 하는 게. 취재 당하는 거 같기도 하고. 구월은 방긋 웃어보이며 멀지 않게 보이는 호수에 시선을 꽂았다. 첫 데이튼데 다 편집 당할 것 같기도 하고. 어제 술자리에서도 그렇고 생각보다 전연인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가득한가보다. 그래서 구월은 그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대답해 줄 의무는 없지 않은가. 혹은, 그게 아니라면 별 거 없다 대답한 구월의 말에 상처를 입었거나. 지나치게 솔직했었나?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하는 건 결국 가식이다. 방송용 표정, 방송용 멘트. 헤어진 전애인과 다시 데이트를 하는 게 상식적인 일은 아니고.., 별다른 정보가 없는 새로운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니었나. 그리고 그짓도 몇번 반복하다보면 특별함이 설렘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구월은 제가 말실수를 한 건가 싶어 생각에 잠긴다. 가치관 차이겠지. 제 전 연인에게 당돌한 질문을 내뱉은 게 썩 재미있어서 지목을 했으나 역시 알코올의 유무는 꽤 비중이 있는 것 같기도. 처음과 달리 그는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으니 괜히 지목을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 구월은 그다지 재밌는 성격이 아닌 걸.
"많이 마음에 안 들어요?"
구월은 가다 말고 걸음 속도를 늦추더니 결국 자리에 멈춰서서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 가야하나, 싶은 생각을 몇 초 정도. 슬픈 표정이라기 보단 잘못을 저지른 개,고양이 마냥 시무룩해져 있었다. 말 수는 많은데, 알맹이가 없달까. 텅 비어 있달까. 구월이 매력적이지 못한 탓이겠거니.
지난 진실게임에서 다른 참가자가 추천했던 데이트 코스== 싸해질 정도로 짧고 이어지는 뒷말도 없는 그 대답에도 여전히 싱글싱글했던 건 연호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꼭 가볼게요."
그리고 이 남자는 이상하게 성실한 건지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실제로 산책로를 거닐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들 소풍가기 전 장소를 답사하듯이.
적당한 나무그늘이 여름의 햇볕을 가려 바닥에 무늬를 만들었다. 자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된 산책로에, 무심코 연호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비단 나무와 수풀만이 아니라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연못도 있고..... 그때 연호는 연못 근처에서 인영을 발견했다. 두 번째라 처음보다 조금은 익숙해보이는 그 뒷모습은, 꼼지락거리면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 괴상한 주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움직임에 연호는 잠시 넋을 잃고 지켜보다가, 가까이 가서 고개를 들이민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주변을 탐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뭐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린은 그랬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연못에는 잉어들이 있었다. 색색의 잉어들은 연못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에 호기심이 발동한 아린은 스태프에게 문의해서 잉어 사료를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스태프는 흔쾌히 잉어 밥을 가져다주었다.
아린은 연한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푸른 리본이 달린 밀짚모자를 썼다. 여름인데다가 햇빛이 강해 양산을 쓸까 고민하다가 손이 자유로운 것이 좋아 챙이 넓은 모자를 선택한 것이었다. 머리는 아래로 내린 양갈래를 하여 조금 더 발랄한 인상을 주었다. 연못에 도착하여 연못에 설치된 돌다리 중앙에서 잉어들에게 밥을 주던 아린은 누군가 말을 걸자 살짝 놀라며 목소리가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네. 잉어요."
낯선 사람의 등장에 잉어들이 혼비백산 도망쳤다가 이내 다시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 발치 아래로 모여들었다. 아린은 밥을 한 번 더 뿌렸고 잉어들은 뻐끔뻐끔하며 밥을 받아먹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난 어디서 사왔거나, 직접 만들었거나.... 그런 줄 알았지요."
스태프가 관리하는 곳이니, 잉어의 밥 또한 스태프들 중 관리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와아ㅡ 하는 감탄사를 내며 아린이 덜어준 사료를 잉어에게 서투르게 뿌려주는 연호== 이 남자, 약간 허당끼가 있는 것인지 겨우 사료를 뿌려주는 두 번째에 사료를 엎어버렸다. 물고기들이 포식하듯 바글바글 사료에 달려든 것을 연호는 허망하게 바라본다. 아린의 질문에, 그녀에게로 돌아가는 시선==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식물을 키울 일이 있다면 이것을 키워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끔 물을 주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거북이도 하루에 한 번씩 밥을 주는데 식물 하나 물 주는 것이 어렵겠는가. 하지만 매번 식물을 키우면 썩혀 죽이는 아린인 만큼 조금 애정이 과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 20년에서 50년은 산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2살 정도에요."
수족관을 하는 동생의 가게를 둘러보다가 눈에 띈 아이는 지금은 아린의 집 한쪽에서 전문가(동생)의 주기적인 케어를 받으며 호화 생활 중이다. 아린은 가끔 동생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거북이의 밥과 사랑을 주는 일밖에 하진 않지만서도... 어쨌든 키우는 건 키우는 거니까.
물을 머금은 양에 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확실히 젤리 촉감하고는 다르다. 처음에, 그래서 조금 실망했었다....
"거북이는 수명이 길어서 좋네요. 주인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잖아요? 그만큼 주인이 책임져 주어야 하는 기간도 늘기는 하지만요. 코코는 꽤 어리네요. 앞으로 오래 함께할 수 있겠어요."
그런 면에서 거북이란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려동물과 인간의 끝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이 인간보다 먼저 떠나버린다. 연호는 그런 끝을 보는 일이 웬만하면 없었으면 했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유에도, 말하지 않은 것이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수명이 아닐까.
"어디 보자... 류아린 씨가 스물 후반이니까, 코코가 50년을 살면 70대쯤 되겠네요. 아하하, 손자손녀들까지 코코를 볼 수도 있겠어요."
아이들은 거북이를 좋아한다. 체험 활동으로 근처 호수공원에 갔다가 거북이를 보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날 여러 아이들이 거북이에 꽂히는 바람에 거북이에 관련한 여러 확장 활동을 했었지....
"딱딱하고 먹기 힘든 것이 아니라면 좋아하죠. 기피음식이라고 불리는 민트초코도 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수플레를 선호하긴 해요. 물론 좋아만 하고 만들진 못해서 사먹거나 디저트 담당 직원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달라고 하지만."
하루 빨리 디저트도 마스터해야하는데 커피나 음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왜 이리도 디저트는 만들기 힘든건지. 하긴 파티시에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닌 법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마쳤다. 카페에 오더라도 자신이 만드는 디저트는 기대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살짝 섞긴 했으나 그것이 전달될진 알 수 없었다. 전달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었고.
아무튼 지금의 분위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에게 그런 말이 들려왔으나 그는 특별히 그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고 제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굳이 다시 묻진 않았다. 그러다 발소리가 멈추자 그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시무룩해진 그녀의 표정이 그의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을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던 은석은 역시 제 속내를 비추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속내를 비추지 않는 그의 성향 때문이지. 딱히 구월에게 문제가 있던 탓이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이런 의미없는 물음도 그냥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가볍게 던진 것에 불과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또 제 안 좋은 버릇이 나온 것이었다. 많이 마음에 안드냐는 그 말에 그는 살며시 몸을 뒤로 돌린 후에 그녀의 바로 앞. 정확히는 제 숨결이 그녀의 피부에 살짝 닿을지도 모르는 곳까지 거리를 확 줄였고 그 상태에서 자신은 무릎을 살짝 굽혀 그녀의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3번째. 앞의 두 개는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질문 횟수나 빨리 줄여버리려고 던진 것도 있고, 그냥 구월 씨가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물어본 거고... 아무튼 저는 이게 제일 알고 싶은데 구월 씨는 오늘 어디까지 허락해줄 수 있어요?"
아주 살짝 내비친 속내는 그리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이런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와 부대끼고 시간도 보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같은 환경, 같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차이도 없으니 결론이 나올 수 없었다. 제 전 연인이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자신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제 연인은 제 연인대로 자기가 직접 지목한 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테니 지금 이 순간이말로 자신과 제 전 연인. 각자의 마음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을 이용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을 이었다.
"여기 호수 구경 좀 하고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밤에 술 한 잔 가볍게 하고 기숙사로 돌아가자고 하면 받아줄 수 있어요? 우리 상황이 어찌되었건 이거 일단은 데이트니까 저는 제대로 즐기고 싶고 그런만큼 그냥 산책 조금 하다가 돌아가는 것은 싫은데. 물론 구월 씨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깔끔하게 물러설게요. 곤란하거나 싫다는데 그거 억지로 붙잡아봐야 서로 안 좋은 기억만 남는 거니까."
규칙도 규칙이지만 싫다는 이 붙잡고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제안을 던지고 선택권을 살짝 전해주면서 그는 다시 그녀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했다.
"이 질문에는 아까처럼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대답해줄 수 있어요? 혹시 이것도 대답해주기 좀 그러시려나?"
>>207 은석이는 업주이기도 하고 배달비라던가 그런 것으로 돈이 나가는 것도 적진 않은 편이라서 배달을 시키기 보다는 직접 가게에 가서 가져오는 편이에요. 같은 입장인데 부담을 조금 줄여주자라는 느낌으로 말이에요. 그래도 주로 배달로 시키는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치킨과 맥주가 될 것 같네요. 그렇게 옛부터 배달을 직접 하던 집 이외에는 배달을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너무 멀거나 나가기 힘들다 싶으면 배달을 시키기도 하지만요.
>>208 확실히. 직장이 직장이다보니 엄청 바쁘고 비행 뜨고 그러면 음식을 느긋하게 먹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들테니까요. 그래서 뭔가 채린이는 식사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먹는 습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적폐해석이 여기에..(버려짐)
>>219 저런. 바빠진다는 것이 너무 슬픈 발언이에요! 현생아! 연호주를 놓아줘!! ㅠㅠㅠㅠㅠㅠ
>>220 은석이도 일단 배달의 앱을 쓰는 점주니까요. 배달비를 저쪽에 줘야한다는 것은 나름 불만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걸 안 쓰면 영업이 힘들다고 하니까 일단은 쓰고 있다보니... 그래서 최근에는 그냥 깔끔하게 배달 서비스 하지 말까로 고민 중이라는 아주 작은 TMI.
더운 날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연호는 모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가장 더울 시간대, 오후였다.
"조금 덥네요. 그렇죠?"
연호는 마찬가지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스태프에게 다정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연호의 눈썹이 팔 자로 내려앉았다. 마침 근처에서 판매하고 있는 얼음물을 발견하자, 연호는 당장에 카드를 꺼냈다.
"괜히 밖에 나온 걸까 봐 미안하네. 내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요. 촬영도 고생이 많아요~"
스태프들에게 하나씩 들려지는 얼음물==
스태프들의 목젖이 차가운 물로 인해 일렁이는 모습을 보는 연호는 썩 만족스러워 보였으나 어쨌거나, 오늘은 스태프들에게 얼음물을 쏘기 위해 밖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연호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음악분수 쪽을 한 번 보더니, 태양볕을 눈이 부시게 반사하고 있는 조각들로 시선을 옮겨놓았다. 숙소 근방에 조각공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꼭 한 번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차였다. 연호는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양이 관람객이라는 명칭을 붙일 만하다.
그는 경치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자연 경치건, 도시의 경치건 그 호불호는 크게 갈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봤을 때 아름답고 볼만한 경치인 선에선. 그런 그였기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기숙사에 입소한 이후, 그는 하루에 한 번은 이렇게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카페에서 점장으로서 일하고 있을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길고 긴 여유가 참으로 낯설게 그에게 전해졌으나 그것을 걷어차고 싶진 않았다. 여기서 지내다보면 아마 조금은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내딛던 와중 그의 눈에 얼음물을 스태프에게 전해주고 있는 연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호오.'
보통 스태프까지 저렇게 챙겨주는 참가자는 잘 없을텐데. 물론 챙겨주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잘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 않던가. 그렇기에 그의 눈빛에 호기심이 녹아내려 살짝 반짝였다. 얼음물을 대접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지나가다가 우연히 사준 것인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마음씨는 참으로 착한 사람이 아닐까하고 은석은 추측했다. 아니면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 일부러 저러는 것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건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착한 사람이면 착한 사람인거고,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 저러는 것이라면 그 또한 개인의 자유였으니까. 아무튼 조각 앞에서 멈춰서서 조각을 구경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좀 더 눈에 담던 은석은 살며시 다가간 후에 그의 옆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호 씨 맞죠? 그때 진실게임에 함께 있었던."
프린터물을 정말 수도 없이 봤기에 이젠 상대의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묶을 수 있었던 은석은 그의 이름을 실수 없이 불렀다. 이어 반갑다는 듯이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그에게 살며시 물었다.
"연호 씨도 산책 나왔어요? 혼자서? 아니면 다른 여성이랑 같이?"
/아앗. 탐색전 안 할 수도 있어요! 얘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240 아니. 어째서 드랍하는 템들의 이름이 전부. (흐릿) 하지만 뭔가 재료를 모으면 엄청난 템이 나올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 그리고 그 순종은 전혀 좋은 의미의 순종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네요. 사교성 앞에 마이너스가 붙었는데?! 붙어있는데?! (빤히) 연애도 했으면서 마이너스라니. 믿을 수 없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머리카락이 약간 긴 남자== 연호는 프린터물에서 한 번 보고, 진실게임의 날 밤 다시 한 번 보는 반복학습을 통해 이 남자 또한 프로그램의 참가자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네. 기억해주시네요. 기뻐라~"
류아린이 연호의 이름을 불렀을 때와 거의 비슷한 반응이다. 상대는 혼자서 산책을 나왔는지 물었다. 연호는 스태프들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엄밀히 말해 스태프들이 있으니 혼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렇다고 스태프들을 굳이 언급해 프로그램의 방송분량을 방해할 생각도 없었다.
"네. 혼자서 나왔네요. 누구랑 같이 나올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사람을 좋아하는 연호다. 어젯밤 채린과의 일이 마음에 열상처럼 남아있다고 해도, 어쩌면 그래서 더욱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남자다.
"연호 씨'도' 라는 건, 마찬가지로 혼자라는 거죠?"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해내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곳이 어린이집이었다면 얼굴과 이름을 무조건 외웠겠지만 아니다 보니 쉬엄쉬엄 하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연호는 은석의 이름을 부르는 걸 에둘러 피했다. 이름을 곧바로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는 배려이리라.
"그야 뭐, 가능하면 참가자들의 이름 정도는 모두 기억해두는 것이 좋잖아요? 어쨌든 두 달 동안 같은 곳에서 지내는 상대인데 이름조차도 몰라주면 그건 좀 많이 섭섭할테고. 김에 좋은 인상도 심어주면 좋고."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연호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정말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목적이었다면 굳이 그 목적을 밝힐 필요는 없을던만큼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지 않고 상당히 가벼웠다. 이내 말을 마친 그는 연호의 말. 누구랑 같이 나올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말에 흐응. 소리를 내면서 가만히 연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아주 살짝 그에게 질문하듯 물었다.
"그래요? 누구랑 나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나요? 연호 씨는?"
아주 살며시 콕 찌르듯 그렇게 물었으나 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물어도 답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으니까. 어디까지나 그냥 가볍게 콕 찌르는 느낌으로, 허나 답을 말해주면 좋고. 그런 마음으로 질문을 한 그는 이내 그가 보고 있던 조각을 가만히 바라봤다. 꽤 추상적인 모습이었기에 자신의 카페에 장식해두면 은근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조각이나 한 번 배워볼까 생각하며 그는 다시 고개를 내려 연호를 바라봤다.
"혼자에요. 저는 혼자서 나와서 산책하면서 경치 구경하는 것도 좋아해서. 설마 여기서 다른 참가자를 만날 줄은 몰랐지만요. 아. 혼자 있고 싶었는데 누가 있어서 좀 그렇다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냥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었다라는 의미에요."
혹시나 오해가 생길까 싶어 그는 살며시 말을 정정하며 가볍게 두 손을 휘저었다. 그러다 문뜩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하나 떠올랐기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연호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연호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연호 씨는 '외간 깻잎'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그의 전 연인이 자신에게 했던 질문. 별 의미 없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의 성향과 연관이 있는 질문일지도 모르기에 그는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듯, 연호의 답을 기다렸다. 물론 답을 회피하거나 거절하면 그도 굳이 더 캐묻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찔렸다. 연호는 당장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을 내심 조금 미안해했다. 돌아가서 프린터물을 다시 읽어보고 이름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연호였다. 다행히 이름을 외우는 것은 매 학기 하다보니 자신이 있었다.
"음, 누구라도 좋았을 것 같은데요. 기왕이면.... 아, 아녜요. 하지만 정말 누구라도 좋았을 거예요. 저도 참가자들끼리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파여서요. 말씀하셨듯이, 좋은 인상도 심어주면 더 좋겠구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은석 씨는 특별히 같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한 사람 있어요?"
....채린이었으면 더 좋았을까. 나빴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애할 때에도 피곤한 채린을 위해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에서 쉬며 데이트를 하곤 했으니, 이런 뙤약볕 아래에 끌고 나오는 짓은 정말 안하느니만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걱정마세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그나저나, 은석 씨는 경치 구경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럼 이곳, 어떻게 좀 돌아보셨어요? 아직 프로그램 초반이라 돌아볼 시간이 많지는 않았겠지만요. 어디가 경치 보기 괜찮아요?"
은석의 정정에 오해하지 않았다는 환한 미소를 던지는 연호== 경치 보기 좋은 곳을 묻는 데에는 이걸 들어서 데이트 장소로 써먹어야지, 같은 속셈은 안타까울 정도로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질문에 뜨끔, 연호는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린다.
"진실 게임에서 나왔던 질문이죠? 저, 솔직히 은석 씨가 그렇게 얘기해줘서 안심했어요.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구나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려다가 마는 연호의 모습에 은석은 누군가 마음에 두고 있긴 하구나. 라고 생각을 하며 과연 누구일까 머리를 굴렸다. 그래도 지금 시점에선 어지간하면 전 연인일까.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자신도, 그리고 아마 다른 이들도 다 생각은 비슷하지 않겠는가. 옛 연인과 합쳐질 수도 있는 프로그램에 나온 이상 더더욱. 정말로 새로운 사랑에만 올인하고 싶다면 이런 연애 프로그램 말고도 다양하게 있기도 하고. 아무튼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연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은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질문에 제가 채린 씨를 거론한다면... 그럼에도 연호 씨는 저와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나요? 제가 양산을 들고 나란히 걸으면 아마 방송 만드는 분은 좋아라 할 것 같은데."
괜히 심술궂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답을 하면서 은석은 오른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허나 이내 농담이라는 듯 그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적어도 지금은 아린 누나가 될 것 같네요. 이 마음이 쭉 지속이 될지, 아니면 바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서 말 끝을 살짝 흐리면서 그는 의미심장한 느낌으로만 남겼다. 허나 그 마음이 꾸며낸 거짓은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 마음 속에 몇 조각 남아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이 조각이 다 빠지고 다른 이의 존재감이 채우게 될지. 아니면 그 조각이 정말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 답을 아는 것은 아마 미래의 자신 뿐일테니까.
"공원에 있는 호수도 꽤 보기 좋고,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서 주변 경치 구경도 좋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자연경관 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이른 아침에 나와서 호수를 바라보면 그게 또 엄청 예뻐서 저는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이른 아침 시간의 호수가 괜찮더라고요."
언제 한 번 일찍 일어나서 구경해보라고 하며 은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편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이 들려오자 은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동의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이 사내는 정말 '친절'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만약 연호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린 비슷하게 생각하는게 아니에요. 전 도와주는 것보다 더 나아가는 행위를 보이는 것은 싫거든요. 그야말로 깻잎을 떼어주는 행위 그 자체는 별 상관없지만... 연호 씨는 만약 채린 씨가 깻잎을 떼어주고 그 깻잎을 친구에게 젓가락으로 찝게 해준다거나 밥 위에 올려주거나 하는 행위도 용납할 수 있나요? 저는 싫은데."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의 관점이고 생각일 뿐이라고 그는 말을 덧붙였다. 딱히 그의 사상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생각 이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자신과 그는 경쟁하는 사이이기에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은석의 심성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조금 걱정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은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시.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연호에게 이야기했다.
"연호 씨가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적어도 저와 연호 씨는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기에 무작정 친하게만 지낼 수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밖에서 순수하게 만났으면 정말 좋은 친구 되었을 것 같은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 그리고 과감하다고 해야할까. 그냥 연호 씨의 반응이 보고 싶었던 것 뿐일지도 모르죠. 그래도 진실게임에서 한 말 중 어떤 말만큼은 거짓 없는 순수한 사실이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굳이 대답할 생각은 없었는지 은석은 딱 거기서 말을 끊었다. 굳이 그것을 쿡 찝어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한편 자신의 말에 슬픈 눈을 하면서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는 연호를 바라보며 은석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없다는 듯이 말을 하며, 그래서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며 채린의 성향은 어떤지 나름대로 추측해보는 자신도 참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은석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물음에 답이 어디에 있어요. 그냥 자기가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답인거지. 무슨 교과서를 보고 낸 시험도 아니고.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슬픈 눈 하지 마요. 생각해봐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고 그런 것이 필요하다면 그게 연호 씨에겐 답인거지. 반대로 사소한 호의 같은 것에 눈감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연호 씨에게는 답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답이 아닐 수도 있고요. 애초에 사소한 호의라는 것이 연호 씨에게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상대에겐 전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 문제에는 답이 없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곧 답인거고, 사람의 수만큼 답이 정해져 있는거지.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해서 그게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슬픈 눈도, 자신감 없는 모습도 보이지 말아요. 자신이 낸 답이면 적어도 자기 자신은 당당해야죠. 그렇다고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선 안되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낸 답에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또 뭔지. 그냥 좋은 사람이기에 자신도 오지랖을 떠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경쟁자이고 라이벌인데 제 생각을 너무 말하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애초에 그 행위가 문제로 헤어진 것이 아니라 연호 씨의 생각과 채린 씨의 생각이 맞물리지 않아서.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 자신의 답만 바라보고 있기에 문제가 된 거 아니에요? ...아. 이거 완전 손해 보는 느낌인데."
괜히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자신의 답도 정확한 답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냥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정도로만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그는 분위기를 마찬가지로 전환하려는 듯 연호에게 말했다.
진단이 재밌지만 혼자만 계속 올리는 것도 그러니까- TMI를 풀어야지! 사실 시트에 넣는 걸 깜빡한 거지만 ㅋㅋㅋㅋㅋㅋ
화살표의 행방 기숙사에선 저녁 7시-9시 사이 1시간 가량 바이올린 연주가 들린다. 소리의 출처는 영월의 방 혹은 기숙사의 옥상. 듣기 싫다면 가서 중지해줄 것을 요구하면 된다. 요구가 없는 한 매일 동일한 시간대에 외로운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 연주곡은 클래식이거나 국내외 가요들이다.
친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말에 환하게 웃는 이쪽은 정말이지 경쟁이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잘 부탁해요. 그런 것 '뿐일지도 모르'다니 뭔가요~ 아하하, 알쏭달쏭하네요. 그게 만약에 맞다면, 호기심이 많으신가 봐요."
진실게임에서 한 말이 어떤 말인지 짐작가는 것은 있었지만-그야 과감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질문에서- 그것이 맞거나 틀리거나 그리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은석이라는 사람의 가치관이 조금씩 연호에게도 와닿고 있었으니.
"전, 제가 낸 답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틀리다는 채점이 되어 온다면 그만큼 나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결과를 바꾸기 위해선 상대의 기준이 바뀌거나 자신의 답이 바뀌어야 하는 거겠죠.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어야 하구요.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요."
성의있게 해주는 위로인 듯 아닌 듯한 위로에, 연호는 조금 놀랐다. 경쟁에도 과감한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일까. 어쨌든, 연호는 자신을 관철할 만큼 심지가 굳은 사람은 아니었다. 상대에게 맞추자면 맞춰주는 성격이었으니 그 '친절'을 포기할 수 있었다면야 웬만해선 포기했을 것이나, 포기하는 법을 모른다. 그게 문제였다.
"손해 너무 보고 계신데요. 으-음, 제가 그 말 듣고 자신감 찾아서, 아린 씨랑 잘 해보면 어떡하려구요. 상관없나요?"
조심스러운 태도로 평소답지 않게 이런 말을 해버린 건, 상대가 그만큼은 말해오기 때문이 아닐까. 어쩐지 지금은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담 예민한 건데.... 물어도 돼요? 내가 들킨 것 같으니까 똑같은 걸로 물어보는 거예요. 은석 씨는 왜 헤어졌다고 생각해요?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서비스는 꼭 해주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친절한 미소가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그 미소는 정말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수용적인 품을 하고 있었다.
왜 어느 한 쪽이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자신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물론 바뀌어야 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 과정 속에서 먼저 타협을 하고 서로에게 힘들지 않게 맞춰가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차이가 나고 도저히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인연이 아닌 것이 아닐까. 은석의 생각은 그러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가치관. 상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신은 그 가치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뭔가를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진짜 제대로 된 오지랖이었으니까.
"그럼 채린 씨의 옆자리가 비니까 그 틈을 노릴 수도 있겠네요. 하핫. 뭐 진지하게 말하자면... 전 전 남자친구일 뿐이고, 아린 누나가 연호 씨를 마음에 두게 되고 두 사람의 사이에 낄 틈이 전혀 없는 상황까지 된다면 물러서야죠. 하지만 제 마음이 아린 누나에게 향하게 되고, 아린 누나가 아니면 안된다고 느낀다면... 그땐 연호 씨와 대립해서라도 아린 누나에게 대쉬할 거예요. 아니. 이건 뭐, 누가 되었건 그다지 다른 것은 없을 것 같지만... 아무튼 여기에 온 이상, 제 마음에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게 이미 헤어진 누나와 다시 합쳐지는 길이건, 누나와 완전히 이별을 고하고 다른 이를 바라보게 되건. 설사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어설픈 마음으로 양보해서 후회하느니,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서 거절당하는 것이 나아요. 물론 그렇다고 구질구질하게 옛 정을 이용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전 여자친구였고 사귀었으니 그 정을 이용할 마음은 그에겐 없었다. 그건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서 그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상당히 어렵게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옛 정에 구걸하는 방식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로 온 이후, 그가 스스로에게 정한 룰 중 하나였다.
"저 말인가요? 딱히 숨길 생각은 없어요. 그냥 아린 누나와 저는 성격 차이가 있거든요. 그 성격 차이로 인해 조금 이런저런 이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카페 일에 너무 몰두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헤어진 이유가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알게 모르게 문제가 생겼고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고 느꼈기에 헤어진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이 있었기에 그는 쓴 웃음소리를 냈다.
"결국 저도 타협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헤어진 셈이네요.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기에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하잖아요?"
은석이 제시한 것은 연호로서는 상상을 해보지 못한 제 3의 선택지였다. 타협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상대가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바라야 하는 일이었다. 연호는 변화의 정도가 어떻든, 상대에게 기대해야 한다는 점에는 다름이 없다고 믿었다. 상대의 변화를 바라는 것보다는 자신이 변화하는 편이 낫다== 연호의 철학이었다.
"멋진 대답이네요. 저도 그런 대답,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은석 씨가 프로그램에 나오기로 한 이유도 충분히 알 것 같아요. 깔끔하게 해결되면 좋겠어요. 아린 씨에게 또다시 마음이 가게 되든, 다른 분과 잘해보기로 하시든 말이에요. 은석 씨라면 분명 잘 하실 것 같아요. 제게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은석의 이별은 군더더기없이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연호에게는 이별은 아직 현재진행형인 것만 같았다. 채린과의 대화로, 이제 끝났다는 걸 다시 되새겼지만 그럼에도 연호에게는 아직 적응되지 않는 울적하고 어색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기분에도 깔끔하게 응답할 수 있겠지.
"어떤 건지 알 것 같네요. 일을 너무 사랑하다 보면 다른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점점 좁아지더라구요. 자영업이면 노력과 시간도 많이 들 테구요. 머리로는 타협하는 게 옳단 걸 아는데, 실제로 하려면 쉽지 않죠."
성실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맛은, 누구에게나 이별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비슷하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어려운 얘긴데,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좀 덜 민망하네요. 아하하. 은석 씨, 개인적으로 응원할게요. 조금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 기분이네요."
서둘러 연호가 말했다. 속셈 하나 없이 깨끗한 눈빛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즐거웠어요. 은석 씨만 괜찮다면, 조각들을 마저 감상하고 싶은데요. 같이 구경하셔도 얼마든지 좋구요."
정말 이 프로그램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지만 그것을 떠나서 보자면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은석은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느낌이 있을지도 모르고 저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정말로 좋아할 케이스였다. 자신조차도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면 그냥 개인적으로 연락하면서 친구로서 지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여기서 만났다고 친구하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일단 그는 그런 속내는 살며시 감춰버리면서 미소만 내비칠 뿐이었다.
"다들 마찬가지 아니겠나요. 전 연인과 합쳐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이곳에 온 시점에서 대부분 마음은 비슷할 거예요. 하지만... 너무 그 시간을 길게 두진 마요. 여기까지 온 이상 연호 씨도 후회없는 뭔가를 남겨야죠."
시간을 길게 두면 둘수록 이 프로그램에선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다른 이들과 마주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경우에 따라선 같이 놀거나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해서 시간이 덜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아직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을 이해하는 듯이 이야기하는 연호의 말에 은석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렇기에 괜히 그는 속이 쓰렸다. 그 속쓰림이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하면서 그는 쭈욱 기지개를 켠 후에 두 팔을 아래로 내렸다.
"응원은 감사하지만 서로 대립하게 되더라도 그땐 봐주기 없기에요. 알았죠?"
만약 그런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자신은 그를 응원해줄 수 없었고 설사 둘 사이에 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사이를 파괴해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전 여자친구라고 할지라도 대립하고 분위기가 조금 껄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살짝 기회를 양보하려는 듯한 이가 붙는 것은 정말로 싫었으니까.
아무튼 조각을 마저 감상하고 싶다는 말에 그는 자연히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면서 조각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조각을 좀 더 구경하다가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카페의 인테리어에 관련해서 아이디어가 생길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럼 저도 같이 구경할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돌아가기도 좀 그렇잖아요?"
그와 동시에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기도 했고. 물론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으며 은석은 가만히 근처의 조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건 진짜 정교한 인물상이네. 누굴 조각한걸까? 그런 호기심을 품던 그는 연호를 부르며 저 조각상도 한 번 보라며 손짓했다. 그렇게 손짓하는 그의 표정은 꽤 밝았다. 이후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저 이렇게 친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일단 슬슬 일상 마무리 단계인 것 같아서 막레가 되도록 써왔어요! 더 잇고 싶다면 이어도 되고 막레를 쓰고 싶다면 써도 괜찮아요!
그건 그렇죠. 물론 오너가 완전히 캐를 장악하고 컨트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뭔가 재미가 없고.. 결국엔 온종일 캐입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확실히 선관의 영향은 클 수밖에 없죠. 정말로. 그렇기에 캐릭터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대충 3주차, 4주차가 되면 슬슬 마음을 정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접속해보니 영월주가 편파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전 편파적인 것은 다른 이들 포함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강청주의 레스에만 반응하는 것도 아니고 강청주가 있어야만 활동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이들 레스를 그냥 씹는 것도 아니며 전 애인을 고른 것이 문제냐고 하면 채린주 역시 전 애인을 골랐었죠. 무엇보다 캐입으로 누굴 고르더라도 그건 개인의 자유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약간 과해질 위험은 있다고 보지만 벌써부터 그걸 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요. 누군가하고만 놀려고 한다면 그건 제가 보고 막을 생각이고 경우에 따라선 이 스레를 터트리고 일댈자체를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편파에 대한 것은 나름 주의깊게 보고 있다는 레스만 남겨둘게요
달달하고 부드러운 거 좋아하는 건 아기들도 마찬가지에요. 짓궂게 웃어보였다. 구월은 매운 걸 못먹고 징그럽게 생긴(ex.닭발,해산물..)류의 음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호불호가 그다지 없었다. 싫어하는 것들을 빼면 모든 것은 두루두루 다 맛있었으니까. 다만 매운 것과 민트초코는 이해할 수 없다. 돈을 주고 고통을 받아? 입밖엔 내지 않는다. 취향은 존중한다.
"어디까지?"
무슨? 구월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한 걸음에 확 가까워진 둘의 사이에 그의 은은한 체취가 코끝에 훅 끼친다. 시선을 올리면 그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 구월은 당당하게 눈을 마주하고 그의 깊이를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다. 해보자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조금. 하지만 시비는 아닌 것 같아. 이어지는 그의 뒷말을 모두 듣고나서야 구월의 치켜올라간 눈꼬리가 풀렸다. 하마타면 그를 내버려두고 냅다 도망갈 뻔 했다. 아니면 주먹을 꽂았거나. 구월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구른다. 갑작스러운 제안. 구월은 얌전히 웃었다.
"술은 싫어요."
구월은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할 줄 알았다. '오늘' 술은 싫다. 구월은 술을 좋아하지만 술에 나약했고, 그건 구월의 약점을 드러내기 손쉬웠다. 그녀는 자신의 주사를 알고 있기에 더더욱. 구월은 제게 눈높이를 맞춰준 은석과 다르게 까치발을 주욱 들어올려 은석을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려 했다. 아무렴 휘둘리는 건 싫다. 즉흥적인 건 그녀의 일방적인 방식이지 제가 끌려다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구월의 가느다란 속눈썹이 아래위로 깜박거린다.
"은석 씨가 또 제가 보고 싶어 진다면"
은석이 제 눈높이로 내려와준 덕에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위치에 그의 약점이 보였다. 그래서,
"그땐 좋아."
술이요. 휘어진 눈꼬리로 얄궂게 웃는 얼굴의 구월이 짧고 굵은 단어를 덧붙이곤 가녀린 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스쳐지나가듯 쓰다듬으려 했다. 우린 아직 시간이 많아, 조급 할 필요가 없다. 빙글 올라간 구월의 입꼬리가 마치 고양이 같다.
"그러니까 오늘은 산책."
호수에 물고기가 있을까요? 맑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구월은 마주보고 있던 그를 망설임없이 스쳐 지나 홀로 성큼성큼 걸어 호수 쪽으로 당겨지듯 자연스레 걸어간다. 그녀에게 꼬리가 있었더라면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그리고 큰 동작으로 살랑거렸을 거다.
술은 싫다고 말을 하기에 별 말 없이 그에 수긍하려고 했으나 이내 붙이는 조건에 그는 말 없이 두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보고 싶어진다면 그땐 술을 하자는 역제안은 그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7할로 거절이요, 3할은 승낙이요. 그 정도의 가능성만 생각한 그였기에 지금 이 답은 그를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어. 어.."
얄궂게 웃으면서 제 머리카락을 아주 살짝이나 쓰담는 그녀의 행동을 아무런 말 없이 받아들이고 바라보던 그는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고 표정으로도 살짝 보였을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그는 속내를 꾸욱 감추면서 표정을 관리했다. 그럼에도 미소를 작게 짓는 것은 그녀에 대한 흥미가 조금 솟아오른 탓이었다.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는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처럼 이야기하나 막상 또 이렇게 거리를 좁히려고 하면 사르륵 멀어지는 것이 마치 고양이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꼬리를 아주 살랑살랑 흔들어서 시선을 끌려고 하는 그런 고양이. 뭐, 어디까지나 그의 눈엔 그렇게 보이는 거였지만.
"그러다 정말 진심이 되어서 술 먹고 싶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땐 지금과는 다를 것 같은데."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행동하리라 다짐한 자신이었다. 가볍게 마시고 돌아갈 수 있는 술자리가 다른 느낌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는 역제안이 아닌가. 물론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기에 그것은 그녀의 대답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혼잣말. 흘러가듯이 하는 말에 가까웠다.
아무튼 호수로 걸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덩달아 호수를 향해 걸었다. 맑은 푸른빛 호수는 여름 날씨를 절로 식혀줄 정도로 시원하고 넓게 퍼져있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정말 여름 더위가 잊혀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진한 푸른빛을 눈에 담으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있을걸요. 많이는 아니어도 보통 이런 호수에는 물고기들을 넣어두기 마련이잖아요? 잉어라던가 그런 애들."
그러다 저 편을 바라보니 오리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 일단 지금은 산책만 하자고 하니 그는 그 모습을 바라봤으나 오리배를 제안하진 않았다. 그 대신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그럼 다음에 제가 만나고 싶어서 만나러 오면, 저 오리배도 어때요? 지금은 탈 수 있다고 해도 아껴둘래요. 다른 날에 구월 씨와 저걸 탄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미션으로 지정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제가 당신과 데이트 하려고 데이트 신청하는 것일테고 당신도 그 제안 받아준 후일테니까 지금보다 더 유익할 것 같거든요. 그 날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있다고 가정하고 지금은 세이브."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런 프로그램이니까 적당히 무시하고 패스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살며시 호수 가를 천천히 걸어가며 그 맑고 푸른 물빛을 구경했다. 그러다 그늘 속에 들어가며 여기에서 더위나 식히라는 듯 그는 손짓했다.
영월을 덥석 안아들고도, 강청은 잠깐 영월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과거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적어도 무릎베개나, 어깨를 기대거나, 그 정도로 서로에게 기댄 적은 종종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때는 그의 눈이 이렇지 않았었다. 그늘 속에서라도 이쪽을 바라보아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게 영월을 눈에 담아오는 그런 시선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시선에 잠겨 있는 이 순간은 마치 북극해에 빠진 것처럼 싸늘하다. 뒤이어지는 말이 얼음조각처럼 부딪혀온다.
"정 싫으면 싫다고 해. 프로그램의 룰은 알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등이 적발될 경우 수수료와 함께 강제 퇴출되니 주의해주십시오. 이론상으로는, 영월이 정말로 지금 이 순간이 끔찍하게 싫다면 강청에게 거부 의사를 피력하는 것으로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끝내버릴 수 있다. 끝맺어지지 못한 이야기 따위 알 바 아니니까. 그러나 결국 영월은 그 끝맺어지지 못하고 날카롭게 부서져버린 이야기가 뒷꿈치에 박히는 것을 피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영월이 네, 하고 지금 이 상황을 수긍한 듯이 입을 다물어버리자, 그제서야 강청은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갈들이 그의 발밑에 깔리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나직이 들린다. 그 품도 말도 눈빛도 이미 다 싸늘해졌는데, 걸음걸이만은 곧잘 영월의 발걸음에 맞춰주던 그 걸음걸이 그대로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서로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별 없는 밤 한가운데를 터벅터벅 발소리와 함께 가른 것이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문득 기숙사 건물 현관에서 비치는 등불이 영월을 비추어온다. 기숙사에 도착했음에도 강청은 말 한 마디 없이 현관으로 들어가 복도로 발을 내뻗는다. 영월이 거부의사를 표하는 게 아니라면, 그녀를 그녀에게 배정된 방 앞에서 내려줄 모양이다. 그가 물어볼 게 있다는 말은, 아마 문 앞에서 건네어지겠지. 마지막 도망칠 구멍을 등지게 해 주는 자비인 걸까, 마지막 도망칠 구멍만 남겨놓는 냉혹함일까.
웹박수로 어제 새벽에 있었던.. 그것에 대해서 의견이 하나 들어왔는데 본인은 일단 공개해주는 것을 원하는 것 같고, 저도 판단했을 때 이건 공개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하기에 전문 공개할게요.
수요조사, 시트부터 시작해서 본어장까지 늘 즐겁게 보고있는 관전참치야! 문의도 이쪽으로 넣으면 된다고 해서.. 사실 관전어장에 쓸까 했는데, 이목을 사고 싶은 마음도 없구.. 많이 부끄러워서 여기에다 살짝 남겨 봐.
새벽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봤어. 아마 시트 어장에서도 그랬던 참치겠지?😠 그렇지만 제 3자가 보기에 과연 저게 편파일까? 싶었어. 영월주도 그렇고 다른 참치도 그렇고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것 같았거든! 무엇보다 전남친 전여친이면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었을 거 아냐. 실제 연애도 고작 100일 못 되어 사귄다 쳐도 지금 나오는 이야기 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헤프닝도 많이 벌어지는걸.
요점은 영월주가 모쪼록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참치들도 서로서로 즐겁게 돌렸으면 좋겠다는 거야! 즐겁게 보고있는 관전 참치를 즐겁게 해달라구.😊
캡틴도 순항하길 바라!
일개 관전자가 본어장이나 관전 어장에 쓰느니, 차라리 웹박에 쓰고 캡틴이 직접 공개하거나, 그러지 않거나를 판단해줬으면 좋겠어. 부끄러워라!🙈 어쨌든, 다들 잘 해주고 있으니 파이팅!❤️
일단 재밌게 봐주시고 있다니 감사해요. 그리고 편파 문제에 대해선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이기도 하고 선관도 선관인만큼 편파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허나 오늘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만히 생각했지만 역시 제 생각엔 아직 편파라고 불릴 정도의 일은 없다는 것이 결론이에요. 물론 대놓고 그러건, 은연중에 그러건 특정 캐하고만 놀려고 하고 다른 캐릭터와 교류 자체를 원하지 않고 그런 것은 문제이긴 해요. 진짜 악랄한 상판을 즐기는 방식이고요. 허나 아직 이 스레에 그 정도의 이는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은 그렇고 나중에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미래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 그런만큼 당장의 큰 문제가 없는 한 제가 뭘 하진 않을 것 같네요.
달리 말하자면 정말로 편파를 일으킨다면, 정말 특정 캐릭터와의 접점과 일상, 그리고 교류 및 관계만 원하는 이가 있고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행동한다면 이 스레가 터지는 한이 있어도 패널티를 먹일 생각이에요. 아무튼 캡틴도 편파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점만 알아주시면 감사해요.
무거운 얘기보다는 밝고 좋은 이야기를 하도록 해요! 아무튼 슬슬 이번주에 놀 것도 정하긴 했는데 제 일정이 어떻게 될지가 지금 알 수가 없네요. 경우에 따라선 토요일에 못 올 수도 있어서. 시골에 가야 할 수도 있다보니..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는데 가게 된다면 그냥 이 시간부터 이렇게 놀 수 있어요! 하고 공지를 던지고 갈테니 안심하세요!
웹박수 남겨준 관전 참치야. 정말 고맙다는 말 먼저 전할게. 사실 새벽부터 심란하고 정말 내가 그렇게 보일 정도였나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었어. 시트 때부터 말이 있었으니 이번에 더 크게 철렁이더라구. 그 참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많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가야하는게 아닐까. 어장을 지적한게 아니라 나를 지목했잖아. 그럼 나만 없으면 다시 무슨 말도 나오지 않을 거 아냐. 아무렇지 않게 갱신은 했어도 계속 고민은 하고 있었는데. 관전 참치의 웹박수 덕에 고민을 끝낼 수 있었어. 관전 참치처럼 생각해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로. 캡틴인 은석주도 아직 편파는 없다고 말해줬고 나 자신도 떳떳해. 그러니 관전 참치의 말처럼 받았던 상처도 잘 덮어두고 모두랑 잘 지낼게! 재밌는 일상 많이 돌릴게! 정말 고마워!
영월주는 다시 어서 오세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하자면 일단 전 아직 그렇게 느껴지는 징조는 없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게 상당히 편파로 발전하기 쉬운 구도인 것도 사실이기에 그 점만 서로서로 조금 자각을 하고 주의를 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발전하지 않게 주의는 하고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필요 이상으로 그 자체에 긴장하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그런 움직임이 보이고 누가 봐도 '오너입'으로 너무 오버한다 싶으면, 그리고 그게 좀 도를 넘는다 싶으면 제가 바로바로 이야기를 할 거예요
어쨌건 이건 제가 세운 스레고 저의 선이 있으니 일단 기준은 그 선으로 하려고 해요. 일단 이 이야기는 전 정말로 여기까지만 할게요. 너무 오래 끌어서 좋을 이야기도 아니고..
이제 어지간한 곳은 다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지도에도 없는 좋은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은석은 기숙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부러 공원과는 정 반대로 가보기도 하고, 자신이 봤던 시설이 있는 곳과는 다른 곳을 돌아보기도 하며,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다른 데이트 포인트 등을 찾아다니면서 은석은 정보 탐색에 집중했다. 많이 알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중에 좋은 사람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때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카드 패는 많아야 좋은 것 아니겠는가. 물론 다른 이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슬슬 기숙사로 돌아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침대에 누워서 카페 인테리어 공사 업자들과 통화라도 할까. 지금은 휴가 중인 카페 직원들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나 나눌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발을 옮겼다. 여름의 뜨거운 공기를 뚫으며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기숙사 근처에 도착한 그는 낯이 익은 이를 마주했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이자 자신에게 깻잎 질문을 던졌던 여성. 이름이 아마 이채린이었지. 아무튼 만난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를 막 하려던 그는 그녀의 모습에 주목했다. 기분 탓일까. 뭔가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괜히 궁금증을 가지면서 눈을 깜빡이던 그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채린 씨였죠? 이름.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표정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데."
기분 탓일 수도 있고, 그냥 자신의 눈에만 그렇게 비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 물어보며 그는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숙취때문에 속은 울렁거리지 기껏 나왔는데 카페는 문을 닫아있지.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 기분이 저조해진 채린은 시선을 땅에 고정한채로 터덜거리며 걷는다. 기숙사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때즈음에 들리는 목소리에 놀란눈으로 앞을 바라보자 누군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이름이..
잠시 상대가 누군지 떠올리던 채린은 어젯밤 자신이 질문을 했던 이라는것과 성은 잘 기억이 나지않지만 이 남자의 이름이 은석이라는것을 기억해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채린의 얼굴에는 금새 비즈니스적 미소가 피어올랐다. 힘들어도 힘든티를 내면 안되는 서비스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다운 처세술이었다.
"아, 은석씨. 일은 무슨요. 아무일도 없는걸요? 잠은 잘 주무셨나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속이 울렁거리며 카페인을 내놓으라 아우성을 치고있지만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아무리 태연한척을 한대도 평소보다 좀 더 창백해진 얼굴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없다고 하지만 얼굴색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대체로 둘 중 하나가 아닐까하고 은석은 생각했다. 첫번째는 무슨 일이 있지만 그걸 굳이 남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단순히 컨디션이 정말로 좋지 않다는 것. 그럼 그녀는 어떤 케이스일까? 50:50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로 추측하기에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기에 은석은 굳이 추측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또 다른 가능성. 자신과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라는 떠오르자 그는 더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허나 그녀의 질문에 답은 해야만 하니 그는 태연하게 방금 전 생각한 것들, 그리고 자신의 속내는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미소를 비췄다.
"잘 잤죠. 여긴 집과는 다르게 에어컨을 켜놓고 자도 전기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어젯밤도 정말 시원하게 잤거든요. 취침모드를 켜니까 딱 맞던데."
참으로 넉살 좋게 웃음을 내뱉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의 반응을 살며시 눈으로 살폈다. 허나 그와 동시에 그녀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옆으로 비켜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다면 다행이지만 얼굴 색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거든요. 피곤한 일이 있으면 푹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또 언제 다 소집해서 뭐 시킬지도 모르잖아요? 프로그램 일정이 넉넉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촉박하니 여러 사람들 만나보려면 체력도 중요하고."
다음 모집은 또 언제쯤이려나. 그땐 또 뭘 시키고 또 무슨 미션을 주려나. 나름대로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지만 역시 지금 단계에서 떠오르는 것은 없었기에 그는 난처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쭉 기지개를 켰다.
"저도 그것 때문에 슬슬 들어가서 쉬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김에 카푸치노나 만들어서 마셔볼까 싶기도 하고."
자신을 살피는것을 보아하니 상태가 좋지못하다는것을 눈치챈것같지만 굳이 언급하지않는 은석의 행동이 고마워서 채린은 아주잠깐이나마 진심어린 미소를 비추었다. 진실게임에서 꽤나 직설적인 질문을 했던것과는 다르게 다른이를 배려할줄도 아는 것 같아 은석의 모습이 어젯밤보다는 좀 더 유하게 바뀌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속이 아까보다 좀 더 울렁거리는것이 빨리 방에가서 믹스커피를 목으로 넘겨야만할것같았다.
"잘 주무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전 이ㅁ..."
은석이 비켜준 틈으로 기숙사에 들어가려던 채린의 몸이 멈칫한다. 카푸치노..? 그러고보니 제작진이 건네주었던 자료 속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것도 같았는데.. 숙취로 무거운 머리를 재빨리 굴리던 채린은 짧은 시간에 결론에 도달한듯 슬그머니 은석을 올려다보며 하고싶은 말이 있는것처럼 입을 떼려다 망설인다.
부탁을 받기만해봤지 부탁하는일이 별로 없던 채린인지라 잘 알지도못하고 어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초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은석에게 부탁을 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을 달싹이며 고민하던 채린은 속이 울렁거리자 이젠 한계라는것이 느껴져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은석씨 진짜 죄송한데.. 혹시 저도 커피 한 잔 얻어마실 수 있을까요?"
상냥한 미소에서 곤란함이 섞여 조금 울상으로 보이는 얼굴을 한 채린의 눈은 마치 "실례가되지않는다면요.."라고 하는듯했다.
이만 들어가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어서 들어가보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자신도 슬슬 들어가서 아까 전에 계획했던 전화통화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잡으면서 자신도 슬슬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 그녀가 멈칫하자 자신도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그는 살며시 까치발을 들어 그 너머를 바라봤지만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혹은 그녀의 위치에서는 보이나 자신의 위치에서는 안 보이는 뭔가가 있는가 싶어 그는 살짝 각도를 바꿔서 안을 바라봤지만 역시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 와중에 그녀가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모습에 그는 까치발을 풀고 덩달아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들어간다는 사람이 왜 갑자기 자신을 올려다보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는 두 눈을 깜빡이며 일단 침묵을 지켰다. 입을 달싹이는 것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마는 것 같은데 적어도 자신으로서는 예상이 가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들려오는 그녀의 요청에 그는 응? 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깜빡였다.
"커피 말인가요? 끓여달라면야 얼마든지 끓여줄 수 있죠. 그런데 갑자기 커피는 무슨 일로?"
카페 영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객이라고 불리는 하루에 커피를 한 잔 이상 안 마시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타입인건가. 그런 타입이면 지금 완전 횡재한 것 아닌가. 어떻게든 자신의 카페의 단골로 만들고 말리라는 머릿속 행복회를 가득 돌리며 그는 어떤 커피가 좋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물론 이내 김칫국 마시는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는 스스로가 참 웃겨 자신도 모르게 쿡쿡 웃었다.
"아. 미안해요. 채린 씨가 우습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그런 것이 있어서. 아무튼 무슨 커피 좋아해요? 원하는 거 있으면 만들어줄게요. 물론 카페가 아니니까 만들 수 있는 커피에는 조금 한계가 있지만... 가벼운 것 정도면 얼마든지. 그보다 그렇게 울상은 왜 짓고 그래요. 누가 보면 제가 울린 줄 알겠네. 커피 요금은 예쁜 스마일 한 번이 좋은데. 하핫. 물론 농담이에요. 그래서 뭐 좋아해요?"
다른 참가자의 인적사항은 덜 봤어도 프로그램의 룰 만큼은 숙지했다. 원치 않는다면 확고한 의사 표시를 할 것. 원래부터 상호 교류에 단호함 빼면 남는게 없는 그녀에게 어려운 룰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과거 그 기준을 흔들던 청이기에, 혹은 취기 탓에, 조금은 어영부영하는 모습이었을지도.
그녀를 안아올리고도 기둥처럼 서 있던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오직 차가움 뿐이다. 차가운 품. 차가운 시선. 조금만 닿아도 따듯했고 마주하지 않아도 다정했던 시절이 거짓말 같다. 그 온기를 꺼트린 건 누구였던가. 아아. 스물스물 올라오려는 무언가를 잇새로 짓씹어 눌러담는다. 속을 죽인 그녀가 이 상황을 수긍하는 대답을 하자 그가 걸음을 떼었다. 잠깐이지만 두 사람 분 울리던 발소리가 한 사람으로 줄어 강당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짧은 길을 울린다. 자그락자그락. 자갈 울리는 소리가 이렇게나 컸나. 너무 선명한 소리는 예전 그녀에게 맞추던 그 보폭이 틀림없어 다시금 입 안을 깨물었다.
짧은 길을 지나 그녀의 위로 현관 조명이 비춰지자 벌써, 하고 그녀의 얼굴이 살짝 위를 향했다. 곧장 보이는 현관문에 여기에서 내려주지 않을까 했지만 청은 달리 멈출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방 앞까지 그를 붙잡고 있었다. 길지 않은 복도를 지나 방 앞에 겨우 발이 내려지면 잡았던 손 또한 자연히 떨어진다. 문을 앞에 두고, 혹은 등지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아까, 첫번째 미션, 강 청 씨 지목했어요. 그러니 내일 아침, 10시... 아니, 11시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죠."
잠간 말 안 했다고 목소리가 잠기긴 했으나 말 자체는 또박또박하게 한다. 청을 보지도 않고 무슨 보고라도 하듯이. 아침에 약한 그녀가 과연 숙취 없이 제시간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진 건 누구일까. 말을 하고 잠깐의 텀을 둔 후 그녀가 시선을 들어 청을 보려하면서 덧붙였다.
"하실 말씀은 무엇인가요?"
취기로 눈빛은 흐리지만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검은 눈동자가 주광색 전등을 등진 강 청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앞으로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는 것처럼. 그런 척 하는 것처럼.
은석이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가며 움직이는것도 까맣게 모른채 고민을 하던 채린은 은석에게 부탁을 하고 난 뒤에도 괜한 부탁을 한건 아닐까 걱정을 한다. 역시 곤란한 부탁이었던걸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영문을 모르겠다는듯한 은석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곤란한 부탁이었던걸까 하는 마음이 곤란했나보다 라고 바뀌었고 이는 곧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되었다.
사과를 하기위해 입을 열려했지만 머리위에서 은석이 쿡쿡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번에는 채린이 응? 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어.. 그게.. 커피는 다좋아하긴하는데.. 아메리카노요..?"
쏟아지는 은석의 말을 들으며 조금 유해보였던 은석의 이미지가 다른 무언가로 한번 더 탈바꿈되었다. 이모습은 마치.. 주책맞아보였다. 이곳에는 스튜어디스 이채린은 아는 사람들이 없기때문인지(연호를 제외하면) 숙취때문에 사고회로가 정지된탓인지 그것도아니면 눈 앞의 이 사람의 의외적인 모습을 잔뜩 본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표정관리가 잘되지않고 자꾸만 어버버 거리게되어 곤란한 채린이었다.
어버버거리는 모습이 은근히 귀엽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서 직접 커피를 대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나 아직 그 정도의 사이도 아니지 않던가.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이를 자신의 방으로 부르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누군가라면 또 모를까. 그러고 보니 슬슬 그녀하고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은석은 천천히 기숙사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시원한 그늘이 더위를 식혀줬고 그는 살 것 같다는 듯이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그러니까 채린 씨 방이 어딘지만 알려주실래요? 저는 제 전 여자친구인 아린 누나 방의 위치밖엔 몰라서."
자신의 방 맞은 편에 위치한 아린의 방을 제외하고 남은 방의 위치는 당연히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채린이 자신의 방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꺼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었다. 그럼 로비에서 기다리게 한 후에 빠르게 끓여서 가져오면 될 일이었으니까.
"아무튼 제 커피 맛 보고 마음에 들면 이 프로그램 끝나고 제 카페에 와서 단골 손님 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은데. 혹시 여기서 좋은 인연과 함께 하기로 한다면, 그게 전 남자친구인 연호 씨건, 혹은 다른 이건 같이 와주면 더욱 좋고."
슬쩍 점장으로서의 마인드를 살짝 내비친 그는 이건 농담이 아니라는 듯, 방금 전과는 다르게 농담이라는 말을 그는 굳이 붙이지 않았다. 아무튼 그녀의 답을 듣고서 그는 조금 있다가 보자고 하면서 아마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꺼내려던 화제를 가로채였다. 강청은 자신이 하려던 말의 갈피를 잠깐 잃었다. 그래서 영월이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강청은 잠깐 침묵했다. 다행히 갈피를 잃었을 뿐이라는 상황판단은 늦지 않아, 하실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고 뻔뻔하게 되물어오는 말에 늦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이 잘려나간 자국은 더 차갑고 더 매끄럽고 더 모난 칼날이 되었다. 강청은 핸드폰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이거, 뭐하자는 건데?"
프로그램 진행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준 핸드폰. 강청의 핸드폰의 화면에는, 영월이 당신을 선택했으니 이번 주 내로 한 번은 영월과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미션 내용이 문자로 도착해 있었다. 아까와 다름없는 어조였다. 아까와 다름없는 눈빛이었고, 아까와 다름없는 표정이며 목소리였다. 그러나 강청은 영월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 날 이후로 계속 그는 그렇게 분노에 잠겨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산과 같은 분노에 마음은 색깔을 잃고 정신은 부식됐다.
"사람을 한 마디로 걷어차놓고는 이게 다 뭐 하자는 짓이냐고. 애초에-"
한 마디로 걷어차놓고는 문자 한 통으로, 심지어 직접 건넨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물론 부당한 분노다. '문자 한 통으로-직접 건네지도 않고-일방적으로'는 영월의 의사가 아니라 화살표의 행방이라는 프로그램의 시스템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화살표의 행방이라는 프로그램도 영월이 먼저 자신에게 제의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찬가지로 한번에 몰아서 괘씸하다. 어째서 이런 프로그램에 나를 데려온 건가. 그래야만 했나. 나를 걷어차고 떠났으면 너라도 날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너는 그러지마저 못했다는 말인가. 내가 불행해진 만큼 너는 행복해진다, 그게 인간관계의 당연한 제로섬이 아니냔 말이다. 강청의 이런 억지 이론은 멀리 갈 것도 없이 강청과 영월 두 사람이 같이 행복할 수 있었던 나날을 가져오는 것으로 반박할 수 있으나, 이미 그 지나간 나날들은 강청에게 있어 그를 조금씩 퇴행시키는 저주로 변질되어 있었기에 그는 가장 확실한 반증을 수용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매일 아침 핸드폰을 키면서 무의식적으로 메신저 앱을 켜서는 이미 없어져버린 연락처가 있던 자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끔찍한 현실을 확인하고, 요리 중에 무심코 맛있게 먹어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누가 맛있게 먹어준다는 건데?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고는 손에서 요리기구를 놓아버리고, 길을 걷다 갈색 머리카락이 보이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홀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문득 가로등 불빛 아래에 네가 보인 것 같아 바라보면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는 새벽 가로등만이 거기에 있는데. 내게 남겨진 나와 내게 남겨진 너 사이에서는 내게 남겨진 네가 날 죽이고 살아남았는데. 그러니 너한테 남겨진 나 같은 나약한 것은 진작에 죽였어야지.
"날 여기에 데려온 이유가 뭐야?"
죽이는 건 네 마음 속의 나로 족하지 않나. 아직도 눈을 감으면 네 얼굴이 눈꺼풀 속에 가득차는 나를 다시 이렇게 참혹하게 고문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방까지 오라는말이 없는것을보니 방의 위치를 알려주는것을 꺼리는걸테고, 채린 자신도 방의 위치를 알려주기에는 조심스러웠다. 무엇보다 커피를 내려주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수고스러운데 더 큰 수고를 끼칠수는없었다. 하지만 입구인 엘리베이터앞에서 기다리면 은석의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었고 자신은 은석에게 배달을 부탁해도되지않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그럼 당연히 단골손님이 되어야죠. 같이 가는 사람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게 은석씨일지도 모르고요. 주책스러운 은석의 모습을 한바탕 보고나서인지 장난섞인 말도 제법 할 줄 알게된 채린은 프로그램을 시청하고있을 시청자들이 들으면 좋아할법한 말을 하곤 생긋 웃는다.
"저와 함께 하게 된다면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카페에 채린 씨 전용석이 하나 생길걸요? 여자친구 편하게 앉으라고 자리 하나 못 만들까. 점장이. 그것 말고 다른 서비스는 그 관계가 본편이 되면 알려줄게요."
그녀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 역시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 속으로 그림자가 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제 전 여자친구였던 아린에게 했던 모든 것들이 다 새로운 이에게 옮겨진다는 것을 실감한 탓이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제 남자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린의 모습이 그의 기억 속에 떠올랐고 눈동자에 어른거렸다. 눈을 감고 숨을 약하게 내쉬며 그는 엘리베이터를 잡았고 이내 자신의 방까지 향했을 것이다.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층 입구에서 그녀와 헤어지면서.
이내 방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이 여기에 입소할 때 가지고 온 원두를 꺼냈다. 혼자서 먹는 거면 조금 느긋하게 맛을 내겠지만 지금은 혼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오더가 들어온 상황이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커피를 내서 나가는 것은 바리스타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적당한 시간을, 카페에서 낼 때와 비슷, 혹은 그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커피를 제공하기로 하며 그는 우선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럼 한 번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빠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느린 속도도 아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제공할 때보다 약 2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으나 제법 향은 카페에서 내는 것과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다. 그 맛도 절대 어느 카페에 뒤지지 않으리라 그는 자부했다. 설탕과 프림을 따로 챙긴 후, 그는 방 밖으로 나왔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 향한 후,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일단 적당한 통이 없어서 텀블러에 담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방에서 커피를 먹을 때 쓰는 커피잔에 담아서 가져오기도 뭐하고. 아무튼 향도 그렇고 맛도 나름 괜찮을 거예요. 좋은 점수 딸 기회를 그냥 버릴 순 없잖아요?"
말의 마지막 단락엔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섞여있었다. 허나 곧 웃음소리를 멈추며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먼저 말을 꺼낸 덕에 영월은 잠깐이지만 청을 볼 수 있었다. 분노의 둑이 터지기 전, 원망의 말이 쏟아지기 직전의, 위태롭고 차갑지만 그럼에도... 그 잠깐이나마 바라보았다. 예전처럼. 예전 언젠가처럼.
그러나 그가 지급된 핸드폰을 꺼내며 시작한 말에 일순간의 정적은 깨져버렸다.
이게 다 뭐하자는 거냐. 어쩌면 그녀가 연락했던 처음에 나왔었어야 했을 말이 여기에 도달해서야 나왔다. 이제야 나온 만큼 그 말에 담긴 감정 역시 크고 무겁다. 차고 날카로우며, 시리고 아프다. 말과 목소리로 때리는 것처럼 그저 듣고만 있는데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다. 담담하게 서 있던 그녀는 조용히 팔을 뒤로 모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팔을 쥐었다. 잡은 팔에 손톱을 세워, 찌르르한 통증을 주어 그녀의 정신을 붙들었다. 겨우 이 정도에 자신이 먼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분노를 받아내는게 그녀의 의무라고 여겼다.
남몰래 부과하는 자책의 뒤로 그녀는 '이기적인 자신'을 유지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청의 분노 앞에서, 그녀는 무심함을 가장하며 대꾸한다.
"왜 그걸 이제서야 물으시는 거죠. 이전의 저는 제의를 했을 뿐. 충분히 거절할 시간은 있었지 않나요."
부러진 칼에 남은 날처럼 날카롭고 서늘한 청의 목소리에 대응하듯 모든 감정을 죽여 사무적인 울림만 남은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왜 이제와서 그러냐고. 거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온 건 너 아니냐고. 똑바로 뜬 눈은 그의 그늘 탓인지 어둡다. 생기라곤 한가닥도 없이.
"제가 지금 당신의 물음에 솔직히 대답하면, 그건 믿을 건가요. 믿을 수 있겠나요."
그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것이냐고 묻는 것 같지만 지금의 그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이미 확신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녀는 이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듯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실상 뒤로 쥔 손은 이제 잡은 팔이 얼얼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있다. 그러나 고통으로 빚은 가면은 그리 오래 버틸 수 없다. 저벅. 그녀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 손을 놓고 저릿한 팔을 움직여 방문에 한 손을 걸쳤다.
"밤이 늦었어요. 들어가 쉬시죠. 친절, 감사했어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문손잡이를 돌리니 잠그지 않았는지 딸깍 하고 열린다. 가녀린 몸 겨우 들어갈만치 열리자 그녀가 몸을 휙 돌렸다. 카메라에는 그저 돌아서는 것만 찍혔겠지만 돌아서는 순간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만나고 싶었으니까."
평소 굼뜬 그녀는 어디가고 이 순간만큼은 잽싸게 문 너머로 사라진다. 다시 닫힌 문은 닫히는 소리만 나고 잠그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뭔가 툭, 하고 문에 부딪히고 스르륵 미끄러지는 소리는 난 듯 하다. 그 뒤론 조용해졌으니. 다시 불러내거나 말을 걸지 않으면 그녀가 말했던 약속시간 이전까진 볼 일 없을 것이다.
고작 술 가지고? 구월의 낮은 웃음소리가 한적한 공원에 너울거린다. 어쨌든 짝은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아야 하는 것. 한 쪽의 일방적인 손짓이 아니다. 그러니까 먼저 서로를 끌어당기는 게 급선무. 구월의 걸음걸이가 나풀거린다. 호수 가까이 도착하니 생각보다 푸르고 화창한 모습에 곧장 호수 난간을 잡고 당장이라도 빠질 듯 허리를 숙여 호수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들려오는 짧은 탄성. 와- 파래.
"물고기?"
그것은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생기 도는 눈동자로 눈을 깜박거리며 이리저리 물 속을 헤집어 보지만 구월의 눈엔 안타깝게도 고요했다. 난간이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앞에 매달려 있는 꼴이 마치 어항 속 금붕어를 노리는 고양이 같다. 심통이 난 구월의 눈이 가늘어진다. 입을 삐죽이기 직전에 그의 오리배 이야기가 귀로 흘러들어온다. 구월이 호수 속 물고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가 길게, 그리고 적당한 템포로 무언가 많이.. 쏟아낸 것 같은데. 구월은 들었던 말들을 다시 정리하고자 눈을 굴린다.
"은석 씨가 힘들지 않을까요."
구월이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당연히 그가 오리배를 움직일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구월은 맥주병이기 때문에 괜히 그 안에서 파닥거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을 무서워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쫄딱 젖는 것도 싫다. 은석이 호수 주변 길로 걷는 걸 보고 구월도 눈치 껏 난간에서 손을 놓고 졸래졸래 그의 옆으로 뒤따라간다.
"해로운 데이트는 없어?"
유익한 데이트. 왠지 드라마에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이다. 어쩐지 저와는 어울리지 않아 구월은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그렇기에 장난스럽게 유치한 말장난을 한다. 지금보다 더 유익할 거 같다니. 그가 도형이었다면 네모였을까. 형식적인 게 취향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딱딱 맞는 것이 즐거운 건지. 데이트를 미리 계획하고, 서로의 호감이 확인이되면 그 시간은 유익해지는 걸까. 서로 마음 잴 것 없이 알콩달콩, 그런거? 은석의 부름에 따라 그늘 안으로 느릿하게 걸어가 생각에 빠진 얼굴로 턱을 괸다. 그 상태로 고개만 돌려 은석을 빤히. 이론적이야.
카페 일을 하면, 그것도 남자의 경우는 보통 짐을 나르거나 재고를 정리하거나 하는 등의 힘 쓰는 일을 많이 하는 법이었다. 점장인 자신이라고 어디 예외겠는가. 그런 일을 하루이틀 한 것도 아닌만큼 나름 체력은 자신이 있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 힘들다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자신이 파악할 역량은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도 탄 오리배를 뒤집으려고 하진 않을테니까 딱히 그런 것은 없지 않을까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
그늘 안에서 더위를 식히는 중 들려오는 물음은 그의 고개를 살짝 갸웃하게 만들었다. 해로운 데이트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탓이었다. 현관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그녀의 표현 방식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알아듣기 어렵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모로 개성적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것 또한 그녀를 구성하는 요인 중 하나겠지.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며 이내 은석은 다시 해로운 데이트라는 것을 생각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덩달아 빤히 바라봤다.
일단 유익한 데이트에 대응해서 해로운 데이트가 나온 것이 분명해보였기에 자신이 방금 말한 것과 전혀 다른 개념이 아닐까 은석은 생각했다. 결국 어설프게 아는 척하고 말을 하는 것은 회피하기로 했다. 잘 모르겠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어설프게 아는 척 했다가 모른다는 것을 지적당하며 아는 척 했다는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 그에겐 치명적이었다.
"저에게 있어 해로운 데이트는 말 그대로 인사만 하거나, 혹은 적당히 카페에 들어가서 말 조금 나누고 헤어지거나 하는 것이거든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시간낭비만 하는 것. 그야말로 의무이기에 만나야 하는 무언가. 하지만 구월 씨의 해로운 데이트는 다른 의미 같기도 하고. 맞나요? 만약 그렇다면 가르쳐주지 않을래요?"
만약 자신이 말하는 의미와 동일하다면 상관없었으나 다른 의미라면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는 알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3번째 질문을 다 썼다고 거절할까.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계속 마주보던 그는 그렇게 답을 요구했다.
"그게 무엇이건 구월 씨가 다음에 저와 그런 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따로 찾아오신다면... 그땐 얼마든지."
설사 자신이 말한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테니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의미면 굳이 자신을 찾아오진 않으려나. 이내 그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살며시 물었다.
"앞머리카락. 조금만 정리해줘도 되나요? 싫으면 거절해주세요."
곤란하거나 싫다고 한다면 그는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허락이 떨어지면 오른손을 올려 아주 살짝 앞머리카락을 살살 손으로 쓸어내리다 가지런하게 정리를 한 후에 내렸을테고.
/퇴근 후 식사를 마치고 답레와 함께 갱신!! 그건 그렇고 금요일까지인만큼 슬슬 이 데이트 일상도 너무 길어지지 않게 스킵 형식으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긴 한데. 물론 구월주가 더 잇고 싶다면 이으셔도 괜찮아요.
아앗. 그렇다기보다는 전 연인에 대한 이미지를 잘 모르기에 잘못 지목해버리면 아무래도 설정 붕괴가 되기 때문에. (시선회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텀 속도에 따라서 다를 것 같네요. 진실게임 때도 아무래도 조금 텀이 있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 것도 있고... 제가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음.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에 상당히 약하군요. 거기에 스르륵 잘 정도라면. 하지만 친하지 않은 이가 쓰다듬으면 어림도 없을테고.. 뭔가 영월이도 저런 말을 싫어한다면 아린이와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린이도 인형 같다는 말이 싫다고 했으니까요. 마이너스 맥시멈..즉 솔직하지 못하다는 이야기. 그렇군요. 영월이는 츤데레다..(어?)
집에서 머리 쓰담 받은 적이 거의 없으니까... 아무래도 약해. 응. 친하지 않은 이가 쓰다듬는 건 아마 상황에 따라 갈리겠지. 열에 아홉은 표정으로나마 짜증을 내겠지만. 나도 저번에 아린이 보고 나중에 아린이랑 일상 할 기회가 있어서 그런 대화 주제가 나온다면 공통점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 이런 식으로 다른 캐들하고도 접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고- 아니 츤데레 ㅋㅋㅋㅋㅋㅋㅋ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성격파탄일 뿐입니다. (단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알았지~~~ 소재로 써보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어~~~ 날씨 덥기도 하고... 선율이는 인도어파일 것 같다는 적폐해석... 강청이는 폐쇄적인 성격인 만큼 문을 안열어줄 듯하고... 여자 쪽은 아무래도 대부분 땀흘리는 걸 안좋아할 것 같지 않나 싶어서 연호는 남자 쪽을 먼저 두드려볼 것 같구, (자칫하면 채린이 방일 수도 있다는 룰렛 돌리는 두근두근도 있음)
아마 대부분은 데이트 즐기기가 될 것 같은데 일단은 원본인 환승연애를 보면 자신이 직접 전 연인의 데이트 상대를 정해주는 것도 있거든요. 그런 것도 해볼까 싶기도 하고.. 지금은 방이 연인사이였던 이들끼리 마주보는 형태로 해서 정해져있지만 방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걸고 포인트 모으기 (Feat.다갓) 같은 것도 미션으로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렇게 해서 자신이 마음에 담은 이성과 같이 마주보도록 방을 바꿀 수도 있겠지요.
웹박수로 스레를 all로 바꿔주면 시트를 낼 의향이 있다는 분이 문의를 보내주셨는데 일단 전 all을 부정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얘기할게요. 하지만 일단 이 스레는 연애프로그램인 '환승연애'를 기반으로 삼았고 페어를 맞출 필요가 있었으며 아직 미련이 남은 전 연인과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테마예요. 시트의 수를 한정하고 있으며 매주 미션이 제공되고 그 과정 속에서 이리저리 얽히는 것을 상정하고 계획을 짜다보니 성적지향을 통일하는게 낫겠다고 판단했고 그냥 원본 프로그램처럼 HL로 설정했어요. 다른 지향인 분들도 있겠지만 여고 배경인 GL스레에 BL캐릭터를 받지 않고 BL스레에서 GL을 받지 않는 것처럼 그냥 이 스레도 HL스레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해요. 일단 응할수 없다는 점은 죄송하다는 말 드릴게요.
[I always waiting you will come back to america and enjoy the college life with me.] _few months ago
(old message cutting)
[You really think that silly show is helpful about your inner growth or healing your hurt or whatever?] _04:52 Mon, July 25, 2022 [salty, don't be idiot. I have better ideas so text me back.] _04:55 Mon, July 25, 2022
[Hey I know you so why shouldn't I'm worried about you? its that always right?] _20:06 Sun, July 31, 2022 [And why are you don't read on my texting in 6 days?] _20:58 Sun, July 31, 2022 [Plz reply ASAP.] _21:00 Sun, July 31, 2022
[or not, ok.] _01:05 Thu, August 4, 2022 [My dear friend DO NOT WANT talkin to me. Right?] _01:10 Thu, August 4, 2022 [Just turning back to stranger, huh? Its that you want?] _01:14 Thu, August 4, 2022
>>507 오호~ 군대로 헤어지는 거 좋은걸? 나는 소금이의 성격과 성향(관심 분야에 집착하는 성향(연애 관계에선 이 대상이 애인이고 심리적 의존에 가까웠을 듯), 사회성도 경험도 부족함)이 상대에게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쪽으로 생각해 봤었는데 둘이 조금 섞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성규가 소금이의 성향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소금이가 기다리는 걸 잘할 것 같지 않긴 해... 약간 피곤하게 굴다가 소금이가 차이거나 제 풀에 지쳐 물러나거나 했을 것 같은데 성규 성격 상 소금이를 먼저 찼을까? 아님 그러지 않았을까?
>>511 어이쿠 그랬구나.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 성규 성격상 성향이 맞는 사람과의 과의존없는 건강한 연애를 지향하는 편이고, 애정표현같은 연인들이 하는 활동 중에 싫어하는 것도 분명히 있기도 해서 (키스같은 거) 연애를 시작했더라도 깨지는덴 시간문제였긴 했겠다. 그래서 군대를 계기 삼아 기다리기도 힘들 거고 무엇보다 우리 관계가 건강해지리라는 확신이 없으니 헤어지자고 하고 찼을 것 같네:)
>>513 >>515 좋아요! 깔끔하니 퍼펙트하다. 그럼 찬 건 성규, 참여 제안은 소금이로 결정~ 대체로 깔끔하게 잘 짜여져서 손댈 부분은 없는데 얘네가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어떻게 만나서 연애했는지 정도는 가볍게 정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연애는 성규 군대 전이니까 이십대 초반일 것 같은데 만나는 건 어떻게 만났다고 해야 좋을까? 소금이가 대학도 안 다닌 애라 접점이 고민되는걸... 같은 동네에서 산책하다 만난 사이...?(너무 대충임)
>>517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다가 수능 끝나고 연애하는 거 좋아! 소금이는 해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국내외를 꽤 자주 오가는 편이었고 한국에서도 전시회 열었을 것 같으니 접점이 충분히 될 거 같네~ 완벽하다! 나는 이 정도면 됐다 싶은데 성규주는 마지막으로 추가하고픈 거 있을까?
>>533 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돌리셔도 괜찮아요. 기본적인 룰을 어기지 않는 선 안에서 캐릭터들의 행동은 충분히 자유가 보장되고 있어요. 단적으로 말해서 마음에 드는 이성의 방의 문을 두들기고 데이트 즉석에서 신청해서 허락을 받으면 바로 데리고 놀러가도 전혀 룰 위반이 아니랍니다.
장난스러운분위기에 울렁거리던 속이 약간 진정된듯하다. 아니, 곧있으면 마시게될 커피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분위기가 퍽 즐거운 채린이었다. 은석의 방이있는 층의 엘리베이터앞에서 은석과 헤어진 채린은 은석을 기다리며 벽에 등을 기대곤 눈을 살짝 감는다. 하지만 감은 눈 안쪽으로 빙글뱅글 도는듯한 느낌이 들어 금새 눈을 떠버린다.
"하아.. 연호가 사다준 숙취해소제 아니었으면 큰일날뻔했네."
무심결에 역시 그 아이는 나를 잘 알아도 너무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새 그 생각을 지워버리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무슨 생각으로 연호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기까지 온건지.. 자신의 생각을 자신도 모르겠어서 담답했다.
사색에 잠겨있을 무렵 시야로 텀블러 하나와 텀블러를 잡은 손이 쑥 들어온다. 갑작스러운 피사체에 놀라며 동그래진 눈으로 앞을 바라본 채린은 피사체의 주인이 은석이라는것을 깨닫고는 생긋웃으며 텀블러를 받아들었다. 그냥 커피잔이나 종이컵이면 충분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은석의 행동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감사해요 은석씨. 잘 마실게요."
텀블러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 한모금 마신 채린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다. 그냥 그런 맛을 생각하고 마신 아메리카노가 생각보다 더 자신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마냥 쓰지만은 않은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더 마신 채린은 숙취로 울렁거리던 속이 사악하고 진정되는것을 느끼며 행복하게 미소짓는다.
자신이 준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은석은 나름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연애 프로그램을 떠나서 자신은 바리스타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상황이니 그 커피의 평가가 궁금한 탓이었다. 물론 나름 맛과 향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이 다 동일한 것은 아니었으니 자신의 커피가 입에 안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름 좋은 평가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그가 그만큼 자신이 끓인 커피에 자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은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한 사람이 자신의 커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즐기고 있다는 이 순간이 그에게 있어선 행복이었다.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은석은 채린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커피가 입에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연애 프로그램을 떠나서 바리스타다보니 이런 것은 괜히 신경쓰게 되더라고요."
뿌듯함을 느끼면서 그는 괜히 자신의 앞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괜히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커피 드셨으니까 입에 잘 맞으면 나중에 꼭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와서 단골 되기. 알았죠? 혹시 이 커피보다 더 입에 맞는 커피가 있으면 뭔지 말해주면 고맙고요. 채린 씨 입에 맞는 커피는 어디서 끓인 커피고 무슨 맛일지 궁금하거든요."
순수하게 바리스타로서 그렇게 말을 하며 그는 이내 오른손으로 텀블러를 손으로 가리켰다.
"방으로 돌아가셔서 천천히 드셔도 돼요. 텀블러는 또 있으니까 굳이 지금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아무튼 슬슬 날짜적으로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지를 띄우는데.. 지금 선율주와 아린주는 아예 미션 스타트가 안 된 상태고 제가 알기로는 선율주가 선레를 쓰겠다고 했고 그 이후로 선레를 올리지 않고 오지 않는 것으로 기억을 하거든요. 일정이 얼마나 바쁜진 모르겠지만 엄연히 필수 페어미션인만큼 일정이 다 끝날 때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그땐 시트를 강제로 내려버릴 예정이에요. 조금 강경할지도 모르나 자신과 페어로 묶인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잠수를 타는 사례를 아예 뿌리 뽑아버리기 위함이기에 이 부분은 조금 강경하게 할게요.
심장이, 미친 듯 뛴다. 반쯤 작업된 작품 캔버스와 작은 크기의 양산형 캔버스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은 짐부터 시작해 무거운 화구 가방까지는 그나마 익숙했지만 약 두 달 간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생소한 공간, 그리고 문 밖에서 드문드문 오가는 낯선 사람의 인기척까지 모든 게 새삼 어색하고 불안했다. 오랜 친구의 따끔한 조언마저 씹어 삼킨 주제에 이제 와서 그 말들이 맞을 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는 나약한 자아가 아우성을 친다.
긴장된다. 살짝 떨리는 손가락이 천천히 목을 감싼다.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숨결과 박동하는 맥박이 피부 너머로 느껴진다. 손끝에 닿는 반창고의 이질적인 감촉도.
"......"
자신감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아니지, 원래 없는데 있는 척 했던가. 몰라. 어떡해. 잘 할 수 있나? 아니면? 애초에 뭘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걸까? 모른다. ...불안해. 정처 없이 헤매던 까만 눈은 발끝까지 뚝 떨어져서 그대로 방바닥을 파고 들어갈 듯 오랫동안 미동않는다.
"아, 아냐, 정신 차려, 안 이러기로 했어."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데 뚜렷한 동기가 된 감정은 다시금 구명 로프가 되어 푹 가라앉아 버리고자 하는 소금의 텐션을 도로 끌어올린다. 그는 반쯤 작업된 작품으로 눈을 돌렸다. 러프하게 표현된 파도, 물감으로 빚은 목련 꽃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회오리 치는 마음도 서서히 얌전해진다.
양 뺨을 가볍게 때린 소금은 그제서야 방치했던 케이크 박스를 열었다. 분홍색 크림으로 매끈히 코팅된 초콜릿 케이크 시트 위에는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흰색 휘핑과 10개의 칵테일 체리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케이크 중앙, 여러 색깔 아이싱을 겹쳐 그린 화려한 프릴 모양까지. 당연히 소금의 작품은 아니고 그의 지갑에서 충분히 빠져나간 돈과 깐깐한 요청이 포함된 주문서로 제작된 것이다. 학생들 졸업 여행도 아니고 뭐 이런 걸 가져가나, 유난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막상 꺼내보니 아주 별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음, 별난 짓이어도 이젠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혼자 다 못 먹으니까. 소금은 플라스틱 칼을 들었다. 설치미술 작품인 양 복도 한복판에 통으로 올려둘 게 아니라면 잘라 나눠야 한다. 가능한 깔끔히.
"앗."
뭐. 뜻대로 될 리 없다.
아이싱과 단면이 다소 뭉개지게 나뉜 케이크는 작은 아이스팩과 함께 각각 종이 접시 위로 올라간다. 케이크 속 체리 과육에 쉽게 걸리던 플라스틱 칼이 몇 번이고 휘청거려 만들어진 결과다. 소금은 이를 악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냥 포장해서 몰래 놓고 오자. 그게 낫겠다.
—그렇게 작은 상자에 포장된 케이크 조각들이 여러분의 방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해가 넘어가고도 한참 된 밤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아, 내 주제에 케이크는 무슨. 툴툴대도 후회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다. 곧 박살 날 이부자리에 애도를.
일단 2차 미션과 미니게임은 일요일 저녁 8시에 하는 것으로 시범적으로 해볼게요! 뭐 사실 꼭 데이트 미션만 있는 것은 아니고 포인트 모으기를 해서 1등을 뽑는 거라던가 그런 것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범적으로 해보고 여유가 좀 된다 싶으면 이대로 고정하고 안되면 다시 날짜를 고민해볼게요.
이미 카메라 따위는 신경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 무엇에 대한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인가? 왜 나를 떠났느냐? 떠나놓고 이제 와서 이렇게 나를 보고자 한 이유가 무엇인가? 너는 무엇을 위해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었던 건가? 네 마음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너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인가? ─아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질문은 이런 문장 하나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인지, 애초에 정리가 안 되는 고약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질문이 무엇인지 모르니 어떤 답을 듣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영월이 비켜나자 세상이 보였으나 이제는 영월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 시선을 맞춘다, 초점을 바로 한다 이전의 문제다. 그러니 영월과 제대로 맞대결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애초에 맞대결의 전제 자체가 이상하다. 서로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라는 맞대결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똑바로 말을 할 각오는 있고?"
그러나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것에도 진눈깨비는 속절없이 날아든다. 강청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별을 끝맺음하러 여기 왔는데, 정말이지 나도 당신도 연애고 이별이고 뭔가 똑바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강청에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해도 영월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음을 내려놓은 채로 이별한 것이라 한다면, 그래서 미련의 여지 없이 두 번 다시 닿을 일이 없다면 강청 역시도 몇 년이 걸리건 몇십 년이 걸리건 언젠가 그 속에서 부스러진 마음의 잔재를 내려놓는 날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영월에게서 연락을 받는 순간 그렇지 않아도 기약이 없던 퇴색의 과정은 다시금 그 순간에서 멈추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이별을 끝낼 방법. 그래, 그가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질문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렇게 칭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는, 그저 만나고 싶었다는 그 야속하고 무책임한 말만을 남기고 문 뒤로 사라져가는구나.
강청은 가만히 말없이 눈 앞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고 섰다. 하염없이 문을 바라보다가, 카메라맨에게 고개를 돌리고 묻는다.
"잠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다녀오는 정도는 상관없겠습니까? 야간의 도로는 한적할 테니, 금방 돌아올 수 있습니다." "PD님한테 말씀드려봐야 해요. 어디로요?" "유리 궁정에 잠시 다녀올까 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게 있어서요."※
─분명 열한 시라고 고쳐 말했는데, 강청 역시 그것을 들었을 텐데, 강청이 문을 똑똑 두드린 시간은 정확히 아침 열 시 정각이었다.
# ※ 불가능할 경우, 강청이 유리 궁정의 친한 직원에게 연락해서 유리 궁정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열리고 닫힌 영월의 방문에서 툭, 스륵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가녀린 등이 문에 닿고 지친 다리가 무너지며 그대로 주저앉는 소리다. 그녀는 그 상태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문 밖에서 청의 인기척이 서성이다 사라지고도 한참을 더.
앉아서 무릎을 끌어안고 그가 한 말을 되짚는다.
왜 이제야 그러냐 물으니, 그녀의 입으로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 했다. 그가 여기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를 만나지도 않았을거 아니냐 했다. 자신의 말을 온전히 들어줄 거냐 했더니 똑바로 말을 할 각오는 있느냐고 받아쳐졌다.
...3년 만인데. 서로를 향한 말에 온기 한점 없었다. 술기운마저 흐릿하게 만들 정도로 냉담하고, 서늘하고... 평정을 가장해 도망쳐 스스로를 감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차가웠다. 그녀는 그렇게 보이게끔 가면을 쓴 것이지만. 청의 그것은 진심이고 진정으로 느껴져 더 몸이 식는다. 뼛속까지 시려온다. 그녀는 팔로 몸을 감싼 걸론 부족해 손으로 옷 위를 움켜쥐었다. 희미한 떨림이 손에서 몸으로, 몸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참상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 앞에 두니 예상보다 더한 그의 모습에 시시때때로 겁이 나려 한다. 수백의 관객을 눈 앞에 두고도 손 한번 떨어본 적 없었던 그녀다. 평론가들에겐 인형, 기계, 그런 평을 듣는 그녀를 단 한 명이 휘어잡고 흔든다. 단 한 명에게 흔들린다. 단순히 과거의 죄책감 뿐일까. 아니면 헛된 희망을 품은 미련 때문일까. 알 수 없기 때문에 겁이 나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 도망치고 싶지만,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스스로 박아놓은 족쇄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풀 수 없다. 이 시간이 끝나야만, 결과가 나와야만 풀리게 해두었으니까. 돌이킬 수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 그녀는 더욱 더 자신을 감싸고 웅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뻣뻣이 굳은 다리를 겨우 풀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취침한 것은 그로부터 몇시간이 지나서였다.
"...으으..."
기나긴 밤이 지나 날이 밝을 무렵. 그녀는 숙취로 인해 맞춰놓은 알람 시간보다 일찍 깨서 앓고 있었다. 원래도 술에 약한데 이것저것 섞어서 마신게 영향이 컸다. 그래도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지, 라고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나 뼈저리게 통감한다. 게워내느라 쓰린 속에 겨우 물만 마시고 이부자리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하던 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정갈한 소리에 그녀는 이불을 살짝 내리고 문을 지그시 보았다. 눈만 굴려 탁상 시계-집에서 가져온 것-를 보니 딱 10시 정각이어서, 설마 그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사실 정신이 흐려서 제대로 생각을 못 했다는게 맞다만.
"누구세ㅇ..."
노크 소리가 나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녀의 방문이 끼익 열리며 퀭하고 초췌한 모습의 그녀가 밖에 누가 왔는지를 본다. 누군지 확인이 먼저이지 않은 걸 보면 원래 무방비하거나 숙취라 그런 걸까 싶다. 그녀의 흐리멍텅한 눈이 느릿느릿 위로 올라가 그의 얼굴을 보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확인한다.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느릿-하게 그의 방문을 확인하자, 뒤늦게나마 열였던 방문을 반 정도 닫는다. 이제 얼굴 한쪽과 문 잡은 손 하나만 슬며시 내보이는 채로 말했다.
"약속시간... 아직일 텐데요..."
분명 11시라고 했는데 왜 지금 왔느냐.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무슨 일이냐고, 말 대신 시선으로 묻는다. 부스스한 앞머리 사이로 새카만 눈이 무겁게 깜빡이며 청을 응시했다.
"안녕?" 이소금: (두리번거리다가) "아, 안녕하세요." (나한테 인사한 게 맞나? 맞겠지?)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해?" 이소금: "자, 잘 안 듣는데... 그림 그릴 땐 감각이 예민해져서요. 귀 아프고... 아, 그래도 쉴 땐 들어요. 어릴 때부터 듣던 오르골이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음악은 편해요. 성악, 도... 좋아... 했어요. 잘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아니. 그러니까... 아니에요. ...이거 편집해주세요!" (직후, 약간 울먹이면서 도망갔다.)
"난 포기할 거야. 다 관둘 거라고." 이소금: "..." 소금은 제 목을 손으로 누른다. 손톱이 살을 다시금 파낸다.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한 혀는 굳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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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금의 펜던트는 무엇일까? 금이 간 피코크 그린 색의 보석이며, 뜻은 '보호' 입니다. 지금, 몹시 불안하나요?
>657 정말 어마무시하게 파워풀한 소문이네요. 그 진실 여부가 절로 궁금할 정도로. 아무튼 자캐를 표현하는 글 속에서 막 더위 속에서 힘들어하는 소금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음악 답변..ㅋㅋㅋㅋㅋㅋ 제작진은 편집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아니 그 와중에 자해는 안된다! 자해는!
>>659 소금이 인생에 몇 없는 기운찬 소문이지 진실은 몰라몰라 지만! 이런. 편집의 자비는 없었고 소금이는 약간 삐졌다는 풍문이 들려왔다고 한다~ 지만 어쩌겠어 인생은 냉혹한 법이란다 소금아. 소금이의 안 좋은 버릇 생각보다 빨리 공개해버렸네! 그렇지만 대충 다들 짐작했을 거 같고!
"분명히 열한 시라고 들었다만, 지금 꼴로 봐선 열한 시가 돼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강청은 영월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제의 차갑게 날이 선 비난과는 조금 뉘앙스가 다른, 덤덤한, 아니 어쩌면 골계미까지 느껴질 만한 그런 힐난의 눈빛이다. 진눈깨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어젯밤을 보냈다. 오늘은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옅은 구름이 가득 낀 채로 무겁다. 그의 손을 바라보니, 이것저것 식재료와 요리도구가 든 봉지와 냄비 하나가 들려 있다. 냄비 안에는 양파와 파, 그리고 뭔지 모를 누렇게 뜬 뼛조각이 들어있는 육수가 가득 담겨 있다. 묘하게도 훈연향 같은 게 나는 육수다. 아직 완성된 요리는 아니다. 아마 영월의 방에서 요리할 모양이다.
누렇게 뜬 뼛조각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하몽의 살을 모두 발라내고 남은 뼈다. 하몽 뼈... 하몽 뼈 같은 매니악한 육수 재료를 따로 파는 곳은 없다. 그렇다고 뼈 하나 고아내자고 그 비싼 통 하몽을 사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요컨대 전문적인 양식점에서나 구할 수 있는 육수 재료다. 영월은 아직 모르겠지만, 강청은 술이 깨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이 유리 궁정에 잠깐 들렀다 왔다.
"들어가도 되나? 육수가 식을 것 같은데."
양 손으로 냄비를 잡고, 한쪽 손가락에는 봉투를 꿰어쥔 채로 강청은 영월에게 허락을 구했다.
강 청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가장_좋아하는_호칭은 "잊어버렸어." "강청 씨. 혹은 당신. 그 정도면 서로간에 충분하겠지."
아기와_단_둘이_방에_남았는데_아기가_울기_시작한다면_자캐는 (상황파악이다.) (스탭 1: 기저귀에 이상이 생겼는가? 네/아니오) (네: 기저귀를 교체한다. 스탭 2로.) (아니오: 스탭 3으로.) (스탭 2: 아기가 계속 울고 있는가? 네/아니오) (네: 스탭 3으로.) (스탭 3: 아기의 몸에 건강상의 이상징후가 있는가? 네/아니오) (네: 근처의 가까운 소아과를 최대한 빨리 방문한다. 상황 종료.) (아니오: 스탭 4로.) (스탭 4: 분유를 태워서 먹인다. 아기가 먹는가? 네/아니오) (네: 스탭 5로.) (아니오: 스탭 6으로.) (스탭 5: 분유를 먹였음에도 아기가 계속 울고 있는가? 네/아니오) (네: 스탭 6으로.) (아니오: 상황 종료.) (스탭 6: 핸드폰을 켜서, 아기가 좋아할 만한 유아용 프로그램을 킨다. 보여준다. 아기가 계속 울고 있는가? 네/아니오) (네: 뽀통령을 거른다고...? 급히 주변의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취한다.) (아니오: 상황 종료.) (그리고 강청의 얼굴이 무서워서 운 거였다고 합니다.)
자캐의_약간_중간_엄청_화날때_단계별_반응 약간 화난 강청: 빨리 치워. 손님들이 기다리신다. 중간 화난 강청: 정신 똑바로 차려. 뭐하는 거야, 이게. 엄청 화난 강청: 문제가 뭐야. 뭐가 문제야 지금. 뭐가 문제라고 생각해? 지금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얘기 좀 해봐. 200도라며. 2백 도로 예열했잖아. 네가 예열 다 됐다고 얘기해서 나는 넣은 거잖아. 35분을 구운 거잖아. 맞지? 근데 왜 이래. 결과가 왜 이래. 내 생각에 더 이상... 일 시킬 게 없을 것 같아. 그냥 와가지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러다 그냥 집에 가, 그냥. ...아니, 누군들 그러려고 그렇게 했겠어. 일부러가 아닌 건 알겠어.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잖아. 어떡해. 안 될 것 같았으면 중간에 얘기를 했어야 될 거 아니야. 안 되면 안 된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10분이 더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을 했으면 내가 너한테 10분을 줬겠고, 밑의 부분이 잘 안 익을 것 같아요, 하고 이야기를 했으면 아 그러면 뒤집을 거니까 시간이 좀 괜찮아서 내가 가가지고 셰프한테 얘기는 할 수 있잖아. 이런이런 문제가 생겨서 저희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했는데 그런 얘기를 안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파악을(이하 생략) (승우아빠의 전설적인 오븐 갈굼 레퍼런스)
>>689 큰 화상이라... 업무를 중단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화상으로 입은 거면 백몇십 도까지 예열한 기름을 엎질렀다던가 불판 위로 넘어졌다던가 화재가 났다던가 정도인데 일단 강청이 반응 이전에 주방이 뒤집어지지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강청의 반응은 가장 먼저 119를 부르던가 구급함이나 소화기를 가져오던가 앞장서서 해결하는 편
다른 사람에게 튀었다고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기름 엎지른 수준이 아니고서야 조금 튀는 정도인데, (물론 튀는 기름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자 각종 근무 요령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튄 기름에 화상을 입었다면) 1~2도 정도의 가벼운 화상 대처 요령은 강청이 잘 숙지하고 있는지라 응급처치를 해준다. 다만 피크라서 바쁘면 응급처치요령을 알려주는 정도
청이 호칭...잊어버렸... (얼감) 잠깐 생각해봤는데 아마 영월이는 이름을 그대로 불렀을거 같다. 청아, 뭐하고 있어요? 하고. 존댓말은 꼬박꼬박 했을텐데 이름만 편하게 불렀을 듯. 오빠는 아주 가-끔 잠이 덜 깼거나 술 취했거나 했을 때 한번씩 나오지 않았을까... 청이 화내는거 영월이는 본 적 있을까나? 왠지 없을거 같네.
약속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되어도 그녀의 사정이 달라지지 않을 거 같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솔직히 뜨끔했다. 벌써 10시인데 씻지도 못 했고 정신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당장 준비를 시작해도 빠듯한 시간이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과 전날과 비슷하게 보이는 그의 시선에 대뜸 날을 세우려던 그녀의 입은 눈이 본 것들로 인해 열리지 못 했다.
아마도 식재료인 것이 든 봉지와 이미 무언가 들어있는 냄비. 그의 손이 들고 있는 물건들은 그러했다. 깨닫고보니 희미하게 육수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 뭔가를 끓이거나 우려낸 국물인가. 그걸 왜? 설마 그녀 먹으라고 가져왔나?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의 말이 선수를 쳤다. 들어가도 되냐는 물음에 그녀의 눈이 반사적으로 커진다. 그가 자신에게 주려고 저것들을 가져왔다는 현실과 묵묵한 허락의 말에 머릿속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와글와글. 우글우글. 머릿속을 가라앉히려 눈을 한번 꾹 감았다 뜬다. 그리고 들어오라고 하려다가, 급하게 문을 닫았다.
"자, 잠, 잠시만요!"
새된 목소리가 문 너머로 울리고, 얼마간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이어진다. 여기 온 이후로 제대로 하지 않았던 방 청소를 급히 하게 된 까닭이었다.
창문 열고 환기하며 급하게 옷을 정리하고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작은 소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조금 후에 한층 더 퀭해진 영월이 문을 열고 청을 보며 손짓했다. 잠깐 사이 머리가 더 부스스해진 건 덤이다.
"들어오세요..."
양 손에 물건을 든 그를 위해 그녀가 문을 한껏 열어 허락한 방 안은 그의 방과 구조적으로 다를게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최소한의 물건만 내어놓고 그다지 사람 사는 티는 나지 않는다는 점. 싱크대를 봐도 사용한 식기가 컵 뿐이다. 그 아래 쓰레기통엔 칼로리 바, 에너지 바, 하루견과 봉지 따위만 그득하다. 그를 들인 후에 문을 닫은 그녀는 기운이 급격히 빠짐을 느끼며 침대에 가서 걸터앉았다. 조금 어색해보이는 파자마 차림인 채로 고개를 숙여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용건, 끝나면... 부르세요..."
숙취로 인한 어지러움으로 겨우 꺼낸 말이었지만. 전날밤부터 보인 태도가 있으니 지금도 그가 뭘 하던 참견도 관심도 갖지 않겠다는 듯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구월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를 빤히 위로 올려다보다 팔을 하늘 높이 휘저어 나뭇잎 하나를 기어코 엄지와 검지 사이로 따낸 구월이 햇살처럼 웃는다. 정말 당신이 진심이라면 그 짧은 인사도, 소담한 커피 한 잔도, 그 불필요한 찰나의 시간낭비도 전부 불운 중 행운의 3초, 30분, 3시간이 될 테니까요. 당신이 진심이 될 수 없고 불행의 시간이라 여기는 까닭을 알 것도 같으니 그렇다면 그 언젠가는 꼭 당신의 세잎, 네잎을 발견하길 빌며. 구월은 손에 쥔 나뭇잎을 바람에 팔랑거린다.
"해로운 데이트는... ...."
구월은 조금 입을 오물거렸다가 둥근 눈을 하곤 윗입술과 밑입술을 꾹 다물어 버린다.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은 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다. 은석이 물음표를 띄운다면 검지로 x자를 만들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이 얘기를 들을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것만 같아서. 이미 은석에게 먼저 묻고 대답까지 받아 놓은 구월의 이기적인 행동. 하지만 이미 삼켜버린 말은 부식되어 쉽사리 건져낼 수 없다. 눈치를 보는 구월은 휘파람을 불었다.
"정리할래? 정리해 주고 싶어?"
은석의 시선이 앞머리로 쏠리자 구월 또한 눈을 위로 모아 제 앞머리를 빤히. 잠자코 까치발을 들어 은석의 앞으로 친히 앞머리를 자랑해보고.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면 눈을 반으로 접어 해사하게 웃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왠지 불안한게..
"근데 도망 갈 거지롱."
그대로 은석을 또 한번 지나쳐 기숙사 쪽으로 전력질주 하는 게. 어떻게든 잡히기 싫어 몸을 이리저리 휘어 다니는 괘씸한 고양이 같달지. 잡힐만 하면 어떻게 해서든 기어코 쏜살같이 거리를 멀찍 벌려 버린다. 생긴 것과 다르게 구월은 또 한 때 장기가 육상이기라도 했는지 아슬아슬하게 머리카락만 잡힐 거리로 무지 잘 뛰는 게 코미디나 다름 없었다. 이러려고 운동화 신었던가. 그가 처음부터 뛰질 않았든 중간에 포기를 했든 기숙사 끝까지 함께 쫓아왔든 아무튼 구월은 기숙사에 먼저 도착하여 숨을 헉헉 내쉬다 은석과 마주하게 된다면 밉지 않은 얼굴로 혀를 내밀고 헤실헤실 웃으며 샤워를 하러 제 방으로 말도 없이 쏙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급발진으로 일상 마무리 할게! 같이 어울려줘서 고마워 은석주! 구월이는 분명 길고양이 같네 아무래도 ^3^...!!!
"자신을 살려 달라 애원하는 악인에게?" 오선율: 상황 정보가 부족하긴 하네. 보통은 법대로 하게 넘길 텐데, 요즘 독자들은 안 죽이면 고구마라고 하더라? 근데 필요 없는 것 같다고 마구 죽이면 또 나중에 등장시킬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서 리타이어... 어때.
"네가 가진 가장 특이한 물건은?" 오선율: (고교 시절 극소규모로 자비 출판한 소설 찌끄레기라고 차마 말할 수 없다)
>>752 우와. 필사적으로 최대한 안 엮일 것 같은 이에게 보냈군요. 뭔가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머리를 굴렸을 것 같은 예감이에요. 아앗. 그런데 누구를 지목할지는 답 안해도 상관없었는데! 그냥 어떤 반응일까 싶어서 물어본 거라구요!
은석이요? 은석이는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굳히고 성규를 지목하지 않을까 싶어지네요. 가장 무난하게 넘어갈 것 같고 그렇다고 막 소외시키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믿고 말이에요. 물론 이건 앞으로의 진행에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기 때문에 정담은 못하겠네요.
>>759 채린이는 질문을 받고 괜히 기분나빠하다가 복잡한 기분으로 구월이를 고를 것 같은걸요! 아린이랑 영월이랑 소금이는 말랑뽀짝하게 생겨서 쫌 그렇고, 구월이는 으른섹시여서 쫌 그렇지만 그래도 나머지 셋보다 기분이 쫌 덜 그런 구월이를 고를 것 같아요...?(느낌적인 느낌..?)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평균보다 훨씬 예민하며 까다로운 기질을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예체능 계열에서는 머릿수가 적지도 않은 특징이지만 소금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별난 축에 속했다. 운 좋게 그런 면까지 감싸주고 알아주는 가정에 태어나서 망정이지, 조금만 어긋났어도 지금과 같은 성공은 고사하고 생존 여부조차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소금을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동경, 혹은 혐오. 어느 쪽이든 기껍게 곁에 둘 수 있는 시선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소수의 예외가 소중했다. 친구라던가, 언제나 그의 편인 부모님, 그리고.
"으음... 어... 왜 어둡지?"
소금은 후덥지근한 야외의 공기 속에서 눈을 떴다. 몸 밑에 깔려 있던 체크무늬 돗자리가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바스락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느긋하게 노래하던 회전목마 오르골은 언제 멈췄는지 꽤 길었을 것 같은 침묵을 홀로 감내하고 있었다. 소금은 황급히 지급받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밤 11시...
"세상에."
몇 분 쉰다는 게 아주 숙면을 했다. 미쳤나. 아무리 지난밤 잠을 설쳤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런 탁 트인 장소에서. 커다란 두 눈이 주변을 살핀다. 숙소 근처의 공원에 딸린 호숫가와 잔디밭은 호젓해서 조용히 작업에 몰두할 장소로 제격이었다. 그리고 소금이 여기 도착한 뒤로 내내 그랬듯 인기척 또한... 없다. 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자고 있을 때 어쨌는지는 알 길 없지만.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소금은 캔버스 위에서 싸늘히 식어버린 페인팅 나이프를 주섬주섬 챙겼다. 아, 조금 울고 싶다. 사실 이 무더위에 밖에서 작업을 할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방 안의 쾌적한 공기가 유채 물감 특유의 냄새에 서서히 잡아먹힐 즈음에는 작업 공간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걸 외면할 수 없어졌고, 그 와중에 환기를 위해서 창문이며 문을 열어 제끼다가 카드가 동봉된 쿠키 박스를 발견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게 뭔가 하고 무심하게 봤다가 카드에 적힌 이름을 확인 후 요란히 떨어뜨리는 바람에 조용한 복도 위로 웅장한 소음을 장식하고 말았으니까.
그런 연유로, 저녁 초입 부터 자기 몸만 한 캔버스와 자질구레한 것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챙겨 도망쳐 나온 것이다. 뜯어보지 않아도 내용물 상태가 빤한 쿠키 박스까지.
"바보 같아..."
더 웃긴 건, 이 더위 아래서 그림을 그리긴 그렸다는 거다. 기나긴 작업 하나가 며칠 내로 끝날 것 같다는 전망이 소금의 마음 속에 유일한 빛이 되어 내린다. 얇은 손가락이 오르골을 다시 돌린다. 딱 한 번만 더 듣고 들어가야겠다. 가능한 조용히.
취침모드로 켠 에어컨 바람은 시원하건만 오늘따라 요상하게 잠이 안와 은석은 침대에서 몸을 굴리다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오늘은 빨리 자긴 글렀는데. 물론 아직 새벽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밤 11시에 가까운 시간이었기에 잠을 잘 시간은 아니었다. 허나 보통 별 일이 없으면 12시 무렵에 잠드는 그였기에 지금쯤 슬슬 피곤함이 몰려와야 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피곤함이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그 피곤함이 점점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석은 난감한 감정을 담은 웃음소리를 냈다. 설마 카페 일을 안 한다고 이렇게 된걸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은석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연두색 잠옷 파자마를 벗고 정말로 가벼운 하얀색 반팔 셔츠에 여름용 청바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적당히 산책이나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에어컨을 끈 후에 방 밖으로 나섰다. 주인이 방을 비우자 방 안 가득 찬 차가운 공기가 바닥에 천천히 깔리며 침대는 물론이요, 창문까지 살며시 덮었으나 점점 그 형태을 잃으며 다른 공기에 동화되어 천천히 사라졌다. 그럴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에너지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은석은 굳이 에어컨을 다시 키러 오지 않았다.
아무튼 기숙사 밖을 나와 공원으로 향해 길을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호숫가에 비치는 달을 구경하기 위해 호숫가로 향하던 도중, 어딘가에서 오르골 소리가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확인했다. 저기 저 잔디밭 방향 같은데? 잠시 달을 보는 것을 보류하며 그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고 이내 소리의 발진지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려 조용히 울리는 오르골이 울리는 그곳에 돗자리가 깔려있었고 한 여성이 있었다. 이 시간에 돗자리를 깔다니. 고개를 갸웃하며 그는 자연히 여성의 얼굴을 바라봤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던 그는 이내 자신이 새로 받았던 '추가 참가자' 자료에 있었던 얼굴임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밤이네요. 설마 이 시간에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소금 씨였던가? 달 보러 나왔어요?"
조금 낯선 감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이였다. 사이좋게 지내서 나쁠 것은 없었기에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냈다.
자괴감도 부끄러움도 잔잔한 오르골 소리를 듣다보면 서서히 가라앉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바늘 끝 같던 신경을 다스리기 위해 주어졌던 최소한의 처방은 오늘날까지 훌륭하게 효과를 발휘한다. 문제가 있다면, 살짝 중독됐다는 것 정도.
"헉!"
한 번만 더 들어야지. 가 두 번에서 세 번, 네 번으로 넘어가고 다섯번째를 달성할 무렵 은석이 등장한 건 객관적으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행위를 관두게 할 좋은 터닝포인트 였지만 소금에게 있어서 그의 등장은 잔잔한 물에 돌 하나를 던진 것과 같은 상황. 때문에 가라앉아 가던 감정과 열이 불시에 주어진 외부 자극을 따라 돌출되고, 그래서 소금은 필요 이상으로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모든 반응들에 은석의 잘못은 단 1g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름, 어떻게..."
바쁘게 흔들리던 시선이 문득 은석의 얼굴에 고정된다. 처음 보는데 익숙하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그러니까... 아, 맞아.
"아... 그, 최, 최은석 씨...? 맞나요?"
정체를 깨닫게 되자 조금 전 스스로의 행동이 꽤 무례했다는 것도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은석을 알아봤음에도 소금은 여전히 진정하지 못한 채 허둥거린다. 넘어진 채 돌아가는 오르골이 처량하다.
"아, 아뇨. 저는 일하러..."
돗자리 바로 옆에 파도와 목련이 섬세히 묘사된 커다란 캔버스가 떡 하니 존재하고 있는 것 하며 몸에 걸쳐진 헐렁하고 긴 진청색 멜빵바지가 물감 투성이인 걸 보면 이게 거짓말이 아님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은석 씨는, 달 보러 나오셨어요?"
한 번의 심호흡 끝에 드디어 되돌아온 질문은 그나마 듣기 괜찮게 정돈된 상태였지만 글쎄. 어수선한 모습은 이미 들켜버렸고. 그러니 부끄러움은 두 배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그 목소리에 은석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상당히 당황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석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앗을까. 말을 붙이지 말고 스윽 사라지는 것이 나았을까. 여러 고민을 했지만 이미 말을 붙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며 은석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요? 이 시간에?"
물론 이 시간에 일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보통은 잠을 자거나 잘 준비를 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그녀의 직업이 화가였던가? 그러면 이 밤중에 보통 그림을 그릴까? 실제로 캔버스와 옷차림, 물감자국을 보면 정말로 그림을 그리러 온 것 같아보였으나 그건 그것대로 조금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딱히 위험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여름 밤이 짧다고는 해도 가급적 이 시기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밤이 되면 모기가 많이 날아들잖아요? 이런 풀밭이면 엄청 많을 것 같은데."
사람의 피를 노리는 모기, 혹은 그냥 근처를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많은 것이 그 원인이었다. 밤중에 카페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면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그는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혹시 근처에 모기가 없는지 고개를 살며시 두리번거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기가 보일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행히 근처를 날아다니는 커다란 벌레 등은 없어보였기에 그는 안도를 할 수 있었다.
"네. 오늘따라 잠이 안 오기도 하고, 피곤하지도 않아서 그냥 산책 좀 하다가 호수가에 비친 달을 보고 들어갈까 했거든요. 이 시간대에 비치는 달이 제일 예쁠 것 같아서."
물론 실제로 다른 시간대별로 비교를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에 대한 정확한 팩트는 없었다. 그냥 단순히 그럴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며 그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달 대신에 더 귀한 것을 보게 되네요. 여기 와서 소금 씨 한 번 만나라고 오르골이 음악을 그렇게 간절하게 울렸나? 하하. 아무튼 잘 부탁해요. 남은 일곱 주. 첫번째 주는 거의 다 지나갔으니 말이에요."
지금 시작한 게 아니라 아까 시작했다가 그대로 잠들었다는 자세한 고백은... 할 필요 없겠지. 필요 있어도 최대한 안 할 거다. 다행히도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고 단순히 의외인 것 뿐이었는지, 금세 주제를 바꾸는 은석을 보며 소금은 내심 안심했다. 물론 그 다음에 온 말도 흘려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 죠..."
멜빵 안에는 민소매 탑만 입어서 소금의 팔은 훤히 드러나 있는데, 모기가 이런 만찬을 피해갈 리 없었는지 잠시 둘러본 것 만으로도 물린 곳이 금세 발견된다. 이미 늦었구나.
"아, 여기... 진짜 물렸네요. 그런데 방에서 하니까 물감 냄새 때문에, 방에 배면 안 되니까, 그래서..."
이게 혼잣말인지 변명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투는 확실히 조심스럽다 못해 저자세다. 어쨌든 중요치 않은 말꼬리는 흐려졌고 소금은 다시 경청자의 자세로 돌아간다.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하러 왔다니, 조금 더 일찍 나오지 않아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랬군요... 가끔 그런 날이 있죠. 잠도 안 오고, 괜히 손발 가만히 못 두고... 아, 음, 저도 잘,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놀라서 죄송해요!"
뒤늦은 사과까지 엉망진창 순서로 건네면 그나마 말을 이어갈 약간의 용기가 솟는다. 돗자리 위에서 자리를 조금 옮긴 소금은 비워진 여백을 살짝 두드린다.
자신이야 이 프로그램에 이미 한 주 참석했다지만 뭔가에 집중할 때 갑자기 초면인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마찬가지로 깜짝 놀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말을 건 것은 역시 자신의 실례된 행동이자 미스가 아니었나 생각하며 그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좁혀진 미간을 원래 넓이로 돌리며 그는 약하게 숨을 내뱉었다. 밤인데 묘하게 덥다고 생각하며 그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하늘 위의 달이 잔잔히 담겨있는 호수 쪽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뜩 들려오는 그녀의 말과 허락. 앉아서 보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비어있는 자리에 앉으라는 이야기겠지. 그렇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보내며 조심스럽게 비어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딱히 그녀의 옆자리가 아니라 돗자리의 가장자리. 그것도 끝자락에 살짝 엉덩이만 내린 수준이었다.
"첫 주라. 아직은 다들 막 만난 사이니까요. 특별히 뭐 이렇다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분들을 만나 본 것 같네요. 아직 만나지 못한 분도 있지만요. 얼굴이야 추가 참석한 두 분 빼면 다 보긴 했지만."
이내 그는 무의식 중에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아린은 데이트 때 무슨 일이 있었을지 묘하게 신경쓰인 탓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 마음의 정리를 온전히 못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나 굳이 그런 속내를 비추고 싶진 않았기에 그는 웃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표정과 속내를 살며시 감췄다.
"첫번째 주 미션은 그냥 무난하게 끝났고, 두번째 주 미션이 슬슬 나올 것 같은데 뭐일지 감도 안 잡히네요. 첫 주는 여성 쪽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남성을 고르고 데이트 하는 거였는데.. 이번엔 남성 쪽에서 고르게 되려나."
그렇게 추측하면서 그는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소금 씨도 프린터물은 다 봤을텐데. 만약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남성을 골라야 한다면... 바로 이 사람이다 하는 사람 있었어요?"
/못할 것은 없겠지만...ㅋㅋㅋㅋ 호수에서 수영은 애매하죠. 아무래도 호수의 물이 온전히 깨끗할 수는 없기도 하고 깊이 문제도 있고! 수영을 하고 싶으면 워터파크나 수영장을 갑시다!
맞아 성규주 보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성규는 에이섹슈얼 또는 그레이섹슈얼 일까? 연애했었을 때 소금이가 손잡기랑 가끔 껴안기 정도는 했을 것 같은데 이 정도는 괜찮았을지~ 키스는 별로다 이런 말 직접적으로 했었을지도 궁금하네. 했든 안 했든 소금이도 최대 포옹 이상은 생각도 못했을거 같지만~
소금은 예민한 사람이다. 그건 곧 피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에게든, 스스로에게든. 가볍게 찌푸린 은석의 표정은 의도와 관계없이 소금의 그런 부분을 자극했고, 때문에 그는 조금 위축되었다. 말실수 했나? 머잖아 표정이 풀렸으니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끔히 가시지는 않는다. 하긴 언제는 아니었나. 이 정도면 영혼의 단짝이나 다름없거늘.
"그런가요. 저는 아직 은석 씨를 제외하곤 제대로 얼굴 본 사람이 없어서, 이번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보게 되겠지만요...! 음, 조금, 궁금했거든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다같이 지내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
없는 말도 아니다. 애초에 사람 볼 일이 전시회를 제외하곤 전무하다시피 한 만큼 소금은 이 어색한 단체 생활 자체에도 어느 정도 호기심이 있었다. 불편하고 긴장되고 무서운 건 물론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체험이 가져온 궁금증 또한 컸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힘내서 참여해보고자 마음 먹었던 거다. 애초에 처음 제안한 게 본인인데다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뺄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어디까지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은석 씨는 고르고 싶은 여성분이 있으세요?"
그리고 이건 거의 본능적으로 내뱉은 질문. 오랜 기간 관찰을 훈련한 소금의 눈에는 은석의 표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함유하고 있었는지가 얼추 보였다. 그렇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그러다가도 금세 덮어 버리는지.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머릿속이 복잡해서요. 그래도 꼭 골라야 한다면... 짧게라도 대화해 본 사람으로 할 것 같아요. 서면으로만 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
은석은 절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 연인과 헤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제 책임이었고 심하진 않더라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 주변의 제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도 마냥 좋은 행실은 아니었으니까. 정말로 좋은 사람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되는 연호를 떠올리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 와중에 이런 말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계산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그는 스스로 정말로 계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생각들을 표현할 일은 없었지만.
"제가 고르고 싶은 여성이라. 그걸 지금 말하면 혹시나 정말로 남자측에서 고르게 될 때 스포일러가 되는 것 아닐까요? 뭐, 혹시 알아요? 여기서 만난 것도 신기하고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싶어서 소금 씨를 콕 고를지. 그러면 너무 민폐려나?"
물론 정말로 고를 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고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깊은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 그 말을 가볍게 툭 던진 것은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보기 위함이었다. 당황할까? 역으로 반격을 할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거나 한숨을 내쉴까?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상대가 어떤 이인지 파악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그의 버릇 중 하나였고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아무튼 그의 시선은 곧바로 그녀의 눈을 향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자신이 던졌던 그 물음의 답이 나오자 그는 살며시 머리를 굴렸다. 짧게라도 대화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지금 시점에선 두 명이지 않겠는가. 자신과 그녀의 전 남자친구였던 이. 이름이 아마 성규였던가. 그가 남긴 깜짝 선물을 떠올리며 한 번 그 사람도 조만간에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은석은 이내 장난끼를 살짝 섞어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어라. 그렇게 되면 저도 대상자 중 한 명이 되겠네요. 우리 지금 이렇게 서로 얘기 나누고 있잖아요? 이게 긴 대화가 될지, 짧은 대화가 될진 모르겠지만. 뭐, 적어도 눈에 안 차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말을 마치며 그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쿡쿡 웃으면서 그는 시선을 그녀에게서 떨어뜨린 후, 다시 호수를 바라봤다. 작게 부는 바람에 호수 표면이 살짝 흔들렸고 그 위에 떠 있는 달도 가볍게 흔들렸다.
"방금 것은 농담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듣진 마시고 아까 들리던 오르골 음악은 무슨 곡이에요? 호수를 가다가 그 멜로디가 괜히 귀에 계속 밟혀서 여기로 왔거든요. 그래서 괜히 궁금하네요."
>>816 어이쿠 답변이 늦었네. 암시만 넣어봤는데 알아봐줬구나! 왠지 기쁘다. 성규는 에이엄이 맞아! 정확히는 아포시섹슈얼(성적인 것 자체를 거북해하는 성적 지향.) 에이섹슈얼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기도 하거든. 로맨틱 지향은 일단은 시스젠더 여성을 포함한 폴리로맨틱이야. 그리고 좋고 싫음이 명확하거니와 또 지향 면에서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서로 고백하고 사귀기로 했을 때 "나는 엄청 친한 친척 동생이나 그 정도로 친한 어린 애들에게 할 수 있는 스킨십 이상의 스킨십은 안 좋아하는데, 괜찮을까? " 정도로 물어봤을 것 같아. 정체화를 중학생 끝물쯤에 했을 것 같거든:) 물론 손잡기나 포옹 정도는 오히려 좋아했을거야! 가능한 건 엄하지 않은 부위에 하는 뽀뽀까지? 그런 점에서 스킨십 면에서는 잘 맞았었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던데. 같은 대답으로 돌려주는 편이 모범적이겠지만 아쉽게도 소금은 보편적인 모범 답안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었다. 은석의 발언에 뇌내 회로는 빙글빙글 돌다가 원점으로 돌아온다. 좋은 분들도 많거든요. 저와는 다르게.
"...은석 씨는... ...나쁜 사람인가요?"
암만 그래도 이건 일반적인 답안 거리조차 못 되는 빵점짜리 오답이 아닌가. 경계를 할 거면 적당히 둘러대며 발을 뺐어야 했고 정말 궁금했다면 돌려 말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건 그냥 발 뺄 곳도 없는 바람 빠진 직구다. 그래도 어떡해. 공은 이미 떠났는데.
"그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스포일러라."
스포일러도 룰 위반이던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하나는 확실하다.
"미, 민폐, 는 모르겠지만... 스포일러 걱정을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마 저는 안 고르실 것 같은데요?"
나름 자신 있게 대꾸한 것 치고는 똑바로 마주쳐 오는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 말만 보면 반박이 맞는데 갈 곳 잃은 시선 하며 침착하지 못한 말투는 은석이 던진 돌이 먹혀 들어간 증거다. 결과적으로 입만 산 사람이 돼서 꼴이 우스워졌지만 어쩔 수 없다. 맹금류가 연상되는 인상과 청산유수로 흐르는 말 앞에 소금은 말 그대로 독수리 앞 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에.
"앗. 거기까지는 생각을. 아니 그게, 그러니까..."
훌륭하게 말려들었다. 가볍게 웃은 은석이 이윽고 본 목적인 달 구경을 하는 동안, 소금은 괜히 돗자리 끄트머리나 쥐락펴락하며 구체적인 언어의 형태를 띄지 못한 기분을 삭인다. 산들바람은 열대야의 열을 식혔지만 그와 별개로 소금의 머리는 슬슬 과부하 직전의 상태였는데 때맞춰 오르골이 화두에 오른다.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문 리버예요. 변주가 들어가서 원곡이랑은 좀 다르게 들리는데 저는 이게 더 좋아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대답을 내놓은 소금은 넘어진 오르골을 똑바로 세우고 태엽을 다시 감았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모든 변주곡이 그렇듯 원곡을 알고 나서야 선명히 들리는 게 있다. 이를테면 본래의 가사.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달빛 아래에서 들을 예정은 없었지만 우연 치고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답레 묘사에서 은은하게 속 터지는 소금주를 엿볼 수 있음 이소금은 말빨을 길러 오도록 은석주 잘자 내일... 아니지 아침에 보자!
>>822 나도 늦게 봐버렸다...! 오호 맞았구나! 아포시섹슈얼 이라는 단어는 처음 알았는걸~ 새로운 지식을 알아서 즐겁다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 저장! 음음 그렇군. 소금이는 애인 사이의 스킨십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성규가 사귀기 전 언급한 부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 같아! 확실히 스킨십 쪽으로는 온도가 잘 맞았었네~ 이런 설정 알게 되는 거 좋아~ 답변 고마워 성규주!
>>826 이런 시간대엔 그럴 수 있지! 요새야 무성애자가 드라마에도 나오지만(런온이라던가) 워낙 세분화된 지향들이 다양하니까ㅋㅋㅋ 그렇게 잘 맞는 부분도 있었어서 헤어지기로 결심하면서 많이 망설였었겠다. 나도 물어봐 준 덕에 과거 설정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었어서 좋았어:) 땡큐!
"그건 소금 씨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죠? 그래도 굳이 답을 하자면 드라마에 나올 법한 나쁜 남자는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막 아. 저 사람 법 없이도 살겠네. 정말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네. 그런 정도의 사람은 절대로 아닐 것 같은데."
당장 이 순간에도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 자신에게 조금 더 이득이 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까라고 생각하는 이상 역시 자신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카페 영업을 하면서, 그리고 매사를 살아가면서 적어도 손해보고 살진 말자라는 마인드는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을 매사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계산적인 언동을 하게 만들었고 그건 지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저 씁쓸한 마음이 들어 쓴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답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물음에 자신이 낼 수 있는 답은 이 정도였다.
"고를지도 모르죠. 여기 그냥 일정기간 동안 놀고 먹고 쉬자고 모이는 곳 아니잖아요? 연애 프로그램이니까 새로운 사랑 엿보려고 소금 씨 넘볼지도 모르지. 어차피 소금 씨도 여기에 온 이상 솔로잖아요. 전 남자친구가 있건 뭐건 솔로면 넘보는 것은 자유지."
명확한 답은 아니었다. 프로그램에서 참 좋아할 법한 발언. 그와 동시에 마냥 시청자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발언. 결국엔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향할 것이라는 발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처음 참가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활용하고 이용할 것이다. 설사 그게 누군가를 방해하는 일이 될지라도. 어쨌건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이득을 차지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대체로 자신의 전 연인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더더욱 안 좋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저 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그에겐 질색이었다.
아무튼 꽤나 당황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는 돌발적인 상황이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크게 약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추측했다. 일단 기억해둘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얄궂은 미소를 보이다가 다시 표정을 관리하며 오르골에 대한 그녀의 답을 들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는 방금 들었던 멜로디를 가볍게 흥얼거리다가 목소리를 살며시 줄였다. 지금 들려오는 곡이 변주곡이라고 하니 원곡도 궁금하다고 그는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중에 방에 들어가면 자기 전에 유튜브로 원곡을 들어봐야겠네요. 검색하면 나오겠죠? 꽤 유명한 곡인 것 같으니까."
그냥 순수하게 어떤 곡인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멜로디에 맞춰 아주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음을 흥얼거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에 그의 흥얼거림은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케이크 보낸 거 혹시 소금 씨에요? 쿠키는 새로 오신 분 중 한 분이 보내셨으니 그 흐름을 따라가면 소금 씨 아닐까 싶은데. 아니면 패스하구요."
요컨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란 거지. 인상이나 말투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긴 했지만 본인 입으로 시인하는 건 느껴지는 무게가 다르다. 하긴 여기 제발로 온 사람 중 안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전 애인과 함께 참가하는 연애 프로그램. 연애나 사랑처럼 언뜻 달콤해 보이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을 뿐 뚜껑을 열어 보면 금화살과 납화살이 오가는 전쟁판이나 다름없을 텐데. 음, 역시 조금 무서울 지도.
"그건... 맞지만..."
넘보고 엿보고 같은 단어는 분명하게 소금을 향하고 있지만 정작 속 알 길 없는 멘트를 받고 있는 그의 생각은 영 다른 지점에 가 닿는다. 맞다. 여지조차 없이 그저 맞는 말. 만남의 자유가 보장되고 시청률을 위해 일정 이상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특성 상 그런 일은 심심찮게 일어날 것이다. 당장이야 초반이니까 조용한 편이지만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일어날 일. 그러면,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소금은 제 손목을 힘주어 쥐어짠다. 여기까지 온 이상 똑바로 마주하고 할 건 다 하자고 생각했으면서 정작 한구석에는 아직도 버릇처럼 숨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더운 바람이 폐부에 눅는다.
"맞아요. 그럼 후회하지 않게... 뭐가 어떻게 됐든, 잘 해내야죠. ...은석 씨도 응원할게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대체 뭘 응원하겠다는 건지. 딱 1회의 호흡처럼 흘러 나온 대답은 어딘가 불명확하고 차라리 독백에 가까웠다. 답변 보다는 다짐에 가까웠고, 그보다는 기침처럼 무심코 터져 나온 속내에 가깝다.
"...그, 그렇다고 그런,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막 하는 건 안 되고요!"
아무튼, 넋을 뺀 것처럼 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는 것까지 본다면 하나는 확신할 만 할 것이다. 머릿속에 들끓는 말을 잘 거르는 요령도 없는 인간이라고. 그리고 이런 감상은 문제의 케이크 발언에 보이는 반응으로 못을 박게 될 거다. 오르골 소리에 스미는 은석의 허밍에 조금씩 힘이 풀려 편하게 늘어지던 어깨가 단 한 마디로 다시 긴장되었으므로.
"그건... 그, 러니까..."
아, 타이밍이 귀신 같았구나. 이런 식으로 유추될 줄이야. 부끄러운데, 그냥 거짓말을 할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온 몸으로 정답을 표출 중인 걸 그 누구보다 소금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맞는데요, 그건 은석 씨만 알고 계셔 주세요. 다른 사람들도 이미 다, 알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제 손목을 잡는 쥐어짜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버릇인지, 아니면 뭔가 긴장된 것을 감추려고 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이런 프로그램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하나 그 이상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그 이상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어설프게 상대를 생각하는 척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래도 일단 기억은 해두자는 마음으로 눈동자에 그 모습을 담았다가 그는 살며시 시선을 옆으로 피해 다시 호수에 뜬 달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옆에서 들려오는 말. 오해의 소지로 시작되는 그 말에 그는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되게 귀엽네. 뭔가 조금 더 장난스럽게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살짝 꿈틀했으나 그는 그것을 꾹 누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소금 씨가 정말로 곤란하고 난감하다고 한다면 소금 씨에겐 그런 말은 하지 않을게요. 저도 사람 괴롭히고 싶고 그러진 않거든요. 애초에 이 프로그램은 상대가 정말로 싫어하고 곤란해하고 거절하는 것을 하면 안된다는 룰도 있고."
정말로 가볍게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는 거기에 더 말을 붙이진 않았다. 멜로디를 다시 흥얼거리며 달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구름에 살짝 가린 것 같은 달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잠시 감고 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멜로디 덕일까. 절로 이러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부풀어오른 풍선마냥 점점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를 톡 터트려보려는 순간, 그녀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답변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굳이 남에게 말해 뭐하겠어요. 저만 알고 있는 것이 낫지. 아. 약점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니. 애초에 약점도 아니지만 아무튼 주변에 이야기하진 않을테니 걱정 마요. 그 대신이라고 해야할까. 그 케이크는 어디 상품이에요? 굉장히 맛이 괜찮아서 나중에 제가 카페로 돌아갔을 때 계약을 해서 좀 납품을 받아서 상품으로 팔면 어떨까 해서."
거기서 말을 끊은 후, 그는 난감한 표정과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 말을 보충하듯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바리스타라서 커피는 나름 자신 있지만, 디저트는 제대로 만들질 못하거든요. 디저트 전담 파티시에도 카페에 있긴 한데, 그래도 그 케이크는 그 케이크대로 상당히 맛이 좋아서. 납품이 안된다면 그냥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사 먹을까 해서요. 아메리카노를 끓여서 먹으니까 조합이 괜찮더라고요."
그도 딱히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강청 역시도 어제 입었던 그 셔츠와 바지 차림 그대로- 아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야 한 모양이다. 영월이 익히 알고 있다시피 그는 자신의 패션에 퍽 무심한 편이었다. 좋은 옷차림이란 것을 분간할 줄은 알지만 어떻게 입으면 좋은 옷차림이 되는지는 모르는, 전형적인 패션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실패하지 않는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지만 고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그 때문에 옷장에 같은 옷만 여러 벌 있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종종 단벌신사냐는 우스갯소리감으로 쓰이곤 했지만. 그런 그에게 영월이 아직도 걸고 있는 목걸이 외에도 무언가를 더 선물해준 적이 있을까. 그러나 무엇을 선물했건, 지금의 그에게서는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목걸이까지, 모두.
그렇잖아도 예전의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뭔가 결여된 게 많은 사람이었는데, 오래간만에 만나본 그는 없어진 게 더 많았다. 예전에도 그렇게 잠시만요, 하고 문 너머로 후닥닥 도망가려는 영월을 더러 도와줄 게 있을까, 하고 물어봤었는데, 거절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한 번은 꼭 물어보곤 했다. 그런 자상함도 없어져 있었다. 굳이 자상한 인간으로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잠시의 기다림 후 입객령이 내려지자, 강청은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서서는 짐과 냄비를 잠깐 내려놓고 신발을 벗었다. 그는 딱히 어느 곳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다시 자신이 가져온 것들을 집어든 뒤 무덤덤하게 주방으로 향한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탁탁탁탁, 하고 불이 붙는 소리. 찬장을 여는 덜컹 소리와 함께, 도마에서 뭔가를 부지런하게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작고 가벼운 식물성의 식재료들을 가볍게 토막치고 채치는 그런 소리. 올리브유에 마늘 볶는 냄새를 시작으로, 이내 풍겨오는 이국적인 매콤함이 감겨 있는 감칠맛이 나는 향기. 방 안의 공기가 약간의 생동감을 되찾는 것만 같은 소리와, 냄새들... 그 모든 것이, 꽤나 오랜만이다.
강청이 냄비를 집어들고 다시 영월에게로 돌아오기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올리브 기름에 마늘을 볶고, 파프리카 가루를 뿌린 뒤에 사전에 갈색빛이 나도록 구워둔 바게트를 넣은 뒤 육수를 넣어서 끓여내어, 마지막에 계란을 넣어 살짝 익히고 얇게 저민 파를 튀겨서 고명으로 얹은 수프. 훈연향과 마늘향의 감칠맛이,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럽게 살아있는, 스페인식 마늘수프인 소파 데 아호. 향기로운 국물을 머금은 바게트와 계란의 식감으로, 스페인 현지에서 해장용으로 애용되는 수프다.
"다 됐어."
강청은 영월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고, 음식이 다 되었다는 말로 영월을 불렀다. 식탁 위에 냄비받침과 함께 냄비를 깔아두고, 숟가락과 앞접시를 하나씩 식탁에 올려둔다.
"그 꼴로 밖에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고, 데이트는 이걸로 갈음하자."
딱 잘라 말하면서 강청은 싱크대에서 사발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거기다가 시리얼을 차르륵 따르고는 우유팩을 뜯어서 사발 안에 부었다.
은석이 가볍게 뒤로 물러나자 안도와 동시에 약간의 낯뜨거움이 밀려온다. 곤란하다면 곤란하긴 했지만 저런 말까지 나오게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너무 질색했나. 뭣보다 원래 어느 정도는 이런 방송인데, 계속 하나하나 과반응을 보이면 곤란해지는 건 소금 본인이 될 지도 모르겠다. 알아서 진정을 좀 해야 할 텐데. 뭐,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이러는 거지만. 그런 의미에서 자꾸만 튀게 반응하는 그를 배려하듯 깔끔히 장난을 관둬주는 건 마냥 고마울 따름이고.
그렇게 이 주제는 일단락 되었지만 이어진 것도 소금의 기준으로는 첩첩산중인 편인데, 그럼에도 그의 뇌내 회로가 타버리지 않고 안정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흔쾌히 비밀로 해 주겠다 대답한 은석의 태도 덕이다.
"네, 그러면... 비밀이에요. 약속. 그리고 납품... 음, 방에 명함이 있으니까 내일 아침쯤 가져다 드릴게요. 사장님과 상의해보세요."
바리스타는 디저트도 어느 정도 만들 줄 알아야 하는 걸까? 평생 요리의 ㅇ자 근처에도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 데다가 요식업계의 생리는 잘 알지 못했기에 소금은 가벼운 의문을 품는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한다는 건 스스로 겸업을 하지 못하는 걸 신경 쓴다는 뜻일까? 하긴 파일에는 그냥 바리스타가 아니라 점장이라고 써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도 같고. 물론 모든 건 추측일 뿐이다.
"...열정적인 오너가 계셔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 든든하겠어요."
그래도 이건 진심이다. 곧 소금은 돗자리 옆에 대충 벗어던졌던 운동화를 다시 꿰어 신은 뒤 캔버스를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의 몸 위로 쏟아지던 달빛이 똑바로 세워진 거대한 캔버스에 가려져 이윽고 그늘이 진다.
물론 찾아간다고 해서 납품을 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가서 나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저쪽 가게에서도 방송에 나간 그 점장의 가게에 납품하는 가게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조금 더 인지도가 오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서로서로에게 이점이면 이점이지.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지금은 경제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 아닌만큼 이런 손익계산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며 그는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네요. 저거저거 또 여기까지 와서 사업 생각만 하고 있네. 라는 말만 안 나오면 다행일까 싶은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신은 결국엔 사업자인걸. 한 카페를 책임지고 있는 사장인걸. 결국 조금은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하며 그는 그녀가 일어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슬슬 일어나서 가려는 듯 보이는 행동, 그리고 말에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끝자락에 걸터앉았던만큼 딱히 신발을 벗진 않았기에 그는 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
"물론 같이 갈게요. 이렇게 새로운 사람도 만났는데 좀 더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거든요."
달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 사람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았다. 달이야 내일도 볼 수 있고 다음에도 볼 수 있지만 참가자와 단 둘이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희소성을 살며시 비교하며 좀 더 이득인 것을 취하면서 그는 정리를 도와주려는 듯 허리를 굽혔다.
"그럼 돗자리는 제가 정리해도 될까요? 다른 도구는 제가 함부로 만지면 안 될 것 같고 혼자 뻘쭘하게 서 있을 순 없으니까요."
그녀가 거절하지 않았다면 아마 정리를 도와주면서 들어줄 수 있는 짐은 그녀가 괜찮다는 가정하에 들어주지 않았을까. 이후는 아마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적어도 오늘은 딱히 플러팅의 플도 보이지 않으면서 미소만 짓고 기숙사까지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서 와요 소금주! 그렇다면 이렇게 대충 막레 비슷하게 써볼게요! 소금이의 행동이나 반응은.. 편한 쪽으로 생각하면서 마무리 지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과거엔, 많은 것이 있었다. 많은 무언가가 영월과 청의 사이에 혹은 서로에게 있었다.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속절없이 흐른 시간 속에 부서지고 닳고 떨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아버린 것이 허다하다. 그나마 남은 건 잔해가 되어, 그 잔해에 묻힌 이는 누구이며, 딛고 선 이는 누구일까.
그녀가 문을 열어 들어오라 하니 그는 말없이 들어와 주방으로 갔다. 시선은 줄곧 바닥 아니면 들고 온 것들에 있었던 것 같다. 초겨울 새벽바람처럼 가버리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그녀는 침대에 앉았다. 용건이 끝나면 부르라는 그녀의 말에도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잠시 이마를 짚고 있다가 옆으로 툭 쓰러졌다. 구겨진 이불 위에 모로 누워 주방으로 향하는 허공을 바라본다. 아득히 기억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두통은 가라앉고 설핏 눈이 감겼다.
잠과 꿈의 경계에서 일렁이던 그녀를 불러들인 건 다 됐다는 짧은 한마디였다.
딱딱한 부름 탓인지, 흠칫 놀라며 눈을 뜬다. 잠시간은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느라 주변을 천천히 돌아본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코로 느껴지는 향긋한 음식냄새가 먼저 정신을 깨웠다. 아, 맞다... 불과 30분 전, 그를 방에 들였던 사실을 떠올린 그녀는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밋밋한 머리끈으로 산발이 된 머리를 묶으며 비실비실 식탁으로 걸어간다. 이 꼴로 나가는 건 무리일테니 이걸로 대신하자는 그를 보고 식탁 위를 본다. 그녀의 자리엔 향긋한 음식의 근원으로 보이는 냄비가 있고, 먼저 앉은 그는 시리얼을 그릇에 붓고 있었다. 식탁을 반 갈라놓은 것처럼 극과 극으로 나뉜 상차림을 보고, 다시 그를 본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가 새로운 그릇과 숟가락을 들고왔다. 실내화도 없이 맨발을 슥슥 끄는 발소리가 식탁으로 다가와 서더니 새로 가져온 그릇에 수프의 내용물을 덜어내었다. 절반 조금 안되게 수프를 덜고 덜어내는데 쓴 숟가락을 그릇에 꽂아서 그의 시리얼 그릇 앞에 내려놓는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한마디도 없이 움직이고서 자리에 앉은 그녀가 툭 내뱉었다.
"술은 당신도 마셨으면서."
의중을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고 그녀는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운 수프를 앞접시에 덜어 푹 잠긴 바게뜨를 작게 자르며 식힌다.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건 쥐약이었다. 뭐든 한참을 불어 식힌 후에나 먹던 습관도 그대로였지만, 지금은 앞접시를 뒤적이며 식는 걸 기다린다. 겨우 식은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떠서 먹기 시작하면, 입에 그의 음식을 넣으면... 비로소 수프는 줄어들었겠지.
그녀는 제멋대로 덜어놓은 수프를 그가 먹는지 따로 확인은 않았다. 다시 주려고 하면 그릇을 밀어내거나 냄비를 자신의 쪽으로 당기며 거부는 확실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먹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릇도 냄비도 비어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그제사 작게 말한다.
"잘 먹었어요."
수프 만으로 해장이 잘 되었는지 그녀의 안색은 많이 나아져 있었을 것이다. 잠시 쉬면서 빈 그릇과 식탁 사이로 시선을 내리고 있던 그녀가 조금은 늦은 물음을 꺼낸다.
"왜, 가져온 거에요? 제가 미운... 원망하고 있던거 아니었나요."
자신이 밉고, 원망스럽고,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는거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굳이, 음식을 만들어주었는지. 다 먹은 후이니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어떤 대답을 듣더라도.
삼 년쯤 전 어느 날 주말 아침과도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언제나처럼 패션센스는 찾아볼래야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옷을 입은 어벙한 연인과, 무언가 먹을 만한 것이 차려져있는 식탁, 그 위로 흩어지는 햇살까지. 그러나 그런 풍경에서 마치 퍼즐조각 몇 개가 사라지거나 바꿔치기당한 것처럼, 그 풍경의 듬성듬성 비어있는 부분이 영월에게는 비명처럼 분명히 다가왔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강청은 반대쪽, 당신을 위해 빼어놓은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그릇에 우유를 부었다.
분명히 향기로웠고, 분명히 이국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거슬리지 않는 매콤함과 지나치지 않은 감칠맛이 편안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왜인지, 어째서인지...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넘기면서, 이상하게도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어낸 듯한' 이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입안에 든 것을 뱉거나 수저를 내려놓기에는 너무도 보잘것없고, 가볍게 모른 척해버릴 수 있는 그런 이질감이지만, 알아채지 못하기에는 너무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어떤 이질감이 그 그릇에는 있었다. 그의 손은 당신이 그를 떠나온 이후로 좀 더 빨개져 있었고, 좀 더 깡말라 있었고, 좀 더 근육이 두드러져 있었다. 마치 음식 만드는 연장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영월이 다른 그릇을 꺼내오건 말건, 수프를 새 접시에 덜건 말건, 강청에게 뭐라 타박을 하건 말건, 새 수프 그릇이 시리얼 사발 앞에 놓이건 말건 강청은 묵묵히 우유에 만 시리얼을 기계적으로 떠먹었다. 아니, 떠먹는다기보다는 연료투입구에 연료를 주입하듯이 밀어넣는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 영월이 다른 접시에 수프 한 그릇을 따로 덜어서 밀어주었음에도, 강청은 그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말 한 마디 없이 시리얼만을 뱃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무언가 반응을 이끌어낸 건, 식사를 마친 영월의 질문이었다. 강청은 날카롭되 텅 빈 푸르른 눈을 들어올리고 영월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한 마디 툭 뱉었다.
"너 술 못하잖아."
그게 끝이었다.
무슨 일인데 못 하는 술이 이렇게 된 건지. 순두부찌개 끓여놨으니까 아침으로 먹어. 이거 스리라차라는 건데, 핫소스야. 괜찮더라고. 오늘은 이걸 써서 네가 저녁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어보려고. 많이 넣을 건 아니고. 조금만. 그래도 향이 확 좋아질걸. 아, 그거... 새로 키우기 시작한 바질 화분. 말린 거랑, 그 자리에서 뜯어서 쓰는 거랑 향이 다르니까. 그건 양파가 아니고 샬롯. 영국의 유명한 셰프가 맛있는 레시피를 공개했길래 따라해 보려고. 조만간 공휴일이니까,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싶어서─
그런 말들을 입에 올릴 줄 알았던 남자가, 이제는 기계적으로 시리얼만을 입 안에 밀어넣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기억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그 남자에게는 없어져 있었다.
강청은 일어나서 식기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릇도, 앞접시도, 자신이 시리얼을 말아먹은 사발도, 쓰지 않은 숟가락도 정리했다. 그러나 아직 반절 조금 안 되는 양의 수프가 남아 있는 그 그릇만은 그대로였다. 그는 그릇들을 모두 정리해 싱크대에 집어넣었다. 곧 설거지를 시작한 듯, 쏴아 하고 싱크대에 수도꼭지 열리는 소리가 영월에게도 들려왔다.
왜- 냐는 물음은 이번에도 짧은 대꾸로 끊겼다. 분명 언젠가는 더 많은 대답이 돌아왔었는데. 묻지 않은 얘기도 해줬었는데. 위장은 편해졌지만 그 속 깊은 어딘가는 되려 뻐근해졌다. 그가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않았다. 저멀리 주방에서 물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가슴팍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얄팍한 옷감 너머로 팬던트의 감촉이 아릿하다.
부서진 잔해를 밟고 선 건 자신이었다.
설거지하는 물소리 만이 주방을 넘어 방안을 조용히 울리고 있다. 그녀는 굳은 듯이 의자에 앉아있다가, 삐걱이는 움직임으로 일어나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물이라도 마시러 가는 건, 아니었다. 힘없는 걸음은 싱크대 앞에 선 그의 뒤로 다가가 옷을 잡으려 한다. 전날 밤 잡았던 것처럼. 하얀 손이 움직이고 나면 작은 목소리가 그 뒤를 잇는다.
"원하는게... 뭐에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해요...?"
어차피 보이지 않을텐데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차마 발 밑도 보기 힘들어 눈을 꾹 감았다.
너무도 기계적인 목소리다. 쥐어짜이는 심장을 거머쥐고 등 뒤에서 옷깃을 붙잡고 애걸하는 한때 애인이었던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기에는 너무도 무심했다. 핵겨울이 몰고 온 진눈깨비를 뚫고 나오자, 회색 낙진으로 뒤덮인 황야가 나타났다. 그는 산산조각이 났다. 인간으로서 잃어버리거나 망가지면 안 되는 여러 부분들이 사라졌거나 망가졌다. 새는 태어나기 위해 하나의 세계를 부수어야만 한다. 산산이 조각난 세계를 보는 소감이 어떤가. 강청은 영월의 소감이 어떠하건, 아랑곳없이 손을 움직여 계속 설거지를 이어갈 뿐이다.
"정말이지."
사발을 건조대에 올려둔 강청은, 마지막 남은 설거지거리인 냄비 안으로 수세미를 툭 던져두고 고개를 뒤로 돌려 영월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눈이, 마치 모조로 만들어진 마네킹 눈 같이 공허하게 바라본다. 시선도 잃고 초점도 잃어버린 눈이 물리적인 방향만을 겨우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영월이 잔인하기를 바랐건만. 자신을 뒤로 하고 이기적으로 그녀만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랐건만. 그러면 영월이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니 자신이 버려졌고,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이라도 해볼 텐데. 잔인함이라는 훌륭한 도구까지도 필요없이 그냥 맨손으로 대중없이, 그렇게 대충 탁 털어버렸다는 말인가. 강청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걸렸다.
연애/플러팅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 사실 어떻게 할지는 개개인의 자유니까요. 자신의 캐릭터의 연애의 미래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자신에게 있다가 이 스레의 전재조건인걸요. 결론은 저는 막 연애스레인데 왜 나는 짝을 못 만들지. 왜 내 캐릭터는 인기가 없지. 이렇게 투덜투덜거리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914 스레의 주된 주제는 연애지만 연애라는 큰 틀 안에 어떤 서사와 주제를 녹여낼지는 오너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915 상황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별 일이 없는 이상 마음을 접어버리지 일단 강청이 가정사가 망한데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지라 자존감이 전무한 상황이기에 감히 누구에게 다가갈 엄두를 못 내 영월이랑은 별 일이라고 칭할 만한 기적적인 계기가 있었을 거야 다시 말해 상대 측에서 공략을 진행해줘야 하는 던전계 남자라고 할 수 잇슴(???)
>>916 (왜 내 캐릭터는 인기가 없지... 라고 구시렁거리기엔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음)
여기까지! 1차 미션은 이걸로 종료할게요. 그리고 선율주와 아린주의 경우는 아예 미션 자체를 시행하지 못했고 이 부분은 다시 몇번이나 확인했지만 선레를 쓰겠다고 이야기하고 쓰지 않고 계속 자리를 오래 비우거나 분명히 왔음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선레를 쓰지 않아 아예 스타트 자체를 무산시켜버린 선율주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기에..
일단 두 분이서 서로 이야기를 하시고 아린주와 원만한 협의 및 합의가 이뤄진다면 별 말은 안하겠지만 2차 미션를 부여할 때까지 그게 없다면 아무래도 선율주에게 조금 패널티를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이 점 또한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통보 잠수를 하거나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어영부영하다가 다음 미션이 될 때나 다시 나타나는 케이스를 막기 위한 조치이니 가급적이면 두 분이서 서로 이야기 잘하시길 바랄게요.
>>938 에...? 도망쳐 유열광인이다! 니세신부다!(??) ㅋㅋㅋㅋㅋㅋㅋ 강청주도 수고했고 재밌었어- 사실 좀더 핑퐁이 많았다면 원만한 시작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상정 외의 하드 루트가 개방...되어버렸습니다...? 아니 이게 하드일지 나락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무리 된 것 만으로도 만족해 나는!
"방송은 촬영 다 끝난 후에 나간다고 했으니 여기서 뭐하는진 방송으로 하나하나 다 보면 되잖아?" "카페 홍보하러 간 거 아니냐고? 그것도 어느정도 있긴 하지. 부정은 안할게." "네. 네. 잘 알았으니까 잔소리 하지 말고. 어쨌건 연애 프로그램이고... 아린 누나와도 이야기하고 참가하기로 한 거니까 최대한 뭐라도 남겨야지. 응. 그럴 거야. 아무튼 전화 끊을게. 잘 자."
제 친구이자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과의 전화를 마치며 은석은 드러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쭈욱 기지개를 켰다. 추가 참석자로 들어온 두 명에게 받은 케이크와 쿠키. 둘 다 아직 방의 냉장고에 들어있었고 그는 그것을 테이블로 옮겼다. 받은 그 날, 다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나 커피타임을 하면서 간식으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에 조금씩 아껴먹었으나 아마 이번으로 다 먹게 되지 않을까. 은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리 커피포트로 끓여놓은 아메리카노를 잔에 천천히 따랐다.
역시 달콤한 것을 먹을 때는 조금 쓴 아메리카노 조합이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는 하얀색 커피잔을 들고 테이블로 향한 후, 갈색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쿠키를 손에 집어 커피에 살짝 담궜다가 먹으니 쓰면서도 단 맛이 적절하게 배합이 되어 마치 커피쿠키를 먹는 것 같아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주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긴 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수확은 없다고 봐도 좋겠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보자. 그런 생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우연이건 필연이건 많은 확률을 생각하며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든 이를 만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여성 참가자는 자신의 전 연인인 아린을 제외하면 다 한 번씩 보기도 했고, 남성 참가자 중에서도 연호를 만났으니 프로그램 참가자로서는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이 확고해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그것이 조금 불만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 한 주만에 정리가 되진 않겠지만... 놀랍게도 어느 정도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납득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나.'
아린이 아니라 다른 여성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거나 같이 걸으면 마음이 엄청나게 쓰리고 아프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 정도의 감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린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지 않냐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분명히 미련은 제 마음 속에 남아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이미 납득을 한 것인지. 아니면 포기를 한 것인지. 다른 여성과 데이트를 해도, 그리고 같이 걸어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닌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인지. 마치 내가 차지하기엔 조금 고민되지만 다른 이에게 보내기엔 너무 아까워하는 마음 같지 않은가. 참으로 못되먹은 마음이었기에 그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냈다.
'...누나는 어떠려나.'
고개를 살며시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을 그는 바라봤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맞은편에 아린의 방이 있었으나 그는 아직 그녀의 방을 두들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서로가 서로를 지금은 마주하는 것을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헤어졌기에? 아니면 서로 다른 이와 데이트를 했기에?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더욱 자각을 하지 못했을 뿐. 이미 그녀의 존재가 지워지고 있었기에? 아니. 후자는 아닌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모습이 또 눈에 어렸으니까.
쓴 향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아메리카노를 마신 후, 그는 살며시 소량 남아있는 케이크를 포크로 떠서 조심히 입에 집어넣었다. 단 맛과 쓴 맛을 동시에 삼키면서 그는 다음주는 또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역시 제 마음을 확실히 엿보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일부러 다가가서라도 플러팅을 하거나 하며 제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좀 더 다양하게 만나면서 제 마음을 확인해보거나, 제 연인이 다른 이와 만나거나 할 때 제 마음이 어떻게 쿵 떨어지는지도 체크해보는 것이 좋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느낌 그 자체. 은석이 가장 싫어하는 지점이자 마음이었다.
'뭐, 좋아. 일단은 프로그램 본분에 충실하자. 어쨌든 참가했으니 할만큼은 하는 것이 맞으니까.'
싫다는 이는 제외하고 다시 한 번 그 마음을 살짝 흔들어볼까. 짓궂은, 아니. 그보다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말이 나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직 초반이지만 어영부영하게 움직였다가 제 마음을 확인할 무렵, 모든 것이 끝나있는 것은 싫었으니까. 빠르다고 좋은 것은 없었으나 느리다고 좋을 것도 없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다양하게 만나보고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마음의 형태를 빚기로 했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건 오로지 자신의 자유였고 책임이었으니 마음 가는대로, 손가락만 빨지 말자는 결론을 내면서.
'그러고 보니 음악도 틀까. 추천받은 곡도 있고...'
핸드폰을 살며시 뒤적거리면서 그는 공원에서 들었던 그 곡을 재생했다. 그야말로 그만이 즐길 수 있는 단독 콘서트장이 그의 스마트폰속 화면에 펼쳐졌고 그는 눈을 감고 그 음악을 조용히 듣다가 작게 숨을 다시 한 번 내뱉으며 오른손 검지를 손잡이에 걸어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생각할 것이 많았으나 이제 1주차가 끝난 참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생각을 정리하자고 마음 먹으며 그는 쿠키를 커피와 함께 입에 집어넣고 천천히 씹었다.
'뭐가 어찌되었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일만은 없게 하자. 역시 그것이 최선이야.'
>>985 속내를 숨기는 것은 은석이 스스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고치진 않을 것 같고... 대신에 이미 은석이는 전 여자친구였던 아린이를 다시 마음에 품게 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홀리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고... 아마 누군가를 마음에 품게 되면 그때는 다른 라이벌들과 크게 대립을 하게 되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